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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칸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11편

2022.05.18

부활한 칸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11편

2020년엔 코로나19로 취소, 지난해에는 축소 개최라는 위기를 겪은 뒤 다시 정상화된 칸국제영화제(5월 17~28일, 칸영화제). 한국 영화가 대거 초청되어 올림픽 중계식 보도가 연일 쏟아지지만 영화제에서 중요한 건 결국 경쟁이 아니라 좋은 작품과의 만남이다. 오래 기다린 만큼 화제작이 가득한 칸영화제, 기억해두었다 극장에 걸리면 달려가야 할 영화 11편을 꼽았다.

브로커

<브로커> 스틸 이미지.
<브로커> 촬영 현장에서 이주영, 배두나, 이지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이지은의 만남으로 일찌감치 화제가 된 영화다. 감독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즐겨 보며 후반으로 갈수록 이지은의 얼굴만 봐도 울 지경이 되었다. 작품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담아내는 감독답다. 가족은 그가 천착하는 주제다. 그에게 2013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안겨준 걸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병원에서 아이가 뒤바뀐 이야기를 토대로 가족을 이루는 근간이 꼭 혈연이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했고, 2018년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어느 가족>은 핏줄 대신 범죄로 엮인 유사 가족 이야기였다. 이번 영화 <브로커>는 아이를 유기하는 ‘베이비 박스’에 얽힌 이야기다. 일본 거장이 한국 자본, 한국 배우로 한국어 영화를 찍은 건 유례없는 일이다. 그가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일본의 어두운 현실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자국에서 비판받은 일이 떠오르기도 한다. 모쪼록 그의 새로운 시도가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브로커> 국내 개봉은 6월 8일이다.

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 스틸 이미지.
<헤어질 결심> 해외 포스터.

한국 언론의 관심은 ‘깐느 박(박찬욱)’의 수상 여부에 모여 있지만 그보다 기대되는 건 박찬욱 영화 세계의 변화다. 그는 “이전 영화가 아주 자극적인 경험을 하게 만드는 강렬한 영화를 목표로 했다면 <헤어질 결심>은 은근하고 미묘하게, 관객이 스스로 다가와서 관심을 갖고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예고편에 공개된 영상, 음악, 대사가 여전히 강렬해서 감독의 말이 더 수수께끼로 다가온다. <헤어질 결심>에는 탕웨이가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공교롭게도 <브로커>와 마찬가지로 한국 영화라는 울타리 안에 아시아를 담아낸 셈이 되었다. <헤어질 결심>은 6월 29일 한국 극장에 걸린다.

엘비스 (Elvis)

<엘비스> 공식 예고편

엘비스 프레슬리? 당연히 전기 영화가 나올 법한 인물이다. 음악만 나열해도 2시간은 심심찮게 흘러가겠지. <보헤미안 랩소디>(2018)처럼 싱어롱 상영회도 열릴 테고, 코스튬 이벤트도 당연히 열리겠지. 축제성 영화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그걸 바즈 루어만이 연출한다? 흥분의 차원이 달라진다. 9년 동안 장편이 끊겼지만 <로미오와 줄리엣>(1996), <물랑 루즈>(2001), <위대한 개츠비>(2013)의 그 루어만 아닌가. 호화로운 시대극에 일가견이 있고 춤, 노래, 샴페인, 패션이 흘러넘치는 흥청망청 파티를 묘사하는 데 도가 튼 사람. <베이비 드라이버>(2017)의 안셀 엘고트도 엘비스 역으로 오디션을 보았다는데 결국 엘비스 역은 오스틴 버틀러에게 돌아갔다. <엘비스>는 제75회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다. 북미 개봉은 6월 24일이다.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 (Crimes of the Future)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 공식 예고편

가까운 미래, 인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신체 변형과 돌연변이를 받아들인다. 유명 아티스트 사울 텐서(비고 모텐슨)는 파트너 카프리스(레아 세이두)와 함께 공개적으로 장기를 변형하는 아방가드르 퍼포먼스를 벌인다. 탐정 팀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이 그들을 추적하고, 사울을 통해 인간 진화의 다음 단계를 밝히려는 미스터리한 그룹이 나타난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이 자신의 초창기 언더그라운드 영화 <미래의 범죄>(1970)에서 제목과 세계관을 따왔다. 내용은 다르지만 감독의 주 전공인 기괴하고 충격적인 신체 훼손 호러가 다시 펼쳐지려나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는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다.

파이널 컷 (Final Cut)

<파이널 컷> 공식 예고편

일본 코미디 걸작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의 리메이크다.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승부를 건 영화였고, 저예산의 한계를 역이용한 과장된 허술함이 매력이었는데, 이걸 진지한 시네필이 리메이크해서 원작보다 재미있을지? 일단 시사회 반응은 나쁘지 않다. “형편없는 영화를 만드는 것을 소재로 한 훌륭한 영화”(deadline.com)라는 평을 얻었다. 저예산 좀비 영화 촬영장에 진짜 좀비가 나타나면서 우당탕 소동극이 벌어지고, 이내 놀라운 반전이 시작된다.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2012), 전쟁 중 동생을 버리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소년 이야기 <더 서치>(2014)로 극찬받은 미셀 하자나비시우스가 연출했다. 올해 칸영화제 개막작이다.

쓰리 사우전드 이어스 오브 롱잉 (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

<쓰리 사우전드 이어스 오브 롱잉> 스틸 이미지.
<쓰리 사우전드 이어스 오브 롱잉> 현장에서 틸다 스윈튼, 조지 밀러 감독, 이드리스 엘바.

<매드 맥스> 시리즈의 조지 밀러 감독과 틸다 스윈튼이 만났다. 온 세상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분노의 도로)>(2015) 프리퀄 <퓨리오사>를 목 빠져라 기다리는 지금 난데없이 판타지 로맨스라니, 무슨 심사인가 싶다. 하지만 이 작품은 조지 밀러가 1990년대 원작 단편 <The Djinn in the Nightingale’s Eye>를 읽은 이래 20년 동안 다른 작품을 찍는 틈틈이 준비한 프로젝트다. <분노의 도로>가 대성공한 후 후속작을 내놓으라는 압박, 영화사와의 주도권 다툼 등으로 골머리를 앓던 그에게는 좋은 피난처이기도 했다. 내용은 <아라비안나이트>의 현대적 각색이다. 이스탄불을 여행 중인 외로운 학자 앨리시아(틸다 스윈튼) 앞에 이슬람 신화 속 정령 지니(이드리스 엘바)가 나타난다. 지니는 자유의 대가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앨리시아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다. 조지 밀러 감독은 이것이 인간 존재의 역설과 신비를 담은 우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안티 <매드 맥스>’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사가 많고, 주로 실내에서 진행되고, 작은 규모이고, 3000년이라는 시간을 담아내는 등 <매드 맥스>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홀리 스파이더 (Holy Spider)

<홀리 스파이더> 공식 예고편

알리 아바시는 이란 출신이지만 북유럽에서 활동하는 감독이다. 두 번째 장편 연출작 <경계선>(2018)은 독특한 외모와 능력을 가진 세관 직원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초현실적인 스토리텔링과 과감한 연출, 인간과 다른 종족을 통해 실존, 사랑, 정상, 비정상을 묻는다는 점에서 알리 아바시와 판타지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를 비견했다. 제75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신작 <홀리 스파이더>는 실화에 기반한 어두운 드라마다. 이란의 성스러운 도시 마슈하드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살해당하고, 이를 추적하는 여성 저널리스트는 난관에 봉착한다.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 (Triangle of Sadness)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 스틸 이미지.

유럽 아트 신을 배경으로 한 블랙코미디 <더 스퀘어>(2017)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신작이다.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는 스웨덴 감독 외스틀룬드의 첫 영어 영화다. 슈퍼모델 커플이 호화로운 요트 여행 중 사회주의자 선장과 충돌한다니, 매끈한 화면에 고상한 제1세계 중산층의 위선을 시시콜콜 그려낸 전작만큼 논쟁적인 영화가 예상된다. 신경 긁는 코미디 캐릭터에 일가견 있는 우디 해럴슨이 선장을, 해리스 디킨슨과 찰비 딘이 모델 커플을 연기한다.

쇼잉 업 (Showing Up)

<쇼잉 업> 스틸 이미지.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전작 <퍼스트 카우>(2019)에서 따뜻한 시선과 잔잔한 유머로 비주류 남성들의 우정을 그려 서부극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세계 여러 미디어에서 그해 톱 10으로 꼽을 만큼 굉장한 영화를 만든 후 오래지 않아 내놓은 신작이니 <쇼잉 업>에 모이는 관심도 높다. <쇼잉 업>은 중요한 전시를 앞둔 조각가(미셸 윌리엄스)가 예술적 영감과 꼬여가는 개인사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미셸 윌리엄스는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웬디와 루시>(2008)를 비롯해 켈리 라이카트 감독과 네 번째 작업이다. 라이카트 감독은 <기생충>이 상을 받던 2019년 경쟁 부문 심사위원이기도 했다.

스타스 앳 눈 (Stars at Noon)

<스타스 앳 눈> 스틸 이미지.

혁명이 진행 중인 1984년 니카라과에서 영국인 사업가와 미국인 기자가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들의 정체는 그들 자신이 말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거짓과 음모의 미궁에 갇힌 이들에게 위험한 제안이 다가온다. <스타스 앳 눈>이라는 로맨틱 스릴러 소설을 프랑스 명장 클레르 드니가 영화화했다. 앤디 맥도웰의 딸, 샤넬 모델, 댄서이면서 영화계에서도 스타로 떠오르는 마가렛 퀄리가 주연을 맡았다.

포에버 영 (Forever Young)

<포에버 영> 스틸 이미지.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는 직접 주연까지 맡은 <이탈리아의 성(Un Château en Italie)> 이후 두 번째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다. <포에버 영>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20대 배우 지망생들의 청춘을 그린다. 이 영화는 ‘퀴어 팜’이라는 장외 시상식에도 노미네이트되었다. 말 그대로 칸영화제 참가작 중 퀴어 영화에 주는 상이다. 칸영화제 주최 측과는 무관한 독립 어워드인데, 창립자와 영화인들은 퀴어 팜이 언젠가 칸 공식 행사에 편입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로렌스 애니웨이>(2013), <캐롤>(2016),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등 그간 수상작도 화려했다. 참고로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21편 중 여성 감독의 작품은 <쇼잉 업>, <스타스 앳 눈>, <포에버 영> 포함, 다섯 편에 불과하다.

    이숙명(칼럼니스트)
    사진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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