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에 도전한 디자이너 3인
평범한 삶을 뒤로하고 보석과 함께하는 인생을 택한 도전적인 디자이너 3인과의 대화.
Simone Brewster
럭셔리 주얼리 디자이너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받아들인 건 주얼리를 디자인하고 제작한 지 10년쯤 지났을 때였다. 나는 수은을 이용해 서로 다른 재료, 형태와 무게를 표현하는 방식을 커리어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왔다. 원래는 건축을 전공한 뒤 곧장 일을 시작했지만, 23세에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디자인을 통해 사고하고 제작하는 법을 공부했다. 계속 많은 것을 만들었고, 가구나 조각품 같은 오브젝트를 제작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 흑단이라는 소재를 만나면서 주얼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몇 년간 주얼리를 만들어왔지만 여전히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처럼 새롭고 가슴이 뛴다. 하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경로로 입문해서일까? 이미 탄탄하게 입지를 다진 이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나처럼 제2의 인생을 주얼리에서 찾은 디자이너들이 있었던 것. 명확한 비전과 표현력이 풍부한 언어로 자신의 주얼리를 탄생시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무엇을 배웠고 어떤 식으로 새 인생을 꾸리는지, 그들이 세상에 내놓은 주얼리와 액세서리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은 디나 카말(Dina Kamal)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카말의 주얼리를 보며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거라고 확신했다. 디나도 건축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Dina Kamal
레바논에서 성장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지만, 자신의 정체성뿐 아니라 어떤 일과 잘 맞을지 알고 싶어 했다. 팔레스타인인 부부 밑에서 자란 디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있었어요. 공간과 정체성 두 가지 다요.”
그렇게 건축을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처음 싹텄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마쳤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디나는 건물 디자인을 했지만, 그 일을 하면서 일상적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제약이 점점 커지자 그녀를 옥죄고 가두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신도 전공과 하는 일이 전혀 다르시더군요. 저는 일하는 방식에서 타협이란 없었으면 했어요.” 그런 긴장감을 가지고 출발한 리서치를 통해 핑키 링(Pinky Ring, 디나 카말의 시그니처 디자인)이 가진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찾아낸 것이다. 그녀가 주얼리 분야로 향한 것은 당연한 수순 같아 보였다. 인체와 건물의 크기와 균형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과정은 같아요. 건축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배웠죠.” 첫 번째 컬렉션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정체성 이해에 대한 필요로 떠오른 아이디어였어요. 그게 공간보다는 주얼리를 통해 나타난 거죠. 주얼리를 다룬 지 벌써 11년이 되었네요.”
그녀의 첫 컬렉션 ‘PNKYRNG’은 양성을 위한 컨템퍼러리 스타일의 오버사이즈 링 디자인을 한데 모은 것으로, 새끼손가락에 끼우는 것을 전제로 디자인했다. 엄청난 양의 사전 조사 끝에 디나는 이 반지의 분류를 좁혔다. “자아를 정체성과 연결시키는 인류의 본능과 욕구에 대해 늘 관심이 있었어요. 인장 반지를 조사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요. 자신만의 인장을 가진다는 아이디어는 서구 귀족이 쓰기 훨씬 전부터 있었죠.” 디나는 인장 반지를 기원전 3,500년부터 사용했다는 걸 찾아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원통형 인장을 진품 인증의 표식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리고 이 역사적 의미를 파고들기로 했다. 고대 귀족부터 1920년대의 신여성, 오늘날의 래퍼에 이르기까지, 새끼손가락의 반지는 어떤 의미가 있었다. “새끼손가락의 인장 반지는 사고방식을 보여주죠. 일종의 탈리스만이나 아뮬렛처럼요. 그 의미에 집중했어요. 간단하고 쉬우면서도 스스로에게 힘을 주는 방법인 셈이죠.” 카말이 파인 주얼리를 다루기는 하지만, 건축 철학 역시 각 아이템에 들어간다. 이성적 접근에 따라 귀중한 보석에 명확한 밸런스를 부여하는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어떻게 배치하고, 그 주변에는 어떤 디자인을 더하고, 손가락과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지가 중요하죠.” 비율과 디테일, 소재가 카말의 브랜드를 정의한다. 창의적인 과정 역시 중요하다. 건축가로서 지닌 마인드가 예술가 정신과 크게 다를 수 없다고 카말은 생각한다. “시간과 엄격함이 필요해요. 좋은 디자인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좋은 디자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을 담은 무언가를 만드는 거죠. 예술의 한 형태이며, 시간이 걸리는 과정입니다.” 이 말은 나의 심금을 울렸다. 내가 주얼리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주얼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인 패션계의 빠른 속도에 어색함과 거부감이 있었다. 창조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주얼리와 시간의 관계, 역사를 이해하는 다른 아티스트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Loren Nicole
로렌 니콜(Loren Nicole)과 대화를 나눴을 때, 단순한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것을 빠르게 알아챌 수 있었다. 진정한 장인이자, 자신의 첫 번째 커리어와 깊이 엮인 금속공예를 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원래는 고고학자가 되려고 했어요. 고고학 박사 학위도 있죠.” 졸업할 때쯤 로렌은 뉴욕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생겼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동안 보존 분야에 깊이 빠져들었다. “보존 연구실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섬유 보존 전문가와 연락을 계속 하다가, 결국 함께 일하게 되었죠.”
로렌은 고고학자라는 첫 번째 직업이 주얼리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설명했다. “재료의 원출처를 조사하는 능력은 분명히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은 고고학과 주얼리 분야에 모두 필요한 능력이에요. 저는 패턴을 파악하는 능력이 좋은데, 고고학을 공부한 경험에서 오는 거죠.”
고대 그리스 로마의 주얼리에서 영감을 받은 로렌은 본능적으로 그것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단순히 지난 역사의 레플리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로렌의 터치는 가볍고 미니멀하며 섬세한 시각에서 이뤄진다. 주얼리가 너무 번잡스럽거나 화려해지지 않도록 신경 쓴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Ungapachka(그녀의 어머니가 자주 쓰던 이디시어 표현으로, 지나치게 장식이 많거나 꾸민 것을 의미함)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녀의 손끝에서 이런 균형이 이뤄진다. “이미 모든 걸 스스로 만들고 있는데, 굳이 다른 방식으로 제작하지는 않을 겁니다. 고대 사람들이 제작하던 방식으로,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과 룩을 보여주죠.”
Lola Oladunjoye
건축가나 유물 보존가에서 파인 주얼리 제작자가 되는 것은 18년간 법조계에 종사하던 사람이 주얼리 분야로 뛰어든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자연스럽게 보인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파인 주얼리 디자이너 롤라 올라던조이(Lola Oladunjoye)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두고 주얼리 디자이너로 인생 2막을 열었다.
롤라는 첫 번째 직업에 대해 미소 띤 얼굴로 이렇게 얘기했다. “‘왜 변호사가 되기로 결정했을까’가 아니고, ‘변호사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나’의 문제였어요.” 나이지리아 전통의 가부장적 가정에서 성장한 그녀는 창의력이 넘쳐흐르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어요. 그리고 런던에 사는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한 집에서 이모들, 삼촌들과 모두 부대끼며 지냈죠.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어요. 아마 아버지는 ‘롤라가 확실히 말재주가 있군’이라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처럼 변호사가 되길 원하셨죠.”
10대의 롤라는 대학에 가기 위해 영국에서 다시 나이지리아로 돌아갔다. 다시 자신의 문화를 호흡하자, 민족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감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었다.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의미 있는 커리어를 개척하고자 했던 롤라는 미국으로 건너가 변호사 자격시험을 통과한 뒤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8년째 일하던 어느 날 계약서를 작성하다가 ‘이런 일은 별로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사실은 그 이상이었죠. 너무 싫었어요.”
롤라는 자신의 창의력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잠자고 있었을 뿐, 이제 다시 꺼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수업을 들었어요. 섬유에 관심이 있어서 아프리카 패브릭으로 베개를 만들었어요. 사진에도 관심이 있었죠. 그러다가 금속공예 수업을 들었는데,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금속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창조하는 법을 배운 롤라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두 번째 진로의 가능성을 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호사로서 승승장구하던 삶을 당장 포기하고 뛰어든다는 건 쉽지 않았다. 롤라는 우선 기술을 갈고닦으며 주얼리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제가 진짜로 원한 일은 디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주얼리를 제작하는 것은 그만두고, 디자인에 집중했어요. 그리고 몇 년 후에야 비로소 뛰어들 준비를 마쳤죠.” 급격한 변화이기도 했지만, 롤라는 변호사로서 자신을 충분히 증명한 것이 기뻤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나서야 스스로 다른 길을 허락할 수 있었죠.” ‘롤라 펜허스트(Lola Fenhirst)’라는 브랜드를 만들면서 한 방향으로 치우친 주얼리계에 새로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브랜드를 시작할 때는 제 마음에 드는 주얼리를 만들었어요. 서구와 아프리카, 동서양 사이의 어딘가에서 신선하면서도 잘 정제된 주얼리를 찾을 수 없었거든요.” 롤라가 하는 작업의 핵심은 아프리카와 유럽의 문화와 역사에서 나온다. 이런 디자인은 그녀가 겪은 수많은 반대와 모순에서 찾은 균형을 우아하게 보여준다. 주얼리라는 커리어가 과연 삶에 어떤 득실이 있었는지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답은 하나뿐이에요. 확실히 득을 봤죠. 저의 창의적 관점을 발전시켰고, 그런 발전이 다 작업물에 나타났으니까요.” (VK)
- 에디터
- 신은지
- 글
- Simone Brewster
- 사진
- Simone Brewster, Kristof Szentgyorgyvary, Nadine Badra Renom, Dinakamal, Austin Harris Films, Sara Rey Photography, My Paris Portraits, Cooper Carras, Simon Mart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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