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식과 미식 사이] 단 한 병의 샴페인을 추앙해요
세상에 뿌려진 수많은 술 가운데 샴페인을 가장 편애합니다. 날씨가 좋아서, 기쁜 일이 있으니까, 맛있는 음식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매 순간 필요한 기포 이는 술. 그 가운데서도 최근 가장 마음이 가는 특별한 샴페인을 소개할게요.
요즘 같은 완벽한 날씨엔 밤낮으로 술이 자주 생각납니다. 이런 온도와 습도라면 보글거리는 샴페인만큼 적절한 술이 있을까요? 미각을 일깨우는 촘촘한 기포, 과일이나 꽃을 떠올리는 기분 좋은 향, 목을 타고 넘어가는 시원한 청량감, 어떤 음식과도 훌륭하게 어우러지는 포용력까지. 샴페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선 100가지도 술술 풀어낼 수 있어요.
누군가를 축하할 일이 생기면 샴페인이 먼저 떠오릅니다. 샴페인은 기분 좋은 전조를 만들어내는 술이라고 생각해요. 샴페인의 ‘술말’을 찾자면 환희 아닐까요? 때때로 샴페인은 한 주간 수고한 나에게 선물하는 최고의 금융 치료가 되기도 합니다. 얇고 매끈한 와인 잔에 차갑게 칠링한 샴페인을 콸콸콸 따를 때야말로 진심에서 우러난 미소가 지어지니까요.
샴페인은 크게 NM과 RM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네고시앙 마니퓔랑(Négociant Manipulant)’은 포도를 구입해서 양조하는 생산자로 유명 샴페인 하우스가 대부분 여기에 해당됩니다. NM 샴페인은 미드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샴페인을 즐기는 장면에 자주 등장하죠. 반면에 ‘레콜탕 마니퓔랑(Récoltant Manipulant)’은 직접 재배한 포도로 샴페인을 양조하며, 좀 더 테루아르의 개성을 섬세하게 반영합니다. 브랜드 이름도 상대적으로 생소하고 생산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발품을 좀 더 팔아야 하는 수고로움이 필요하지만, 와인메이커의 철학과 개성이 잘 살아 있어서 그만큼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 저는 RM 샴페인을 탐닉하고 있습니다.
최근 발견한 가장 매력적인 RM 샴페인 생산자는 나탈리 팔메라는 우아한 여성입니다. 양조학자이자 와인메이커인 그녀는 샹파뉴 지역의 테루아르를 섬세하고 깊이 있게 연구하는 학구파로 유명합니다. 예리한 눈매와 다부진 인상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이죠. 양조학과 포도 재배 분야에 박사 학위를 획득했으며, 별도의 와인 연구소를 설립해 테루아르를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어요. 샹파뉴 지역뿐 아니라 부르고뉴, 론, 코르시카 등 다른 지역 와이너리도 활발하게 컨설팅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은 전문가입니다.
나탈리 팔메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사용했던 항아리 암포라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하는데요, 여기서 숙성시킨 와인은 어떤 맛일지 무척 궁금합니다. 나탈리 팔메의 가장 기본급 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나탈리 팔메 브뤼’를 최근 친구들과 함께 시음했어요. 일단 가장 다른 점은 기포였습니다. 그동안 마셔온 샴페인과 확연히 다른 스타일로 어떤 장막이 새롭게 열리는 기분이 들었어요. 힘차고 강렬하게 솟구치는 것이 아니라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다 크림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기포의 느낌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조리법이나 재료를 섬세하게 다루는 파인다이닝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기포감이 훨씬 더 음식과 조화롭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탈리 팔메 샴페인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뛰어난 산도입니다. 좋은 산도의 샴페인은 식욕을 돋우죠. 어깨가 축 처진 어느 금요일 밤 소고기, 육회와 함께 이토록 우아한 샴페인을 기분 좋게 즐겼습니다. 와인이 줄어들수록 텐션이 올라가는 마법을 경험했죠. 샴페인은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부스터니까요.
샴페인의 최고 미덕을 꼽는다면 음식과의 페어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누군가는 지구 상의 음식 중 샴페인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찾기가 더 힘들다는 극단적인 말을 한 적 있는데요, 꽤 수긍이 갔어요. 실제로 몇 년 전 소믈리에, 와인 애호가들에게 샴페인과 최고의 마리아주를 찾아달라는 설문을 돌렸습니다. 그때 되돌아온 답변이 모두 달랐죠. 순대, 떡볶이, 김밥, 투게더 아이스크림처럼 친숙한 음식부터 굴, 회, 성게알, 산낙지, 육전, 스테이크 등 본격적인 메뉴까지 흥미로운 매칭이 많았죠. 개인적으로는 샴페인 마지막 잔에 딸기를 넣어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조밀한 딸기 표면에 샴페인의 기포가 콕콕 달라붙은 것을 한입에 쏙 넣으면 입안이 향긋하고 상큼하게 마무리되는 기분이 들거든요. 진짜 좋은 샴페인은 사실 음식이 꼭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물과 마셔보라는 어느 전문가의 코멘트도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최고의 안주는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농담 혹은 진담 아닐까요?
- 글
- 김아름(칼럼니스트)
- 사진
- Unsplash.com,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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