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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그래픽 아티스트와의 대화

2023.02.12

by 조소현

    우크라이나 그래픽 아티스트와의 대화

    우크라이나 아티스트 파블로 마코프가 활동한 시간만큼 분수는 진화해왔다. 색연필까지 가지런히 정돈된 작업실에서 가진 만남은 우크라이나가 침공받기 전 이뤄졌다. 그의 작품이 말하는 대로 모든 일을 흘려보낼 수 있을까.

    아티스트 파블로 마코프(Pavlo Makov)는 2월 24일까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우크라이나를 대표해 자신의 설치 작품 ‘소진의 분수. 아쿠아 알타(The Fountain of Exhaustion. Acqua Alta)’를 전시할 예정이었다. 다음 글은 우크라이나가 침공받기 전, 파블로 마코프와 진행한 인터뷰다. 당시만 해도 우리는 매일 쏟아지는 러시아군의 폭격 때문에 러시아 국경에서 40km 떨어진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Kharkiv)의 한 아트 센터 지하 대피소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잘 보존되어 있다. 큐레이터들이 마코프 프로젝트의 핵심인 청동 깔때기 78개를 폴란드로 대피시켜놓은 덕분이다. 안타깝게도, 파블로 마코프는 참석하지 못한 채 베니스에 그의 작품이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의 유명 그래픽 아티스트 파블로 마코프와 나는 여러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인재들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결집한 ‘보그 우크라이나 퓨처레스펙티브(Vogue UA Futurespective)’를 위해 지난여름 함께 작업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나는 그의 작품을 보자마자, 특별한 뭔가에서 오는 감동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 프로젝트의 또 다른 참가자인 조각가 일리아 노프고로도프(Ilya Novgorodov)에게 “이 아티스트와 사랑에 빠질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내 감정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가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게요. 저도 그럴 것 같아요.” 마코프의 ‘양귀비(Poppies) 시리즈’ 중 그날 가장 큰 인상을 준 것이 무엇인지 고르기란 내게 쉽지 않았다. 그 작품은 저마다 고유한 멋을 지닌 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 아티스트가 작업에 활용하는 복합 음각 기법 덕분에 수많은 그래픽 이미지가 하나의 작품으로 결합되어 식물도감, 지도 또는 사건 및 회의 일지로 거듭난다

    마코프는 1958년 레닌그라드(Leningrad)에서 출생했다. 그가 어릴 때 가족은 수없이 이사를 다녔고 10대에는 우크라이나 크림주 주도 심페로폴(Simferopol)에 살게 되었다. 거기서 크림 아트 스쿨(Crimean Art School) 회화과에 다녔고, 나중에는 하르키우 예술 & 공예 학교(Kharkiv Institute of Arts and Crafts)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렇게 전공을 바꾼 것이 그의 예술적 커리어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그 선택에 대해 마코프는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회화는 확실한 표현이라는 점이죠. 그림은 계속 연구해나갈 대상이에요. 그래서 저는 제 중심 언어를 드로잉하고 프린팅하기로 했어요.”

    인탈리오 프린팅은 마코프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1991년 여행길에 그는 글라스고(Glasgow)에서 20세기 이탈리아 정물화의 거장 조르주 모란디(Giorgio Morandi)의 에칭(동판화) 전시회를 보고 깜짝 놀랐다. “모란디는 정물로 완전한 우주를 창조해냈어요. 그의 전시회를 보고 하르키우에 돌아왔을 때 제 작품은 달라졌어요.” 마코프가 당시를 떠올렸다. 그해 마코프는 자신의 마지막 회화를 그렸다.

    에칭은 구리나 아연판에 부식액을 이용해 먼저 이미지를 새겨 넣는 프린팅 기법이다. 프린트되는 이미지 부분은 동판의 나머지 면에 비해 오목하게 들어간다. 길고 고된 과정이다. 그다음 프레스, 즉 압축기를 이용해 그 이미지의 그림을 판에서 종이로 옮긴다. 이 프린팅 방법은 리드미컬한 이탈리아어 ‘인탈리오(Intaglio)’라 불린다.

    “저는 평생 판화 작업을 하고 있어요. 판화는 저에게 철학적 개념이죠. 판화는 당신이 남기는 것이에요.” 그 과정이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마코프는 동일한 판화 시리즈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몇 달에 걸쳐 여러 가지 크기의 판화를 사용해, 특별한 에칭 페이퍼뿐 아니라 오래된 서적, 영수증, 지도와 기타 일회용 종이에 판화를 찍는 복합적인 인탈리오 작품을 탄생시킨다. 이 아티스트에 따르면 각 판화는 ‘하나의 글자’이다. 그것들이 합쳐져서 텍스트를 형성하고 그다음 ‘스토리’가 된다고 한다.

    파블로 마코프는 평생 판화 작업을 해왔다. 예술가의 작업실은 난장판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그의 작업실은 정돈되어 있고 엄격한 질서가 있다.

    판화를 하나의 글자로 여기고 그것들이 합쳐져서 텍스트를 형성하고 스토리가 된다고 여긴다. 파블로 마코프의 작업실 역시 물건이 모여서 스토리를 전하는 듯하다. 마코프가 입은 울 셔츠는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마코프는 ‘뉴 우크레이니언 웨이브(New Ukrainian Wave)’의 일원이었다. 처음에 그는 큰 포맷의 밝은 회화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 예술적 시기와 일정 거리를 두었다. 1980년대 후반 키이우(Kyiv) 부근에 있는 마을 세드니프(Sedniv)에서 열린 플레네르파(외광파) 행사에서, 파블로 케레스테이(Pavlo Kerestey), 올렉산드르 로이트부르드(Oleksandr Roitburd), 올렉산드르 흐닐리츠키(Oleksandr Hnylytski), 올레 홀로시(Oleh Holosiy)를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를 사귀었다. 그들과 친하게 지냈지만 그 단체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커리어를 위해 동료보다 컬렉션이 중요했기 때문이다(당시 런던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Victoria & Albert Museum)이 그의 작품 한 점을 매입했고, 이는 활동 초기 마코프의 실력을 검증해준 매우 귀중한 보증수표가 되었다).

    나는 지난해 키이우에 방문해 그를 처음 만났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 ‘소진의 분수. 아쿠아 알타’로 참가한다는 소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키이우의 더 네이키드 룸 갤러리(The Naked Room Gallery)가 베니스 비엔날레의 우크라이나 전시관 전시 기획을 맡았다. 마코프는 “너무 좋아서, 기쁨을 감출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정말 기뻐요. 이런 행사에 참여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1995년만 해도 비엔날레가 얼마나 멀게 느껴졌는지 상상이 가세요?”

    사실 그 작품의 기원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마코프가 처음으로 물뿌리개가 포함된 작품을 창작했다. 층층이 깔때기를 쌓아 올린 상징적인 작품, 완전한 분수를 담은 그의 첫 번째 그림이 그때 탄생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분수는 계속 진화했다. 마코프는 자신의 집착이 여전히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말이다. 모두가 긍정적인 뭔가를 원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소진의 분수냐, 왜 포화의 분수는 아닌가?’라고 묻더군요.”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확신하는 사람이다. 1990년대 미국 시인 베스 조슬로(Beth Joselow)가 시에 삽입될 일러스트레이션을 그에게 요청했다. 그렇지만 마코프는 원칙적으로 다른 사람의 텍스트에 삽입되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그녀의 시와 자신의 드로잉을 활용한 협업 작품 ‘4월 전쟁. 소진의 분수(April Wars. The Fountain of Exhaustion)’를 제안했다. 그리고 12부만 프린트했다. 2020년 그는 세르히 자단(Serhiy Zhadan)의 시를 수록한 드로잉 ‘영구 거주지(A Permanent Place of Residence)’를 발표했다. 그것은 두 아티스트에 대한 것으로, 그들이 거의 30년간 살아온 하르키우에서의 삶에 대한 시적인 그래픽 스토리가 되었다. “마코프가 하는 일, 그의 시간 감각, 그의 공간과 도시 풍경에 대한 감각이 제 비전과 상당히 일치하죠.” 세르히 자단이 말했다. “실제로 저는 문학에서 비슷한 뭔가를 하고 있죠. 방법이 다를 뿐이에요.”

    마코프와 베니스는 잘 어울리는 듯하다. ‘소진의 분수’가 물속으로 사라져가는 도시와 동일 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상상 속에서는 그 분수가 벽돌 담벼락에 걸려 있고, 거기에서 흐른 물이 바로 운하로 떨어진다. 이것은 그의 작품에 대한 더없이 완벽한 표현이다. 하지만 전시 공간인 아르세날(Arsenal)에서는 여의치 않았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 아쿠아 알타, 곧 ‘만조(High Water)’라는 이름이 추가되었는데, 이는 도시를 괴롭히는 계절적인 홍수를 뜻한다. 마코프에게 사라지는 것은 도시가 아니라 물, 바로 시간의 상징인 것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분수가 아닙니다. 상징이죠. 흘려보냅시다. 있는 그대로 똑똑 떨어지게 하자고요.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합시다.” 마코프가 말했다.

    베니스는 오랫동안 마코프에게 특별한 곳으로 자리매김해왔다. 1990년 후반 처음 방문한 이탈리아 도시가 베니스였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이탈리아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죠.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티티안(Titian)과 프란체스코 과르디(Francesco Guardi) 두 분 다 이곳에서 활동하며 살았어요.” 마코프는 이탈리아어를 마스터했다. 그에 따르면 언어와 문화를 공부하면 친구들이 생기고, 지도 위의 도시가 팝업 북처럼 입체적인 모습으로 바뀐다고 한다.

    ‘The Fountain of Exhaustion’, Sketch, 1996.

    ‘Garden for Mrs. M.’, Paper, Intaglio, Drawing, 2009-2010.

    ‘Morning, Ficus, Swallows’, Paper, Intaglio, Acrylic, Pencil, 2018-2019.

    지도 제작은 마코프 작품의 또 다른 중요한 구성 요소다. 그는 자신에게 실질적이고 중요한 장소를 반영해 개인 지도를 만들었다. 그곳은 모두 하르키우와 관련되어 있다. 1990년대 초, 이 방식은 새롭게 탄생한 국가에서 살아가는 방법,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소련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저는 소련의 붕괴가 아주 기뻤답니다.” 그가 말했다. “그때 제가 깨달은 바는 지도를 만듦으로써 제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었죠. 각각의 지도는 하나의 전기예요. 지도를 보면, 마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다루는 영화를 보고, 개인적인 인생 여정을 보는 것 같거든요.”

    마코프는 하르키우에 계속 살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그의 지도에는 그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을 가리키는 메인 스폿 네 곳, 그러니까 집, 작업실, 친구들과 함께 설립한 3Z 디자인 스튜디오, 그 도시에서 20km 떨어진 오두막집이 표시되어 있다. 그의 스튜디오에는 엄격한 질서가 있다. 마코프는 “많은 사람이 예술가들은 난장판에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모든 색연필을 가지런히 정리해두죠”라고 말했다.

    조금 더 평온했던 시절, 마코프 가족은 자연에 둘러싸인 시골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정원에는 사과나무와 멋진 가문비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 시골집에 마코프는 개인적으로 수집하는 현대 아티스트의 작품을 모아두었다. 파블로 케레스테이의 2m 캔버스, 수년 동안 친하게 지내는 친구이자 아티스트 엘레나 쿠디노바(Elena Kudinova)의 작품, 엘레나 블랭크(Elena Blank)의 도예 작품, 올렉산드르 로이트부르드, 블라다 랄코(Vlada Ralko), 햄릿 진코프스키(Hamlet Zinkovsky)의 회화 작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마코프는 지역사회에는 별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창작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지난해 그는 루츠크(Lutsk)에 있는 사립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지난 1월에는 잠깐이지만 오데사 미술관(Odessa Art Museum)에서 신작을 발표했다.

    보통 1년에 두 번 마코프와 아내 마리나(그는 그녀를 마샤(Masha)라 부른다)는 몇 주간 이탈리아를 여행한다. 이탈리아어 실력이 늘면서 여행 루트가 더 흥미롭고 즐거워졌다. “한때 새가 지저귀는 소리나 다름없던 말이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 되었죠.” 겨울의 끝자락에, 가족들은 파도바(Padova) 근처 온천에서 시간 보내길 좋아한다. 매년 9월 이탈리아에 갈 때마다 마코프와 마샤는 토스카나 남부 바다로 향한다. 그곳의 포르토 산토 스테파노(Porto Santo Stefano) 마을에서 중앙 광장에 있는 카페에 앉아 스프리츠를 마시며 현지인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올해는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은 베니스에 시간 맞춰 도착할 것이다. (VK)

    파블로 마코프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은 집, 작업실, 친구들과 함께 설립한 3Z 디자인 스튜디오, 20km 떨어진 오두막집이다. 마코프가 입은 울 코트, 화이트 터틀넥은 미스비헤이브(MISBHV), 그레이 팬츠는 나누슈카(Nanushka), 슈즈는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에디터
    조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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