봄에 핀 책 6
봄에 핀 책.
<부엌의 탄생> 김자혜
패션지 기자였던 저자는 귀촌한 뒤에야 식탁 독립을 이뤘다. 스스로 장을 보고 만들고 먹고 치우는 독립 말이다. 교촌치킨을 맛보려면 읍내까지 16km, 차로 25분을 가야 하니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 책은 ‘자발적으로 고립되어 끼니를 지어 먹게 된 사람의 분투기’다. 4년간 시골에 머물다 서울 직장으로 복귀한 지금도 여전히 끼니에 정성을 들인다. 나도 주말만이라도 배달 앱에서 독립해볼까 싶다.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황모과
한국 SF 문학의 부흥기다. 알파고 대국부터 개인 우주여행까지 과학기술의 영화 같은 뉴스가 연일 나오고 팬데믹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되기 때문인지, SF 문학이 마니악한 리그에서 대중적인 베스트셀러로 도약했다. 대표 작가 중 한 명이 황모과다. 이 작품은 1990년 당시 “백말띠 여자가 드세다”는 속설로 여아 선별 임신 중지가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1990년생, 즉 30대 여자들이 겪는 임금 차별, 고용 불안, 여성 혐오, 성범죄에 대한 작가의 회신이다.
<Hi-Fi: 오디오, 라이프, 디자인> 기디언 슈워츠
지난해 온라인을 통한 LP 판매량은 70%, 턴테이블은 30% 증가했다. 디지털이 점령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아날로그를, 하이엔드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오디오 예찬서다. 책장마다 펼쳐지는 클래식한 도판만 봐도 설렌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앰프, 튜너, 카트리지, 스피커, 턴테이블 등의 자료 사진, LP로 가득한 프랭크 시나트라의 방, 20세기 초 뱅앤올룹슨 초창기 직원들의 작업 모습 등이 담겼다. 오디오 역사는 물론, 하이엔드 오디오 라이프를 즐긴 유명 인사들의 일화도 흥미롭다.
<유령 이야기> 오스카 와일드 외
오스카 와일드, 에드거 앨런 포, 기 드 모파상 등이 19세기 중반부터 1930년대에 쓴 여덟 편의 단편집이다. 서늘한 호러부터 코믹 유령까지 다양하다. 첫 편 기 드 모파상의 ‘죽은 여자’는 유령이 깨어나 자기 비석에 적힌 문구를 바꾸는 내용인데, 뒤통수치는 결말에 킥킥대며 빠져들었다. 세레넬라 콰렐로라는 동화작가가 각색해 묶으면서 일부 편집됐지만, 그만큼 136페이지로 가벼워져 가방에 넣고 다니며 짬 날 때 한 편씩 읽기 좋다.
<단정한 자유> 천지윤
해금 연주가 천지윤의 에세이를 읽으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떠올랐다. 영화에서는 연극을 준비하는 여러 나라의 예술인이 등장한다. 예술에 대한 그들의 간절하지만 차분한 정성이 부러웠다. 나도 마음을 다할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이 책도 그러하다. 저자는 음악인으로서 하는 고민, 연주차 방문한 도시에서 느낀 감정, 꾸준한 독서와 감사하는 마음을 담았다. 연주자는 자신의 악기를 닮아가나 보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시골 중학교에 다닐 때 읽은 은희경의 <새의 선물>(1995)부터 작가의 오랜 팬이다. 나는 분명 동네를 벗어난 적 없는데 왠지 도시의 외로움을 알 것 같던 기억이 난다. 그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오며 세련된 위로에 기대왔다. 이번 작품도 그러하다. 뉴욕을 배경으로 외국-여행자-타인이라는 세 시선을 오간다. 모두가 예의 바르게 대해줬지만 그럼에도 쓸쓸한 건 나뿐이 아니었구나. 이방인이 되어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소설이다.
- 포토그래퍼
-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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