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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딕앤볼테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혼자 사는 집

2022.10.26

by 김나랑

    쟈딕앤볼테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혼자 사는 집

    51세의 쟈딕앤볼테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세실리아 본스트롬. 그가 에펠탑 전망이 아름다운 오아시스에서 우리를 맞았다. 생애 첫 혼자만의 집이다.

    데님 팬츠는 쟈딕앤볼테르(Zadig&Voltaire).

    세실리아 본스트롬(Cecilia Bönström)은 과거를 곱씹는 사람이 아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늘 앞을 보죠. 뒤돌아보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타고난 낙관주의자거든요.” 그의 파리 집 현관에 걸린 오렌지색 백미러는 프랑스 작가 조르주 주브(Georges Jouve)의 작품이지만 순전히 장식용이다.

    본스트롬이 현관 입구에서 인사를 건넸고, 우리는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키스를 날렸다. 전형적인 프랑스 브랜드 쟈딕앤볼테르의 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헝클어진 금발에 검은색 캐시미어 후디, 검은색 라운지 팬츠, 검은색 어그 차림으로, 평온하기 그지없는 파리지엔으로 보였다. 본스트롬이 스웨덴 예테보리 출신이라는 사실을 깜박하기 십상이다. “100% 스웨덴 사람이에요.” 그가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에너지를 보면 절반 정도 프랑스 사람이죠.”

    그가 내게 커피와 크루아상을 대접했고, 자신의 2층짜리 아파트를 빠르게 구경시켰다. 파리다운 환상으로 가득한 210㎡ 크기의 아파트였다. 새로 나무 바닥을 깔고 새롭게 페인트칠한 이 공간을 처음 봤을 때 자신만의 변함없는 낙관주의가 본인에게로 반사되는 것을 보았다. “정말 좋은 바이브, 그러니까 긍정의 바이브를 느꼈죠.” 그가 덧붙였다. “초와 꽃을 놓지 않았는데도 이곳은 제집처럼 느껴졌죠.”

    51세의 본스트롬이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떤 예술 작품으로 집을 꾸밀지, 즉흥 파티를 언제 열어도 될지 파트너와 상의할 필요가 없다. 그의 공간에 몰래 숨어드는 형제자매도 없다. 본스트롬이 “혼자 지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을 때, 그건 정말 말 그대로를 의미하고 있었다.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어요. 엄마 배 속에서부터 누군가와 함께 있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모델이 되기 위해 파리로 가자마자 ‘곧’ 남자 친구를 만났고 두 아들을 낳았다. 그 후 이혼했고 쟈딕앤볼테르의 설립자이자 CEO 티에리 질리에(Thierry Gillier)와 재혼했다. 그 사이에서 셋째 아들을 낳았고 최근 또다시 이혼했다.

    “갑자기 혼자 지내는 것은 큰 도전이죠. 사람들이 ‘어머, 이 여자가 쉰 살에 혼자 사네’라고 말할 만한 이야깃거리기도 하죠.” 그가 말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은 인간의 자유죠.” 복도 끝에 아이 방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막내아들이 종종 그 방에서 지낸다고 한다.

    그 집의 주요 생활공간을 지나 개인 정원에 들어섰다. 커다랗고 네모난 나무 울타리가 튼튼한 정원용 돌 벤치 두 개를 둘러싸고 있었다. 파리 16구의 마법과도 같은 정원을 장식하는 유일한 가구였다. 그리고 오른편으로 에펠탑의 뾰족한 끝이 보였다. 새 출발을 하기에 과히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파리의 저택 정원에 선 본스트롬. 울 수트 재킷과 팬츠는 쟈딕앤볼테르(Zadig&Voltaire).

    “재미있어요. 평생 본능을 좇고 있죠.” 우린 그가 직접 디자인한 짙은 올리브 그린 카우치에 앉았고 악셀 에이나르 요르트(Axel Einar Hjorth)가 디자인한 나무 탁자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비르기타 바츠(Birgitta Watz)의 꽃병부터 칼 한센(Carl Hansen)의 거실 의자까지 그의 집을 가득 채운 가구와 예술 작품 상당수가 스칸디나비아로부터 수입되었음을 알았다. “오늘날 이 자리에 있게 해준 미덕 중 하나가 자신을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 자매와도 겨루지 않았어요.”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 조언이었다. 본스트롬의 본능이 그를 성공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테보리에서 ‘말없이 조건 없는 사랑’을 기울인 부모님과 함께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스웨덴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가 모델로 처음 함께 일한 브랜드는 스웨덴의 핫셀블라드(Hasselblad)였다. “완전히 바들바들 떨었죠.”

    그다음 파리로 옮겼고, 그곳에서 올리비에로 토스카니(Oliviero Toscani), 한스 포이러(Hans Feurer) 같은 사진작가와 작업했다. “모델 일을 하면서 인생을 많이 배웠죠.” 그가 말하면서 화보를 촬영하러 혼자 레이캬비크, 마요르카, LA로 다니던 일을 떠올렸다. “고객이 뽑으면 요리조리 뜯어보는 사람들 앞에 서야 했죠.” 그는 서른셋의 나이에 아들 둘을 데리고 그 과정을 해냈다. “모델 일을 더 이상 못하겠더라고요. 머리 쓰는 일을 해야 했죠.” 그가 되뇌었다. 그때 쟈딕앤볼테르를 만났다.

    그는 밀리터리 재킷과 ‘멋진 티셔츠’로 로큰롤 감성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전달하면서, 모델 친구들 사이에서 사실상 스타일리스트가 되었다. 매주 쟈딕에 들러, 친구들을 대신해 옷을 골라주었다. “갑자기 ‘쟈딕앤볼테르에 전화를 걸어 일하고 싶다고 제안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가 회상했다. 결국 2003년에 조수로 채용되었고, 2006년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15년 후 의상에 관한 본스트롬의 직관적인 견해가 바로 파리의 보헤미안 스타일과 스웨덴의 실용성을 매시업한 이 브랜드의 미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본스트롬의 최근 이별 역시 범상치 않은 상황을 보여주었다. 그는 질리에와 함께 계속 일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확실한 자부심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개성, 재능 덕분에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거죠. 커리어를 형성해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그는 정확히, 지난 12년에 걸쳐 다른 누구보다 자신의 팀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그들은 가족이 되었어요.” 그가 말했다. 올 초 쟈딕이 새로운 핸드백을 출시했다. 길이 조절이 가능한 C자 모양 벨트가 부착된 버터리 레더 제품으로 스칸디나비아의 기능성과 파리 스타일의 멋스러움이 조화를 이룬다. 본스트롬의 팀은 그 백에 ‘르 세실리아(Le Cecilia)’라는 애칭을 붙였다.

    본스트롬의 공간은 작품으로 가득하다. 아티스트 디디에 테르메(Didier Terme)의 ‘어린 소녀의 초상(Portrait of a Young Girl)’. 구매처는 갤러리 라르트 드메르(Galerie L’Art Demeure). ‘살롱 안의 말 사진(Horse Photo in Salon)’은 엘사 & 요한나의 작품으로 구매처는 갤러리 라 포레스 디본 브뤼셀스(Galerie La Forest Divonne Brussels). 황동 그릇과 캔들 홀더는 조지 잰슨(Georg Jensen)의 것이다. ‘우노’ 커피 테이블은 악셀 에이나르 요르트가 만들었고 갤러리 노스 스톡홀름(Galerie North Stockholm)에서 발견했다.

    우리는 사진작가가 본스트롬의 모습을 담도록 잠시 대화를 멈추었다.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 팀을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대신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과 자신만의 가벼운 메이크업을 선택했다. 의상도 직접 골랐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쟈딕의 제품이었다. 전체적으로 신경 쓴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수년간 카메라 앞에서 단련된 편안한 포즈까지 모든 선택이 다분히 신중하게 이뤄진 게 분명해 보였다. 촬영을 준비하는 사이 본스트롬은 그 집에 장식된 좋아하는 예술 작품 몇 점을 가리키기도 했다. 예술가 듀오 엘사와 요한나(Elsa & Johanna)의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말 사진이 있는 라이트박스. 레오 도르프네르(Léo Dorfner)의 문신을 새긴 다리와 담배가 그려진 똑같은 그림 두 점.

    그의 예전 집에는 바스키아(Basquiat), 크리스토퍼 울(Christopher Wool), 사이 톰블리(Cy Twombly) 최고의 작품이 가득 차 있었다. 이제 그는 신진 예술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소규모 아트 페어와 갤러리에서 작품을 발굴하고 있다. “저는 매우 순수한 미학과 소박한 욕구를 가진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여성이죠.” 그가 말했다. “그것은 정말 개인적이죠.” 현관 입구 홀에 놓인 벤치에는 열 살 아들이 도자기로 만든 동물 모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세실리아는 여러 아트 북을 탁자에 두고 자주 살펴본다.

    오렌지색 백미러는 조르주 주브의 작품.

    본스트롬은 앞을 내다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나는 그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이어질지 물어보았다. 그는 자신의 팀에게 쟈딕에서 5년간 더 근무할 것을 약속했고, 그동안 그는 아시아와 미국에서의 브랜드 성장에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10년 후에는 어떨까? “예순이 되겠죠.” 무미건조하게 그가 말했다. “학창 시절부터 제가 가진 이 리듬을 아주 좋아했어요. 활기차게 거리를 뛰어다니곤 했죠. 걷지 않고 달리는 거죠. 60세가 되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겼으면 좋겠어요. 패션은 젊은이들의 것이니까요.” 그러면서 쿤달리니 요가, 호흡 그리고 ‘새소리’를 더 많이 듣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그 사이 그는 자신의 파리 오아시스에서 소박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 “인생은 정말 멋져요.” 그가 말했다. “인생에서 필요한 건 뭘까요? 근사한 와인 한잔과 좋은 친구 한 명이면 족하죠.” (VK)

      에디터
      김나랑
      ALLYSON SHIFFMAN
      사진
      ELSA HAMMARÉ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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