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속 풍경을 온전히 대면하고 싶다면_#친절한 도슨트 #유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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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속 풍경을 온전히 대면하고 싶다면_#친절한 도슨트 #유영국

2022-06-17T16:46:20+00:00 2022.06.17|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생전에 유영국 작가가 늘 하던 이야기다. 그리고 그가 작고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영국의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산은 어디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유영국 작가 프로필 이미지, 1970년대. Courtesy of Yoo Youngkuk Art Foundation.

국제갤러리 2관(K2)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Colors of Yoo Youngkuk> 설치 전경.

유영국이라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성실하고 근면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곧장 작업실로 가서는 점심시간 전까지 그림을 그렸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온 후 저녁까지 줄곧 작업을 했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전업 작가의 삶을 살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1916년생인 그는 화가인 동시에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겪어낸 한 시대의 생활인이자 헌신적인 가장이었습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활동 중이던 1943년에 고향인 울진으로 돌아온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양조장을 운영하고, 선박업자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그림을 그리는 그렇게 20 년을 생활인으로 살았지요. 결국 1964년에 마흔여덟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생애 개인전을 열고 예순 살이 넘어 작품을 처음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2002 작고할 때까지 한결같이 신인 작가의 자세와 태도로 유영국은 한국 미술사에 ‘1세대 서양화가혹은한국 모더니즘 추상미술의 선구자 뚜렷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유영국(1916-2002), ‘Work’, 1961, Oil on Canvas, 101.5×81cm, Courtesy of Yoo Youngkuk Art Foundation.

유영국(1916-2002), ‘Work’, 1962, Oil on Canvas, 81.5×101cm, Courtesy of Yoo Youngkuk Art Foundation.

유영국(1916-2002), ‘Work’, 1967, Oil on Canvas, 162×130cm, Courtesy of Yoo Youngkuk Art Foundation.

국제갤러리에서 오는 8 21일까지 열리는 유영국의 개인전 <Colors of Yoo Youngkuk>은 그런 작가의 일생을 관통하는 주요 작품을 소개합니다. 게다가 유영국의 20주기 기념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자연, 특히 산을 모티브로 한 유영국 작가만의 조형 미학의 정신, 추상 미학의 정수를 68점에 이르는 시기별 대표 회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번에는 기존에 좀체 선보이지 않았던 유영국 작가의 드로잉 작품, 추상 실험의 일환으로 시도한 1940년대의 사진 작품, 다양한 활동 기록과 생생한 아카이브 자료까지 더해 풍성하게 구성했습니다. 공공 미술관 전시를 방불케 하는 다채로운 작품을 통해서 미술가 유영국의 작업 세계를 아우를 뿐 아니라 인간 유영국의 면면을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시각으로 유영국이라는 작가를 만날 수 있도록 이끕니다. 

유영국(1916-2002), ‘Work’, 1969, Oil on Canvas, 136×136cm, Courtesy of Yoo Youngkuk Art Foundation.

유영국(1916-2002), ‘환희(원제)’, 1971, Oil on Canvas, 137×137cm, Courtesy of Yoo Youngkuk Art Foundation.

유영국(1916-2002), ‘Work’, 1977, Oil on Canvas, 32×41cm, Courtesy of Yoo Youngkuk Art Foundation.

유영국(1916-2002), ‘Work’, 1992, Oil on Canvas, 60×73cm, Courtesy of Yoo Youngkuk Art Foundation.

유영국은 점, , , , 색 등 기본 조형 요소를 중심으로 고유한 자연 추상 세계를 구축해온 추상 작가입니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작업은 인생과 불가분의 관계니까요. 예컨대 개인전을 열기 전인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의 작업은 대담한 필체와 거친 재질감 등 압도적인 에너지로 펄펄 살아 뜁니다(1). 작가로서의 존재감과 작업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이런 기운의 작품을 낳은 게 아닐까요. 한편 1960년대 중반 이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게 된 그가 이러한 비정형적 추상에서 기하학적 형태로의 변화를 거듭하면서 균형 있고 성숙한 추상 언어를 확립했다는 사실도 선연히 읽힙니다. 빨강, 파랑, 노랑의 강렬한 삼원색을 기반으로 한 따뜻하고 서정적인 대표작이 이를 증명하죠(2 1, 2). 그리고 다시, 순수한 조형을 향한 의지와 열정이 초록, 파랑, 군청 등 또 다른 색채 스펙트럼을 만들어낸 추상 실험의 절정의 순간을 함께하게 됩니다(3). 이렇게 네 개의 전시장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그의 작업 세계를 이끈 주요한 변화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마음으로 먼저 느낄 수 있습니다. 

국제갤러리 1관(K1)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Colors of Yoo Youngkuk> 설치 전경.

국제갤러리 2관(K2)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Colors of Yoo Youngkuk> 설치 전경.

국제갤러리 3관(K3)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Colors of Yoo Youngkuk> 설치 전경.

국제갤러리 3관(K3)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Colors of Yoo Youngkuk> 설치 전경.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생전에 유영국 작가가 늘 하던 이야기입니다. 그가 그려내는 산은 그저 자연을 재현한 산이 아니라 다른 시선과 다른 마음으로 만난 산입니다. 내면에 자리한 산, 온갖 역경을 이겨낸 이 땅과 터전, 산을 보며 꿋꿋하게 살아남은 평범한 사람들의 존재, 세상을 구성하는 본질에 대한 깊은 탐구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그가 작고한 지 20년이 된 지금도 수많은 이들에게 자신만의 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품고 싶은 산, 더 나아가 내 삶의 (산과 같은) 절대적인 어떤 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유영국의 추상회화가 자유와 혁신의 상징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기법의 문제를 떠나 모두의 마음속 풍경을 온전히 대면하게 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산은 어떤 색, 어떤 형상, 어떤 모습인가요. 유영국의 온 생이 묻어나는 추상 작업이 전시장을 나서는 내게 남긴 질문입니다. 

유영국(1916-2002), ‘Mountain’, 1974, Oil on Canvas, 135×135cm, Collection of Daegu Art Museum Courtesy of Yoo Youngkuk Art Found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