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있습니까?
현 세대는 섹스와 멀어지고 있다는 통계에 대한 두 남녀의 이유.
안전제일 섹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 속담의 10년을 ‘격세지감 주기’라고 명명하고 내 생애 연표를 나눠본다면, 나는 네 번의 격세지감 주기를 맞이한 셈이다. 세기말 감수성에 절어 있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나는 회한에 잠긴 낭만적인 이별 서사에 반응하던 사춘기 여자애였고,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고 소셜 미디어가 점차 확장되던 시기의 나는 영화와 음악, 예술을 추종하며 세상 느낌 있고 힙하다는 모든 것을 100% 수용하고자 작심한 20대 중반이었으며, 페미니즘 리부트와 #MeToo 운동을 힘겹게 통과하면서 나의 30대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30대 중반인 현재의 나는 햇수로 3년째 지속되는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어떻게든 이 끔찍한 역병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면서.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기어이 코로나 감염증 확진자가 되고야 말았다.
다섯 명 중에 한 명꼴로 걸리는 전염병을 도저히 피할 재간은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최대한 가려 하지 않았고,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불특정 타인과의 마주침이 있을 수 없는, 신원이 확실한 자의 집에 가거나 나의 집, 아니라면 온전히 우리만이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조금이라도 기침이나 발열과 같은 증상을 보이는 사람을 마주치면 무조건 마스크를 썼고(그 사람이 동거인이라 할지라도), 집에서도 대체로 혼밥을 즐겼으며, 외출 후 귀가하면 반드시 입었던 옷을 소독하거나 몇 번 안 입은 코트를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는 유난을 떨기도 했다.
어떤 경로로 감염되는지 확인이 불가할 정도로 확진자가 늘어날수록 경계와 불안은 극심해졌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어느새 무균에 대한 집착으로 바뀌었고, 그럴수록 타인에 대한 경계심도 커졌다. 이러한 물리적 공포는 정서적으로도 매우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내 테두리 안과 밖의 구분선을 명확하게 그어가며 사람을 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남을 최소화할수록 더욱 그랬다. 목적이 뚜렷한 업무 미팅과 같은 공적 만남이 아니라면, 만남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남을 갖는다는 건 결국 내가 타인에게 갖는 애정을 재확인하며 셈을 하는 일이었다. 본래도 약속이 미뤄질 때 내적 환호성을 지르는 내향형 인간이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고 나서는 나의 다소 못난 습성을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느낌이었다.
어느덧 나는 접촉, 그 자체로 불안을 감지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팬데믹 이전의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야 만 것이다. 여름마다 록 페스티벌에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며 땀 냄새를 공유하고, 담배 연기와 술기운으로 가득 찬 비좁은 클럽에서 밤새 숨을 헐떡거리며 춤을 춘다거나, 자주 가는 단골 라운지 바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마치 10년은 본 사이처럼 무척이나 왁자하게 놀다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자의 집에 제 발로 입장하던 격세지감 2주기 시절(20대 중반 이후)의 내가, 미래의 이런 나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전혀.
돌이켜보니 나는 점차 안전 지향적 방식으로 나의 활동 반경을 축소시켜왔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안전하다는 감각이 매우 중요했다. 다만 어떤 시절의 나는 내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걸 재빠르게 알아채지 못했을 뿐. 어쩌면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처했다는 걸 스스로 알면서도,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 깊게 머물기를 스스로에게 강요했는지 모른다. 안전한 사람과 안전한 관계 안에서의, 안전한 섹스. 첫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나는 이 간명하면서도 어렵기 그지없는 수칙을 꿋꿋하게 지켜보려고 했다. 물론 통계적으로는 실패한 편이다. 그것도 대차게 실패했다.
과거의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주변인들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때 늘 서로에게 하던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잤어?” 지금 생각하면 정말 왜 그랬나 싶은 물음과 답변. 마치 섹스가 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유일무이한 천연 기폭제이자, 두 사람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 붙여주는 만능 접착제인 것처럼. 섹스의 횟수나 만족도가 마치 그 관계의 확신과 신뢰, 안정성과 중요도를 다 설명할 수 있다는 듯이.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치고받고 싸우고, 너 때문에 내 인생 다 망쳤다며 저주를 품다가도, 메이크업 섹스 한 번에 그 난폭한 전사가 전부 무화되어버릴 수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섹스는 이성적 논리나 정교한 언어로는 차마 다 풀어내지 못하는 순수한 감정을 증명하는 구원의 방식이었다. 어떤 시절의 나는 섹스를 그렇게나 추켜올리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와 내 친구들은 좋지 않은 섹스로 인해, 좋지 않은 경험을 지독하게 치르고 있었다. 헤어져야 마땅한 관계를 뿌리치지 못하고, 누가 봐도 불안정한 관계이건만 무슨 모험심인지 끝끝내 마지막까지 해보겠다며 불지옥에 달려들기도 했다. 이 시대 마지막 사랑의 수호자라도 된 듯 불타오르던 나와 내 친구들은 상대는 결코 느껴볼 수 없는 고통의 실체를 직접 체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너를 사랑하니까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겁박이었는지 우리는 몰랐다. “나를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아?”라는 질문은 망설이고 주저하던 우리를 결국 굴복하게 만들었다. 사랑한다면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섹스를 강요하지 않았어야 했고, 사랑한다면 반드시 콘돔을 껴야 했으며, 사랑한다면 제대로 책임져야 했는데 말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그리고 #MeToo 운동을 관통하면서 나는 나의 안전을 지켜줄 언어를 획득할 수 있었다. 대차게 패망해버린 경험은 분명 내게 혹독한 아픔을 주었지만, 그 고통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자양분을 얻을 수 있었다. 경계심보다는 호기심이 더 강렬하게 작용하던 삶에서, 그 경험치는 일종의 안전바 역할을 해주었다. 관계가 끝나고 나서도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했던 몇 번의 경험을 나는 그제야 소화할 수 있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고 확실하게 인정하고 결론지을 수 있었고, 나의 테두리 밖으로 끌어다가 폐기할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비포 선라이즈> 같은 로맨스 서사를 보며 감응하지 않는다. 낯선 타국에서 낯선 남자와 보낸 낭만적인 하룻밤을 그린 영화는 로맨스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깝게 느껴진다. 클럽에서 낯선 남자가 건네준 술을 마시다가 의식을 잃고 성폭행을 당하거나, 신원이 확실하고 제법 믿음이 가는 사람과의 섹스 도중, 상대가 상의도 없이 몰래 콘돔을 빼고 질내 사정을 해버리고는 “아, 네가 아는 줄 알았어. 미안” 하며 교묘하고 야비하게 수습하려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아이 메이 디스트로이 유>(HBO)의 서사가 애석하게도 더 와닿는다.
한동안 나는 섹스를 하지 않았다. 섹스는커녕 연애도 하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얻게 되는 자극은 나를 피로하게 만들었고, 설렘이나 호기심 따위보다 저 사람이 과연 안전한가에 대한 의심을 해소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팬데믹 이후로는 더 심해졌다. 타인을 내 공간으로 들인다? 심지어 내 침대에 그 사람을 눕힌다? 그 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그 자가 품고 있는 바이러스가 나와 내 고양이들을 해치기라도 하면? 팬데믹 시대에 연애를 감행한다는 건, 심지어 육체적 교감을 시도하려는 건 나의 불안 역치를 월등히 넘어서는 일이었고, 나는 웬만하면 그런 부담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랑은 의도치 않게 발생한다. 타인에 대한 신뢰가 다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의 연애를 통해 깨닫는다. 안전한 사람과 안전한 관계 안에서의, 안전한 섹스.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며 내가 수시로 되뇌던 주문이었다. 이 안전 수칙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이는 아마도 과거의 내가 겪었던 경험으로부터 얻게 된 간명하면서도 엄정한 기준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 나를 해치지 않는 연애를 할 것. 나의 바운더리를 스스로 확보할 것. 안전하지 않을 시, 당장에라도 그만둘 수 있는 배짱을 기를 것. 다행히 나의 파트너는 안전함을 쥐여주는 사람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나는 현재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으므로, 얼마간은 그가 나를 경계해야겠지만. 차현지(소설가)
욕구의 행방
섹스 칼럼 의뢰를 받자 민방위 훈련 통지서를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내가 이런 걸 했고, 이걸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 싶은 것이다. 나는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섹스 칼럼을 작성한 적이 있다. 전우를 찾아다니는 퇴역 군인의 마음으로 그때 그 취재원들의 연락처를 찾았다.
“약 먹어요.” 여기서의 약은 발기 촉진제다. 약의 용도는 나이가 들어도 아령처럼 단단한 발기를 유지하며 밤을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임신을 위해서다. 가장 야했던 섹스의 추억으로 스리섬을 말했던 K는 몇 년 전 결혼해서 임신 클리닉에 다니는 중이다. “이게 생각보다 비싸요. 가면 제 정액을 확인해야 하니까 병원에서 자위도 한 번 해야 돼요. 기분이 좀 그렇죠. 처방을 받으면 의사 선생님이 가임 일자를 알려줘요. 그 기간 동안에는 정액이 늘 가득 차 있어야 한대요. 그래서 만날 섹스를 해야 하는데 제가 종마도 아니고 잘되지는 않죠. 그래서 약을 받아요. 구강 용해 필름 타입과 알약 타입이 있어요.” 그는 약의 이름도 알려주었다. 구강 용해 필름 타입은 ‘제대로필’, 알약은 ‘팔팔츄정’. 나는 약 이름의 대범함에 말을 잃었다. “하나 드릴까요?”라는 제안도 정중히 거절했다. 받아둘 걸 그랬나.
“저는 두 번 만에 임신이 됐습니다.” 섹스는 좋지만 여자랑 같이 하룻밤을 자는 건 싫어서 모텔 대실을 좋아하던 D는 이제 곧 아빠가 된다. 결혼 후에도 아기 생각은 없었는데 살다 보니 생각이 변했다고 한다. 그럴 수 있지.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을 때도 그는 아내의 출산일이 다가오니 집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럼 이제 성욕은 없나요? 내가 물었을 때 D는 왠지 애에게 대답하듯 말했다. “주된 욕구는 아니죠.” 그럼 주된 욕구는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코인과 자동차죠.”
자동차 하니 다른 친구가 생각났다. 내 칼럼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만한, 여러 차례 등장한 경리단길의 종마 같은 남자 H였다. 한때 그의 모든 생활은 섹스에 맞춰져 있었다. 잠실에 살아보니 일산 사는 여자를 만나기 힘들어서 수도권 도로 교통망의 중심 용산구로 이사했다.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구성에 문제가 있기로 정평이 난 영국산 자동차의 엔진이 고장 났다. 결과적으로 섹스 때문에 자동차 엔진을 교체한 꼴이었다.
“미안해. 운동하느라 답을 못했어.” 한때 경리단길에서 할로윈 데이에 피를 철철 흘리는 메이크업을 한 여자를 만나 바로 섹스를 하던 H도 이제 운동을 한다. 경리단길을 떠난 지도 오래다. 그는 분당으로 이사를 가서 사업 규모를 늘리며 절간의 수도승 같은 삶을 산다. 예전의 운동은 여자와 사업을 위한 거였다면 지금은 사업과 건강을 위해 운동한다. “섹스는 무슨. 이제 예전 같지 않은 거지.”
내 섹스 칼럼의 고정 게스트들이 있었다. 매번 등장해 명대사를 남겼던 여성 Y와도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 섹스 칼럼 사상 최대 유행어 ‘붕맨꿀’을 만들어냈다. 붕맨꿀은 ‘붕가붕가 후 맨몸으로 꿀잠’의 준말이다. 한번 듣고 나면 잊어버릴 수 없는 말인지 요즘도 내 블로그 검색 유입 키워드에 있다. 오랜만에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을 때도 그녀는 붕맨꿀의 주창자가 자신임을 강하게 주장했다. “중요한 건 ‘맨’이에요. 꼭 붕가붕가를 하고 맨몸으로 잠들어야 해.” 내가 물었다. 붕옷꿀은 느낌이 덜한 거예요? “옷이 뭐야. 붕‘팬’꿀도 안 돼요. 팬티 한 장 걸쳐도 안 돼!” 세상 남자들이 야성을 잃고 초식화되었지만 이분은 여전했다. 세심한 멜로 영화 사이에서 <분노의 질주: 홉스 & 쇼> 같은 걸 보는 통쾌함이 있었다.
“점점 가리는 게 많아져요.”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Y는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에 다섯 번 하던 걸 이제는 한 번만 해요. 눈이 높아졌다고 하긴 좀 그렇고, 가리는 게 많아진 것 같아요. ‘내가 해주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
‘이렇게까지…?’가 섹스에 대한 어른들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성 경험이란 게 생겨버렸고, 거기서 오는 기쁨과 슬픔과 남모를 짜릿함과 분노 같은 것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그런데 동시에 삶의 다른 부분도 어른이 됐다. 섹스보다 중요한 게 생기고 쾌락보다 더 갖고 싶은 게 생겼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렇게까지…?’ 싶어진다. 힘껏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에 굳이 손을 뻗지 않게 되는 것이다. 1940년대의 윈스턴 처칠 역시 에너지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걸을 수 있을 때는 절대 뛰지 마라. 앉을 수 있을 때는 절대 서지 마라.” 어른의 성욕도 그런 걸까.
마음 한구석에선 이게 다일까, 싶기도 하다. 내 소중한 취재원들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지만 이들은 내게 진실을 말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사람은 자기 욕망에 솔직하기 쉽지 않고 성욕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더구나 한국은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라는 정서로 모두가 모두를 은근히 곁눈질하는 눈치의 사회이고, 지금은 성욕처럼 미묘한 욕망을 어설프게 드러내면 곧바로 여러 사람의 분노가 터지는 시대다. 어쩌면 모두 최영미의 시집 <공항철도>의 마지막 시 ‘최후진술’ 같은 마음이었을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 진실을 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사회의 기묘한 징후가 인터넷에 드러난다. 익명의 정념이 정량적, 정성적 데이터로 보일 때가 있다. 내가 섹스 칼럼을 연재할 때는 해당 매체의 웹 기사 중 섹스 칼럼 조회 수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젊은이들에게도 성욕의 정념은 여전한지 직장인 게시판 블라인드의 19+ 게시판 역시 여전히 활황이다. 어딘가에는 있으나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요즘 시대의 섹스일까. 아니면 섹스란 게 늘 이런 건지도 모른다.
원고에 참고할 게 있나 싶어 구경하던 블라인드에도 비슷한 질문이 올라왔다.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 (섹스) 파트너는 만나자마자 인사하고 쿵야쿵야하고 ‘안녕히 가세요’ 이러고 헤어지는 거야?” 답글이 명문이었다. “정답은 없어. 인생은 주관식이야.” 섹스란 게 정말 늘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계속. 박찬용(칼럼니스트) (VK)
- 피처 에디터
- 김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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