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패션계가 쇼트커트를 사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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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패션계가 쇼트커트를 사랑하는 이유

2022-08-19T20:23:54+00:00 2022.05.03|

“전부요?” 놀란 이탈리아 이발사가 긴 머리를 한 24세의 오드리 헵번에게 묻는다. 바로 영화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이다. 일탈을 꿈꾸는 공주 역의 오드리 헵번이 단호하게 답한다. “전부요.”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이 ‘온스크린 헤어 커트(카메라가 돌아가는 가운데 자른 헤어 커트)’는 개봉 후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큰 사랑을 받으면서 수많은 추종자와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했다. ‘픽시’라는 이 헤어 커트를 누가 처음 부르기 시작했는지 혹은 그 단어 자체가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전을 찾아보면 ‘픽시’란 “발랄하고 장난꾸러기 같은 요정” 또는 “작고 명랑한 여성”을 뜻한다. 아마도 과격한 여성성의 재발견이나 여성의 파워를 느끼게 하는 이미지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고자 했던 사회적 노력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싶다. 

Photographed by Bobby Doherty

하지만 잔 다르크(Joan of Arc)가 영국군으로부터 중세 프랑스를 지킬 군대를 이끌기 위해 머리카락을 자른 모습을 보며, 그 누구도 그녀의 헤어스타일을 두고 ‘픽시’라고 칭하지 않았다. 영화감독 오토 프레밍거(Otto Preminger)의 1957년 영화 <성 잔 다르크(Saint Joan)>에 출연한 스타 진 세버그(Jean Seberg)의 헤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녀의 진지하고 야망 있는 캐릭터를 비춰봤을 때 ‘픽시’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면 대중은 의아해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1940년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와 이혼한 후 프리다 칼로(Frida Kahlo)가 자신의 머리를 직접 자르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 영원히 박제했을 때, 그 누구도 감히 그녀를 ‘픽시’라고 부르지 못했다. (이 커플은 그해 말 재혼했다.)

모델 진 캠벨(Jean Campbell)은 헤어 스타일리스트 루크 허시슨(Luke Hersheson)에 의해 묵직한 앞머리의 쇼트 스타일로 변신했다. @jean_campbell

이 스타일은 1년 전 사랑받은 단발머리의 유행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 당시 여성들은 조심스럽게 살롱 문을 다시 두드렸다. 프랑스의 톱 헤어 스타일리스트 리시 조쿠(Rishi Jokhoo)에 따르면, 최근 과감한 변화를 주고자 그의 아틀리에를 찾는 오랜 단골이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헤어스타일 뒤에 숨을 수 없게 된” 순간 한 사람의 정체성 역시 변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젠 짧은 헤어 커트의 이 최신 버전을 마냥 귀엽다거나 조신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픽시라는 말이 정말 싫어요.” 지난 1월 발렌티노의 꾸뛰르 쇼에서 아주 짧은 헤어를 선보이며 새로운 유행을 촉발한 귀도 팔라우(Guido Palau)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영국 모델 프란 서머스(Fran Summers)의 머리를 짧게 잘라버렸다. 어두운 컬러로 귀를 살짝 감싼, 조금은 건방진 분위기의 헤어스타일. 헤어 드레서 루크 허시슨 역시 요정 같던 모델 진 캠벨의 아주 긴 금발을 싹둑 잘라, 귀까지 오는 청키한 헤어 커트를 연출했다.

마이클 코어스 쇼 백스테이지에서도 이 쇼트커트로의 변화는 진행 중이다. 올란도 피타(Orlando Pita)는 슈퍼모델 이사벨리 폰타나(Isabeli Fontana)의 탐스러운 웨이브를 과감히 잘라냈다. 린다 에반젤리스타(Linda Evangelista)의 1990년대 사진에서 일부 영감을 얻은 이 커트는 긴 머리가 ‘섹시함’과 동의어였던 시절, 풍성한 헤어로 빅토리아 시크릿에서 ‘섹시한 브라질 모델’의 자리를 공고히 했던 이사벨리 폰타나의 다음 챕터를 의미하기도 했다. 쇼가 끝난 후 던진 그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이 헤어 커트는 제 가장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죠.”

마이클 코어스 쇼를 위해 드라마틱한 헤어 커트를 감행한 모델 이사벨리 폰타나. Women Management 제공

린다 에반젤리스타의 1990년대 사진에서 일부 영감을 얻은 커트. Women Management 제공

하지만 과거에는 이 커트의 의미가 조금 달랐다. 미술사가 앤 히고넷(Anne Higonnet)은 짧은 머리란 여성성의 상실과도 같았다고 설명했다. “1794년까지만 해도 여성이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은 여성성이 잘려나가고, 삶 또한 파괴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사회적 대변동이 있고 나서야, 하나의 형벌처럼 여기던 짧은 머리에 대한 관념이 바뀌기 시작했죠.”

프랑스 혁명의 스타일 아이콘 세 명에 관해 자세히 다룬 책 <자유, 평등, 패션>의 저자이기도 한 히고넷은 혁명적 성향을 띠던 스페인 출생의 프랑스 귀족 테레사 탈리엔(Thérésa Tallien)이 바로 그 변화의 시작을 이끌어준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탈리엔은 프랑스의 공포 정치 시대에 감옥에 내동댕이쳐졌어요. 머리카락은 짧게 잘렸고, 옷은 압수되었죠. 탈리엔은 옥중에서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타도를 지원했죠. 그녀가 밖으로 나왔을 때 프랑스 국민의 사랑을 받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모든 것을 잃은 후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기로 했어요. 짧은 헤어와 속옷이 궁극의 파리지엔 시크임을 선언한 거죠.”

이 헤어 커트는 사회 대격변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시달리던 시기에 패셔너블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쩐지 익숙한 상황 아닌가?) 이 스타일은 로마 황제를 기념해 ‘티투스의 헤어(Coiffures à la Titus)’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포큐파인(Porcupine, 몸에 길고 뻣뻣한 가시 털이 덮인 동물) 헤어’로 불리기도 했다. 이런 이름은 ‘픽시’나 ‘믹시’처럼 발음이 간단하지는 않다. (‘믹시’는 지난 시즌의 멀릿 스타일에서 진화한, 머리를 빨리 말릴 수 있으며 간편하게 스타일링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 헤어 커트를 기념해 신조어 연구가들이 붙인 이름이다.)

발렌티노 꾸뛰르 쇼를 위해 헤어스타일을 바꾼 모델 프란 서머스의 모습. Acielle/Styledumonde.com.

그럼에도 나는 아직 이 헤어 커트에 자신이 없다. 내 코가 너무 큰 것 같아서다. “사람들도 늘 그 얘기예요.” 애나벨 덱스터 존스(Annabelle Dexter-Jones)의 매력적인 단발머리를 만들어준 애슐리 하비에르(Ashley Javier)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실은 얼굴이 입체적일수록 쇼트 헤어가 더 잘 어울리죠. 목은 더 길어 보이고 키가 더 커 보이죠. 이 짧은 머리 덕분에 상체와 다리로부터 머리가 분리되어 보이거든요.” 애슐리 하비에르가 말하는 긍정적인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매너리즘에서 탈피할 수 있습니다. 짧은 머리를 한다는 건 어느 정도 진지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꽤 고상하고 매력적이기도 하거든요.”

음, 설마, 아직도 머리가 짧아지면 (그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덜 여성스러워 보일까 봐 걱정이라고? “긴 머리가 반드시 여성성으로 귀결되지는 않아요. 짧은 머리가 꼭 중성적인 느낌이 아니듯 말입니다.” 짧은 헤어 커트의 모델들이 주를 이룬 가브리엘라 허스트(Gabriela Hearst)와 끌로에(Chloé) 2022 가을 레디 투 웨어 쇼의 캐스팅 디렉터 제스 할렛(Jess Hallett)은 강조했다. 이번 시즌의 개성 넘치는 커트는 젠더 플루이드한 느낌이 강하다는 말과 함께. “꼭 한쪽으로 정해야 하나요? 2022년을 사는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나는 헤어 살롱을 예약했다. 리시 조쿠가 해준 말을 떠올리면서. “쇼트 헤어가 꽤 과감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스타일리스트에 대한 깊은 신뢰, 변화를 위한 마음의 준비가 꼭 필요합니다. 새로운 머리를 한 얼굴을 미리 떠올려보세요.” 2년의 쉽지 않은 시간을 통과한 지금, 나는 마침내 도전을 마주할 준비가 된 것 같다. 아마 당신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