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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매버릭>은 어떻게 톰 크루즈 최고의 영화가 되었나

2022.07.01

by 권민지

    <탑건: 매버릭>은 어떻게 톰 크루즈 최고의 영화가 되었나

    기존 톰 크루즈 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작은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이었다.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7억8,700만 달러를 벌었다. 그런데 <탑건: 매버릭>(<매버릭>)이 불과 25일 만에 9억 달러를 돌파했다. 톰 크루즈가 사랑해 마지않는 한국 시장에선 개봉도 하기 전이었다. 세계가 코로나 칩거를 끝내는 시점이라는 것 외에도 다양한 원인이 있었다. 

    리얼 액션 시네마의 부활
    톰 크루즈는 대역 없이 고난도 액션을 수행하는 걸로 유명하다. 단지 화제성을 위해서가 아니다. 속도감 있는 액션 신에서 배우의 표정이 드러나는 풀 샷과 클로즈업을 자연스럽게 편집할 수 있다는 건 현장감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마블 영화를 떠올리면 알겠지만 블루 스크린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화면은 아직 기술적 한계로 인해 어둡기도 하고 희미하거나 색감이 과장된다. 그에 비해 리얼 액션 영화는 한결 눈이 편하다. 

    <매버릭> 촬영 당시 톰 크루즈는 56세였고, 미 해군 최고령 전투기 조종사였던 팀 쿠르츠가 2015년 은퇴 당시 54세였다.

    톰 크루즈는 조종사 자격증이 있고 비행기도 소유하고 있으니 당연히 이번에도 직접 하늘을 날기를 원했다. 다른 배우들도 덩달아 비행 훈련을 받아야 했다. 비행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인물들의 신체 반응, 기체의 떨림, 풍경과 조도의 변화 등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배우들이 운전은 하지 않더라도 전투기를 타야 했다. 극 중 멘토로 등장하는 톰 크루즈는 실제로도 배우들이 수행할 고강도 훈련 계획을 직접 짰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항공 신을 찍다가 토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작전명 ‘팬보이’로 출연한 대니 라미레즈는 톰 크루즈와의 촬영에 대해 “(배우로서) 박사 학위를 따러 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촬영감독은 <라이프 오브 파이>의 클라우디오 미란다였는데, 그 역시 비행을 배우고 수개월간 테스트 촬영을 실시했다. 실제 조종사들이 운전하는 전투기에 배우들을 태우고 촬영을 한다는 건 그들이 상공에 떠 있는 동안 촬영 스태프가 동행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배우들은 감독의 원격 사인에 맞춰 카메라와 조명을 직접 조작하거나 메이크업을 수정해야 했다. 제니퍼 코넬리가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서 요트를 모는 장면 역시 대역 없이 촬영했다. 

    <매버릭>은 실감 나는 항공 샷을 위해 배우들을 실제 전투기에 태웠다.

    <매버릭>에는 36년 전 <탑건>을 오마주한 장면이 많은데, 전투기 너머로 후광이 비치고 지상 스태프들이 깃발을 휘두르며 활주 사인을 보내는 저 아이코닉한 오프닝 신도 고스란히 재현했다. 요즘 할리우드에서 CG로 비행기에 후광을 넣는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원작의 토니 스콧 감독은 태양이 완벽한 고도에 오기를 기다려 전투기의 방향을 딱 맞게 수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투기 방향을 돌리는 데 당시 돈으로 2만5,000달러가 들었다. <매버릭> 팀도 같은 선택을 했다. 원작의 촬영감독이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 브로맨스, 추억 여행
    <매버릭> 시나리오는 단순하고 고전적이다. 선악이 뚜렷하고 인물들은 캐리커처화했다. 몇몇 인물이 투닥거리기도 하고 원한이나 애환이 하지만 그리 복잡하지 않게 해결된다. 대신 우정, 동지애, 애국심이 강조된다. 어찌 보면 촌스러운 드라마이고, 낯간지러운 감성이다. 위트 있는 대사도 가끔 등장하지만 애써 익살을 부리지도 않는다. 1980~1990년대 할리우드풍의 이런 직선적인 작법은 배우들의 연기나 화려한 볼거리 등 다른 요소가 받쳐주고 적절하게 긴장이 배분될 경우 오히려 깊은 몰입을 유도하는 힘이 있다. 

    톰 크루즈의 상대역 제니퍼 코넬리. 코넬리의 캐릭터 ‘페니’는 1986년 작에서 장군의 딸이라는 설명과 함께 주인공들의 농담에서만 이름이 등장했다.

    <매버릭>에서 구스의 아들 루스터로 출연한 마일즈 텔러. 배우들은 작전명을 직접 정할 수 있었는데 루스터(닭)가 구스(거위)와 가족 같아서 골랐다고.

    <매버릭>에는 1980년대 <탑건>을 극장에서 보았을 로큰롤 감성 ‘아재’ 팬들을 열광시킬 요소가 흘러넘친다. 59세의 톰 크루즈, 아니 매버릭이 어떻게든 그를 뒷방에 들여앉히려는 장성들 앞에서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이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후 조무래기 조종사들을 이끌고 가서 적진을 박살 낸다. 매버릭은 아내도 자식도 없다. 부러운 자유다. 그러다 황혼이 다가올 즈음에 옛 인연과 재회해 알콩달콩 연애도 하고, 다 커서 손도 안 가는 유사 아들딸까지 생긴다. 항공 점퍼를 입고 빅 바이크를 타는 톰 크루즈의 곁에는 제니퍼 코넬리가 있다. 제니퍼 코넬리는 톰 크루즈보다 여덟 살 연하인데, 남자 주인공이 아무리 늙어도 연인으로는 으레 20대 여배우가 간택되는 걸 고려하면 양심적인 캐스팅이고, 애틋한 과거 인연 한둘쯤 품고 살아가는 아재 팬들의 심금을 울릴 만한 설정이다. 물론 1986년 <탑건>에 출연한 멕 라이언과 켈리 맥길리스가 제니퍼 코넬리만큼 외모의 일관성을 유지했으면 이 거국적 추억 여행 이벤트에 캐스팅이 안 될 리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 관객으로서 속이 쓰리긴 하다. 심지어 현실에서 후두암을 앓고 있는 발 킬머도 ‘후두암에 걸려 컴퓨터 메모장으로 대화하는 아이스맨’이라는 설정을 이용해 <매버릭>에 합류하지 않았나. 여배우로 사는 게 참 쉽지가 않다. 

    1986년 작에서 매버릭의 윙맨 ‘구스’를 연기한 안소니 에드워즈와 구스의 아내로 출연한 멕 라이언.

    1986년 작에서 매버릭의 연인으로 출연한 켈리 맥길리스.

    한편 청춘과 브로맨스를 향한 아련한 서정은 세대 불문 감응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다. 톰 크루즈는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잘 안다. <탑건>의 비치 발리볼 신을 재현한 장면은 재촬영까지 해가며 공을 들였다. 배우들은 상의 탈의를 위해 식단을 조절해야 했는데, 해당 신이 끝나고 신나서 맥주를 마시다가 톰 크루즈가 재촬영을 지시하는 바람에 비상이 걸렸다고.   

    애국심, 그런데 조금은 진정된
    1986년 <탑건>은 베트남전 때문에 상처 난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회복하며 자원입대 열풍을 일으켰다. 국방부의 전폭적 지지하에 탄생한 이번 영화도 미국 보수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정치 평론가 벤 샤피로는 <탑건>이 “군인들을 정신적 문제를 앓는 사람, 악마 같은 미국 체제의 희생자, 제국주의자 등으로 묘사하지 않는다”고 칭찬했다. 그러고 보면 요즘 할리우드 영화에는 해외 파병 후 트라우마와 가난에 시달리다가 범죄자가 되는 전직 군인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공교롭게 요즘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철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방관, 남중국해 위기 등으로 다시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대하고 강한 미군을 그린 영화가 세계적 흥행을 하고 있으니 ‘국뽕’이 도질 만하다. 

    대니 라미레즈는 “톰 크루즈가 매년 수백만 명이 보는 영화를 내놓는 사람으로서 관객의 시간에 대한 책임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평했다.

    이런 결과를 예상한 듯 2019년 <매버릭> 제작비의 12.5%를 투자하기로 했던 중국 기업 텐센트가 중국 공산당 눈치를 보며 투자를 철회한 적도 있다. 텐센트의 결정은 옳았나? 글쎄, 막대한 흥행 수익을 놓친 건 물론이고 대만 국기가 영화에 등장하는 걸 막지도 못했으니 중국에 좋은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원래 주인공 매버릭의 항공 점퍼에는 자기 아버지가 참전한 지역의 국기 패치가 붙어 있다. 일본, 대만 포함이다. 그런데 2019년 <매버릭> 예고편에서는 이 패치가 다른 심벌로 교체되었다. 미국인들은 “할리우드가 ‘메이드 인 차이나’가 되었다”, “중국 검열을 고려한 자기 검열의 또 다른 사례다”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텐센트가 물러난 후 실제 영화에서는 대만 국기 패치가 살아났다. 스튜디오는 중국 시장을  포기했고 대만 관객은 환호했다. 중국 개봉이 막혔음에도 전 세계에서 기록적 흥행을 올리고 있으니 그동안 자본을 무기로 할리우드를 통제하던 중국도, 거기 휘둘리던 다른 스튜디오도 머쓱해졌을 법하다. 이 역시 미국 보수들의 자부심을 자극할 만한 사건이다. 

    다만 영화는 대중성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현실을 지운 부분이 있다. 일단 영화 속 적국이 어디인지가 불명확하다. 북한 장비, 러시아 전투기, 이란 무기, 아프가니스탄을 연상시키는 지형 등이 섞여 있다. 요즘 관객의 윤리적 감수성을 고려해 캐스팅에 다양성을 가미하기도 했다. 탑건 훈련병에는 아시아 여성, 아시아 남성, 흑인 남성, 백인 여성 등이 섞여 있다. ‘미국 국뽕 마초 영화’인 건 여전하지만 그 정도가 약해진 것이다. 원작의 감수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대중이 ‘이만하면 눈 딱 감고 즐길 수 있다’ 할 지점을 귀신같이 읽어냈다.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의 12%가 여성이고 <매버릭> 훈련 장면의 성비도 얼추 그와 비슷하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매버릭> 도입부, 주인공은 탑건을 무인 전투기로 대체하려는 국방부의 계획에 맞서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기록에 도전한다. 이 영화 자체도 남들은 은퇴할 나이지만 아직 누구보다 짱짱한 영화계 고참이 디지털 블록버스터에 맞서 인간적인 방식으로 시네마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의 도전은 멋지게 성공했다. 톰 ‘매버릭’ 크루즈의 비행은 계속될 것이다. 

    톰 크루즈 출연작 역대 흥행 순위 

    2022 <탑건: 매버릭> 9억 달러(6월 20일 기준)
    2018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7억8,700만 달러
    2011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6억9,400만 달러
    2015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6억8,000만 달러
    2005 <우주 전쟁> 6억600만 달러
    2000 <미션 임파서블 2> 5억4,900만 달러
    1996 <미션 임파서블> 4억5,700만 달러
    2003 <라스트 사무라이> 4억5,600만 달러

    이숙명(칼럼니스트)
    사진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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