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주얼리

주얼리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

2022.04.25

by 조소현

    주얼리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

    반짝이는 모든 것이 특별하지는 않다. 주얼리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우리 자신이다.

    플래티넘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잠자리 모양의 ‘티파니 인챈트 드래곤플라이 다이아몬드 브로치’는 티파니(Tiffany&Co). 블라우스는 렉토(Recto.).

    나는 장신구를 자주 하지 않는다. 한의학에선 내가 금음체질이라 치아 보철조차 독이 될 정도로 금속과 안 맞는다 하고, 체형 분석론에 따르면 상체가 두툼한 스트레이트형이라 목걸이가 안 어울린다. 본능으로 알았던지 어릴 때부터 금붙이를 오래 두르지 못했다. 그래서 패션으로서의 주얼리는 관심 밖이다. 내게 주얼리란 인생의 이정표나 소중한 관계, 삶의 가치가 물화한 상징으로서 의미가 있다. 몸에 두르지 않아도 소유하다 이따금 내어 보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물건들 말이다.

    얼마 전 어머니는 내게 귀금속 몇 종을 주셨다. 순금 목걸이, 18K 목걸이·귀고리·반지 세트, 다이아몬드 반지 등이다. 그것들은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받지 않겠다고 한사코 거부했지만 어머니는 완강했다. 반드시 내가 가져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유가 있다. 내 가족은 할머니 옷장을 뒤지면 빈티지 샤넬 백이 튀어나오고 롤렉스 금시계가 유행하면 아버지 서랍에서 발굴하면 되는 오랜 부유층이 아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공장이다 식당이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스물두 살에 첫딸을 낳은 어머니는 부를 상속받는 대신 상속해줄 수 있는 여성이 되기를 꿈꾸었다. 가족이 모두 직업을 갖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잉여 자산을 축적할 수 있게 된 후로 어머니는 계를 들었다. 계를 타는 대로 귀금속을 모았다. 이건 큰딸 줄 거, 저건 작은딸, 요건 큰사위, 조건 작은사위, 다음은 손주들… 나는 귀한 것일수록 아끼지 말고 사용해야 한다는 주의라 기왕에 갖는 귀금속이면 착용할 수 있는 것이 좋고, 그러려면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 어머니의 취향으로 맞춘 장신구가 내 마음에 드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러니 이중으로 드는 세공비라도 아끼게 차라리 금괴를 사달라 농담도 해보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듣지 않는다. 금은 재물일 뿐이다. 그것이 장신구가 되는 순간 여러 의미가 더해진다. 여성이 가장 나중 것을 갖게 되는 전통 사회에서, 집안의 여성에서 여성에게로 계승되는 유산이 있다는 건 부유함 이상을 뜻한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여자, 집안의 부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정도 능력과 자신을 가꿀 여유와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감각을 가진 여자, 선물을 주고받는 단란한 모녀, 귀티 나고 어여쁜 딸이라는, 어머니가 동경하는 귀부인 세계관이 집약된 게 장신구다. 부동산이나 금괴나 특등급 한우 갈비 선물로는 그 맛을 낼 수 없다. 작고 반짝이는 귀금속은 일단 기분이 좋기도 하다.

    어머니는 계를 붓는 동안 그걸로 자식 줄 금목걸이를 산다는 뚜렷한 목표를 통해 일의 동력을 얻고, 디자인을 하고 세공을 맡기고 그것을 받아 보관하는 동안 당신 눈에 예쁜 것을 보아 설레고, 그걸 건넬 때는 ‘내가 돈을 벌어서 자식을 귀하게 만들었다’는 뿌듯함을 즐긴다. 내가 그 장신구를 걸쳐볼 때 어머니는 “아이고 예쁘네, 아이고 예쁘다” 연발하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것들은 현금처럼 쉬 없어지지 않고 준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에게 오래 기억될 것이다. 정작 어머니 자신은 금목걸이도, 금반지도 없다. 이번에 받은 다이아몬드 반지도 10년 전 자식들이 사드린 것이다. 집에 도둑 들까 무서우니 가져가라고, 언니는 결혼반지가 있으니 손가락 남아도는 네가 가지라고 하도 성화를 해서 도리 없이 받았다. 어머니 당신은 명품 가방도 다이아몬드 반지도 아까워서 못 쓰지만 자식들은 그런 것쯤 우습게 쓰는 여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거기엔 담겼다. 그것들을 나는 이따금 집에서 착용한다. 서너 시간 만에 거추장스럽다고 주머니에 넣을 게 뻔하고 어울리지도 않으니 외출할 땐 손이 가지 않는다. 다만 조금이라도 반짝이고 싶은 날이면 집에서 금은보화를 두른 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한다. 오래전 친구가 새 액세서리를 하고선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라 비웃지 마라. 돼지는 기분 좋단 말이다”라고 해서 함께 깔깔거린 적이 있는데 내가 그렇다. 어쨌든 기분이 좋다. 밖에선 허름해도 집에는 금은보화가 굴러다니는 여자가 나야 나. 한편으로 그것들은 어머니가 꿈꾼 삶, 어머니가 내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세계, 말로 다 못한 사랑을 짐작하게 해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요즘 나는 이것들을 세공해서 자주 쓰느냐, 내가 이것들에 어울릴 만큼 나이 들기를 기다리느냐 고민한다.

    물건을 자아의 연장으로 보는 것은 의식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탓이라는 종교철학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애착 담요처럼 의식의 보조 장치가 되는 물건을 소유하는 기쁨은 어른에게도 포기하기엔 너무 달콤하다. 몸에 붙이고 다니는 장신구는 그러기에 가장 좋은 도구다. 오래전 밀라노의 귀금속 산업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그때 접한 많은 말, 사람들, 태도 중 영영 기억에 남은 건 하나다. 어느 보석상의 아내가 한 말이었는데, 그는 실제로 착용하는 풍성한 참 팔찌를 보여주며 기념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씩 모은 것이라고 했다. 결혼, 출산, 여행 등 삶의 이정표가 되거나 행복을 실감하여 오래 기억하고 싶은 순간마다 참을 사들였고, 그 덕에 팔찌를 통해 언제고 그 순간의 정서를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보석상의 아내라면 다른 값비싼 귀금속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세월이 응축된 그 팔찌였다. 단순한 교환가치보다 가풍이나 안목을 증명하는 도구로서 주얼리를 중시하는 유럽 상류층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스타일 유튜버 밀라논나는 오래 모은 장신구를 공개한 적이 있다.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비녀, 선물 받은 보석으로 직접 디자인해 만든 팔찌, 사업 성공에 기여한 목걸이, 유럽의 전통 있는 상류층을 만날 때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 착용한 앤티크 반지 등이다. 저마다 사연이 있고 독특하고 정성껏 관리되어 남다른 정서 가치를 지닌 물건들이다. 젊은 구독자들은 해당 콘텐츠가 패션뿐 아니라 삶의 태도까지 돌아보게 만든다며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개성과 취향이 담긴 물건을 오래 소유하며 세월의 흔적을 새기고 그것을 내 삶의 증거로 남긴다는 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낭만적 상상이다. 하지만 좋은 안목을 가지고 실제 그것을 실천한 사람이 보여주는 노년의 결과물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따져보면 그렇다. 우리가 소유하는 물건 중 우리 자신보다 긴 수명을 가진 건 별로 없다. 드비어스 다이아몬드가 아니어도 귀금속은 영원하다. 그러니 우리의 정서를 물화하거나 세월의 흔적을 새길 대상으로 그 이상이 없다. 그렇게 탄생한 나만의 상징물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만일 누가 티파니의 180캐럿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어머니가 주신 귀금속을 맞바꾸자고 하면 물론 나는 이게 웬 떡이냐며 교환에 응할 것이다. 어머니는 처음엔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지만 그 물건이 350억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함께 기뻐하실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물건에 나만의 가치를 새로 부여할 시간이 충분치 않은 150살 노인인데 티파니가 그런 제안을 한다? 티파니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 없겠지만 나로서도 당연히 어머니가 주신 귀금속을 걸치고 관에 눕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 시체의 손가락 하나는 친구들과 발리 여행에서 함께 산, 두 번 다시 같은 디자인을 찾지 못한 3,000원짜리 은반지를 끼고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주얼리는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소비의 짧은 희열을 위해, 오늘의 차림을 완성하기 위해, 소중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 부를 과시하기 위해, 나의 수준을 증명하기 위해, 투자를 위해, 심리적 안정을 위해, 그 밖에도 여러 이유로 장신구를 사용한다. 무엇이건 당신의 장신구는 당신보다 지구에 오래 남을 것이다. 고대 왕족의 부장물처럼 당신의 역사와 취향과 지위와 관계를 고스란히 증거하면서. (VK)

      에디터
      조소현
      이숙명(칼럼니스트)
      포토그래퍼
      이규원
      패션 에디터
      허보연
      모델
      임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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