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도슨트]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할 수 없는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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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도슨트]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할 수 없는 전시

2022-03-05T12:03:12+00:00 2022.03.05|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빛)>은 너무나 인스타그래머블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없는 전시다. 셔터 소리 없이, 고요와 적막, 빛이 흐른다.

필립 파레노, ‘저녁 6시’, 카펫, 가변 크기, 2000–2006.

오늘은 봄을 알리는 따사로운 빛이 건물 깊숙이 쏟아집니다. 봄비라도 내리면 빛이 어둑한 공간을 은근하게 감싸 안겠죠. 일상이 빛으로 시작해서 빛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에게 빛은 익숙한 존재지만, 예술가들에게는 인간만큼이나 오묘한 미지의 대상이었습니다. 3차원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요소인 빛을 다시 2차원 캔버스에 담으려는 움직임이 빛과 그늘에 정통한 낭만주의를 일깨웠죠. 눈에 보이는 빛을 생생하게 담아내고자 하는 바람이 인상파 화가들을 움직이게 했고요. 20세기 이후 과학이 예술 영역에 발을 들이면서 사진부터 몰입형 작품까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빛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조율하고, 장악하고, 증폭하고자 하는 인간의 시대별 욕망이 예술의 역사를 써온 셈이죠.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왼쪽)’빛과 색채(괴테의 이론)-대홍수 후의 아침, 창세기를 쓰는 모세’, 78.7×78.7cm, (오른쪽)’그림자와 어둠-대홍수의 저녁’, 78.7×78.1cm, 모두 캔버스에 유채, 1843년 전시.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빛과 색채(괴테의 이론)-대홍수 후의 아침, 창세기를 쓰는 모세’, 캔버스에 유채, 787×787mm, 1843년 전시.

올라퍼 엘리아슨, ‘우주 먼지입자’, 스테인리스강, 반투명 거울 필터 유리, 강철줄, 전동기, 조사등, 1,700×1,700×1,700mm. Hanging Height TBC, 2014.

피터 세쥴리, ‘색상환 Ⅲ’, 캔버스에 아크릴릭, 1,841×1,829mm, 1970.

오는 5월 8일까지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빛> 전시는 빛을 둘러싸고 지난 200여 년 동안 일어난 각종 진보적, 예술적 시도를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일괄하는 자리입니다. 미술 교과서에서도 보기 힘든 거물들의 역사적 작품이 서로 존재감을 맞대고 있지만, 단순히 나열만 한 게 아닙니다. 윌리엄 터너의 예를 들자면, 왕립미술원 교수로 재직할 당시의 원근법 강의용 자료부터 그 유명한 장엄함의 정수인 ‘대홍수’, 후기 순수한 빛을 묘사하며 후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빛과 색채(괴테의 이론)-대홍수 후의 아침, 창세기를 쓰는 모세’ 등의 주요 작품은 빛을 탐구한 예술가들의 자취를 친절히 따라가도록 합니다. 어린이들과 함께라도 걱정 마세요. 필립 파레노, 올라퍼 엘리아슨, 아니쉬 카푸어, 댄 플래빈, 쿠사마 야요이, 페이 화이트, 제임스 터렐의 현대미술 작품은 빛에 대해 사유하기 전 먼저 빛을 감각하고 체험할 기회를 주니까요.

댄 플래빈, ‘V. 타틀린을 위한 기념비’, 형광등과 금속, 3.054×584×89mm, 1966–1969.

쿠사마 야요이, ‘지나가는 겨울’, 거울과 유리, 1,800×805×805mm, 2005.

아니쉬 카푸어, ‘이쉬의 빛’, 유리섬유, 수지, 래커칠, 3,150×2,500×2,240mm, 2003.

테이트미술관 소장품이라는 사실만으로 노원구까지 찾아갈 이유는 충분합니다. 걸작을 SNS 피드에 올릴 생각으로 벌써 설레는 분도 계시겠죠. 하지만 이번만큼은 전화기를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전시장 내부에 촬영이 금지된, 요즘 보기 드문 전시거든요. 촬영이 가능한 작품이라고는 입구 옆에 선 데이비드 바첼러의 ‘브릭레인의 스펙트럼 2’뿐입니다. 그래서인지 <빛> 전시장은 확실히 남달라요. 작품 자체가 품은 빛과 작품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최소한의 조명만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그래서 윌리엄 블레이크와 클로드 모네의 그림에 나의 온 감정, 온 시간을 온전히 쓸 수 있습니다. 작품의 빛을 온전히 느끼고 그저 나의 두 눈에, 마음에 담았을 뿐인데, 어떤 전시보다 기억이 선연합니다. 휴대폰 액정의 블루라이트를 제거한 채 ‘관람객’이라는 본분에 가장 충실하도록 한 것이야말로 이번 <빛> 전시를 진정 빛나게 한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싶군요.

윌리엄 블레이크, ‘아담을 심판하는 하나님’, 양각 에칭, 종이에 잉크와 수채, 432×535mm, 1795.

라슬로 모호이너지, ‘K VII’, 캔버스에 유채, 흑연, 1,153×1,359mm, 1922.

브리짓 라일리, ‘나타라자’, 캔버스에 유채, 1,651×2,277mm,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