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발렌시아가의 르 카골 백_#아이코닉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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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발렌시아가의 르 카골 백_#아이코닉백

2022-05-28T13:45:42+00:00 2022.05.27|

언제나 새로운 매력으로 무장해야 하는 패션 브랜드. 이런 숙명을 가졌기에 때로 아카이브란 그저 잊고 싶은 과거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캠페인이나 컬렉션, 제품 출시를 앞두고 인스타그램 계정의 과거 포스팅을 전부 지워버리는 발렌시아가만 봐도 그래요.

하지만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가방은 하우스의 과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킴 카다시안, 두아 리파, 알렉사 데미, 줄리아 폭스 등 2022년 가장 핫한 셀러브리티들이 선택한 르 카골(Le Cagole) 백은 사실 발렌시아가의 아카이브에서 끄집어냈거든요. 그것도 고작 20년 전 과거에서 말이죠.

과거 얘기가 나온 김에, 타임라인을 잠깐 들여다볼까요? 발렌시아가 하우스의 역사는 무려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각을 연상케 하는 실루엣에 날카로울 정도로 모던한 의상을 선보였던 스페인 출신 꾸뛰리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에 의해서죠. (네, 발렌시아가는 그의 이름에서 비롯된 하우스예요!)

20세기를 수놓은 디자이너 중 한 명이던 그가 1972년 세상을 떠난 후, 바통을 이은 건 니콜라 제스키에르입니다. 1997년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그는 현대적 여성상을 제시하며 하우스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죠. 그가 재임하던 당시 만든 것 중 하나가 바로 모터사이클 백이고요.

모터사이클 백을 든 킴 카다시안. Getty Images.

질감을 살린 부드러운 양가죽 소재에 골무 모양의 은색 스터드 장식과 술을 단 지퍼로 화려함을 더한 이 가방은 사실 2001년 F/W 시즌 패션쇼를 위한 샘플이었습니다. 스물다섯 개만 제작한 탓에 가방은 모델, 에디터,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어졌어요. <파리 보그> 편집장이던 카린 로이펠드와 엠마누엘 알트, 스타일리스트 마리 아멜리 소베, 모델 케이트 모스가 그들이죠. 그로부터 한 시즌 후 모터사이클 백을 정식으로 론칭했어요.

당시 유행하던 로고 백과 달리, 느끼함을 쏙 뺀 쿨한 매력의 가방에 사람들은 시선을 빼앗겼고, 이내 모터사이클 백은 타블로이드를 수놓았습니다. 케이트 모스를 포함해 올슨 자매, 힐튼 자매, 린제이 로한, 니콜 리치, 시에나 밀러와 킴 카다시안은 경쟁하듯 온갖 색상의 모터사이클 백을 옆구리에 끼고 등장했어요.

뎀나 바잘리아가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건 2015년의 일입니다. 그는 아방가르드와 우아함을 오가는 발렌시아가의 전통을 이으며, 특유의 파괴적 비전을 펼쳐내고 있어요. 과장된 실루엣과 비대칭 구조, 여기에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색상을 입혀 하우스 아카이브를 뒤트는가 하면, 스트리트 웨어와 하이패션을 뒤섞는 식이죠. 2021년 프리폴 시즌 처음 선보인 르 카골 백은 이런 바잘리아식 재해석의 연장선에 있어요.

프랑스어의 구어적 표현으로 ‘별난, 과장된, 과한’을 뜻하는 형용사 카골(Cagole). 질감을 살린 양가죽, 골무 모양의 은색 스터드와 술을 단 지퍼까지, 르 카골 백은 지난 2001년 하우스가 선보인 모터사이클 백을 닮았습니다. 바잘리아는 가방의 형태를 크루아상처럼 둥글게 변형하고, 하트 모양 거울을 추가해 특유의 유머를 더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길이 조절이 가능한 숄더 스트랩과 부드러운 어깨 패드로 착용감을 업데이트하기도 했어요. 색상 역시 튜닝 대상입니다. 형광빛이 감도는 그린, 핑크, 블루는 실버, 모노톤과 함께 바잘리아 천하의 발렌시아가 시대를 완성하는 요소 아니었나요.

모터사이클 백이 르 카골이라는 이름으로 ‘금의환향’한 데엔 패션계에 불어닥친 Y2K 트렌드가 한몫합니다. 셀러브리티 중에서는 처음 르 카골 백을 선택한 벨라 하디드나 켄달 제너, 두아 리파가 사실상 Y2K 패션의 대표 주자라는 걸 떠올려보세요. 킴 카다시안은 또 어떻고요. 2000년대 모터사이클 백을 들었던 그는 이번 시즌 발렌시아가의 브랜드 홍보대사가 되어 캠페인 모델까지 도맡았죠. 물론 이번에 카다시안 곁에 있는 건 바잘리아의 르 카골 백이고요.

별나지만 우아함을 잃은 적은 없어요. 그렇게 발렌시아가는 가장 동시대적 하이패션 하우스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신중하게 진화해온 르 카골 백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