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30주년
1992년 4월 11일. 한 예능 프로그램의 신인 소개 코너에 처음 보는 얼굴이 등장했습니다. 무대에 오른 세 청년은 당시만 해도 낯선 음악을 선보였죠. 당시 심사위원은 ‘난 알아요’라는 노래를 선보인 그들에게 10점 만점에 7.8점을 줬습니다. 낮은 성적을 받았지만 첫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끝낸 그들은 훗날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며 대한민국 가요계의 판도를 바꿔놓았죠.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던 서태지는 댄서 양현석, 이주노와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을 만들었습니다. 데뷔와 동시에 충격, 전율, 혁명을 가져온 그들이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몰고 온 태풍은 곧 대한민국을 흔들어놓았죠. 데뷔하던 그해 그들은 주요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대상을 휩쓸 정도였으니까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처음부터 곧 도전이었습니다. 1집에서 랩, 힙합, 댄스 브레이크 등을 선보인 그들은 2집에서 또 한 번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랩, 메탈, 국악을 섞은 ‘하여가’가 실린 2집은 지금까지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가운데 수작으로 손꼽히죠. 이태섭의 기타 솔로와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가락이 합을 이루는 ‘하여가’는 대중의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2집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 최초로 더블 밀리언셀러로 기록됐죠.
마니아에서 출발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층은 곧 대중으로 번졌고, 그들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발해를 꿈꾸며’와 ‘교실 이데아’가 수록된 3집 음반이 나왔습니다. 사회적 메시지를 다룬 3집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남북통일을 노래한 ‘발해를 꿈꾸며’는 음악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고,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 환송식에서도 흘러나왔습니다. 당시 교육 문제를 꼬집은 ‘교실 이데아’는 학생들의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주는 노래로 사랑받았습니다. 이 노래를 거꾸로 돌리면 ‘피가 모자라’라는 사운드가 들린다는 해프닝이 일면서 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죠.
4집은 많은 가출 청소년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데 일조했습니다. ‘컴백홈’에 담긴 “You Must Come Back Home”이라는 가사에 청소년들은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죠. 4집 앨범은 가요계 제도 자체를 바꿔놓기도 했습니다. 당시 공연윤리위원회는 4집 수록곡 ‘시대유감’의 가사가 반사회적 감정을 담았다는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내렸는데요, 이에 서태지는 항의하는 뜻에서 가사를 모두 뺀 채 연주곡만 앨범에 실었습니다. 결국 1996년 음반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됐죠. 서태지는 이후 ‘시대유감’의 완전한 버전을 싱글로 내놓았습니다.
가요계를 넘어 문화계 최고의 자리에 선 서태지와 아이들은 영원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1996년 1월 그들은 4집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죠. 단상에 올라 “4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라고 말하던 서태지의 목소리에 한 집 건너 한 집에서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하죠. 서태지는 “새로운 음반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작업은 살이 아리고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은퇴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후 서태지는 솔로 앨범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레드 레게 머리를 흔들며 ‘울트라맨이야’를 외치고, 좀 더 가볍게 ‘모아이’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아이유가 부른 ‘소격동’은 발매와 동시에 1위를 차지하기도 했죠.
양현석은 YG엔터테인먼트를 만들고 빅뱅, 투애니원, 블랙핑크 등을 키워내며 K-팝의 중심에 서 있고, 이주노 역시 후배 가수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결국 세 멤버 모두 음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이 한국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들이 가요계에 가져온 변화, 사회를 향해 던진 메시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죠. 이제 후배 가수들이 맥을 이어 새로운 방식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2017년 서태지 25주년 기념 콘서트에 게스트로 방탄소년단이 출연했는데요, 당시 서태지는 방탄소년단에게 “이제는 너희들의 시대”라는 말을 남겼죠.
시간은 흘렀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모르는 세대가 K-팝의 주류가 되었으나, 여전히 역사의 한 페이지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이름이 전설적인 아이콘으로 남아 있습니다.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