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계에는 사연이 있다

TIME & GEM

모든 시계에는 사연이 있다

2022-05-02T23:27:11+00:00 2022.05.03|

물건이 기능을 넘어서면 의지가 담기고, 쓸모를 초월하면 아름다움의 영역에 진입한다. 필자 4인의 손목에서 빛나는 시계는 그런 의미가 됐다.

BREATH 01, 1995 물결이 드러난 인화지 위에 시계를 얹고 촬영해 물과 같이 흐르는 시간성을 시각화한 구본창의 ‘Breath 01’. 어느 한 순간을 포착했지만 그 안에서 시간이 숨을 쉬는 듯하다.

우호적인 표지

가끔 기분이 가라앉을 땐 자신을 일으켜줄 만한 상상을 하면 도움이 된다. 그럴 때 나는 내가 만들고 싶은 모임을 떠올려본다. 예를 들면 ‘아녜스 바르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나 ‘슬픈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화이트 셔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그리고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어느새 피식 웃음이 나면서 ‘자, 그럼 이 무거운 기분을 털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볼까’ 하는 마음이 들곤 한다.

언제부터였는지 조금 좋은 손목시계 하나가 갖고 싶었다. 장신구라곤 거의 하지 않고 관심도 욕심도 없는데 이상하게 시계만은 달랐다. 어쩌면 시계가 장신구만이라고 여기지 않아서였을까. 부모와 함께 조카 둘을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바다를 보여주는 이모, 가장 먼저 손목시계를 사주는 이모가 되고 싶었고, 절반은 해냈다. 손목에 시계를 찬다는 건 나에게 두 가지를 의미했다. 스스로 시간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그렇게 서서히 주체적인 자기 세계로 입문한다는.

아주 좋은 시계는 없어도 글을 써서 버는 고료로 구매해도 될 만한 그런 시계가 몇 개 생겼다. 시계마다 사연이 있지만 가까운 누군가 달라고 하면 내줄 수도 있는. 나에게 뭔가를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것 이상으로 내게 주고 베푼 게 많은 이들이니까 기꺼이. 그러나 단 한 개의 시계만은 그럴 수가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코로나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1년에 한두 번은 도쿄 동생 집에서 지냈다. 떨어져 지낸다는 아쉬움으로 한 달간 동생이 좋아하는 강된장 쌈이나 충무김밥도 만들어주고 조카들에게는 각종 파스타도 해주지만 틈틈이 긴자에 나가서 걷거나 차를 마시거나 시계를 구경한다. 고풍스러운 시계탑이 인상적인 와코 백화점이나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그러곤 빈손으로 나와 백화점 빵집에서 가벼운 바게트를 사 들고 돌아가던 나를 동생은 몇 년째 가만히 지켜보았던 것 같다. 어느 해 겨울, 집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꾸리는데 동생이 슬그머니 방에 들어와 잘 포장된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언니도 이제 이런 것 하나쯤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상자를 열어보자마자 나는 헤아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계를 사려면 동생이 얼마나 더 통역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지.

수년째 내가 관심을 두던 시계를 옆에서 지켜봐서인지 동생은 내 취향을 정확하게 알았다. 크고 둥근 프레임에 우아하고 깊은 갈색이 도는 메탈 시계. 솔라(Solar) 방식이라 보관함에 넣어두면 시계가 멈춰 종종 식물처럼 햇빛이 드는 자리에 놓아두어야 한다. 한번은 그 시계를 차고 다른 신문사 기자들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여행 취재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어쩐 일인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아무리 시계를 햇빛에 노출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언뜻 죽은 것처럼 보이는, 손목에 적당한 무게를 주어 안도를 느끼게 하는 시계를 차고 무덥고 보안이 허술한 나라에서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왔다. 움직이지 않아도 시계를 찬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고 느끼면서. 인천공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무브먼트가 착착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혹시 시계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기능적이며 정교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데다 가끔 시계는 멈추기도 한다. 그럴 땐 사물이지만 감정을 가진 듯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시계를 차기 전 말을 걸듯 매만질 때가 있다. 외출 준비를 다 마친 후, 긴장된 날이나 중요한 행사를 앞두었을 때 ‘자, 그럼 오늘을 부탁해’ 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힘을 주는 동시에 우호적인 표지이자 장신구이기도 한 사물을.

시계를 선물 받고 나서 동생에게 내가 갖고 있던 시계 중 가장 값나가는, 동생이 아르바이트할 때 기죽지 않을 만한 시계를 선물로 주었고 우리는 가끔 서로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미소 지을 때가 있다. 기분이 가라앉는 날엔 시계처럼 이미 내가 소유하고 있는 사물을 하나씩 떠올려보곤 한다. 동시에 그 사물과 이어져 있는 사람과 장소와 행복의 순간에 대해서. / 조경란 소설가

이야기의 각인

시계 칼럼니스트이자 시계 잡지 편집장, 시계 유튜버를 하고 있는 내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어떤 시계가 좋은 시계인가”라는 것이다. 15년 넘게 시계 관련 일을 하는 나도 아직 찾지 못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야깃거리가 많은 시계’는 좋은 시계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라는 것이다.

똑같은 시계라도 차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의미 없는 사치품처럼 보이기도 하고, 매우 의미 있는 물건이 되기도 한다. 시계 자체가 지닌 역사와 이야기부터 시계를 차는 사람에게 일어난 여러 에피소드 등이 시계 안에 담기면 그 시계는 좋은 시계가 된다. 즉 의미 있는 시계가 된다.

8구짜리 시계 보관함 두 개를 모두 채울 정도로 시계를 여러 점 소유한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시계는 지난해에 구입한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 트리뷰트 스몰 세컨즈 그린’이다. 1931년 출시된 리베르소의 90주년을 맞아 지난해 트리뷰트 모델을 여러 점 선보였다. 그중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계는 그린 다이얼 버전이었다. 1931년 출시되었던 초기 모델에서 영감을 받은 다이얼 디자인과 특유의 사각형 케이스, 매뉴얼 와인딩 무브먼트, 가장 좋아하는 그린 컬러의 다이얼과 스트랩 등 이 시계를 보자마자 나의 시계라는 것을 직감했고,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시계를 소유할 수 있었다.

리베르소는 20세기 초 인도에 주둔하며 폴로 경기를 즐겼던 영국군 장교를 위해 처음 만들었다. 깨지지 않는 다이얼을 위해 뒤집을 수 있는 케이스의 탄생 비화도 흥미롭지만 리베르소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뒷면의 솔리드 백에 자신만의 이니셜이나 문구를 새기거나 미니어처 페인팅으로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계를 주문한 후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 바탕 화면을 리베르소 사진으로 변경하고 무엇을 인그레이빙할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 하고 싶은 인그레이빙은 많은데, 시계는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고민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시계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물건이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언젠가 선물로 주고 떠날 그런 물건이다. 그래서 나의 첫 리베르소의 인그레이빙에 대해서 딸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엄마 글씨로 엄마 이름을 새기면 좋겠어. 엄마는 시계를 좋아하고, 나는 그런 엄마가 자랑스럽거든”이라고 말하는 첫째 딸의 말에 몇 개월간의 고민은 바로 해결됐다. 딸들은 엄마가 리베르소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기 때문에, 엄마 이름을 뒷면에 새기길 바랐던 것이다. 나는 언젠가 그 시계를 딸에게 선물했을 때 시계에 새겨진 나의 손 글씨를 보면서 더 많은 추억과 이야기가 떠오를 것을 생각하니 리베르소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비싼 시계가 왜 필요해? 아니, 시계 자체가 왜 필요해?”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시계는 단지 시간만 알려주는 물건이 아니라, 추억과 이야기가 담기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물건이 된다는 말을 해준다. 나 역시 리베르소를 포함해 내가 차고 있는 시계에 나만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한다. 대학에 입학할 때 부모님께 선물 받은 시계, 첫 직장 면접 당시에 찼던 시계, 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 시간을 알려주었던 시계 등 인생의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을 함께한 시계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물건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시계를 다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로 준다면, 그 의미는 더욱 배가된다.

그런데 나는 아직 리베르소에 내 이름을 새기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인그레이빙을 미루고 있지만 조만간 딸의 제안에 따라 나의 이름 석 자를 새길 것이다. 그리고 9년 후인 2031년, 리베르소 출시 100주년이 되었을 때 또 하나의 리베르소를 구입할 예정이다. 나에겐 딸이 둘이 있기 때문이다. / 이은경 Media Perpetual CEO, <몽트르 코리아> 편집장

영원의 시간

시계를 자주 차는 편은 아니다. 내 손으로 사본 일도 거의 없다. 갖고 있는 좋은 시계는 죄다 선물 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그걸 무용하게 여기는 건 아니다. 중요한 날이면 의식처럼 시계를 찬다. 심기일전이 필요한 날이나 첫인상을 제대로 각인하고 싶은 날이면 더더욱 그렇다. 대개 시계를 찬 사람을 프로페셔널하게 느낀다고 하던데, 내게는 상대를 정중하게 대하는 감각에 가깝다.

시계에 대한 지식이나 열정은 없지만, 분에 넘치게도 TPO에 맞게 골라 찰 정도는 구비하고 있다. 시계는 스트랩도 스트랩이지만, 사이즈가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전체 스타일을 고려하지 않은 커다란 프레임의 안경으로 밸런스를 망치는 것처럼 아쉬운 일도 없지 않나. 시계도 그런 유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졸업반 때 사귀던 애인은 늘 수트 차림이었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꽤 많았고, 구력 있는 사회인이었다. 내가 수업을 마치고 헐렁한 티셔츠에 데님 차림으로 그를 만나러 가면 그는 구김 없는 재킷에 각이 잡힌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티셔츠를 입은 그의 모습은 기억에 없다. 나는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그의 팔을 유독 좋아했는데, 그게 보기 좋았던 이유는 자신의 체형에 걸맞은 사이즈의 시계를 차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우쳤다. 그때는 그게 까르띠에인 줄도 몰랐다. 그저 어느 옷에나 태연히 어울리고, 적당히 길이 든 가죽 스트랩이 기품 있어 보인다고만 생각했다. 시계의 정석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대학 졸업 기념으로 그가 건네준 선물도 바로 그 시계였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브라운 악어가죽 스트랩에, 블루 사파이어 카보숑 크라운이 달린 까르띠에 ‘탱크’. 시계 선물이 기뻤다기보다는 그가 차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을 갖게 되어 좋았고, 실은 그보다 카드에 적힌 한 줄이 더 좋았다. “당신에게 시간을 선물합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애석하게도 유효기간이 한참은 지난 낯간지러운 문장이 되어버렸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 카드를 어디서 펼쳤는지, 그날 얼마나 추웠는지, 그가 무슨 색 코트를 입고 있었는지 선명히 기억할 만큼 그 한 줄을 아주 크게 받아들였다. 시간을 선물한다는 것은 영원을 선물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는 약속이나 다름없다고 믿었다. 당시 나는 모든 것이 불투명하던 20대 초반이었고, 그를 많이 좋아했으며, 그래서 언제나 불안했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다 못해 거의 병적으로 집착하는 수준이었다. 나이도, 처지도, 살아온 방식도, 뭐 하나 비슷한 구석이 없던 그와 내가 닮은 점이라곤 바로 거대한 불안이었다. 간혹 생각한다. 어릴 때 애착 관계 형성에 실패한 성인들이 자기처럼 구멍 난 존재를 한눈에 알아차리고 첫눈에 반했다고 믿는 것이 아닐까. 혹은 소울 메이트라고 착각하거나. 그저 어디가 안 좋은 상태일 뿐인데. 너무 비관적인가. 아무튼. 같은 시계를 찬 우리는 24시간을 함께하길 바랐고, 서로의 삶을 서서히 잠식하고 파괴하다, 결국은 잘 살기 위해 헤어졌다.

시간은 흘러 나는 이제 그때의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이따금 내가 그를 왜 그렇게까지 좋아했는지 돌이켜보곤 했는데, 나는 그와 같은 어른이 되기를 열망했던 것 같다. 고급 향수의 아찔한 향에, 수트가 잘 어울리고, 근사한 시계를 찬. 한 치의 구질구질함도 허용하지 않는, 비일상적 완벽함. 어쩌면 나는 그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가 되기를 원했는지 모른다.

지금 나는 수트는커녕 트레이닝복 세트를 줄기차게 사 모으는 어른으로 살고 있다. 좋은 향수를 뿌리지만 그렇게 근사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대신 어린 시절에는 영원을 죽음으로 착각했으나, 지금은 현재에 온전하게 머무는 것이 다른 차원의 영원이라는 것쯤은 아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시계만큼은 버리지 못했다. 첫사랑이 남긴 일종의 유품 같아서다. 게다가 거기에는 그가 나에게 선물한 ‘시간’이 담겨 있다. 시간은 흐른다. 도무지 멈추지 않는다. 약동하는 생명처럼. 그래서 함부로 떠나보낼 수가 없다. 시계는 좀 영물 같은 데가 있다. / 김현민 작가

인생으로 시계

“혹시 어떤 일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음… 잡지사에서 일했고 시계에 관한 글을 쓰고 책도 만들었어요. 요즘은 역사나 기술적인 내용에 대해 교육을 하기도 해요”라며 쭈뼛쭈뼛 말하곤 한다. 지식은 미천하고 아직 알아야 할 것이 많으니 전문가란 칭호는 영 부담스럽다. 인생은 항상 예상과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법. 형제 중에서 필력이 제일 떨어져도 글을 써서 월급을 받고, 적성에 맞지 않아 선생은 절대 안 될 거라 호언장담했지만 어느새 타인을 가르쳤다. 시계도 마찬가지. 대학 학력고사를 10일 앞두고 따끈따끈한 패션지를 구입해 몰래 뒤적이며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어도, 천과 씨름하는 대신 톱니바퀴와 태엽, 나사가 뒤엉킨 시계에 웃고 울 수도 있다.

어느새 시계를 마음껏 구경할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되면 시계에 담긴 추억이나 낭만을 논하기보다 무엇보다 물욕이 없어진다. 스포츠 시계부터 빈티지 시계까지 소소하게 들였지만 구입할 때 잠시 만지작거리고는 이내 방치하곤 했다. 사실 내게 시계는 실체보다 그를 둘러싼 탄생 비화나 주변 탐구로 더 즐거운 대상이다. 몰입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여행 가서는 오래된 시계탑이나 빈티지 시계를 파는 가게를 마주하면 반갑다고 꼬리 치는 강아지처럼 뛰어가고 박물관에서는 하이에나처럼 앤티크 시계를 찾아 헤맨다. 책을 읽을 때도 쥘 베른의 <지저 탐험>에서 리덴브로크 박사가 시계의 텔레미터 눈금으로 헤어진 조카를 찾는 이야기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첫 장에 나온 중세 사제의 기상 시간 등 시계와 시간에 관한 단락이 나오면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처럼 ‘심봤다’를 외쳤다. 드라마나 영화는 또 어떤가. <미스터 션샤인>에서 부유한 아버지가 아들 김희성에게 선물한 회중시계가 사실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전해주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쿼츠 시계임을 알아차리거나 <빈센조>에서 빈센조와 장준우가 계속 바꿔 차고 나오는 시계가 위블로, 제니스, 라도의 어떤 시계임을 맞히는 매의 눈도 자연스레 생겼다. 국립도서관 자료실에 들어가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등 옛 신문을 뒤적거리며 시계 도둑 기사부터 ‘전긔시게’나 팔뚝시계 등 지금은 생소한 단어에 키득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시들할 때가 있다. 다루는 시계가 집 한 채 가격보다 높은 고가여도 ‘가격 괜찮네’라고 무심코 내뱉거나, 대부분 타지에서 들어온 수입품이라 껍데기 반쪽 정보만 받는 것에 갈증과 회의감을 느끼면 ‘에잇, 싫어’가 샘솟았다. 그렇게 열정이 꺼져갈 때 그 불씨를 되살려주는 건 가끔 시계에 묻혀 살고 있는 이들을 만나러 본토로 날아갈 때였다.

198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사상 첫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쥔 강수연 배우가 복귀를 알린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가 개봉했다. 영화를 제대로 본 기억이 없지만 제목만은 너무나 신선했다. 월남전 후유증을 앓았던 참전 용사 필운과 순나의 이야기 중 그 어떤 장면도 제네바는 나오지 않았으니까. 내게도 제네바는 그런 미지의 장소였다. 패션을 좋아해 런던이나 파리면 몰라도 도무지 제네바와 긴 인연은 상상도 못했지만 2007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최소 한 번, 많게는 서너 번을 방문해 일생 통틀어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가 됐다. 국제적십자위원회, 국제노동기구, 세계경제포럼 등 세계적인 국제기구가 자리한 금융 도시로 손꼽혀도 시계 애호가들에게는 시계의 도시다. 제네바에서 자동차로 스위스 서북단으로 1~2시간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 접경 고산지대와 계곡을 따라 르상티에, 뇌샤텔, 르로클, 라쇼드퐁 등 크고 작은 도시가 자리한 지역을 워치 밸리라 부른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보다 한발 늦게 시작했지만 16세기부터 스위스에 세계 최고의 시계 제조국이라는 대명사를 안겨준 곳들이다. 때마침 제네바로 넘어간 칼뱅의 경건주의는 당시 사치스러운 보석 장식구 혹은 무기를 만들던 장인들도 시계를 만들도록 장려했고 덕분에 시계 시장은 번성했다. 춥고 눈이 한가득 쌓인 겨울, 척박한 농번기에 할 일 없던 시골 농부들은 프랑스에서 넘어온 시계 기술을 익혀 부품을 만들고 조립했다. 그렇게 만든 시계는 제네바를 통해 전 세계로 수출됐다. 그 역사의 흔적이 시내 곳곳에 남아 있다.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 스위스 고급시계재단과 함께 일하면서 3~4대를 이어 시계업을 잇고 있는 모태 시계 제작자들, 하루 종일 손톱보다 작은 부품과 씨름하는 장인들, 몇 날 며칠 하루 종일 시계 얘기만 해도 지루하지 않은 이들을 만났다. 도대체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가 무엇이길래 그들의 긴 인생을 갈아 넣는 것일까? 지난 4월 초 팬데믹 2년간의 칩거를 깨고 오랜만에 제네바에 다녀왔다. 마스크를 이미 벗어 던진 그곳은 변한 것이 없었다. 새로운 소재, 색상 하나 바꿨을 뿐인데, 시곗바늘 대신 다이얼이 움직이는 시간 표현 방식을 썼을 뿐인데, 케이스 두께를 0.2mm 줄인 것에 열광하고 찬사를 보냈다. 때를 측정하는 도구에서 예술품이나 투자의 대상으로 변했어도 그들에게 그리고 내게 시계는 삶 그 자체다. 마냥 좋아도, 반대로 하기 싫어도 계속 품고 가는 애증의 친구다. / 정희경 매뉴얼세븐 대표 (VK)

PORTRAITS OF TIME 01, 1998 사진가 구본창은 시간이 그려낸 역사를 일관되게 담아왔다. 오래된 절의 먼지 낀 벽을 보았을 때 마치 구름이 머무는 하늘처럼 느껴져 촬영했다고 전해지는 ‘Portraits of Time’ 시리즈에서 무한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