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취재하는 여성 기자들
우크라이나 일분일초
러시아 침공과 공포에 짓눌리지 않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이 여성 기자들은 이해와 인간애를 부여한 취재로 진실을 이야기한다.
다큐멘터리 기자 이소벨 영(Isobel Yeung)은 웬만한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잔혹 행위를 취재하면서 평정을 유지한다. 바이스(Vice) 뉴스 특파원으로, 런던에서 활동하는 35세의 영은 예멘 내전에서 어린 나이에 팔려가는 신부들과 가정 폭력 희생자들, 지난해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따른 여성 인권 유린 등을 취재했다. “그런 순간에 놓이면 외면할 수도 있죠. 하지만 때로는 뭔가 번뜩하면서 갑자기 폭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답니다.”
영은 3월 방송된 실감 나는 보도를 통해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사살하고 500만 명이 넘는 피란민을 만들면서 우크라이나 남부에 드리운 공포의 진상을 보여주었다. 영과 그녀의 취재 팀은 남부 항구도시 미콜라이우(Mykolaiv)의 한 병원으로 밀려드는 사상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다. 피와 총상, 고통으로 인한 울부짖음이 만들어낸 혼돈의 장면이었다.
영은 알렉산드라 미할첸코(Alexandra Mikhalchenko)를 무균실에서 만났다. 울 모자와 밤색 코트를 입은 60세 노부인은 남편이 발코니 창문을 닫을 때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는 바람에 가슴 부분을 크게 다쳤다”고 설명했다. “남편이 잠깐 심정지를 일으켰다”고 전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피를 많이 흘렸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어떻게든 남편을 살려야 합니다.” 미할첸코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이 없이는 살 수 없으니까요.”
영이 자신의 런던 아파트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었다. 그녀의 집을 장식한 세이지 그린색 벽과 무화과나무가 줌 화면 너머로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잔뜩 쌓인 빨랫감을 보며 양해를 부탁했다. 거의 한 달간 우크라이나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노스페이스 다운 재킷을 소프트 흑백 스웨터와 캐츠 아이라이너로 교체한 지 일주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할첸코가 영에게 매달리는 듯 보였다. 미할첸코의 극심한 공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저는 감정에 잘 휩쓸리지 않아요. 하지만 그녀를 보니 제 할머니가 떠올랐죠.” 솔즈베리(Salisbury) 근교에서 자라고 영국인 어머니와 홍콩 이주민 아버지가 운영하던 중식당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던 그녀가 말했다. 미할첸코는 따뜻하고 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거의 평생을 남편과 함께 살아왔죠.” 영이 말했다. 그러면서 위로의 뜻으로 그 노부인의 팔을 잡아준 것을 떠올렸다. “그녀가 저를 꽉 붙잡고 있었어요. 그것을 보니 저희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떠나보낼 때가 생각났죠. 굉장히 충격적이더군요.” 미할첸코의 슬픔은 영이 우크라이나에서 전반적으로 관찰하던 노골적인 충격을 좀 더 구체화시켰다. “그녀도 그 전까지 굉장히 평온한 삶을 살았어요.”
미할첸코는 영에게 스쳐 지나가는 취재 대상 그 이상이었고, 현재도 그렇다. 그녀는 바이스 TV에 방영된 그녀의 22분짜리 보도 전날 후속 작업을 하면서, 미할첸코에게 꼭 연락을 달라고 부탁했다. “미할첸코가 남편의 부고를 전해왔죠.” 영이 말했다. “거의 말을 잇지 못하더군요.” 그녀는 러시아 공습의 잔인성을 공표하려고 그 소식 또한 보도 내용에 포함시켰다. “우크라이나 국민 개개인이 우리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곳, 이질적인 곳에 대한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거죠.” 영이 말했다.
영은 우크라이나에서 취재하는 다양한 여성 특파원 중 하나다. 여성 특파원은 빼앗긴 정상적인 삶, 격동, 가장 암울한 환경에서 지속하는 일상 등 주요 취재 내용이었던 민간인의 삶에 공감할 수 있도록 상세하면서도 전체적인 인상을 전한다. 이런 취재는 색다른 장면, 이를테면 장례식, 반항하는 듯한 낙관적인 분위기로 점철된 결혼식, 어쩔 수 없이 놓고 온 햄스터 때문에 슬퍼하는 아이들과 만나는 장면에 담긴 전쟁을 그려냈다. “이 여성들이 정말 취재를 잘하고 있어요.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용감하고 대담하면서도 인간애와 동정심이 넘치기 때문이죠.” CNN 선임 특파원인 42세의 클라리사 워드(Clarissa Ward)가 런던 집에서 말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에서 7주간의 취재를 마친 후 집에서 쉬면서도 여전히 강박적으로 뉴스를 듣고 있었다. “더 실증적인 이야기 전달 방식이 제게 큰 울림을 주죠. 절망을 맛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엿보거나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직접 겪어보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식은 없어요.”
3월 첫 번째 토요일에 워드는 키이우(Kyiv)에서 충격적인 뉴스를 대본 없이 냉정하게 전해왔다. 화면에서는 그녀 뒤편으로 크게 타격을 입은 이르핀(Irpin)을 탈출하기 위해 파괴된 교각 잔해물을 거쳐 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워드에 따르면 그들은 어디로 향하는지,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피란길에 올랐다. 방탄조끼 차림에 헬멧을 쓴 그녀는 보도를 하던 중 양해를 구한 다음, 한 노인과 가방을 들고 울면서 험난한 길을 가로지르는 여성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우리에게 익숙해진 허세 넘치는 남성 기자가 전할 법한 최전방 취재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전형적으로 저희가 전쟁 기사를 전달한 방식은 ‘가만히 서서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죠.” 워드가 전쟁터 바로 앞에서 촬영한 방송에 대해 언급했다. 그녀가 멋진 바리톤으로 “‘글쎄, 제프, 제 뒤를 보세요. 바로 최전방이 보일 겁니다…’”라고 흉내 내더니 이내 목소리를 흐렸다. “그런 방식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아요.” 그녀가 딱 잘라 말했다. 이라크 미군 부대에 파견된 종군기자였고, 아프가니스탄 취재를 맡았으며, 2018년 CNN 크리스티안 아만포(Christiane Amanpour)의 후임이 된 워드는 “사람들이 전쟁에 따른 여파로 어떤 일을 겪는지 포착하는 데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의 사브리나 타베르니스(Sabrina Tavernise)는 51세로, 이라크와 1월 6일 미국 의회 폭력 사태를 취재했으며, 얼마 전 <뉴욕 타임스> 팟캐스트 ‘The Daily’의 새로운 진행자로 발탁되면서 우크라이나에 가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다. 원래 스튜디오에서 충실히 해내면 되는 직책인데 말이다. 3월 초에 방송된 비탄에 젖은 분위기의 팟캐스트 에피소드에서, 타베르니스는 심하게 파괴된 키이우에서 서부 리비우(Lviv)까지 천천히 이어지는 종잡을 수 없는 피란길을 이틀간 취재한 다큐멘터리 스토리를 전했다. 심지어 그녀는 밤을 지새운 한 유치원에서 아이들의 칫솔질 소리까지 담아냈다. 폴란드로 향하던 피란민으로 가득 찬 기차역에서도 녹음을 했다. 그곳에서 팀(Tim)이라는 한 일곱 살짜리 남자아이가 타베르니스에게 비밀을 털어놓기도 했다. 아버지가 남아 있는 키이우를 탈출한 후 흔들리는 치아 두 개를 뽑았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자신의 레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 했죠.” 타베르니스가 전화로 내게 말했다. “그리고 저는 그 아이에게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아냐고 물었어요. 그는 모르겠다고 대답했죠.”
타베르니스는 탈출 여성과의 인터뷰를 통해 마법을 부린 듯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파괴에 대한 소식도 전달했다. 그 여성 중 상당수가 자녀를 둔 엄마들이었다. 그리고 사무직 근로자, 시나리오 작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와도 인터뷰를 했다. 그들은 “어느 날 치과에 가는 길이었죠. 그러다 낯선 사람들과 어두운 지하실에 있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들은 설거지하다가 창문을 내다보니 탱크가 보였다고 말했죠.” 타베르니스는 그 공습이 일어나기 전, 키이우에 있는 한 그루지야 식당에서 ‘이런 일이 절대 여기에서 발생할 리 없다’고 여기면서, 가망이 없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동네 친구들 무리를 만난 때를 회상했다. “그다음 갑자기 하늘이 쩍 갈라지더니 삶이 멈췄죠.”
타베르니스는 자신의 취재 목적을 설명하면서 노벨상 수상자이자 탐사 보도 전문가인 벨라루스 출신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가 1991년에 출간한 책 <아연 소년들(Boys in Zinc)>(이 제목은 소비에트-아프간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들의 시신을 아연으로 만든 관에 넣어 집으로 보낸 것에서 착안해 지었다)을 인용했다. 그녀는 알렉시예비치의 글귀 한 줄을 노트북에 저장해두고, 울고 싶을 때 읽는다고 한다. “알렉시예비치는 ‘나는 전쟁 자체의 역사가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감정의 역사를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고 말했죠.”
당연히 내가 인터뷰한 여성 기자들은 젠더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를 거부했다. “저는 여성 종군기자로 간주되고 싶지는 않아요.” 영이 말했다. “간혹 그것은 의미하는 폭이 지나치게 좁거든요. 동시에 남성적이고 마초적인 시각을 통해 분쟁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꽤 자주 그런 생각이 들죠.”
미묘한 뉘앙스를 지닌 우크라이나에서의 인도주의적 취재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의 다양성 증대’를 통해서도 성취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워드는 그 예로 좀 더 많은 아랍계 미국인 언론인과 그 지역을 취재하는 중동계 특파원을 비롯한 우크라이나를 뛰어넘는 업계 전반에 걸친 더 확대된 포용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살던 곳을 다루는 기사 상당 부분이 저와 생김새가 비슷하거나 가족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대변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언론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레일라 파델(Leila Fadel)이 말했다. 40세의 그녀는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National Public Radio, NPR)의 <Morning Edition> 진행자다. 타베르니스처럼 파델도 종종 스튜디오에 앉아 일하는 자리로 간주되던 직책에 임명된 후, 3월에 우크라이나로 들어갔다. 미국인 어머니와 레바논계 이민자 아버지를 둔 파델은 걸프 전쟁(그녀는 등교할 때 방독면을 챙겨 갔다고 한다)의 참상이 채 가시지 않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동안 살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석유 회사 아람코(Aramco)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파델의 가족은 여름에 내전이 벌어진 레바논의 베이루트(Beirut)를 방문했다. “저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을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죠.” 파델이 워싱턴에서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녀는 키이우와 리비우에서 4주를 보내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촉각을 곤두세운다. “심지어 전쟁 중에도 사람들은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해요. 파티도 열고 싶어 하죠. 이런 일이 모두 계속 일어나죠.”
파델은 3월 키이우 보도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 식료품 사는 사람들, 개 산책시키는 남자, 한 블록 이상을 뒤흔들어놓은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빌딩 등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바리캉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은 파델이 아직도 영업 중인 한 미용실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 곳에서 만난 엑신야 코유슈코(Exsinja Kojushko)라는 한 여성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카이로에 본부를 둔 NPR의 해외 특파원을 지낸 파델은 “저는 종군기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저 사람들을 취재할 뿐이죠. 그것은 때때로 사람들이 정말 끔찍한 일을 겪으며 살고 있고, 그런 일은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고질적인 분쟁이 세상의 일부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파델은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충격과 우크라이나가 서구 세계에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더 친숙해 보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공감을 더 많이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문이 막혔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항상 비극에 대한 동정과 충격이 쏟아져 나와야 합니다.” 파델이 말했다. “현대에 전쟁이 그렇게 새로운 것일까요? 아니,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You Don’t Belong Here)>는 작가 엘리자베스 베커(Elizabeth Becker)가 지난해에 출간한 책으로, 베트남 전쟁 당시 활약한 선구자적 여성 특파원 세 명(베커는 1970년대에 캄보디아 내전을 취재하면서 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을 다룬다. 그녀는 이 책 서문에 AP통신 특파원 피터 아넷(Peter Arnett)의 글을 인용해 “베트남 전쟁 기자단은 여성 기자들이 굴욕과 하대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는 남성들만의 요새였다. 전쟁은 남성이 남성에 대항해 투쟁하는 것이며, 거기에는 여성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였다”고 적었다.
작가 자닌 디 지오반니(Janine di Giovanni)에 따르면 그녀가 1990년대에 외국 특파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남자들이 저보다 나이가 더 많고, 더 노련했고, 제가 뭘 하는지 모른다는 느낌을 갖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우크라이나에서 자행되는 전쟁범죄를 기록하고 검증하는 프로젝트 <권능이 부여된 증인들(Enabling Witnesses)>을 연출 중인 디 지오반니는 외국인 에디터들이 전화로 끔찍한 말을 했던 일, 공공연한 성추행으로 힘들었던 일 등을 떠올렸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더 많은 여성이 이 직종에 뛰어들었다(그렇지만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중요한 역할은 여전히 남성이 지배적으로 차지하고, 수많은 외국 지국에서 여성이 수적으로 열세라고 워드가 말해주었다). 2003년에서 2007년 사이 “저는 이라크 바그다드 지국에서 그 기간 내내 일하는 유일한 여성이었다”고 타베르니스가 말했다. 그녀는 군대에 파견된 기자들과 경쟁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스스로 ‘변방’이라 부르는 취재 영역인 ‘이라크 일반 시민’을 가능한 한 많이 취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종파 간 싸움으로 살해된 남성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이라크인과 함께한 시간은 심화되는 내전에 대해 다른 수많은 남자 동료들보다 더 빨리 이해하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사실 저는 그들보다 앞서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 닿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타베르니스가 말했다.
군사적인 것에 대한 취재는 금 본위제(The Gold Standard)처럼 보일 수 있다. 워드가 CNN을 통해 뉴스를 보도한 다음 날, 그녀가 서 있었고 민간인의 탈출 포인트로 알려진 그 다리의 키이우 쪽이 러시아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때 43세의 우크라이나 회계사 테티아나 페레비니스(Tetiana Perebyinis)와 그녀의 두 자녀 18세 마이키타(Mykyta), 9세 알리사(Alisa) 그리고 그 가족의 탈출을 돕던 한 교회의 자원봉사자인 26세 아나톨리 베레즈니(Anatoly Berezhnyi)가 사망했다. 사진기자 린지 아다리오(Lynsey Addario)와 그 가족이 시멘트 벽 뒤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그 사이로 박격포가 떨어졌다. 아다리오가 뭔가에 맞았고, 폭탄 파편인 줄 알았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폭발로 튕긴 자갈이었다. 박격포가 아다리오와 그 가족 사이에 떨어졌다. 6주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지낸 후 런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그녀가 그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들 대신 제가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죠.” 그녀가 말했다. 아다리오는 초점이 맞는지 확인도 못한 채 황급히 피해자들의 사진을 찍은 후 그 현장을 빠져나왔다. 짐 가방 사이에 누워 목숨이 다한 그들의 음울한 사진(아이들은 배낭을 그대로 메고 있었다)이 <뉴욕 타임스> 1면에 실렸다. 러시아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이 국가가 조잡하기 짝이 없는 교전 규칙을 무시한 채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그럼에도 2009년 퓰리처상 수상자인 아다리오는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지난 두 달간 제가 찍지 않은 사진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죠. 최전방에서 일어나는 더 많은 일, 군인이 총을 난사하는 장면, 연기와 화재, 파괴된 건물 등의 사진을 더 많이 찍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너무 괴로운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그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어요. 충분히 괜찮지 않고, 충분히 대담하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죠. 그 대신에 저는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한 인간으로서 끌리는 것에 집중합니다.” (아다리오는 두 아들 루카스(10)와 알프레드(3)의 어머니이며, 로이터 통신 기자였던 폴 드 벤던(Paul de Bendern)의 아내다.) 지난 4월 아다리오는 임산부들이 처한 위기 상황을 보도했다. 몇몇 임산부는 지하에 있는 임시 산부인과 병동에 모여 지내고, 일부는 조산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다. “예정일대로 출산하는 것이 어려워요.” 그녀가 말했다. “태어난 지 2시간 된 신생아를 데리고 지하 피신처로 내려가야 한다면 어떨지 생각해보세요. 약국에서도 구할 수 없는 유축기를 찾아 헤매는 것은 또 어떨까요?” 그녀는 진심 어린 이 이야기에서, 자신의 둘째 아들처럼 대리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 19명의 사진을 촬영했다. 이 아기들은 키이우 지하실에서 쾌적한 담요에 싸인 채 떠나지 않고 그 곁을 지켜주는 보모들의 손길을 통해 목숨을 부지한다. 아다리오는 아기들의 친부모가 아기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가족이 유타주에 사는 대리모와 아직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다리오와 드 벤던은 심지어 분만실에도 함께 들어갔다. “저희는 정말 운이 좋았어요.” 그녀가 내게 말했다.
모성애는 여성들의 분쟁 지역에 관한 취재에서 중요한 성공 요소가 될 수 있다. 아다리오는 자녀를 둔 아버지보다 어머니인 자신이 가족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받는 이중 잣대에 분개했지만.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되죠.” 그러면서 그녀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한 첫 달에 사망한 기자 다섯 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폭스 뉴스의 카메라맨 피에르 자크르제프스키(Pierre Zakrzewski)도 그중 하나다. “그의 죽음이 분별 있게 이 일을 할 수 있고 다치지 않을 수 있다는 환상을 산산이 부수고 말았죠.” 그와 오랜 친구였던 워드가 말했다. “저는 임무를 맡을 때마다 집에 돌아올 수 있을까 싶어요.” 아다리오가 말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죠. 남편을 생각하면 ‘그래, 그이는 재혼하겠지’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아이들에게 또 다른 친엄마가 생길 수는 없잖아요.”
워드는 펀드 매니저로 일하는 필립 폰 베른슈토르프(Philipp von Bernstorff)와 사이에서 네 살 에즈라(Ezra)와 두 살 카스파르(Caspar)를 낳으면서 고조된 위기감으로 힘들었다. 그녀는 내근직을 원했고 전쟁 지역으로 파견 나가지 않겠다고 제안한 후, ‘일반적인 여성 혐오’ 그 이상을 겪어야 했다. 그 후 워드는 모성애가 그녀의 취재에 새로운 차원을 보탠다고 믿게 되었다. “아마 전쟁을 취재하는 더 많은 어머니들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여러분이 어머니로서 그 임무를 다할 때, 전쟁 지역에 있는 어머니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전쟁을 취재하는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이제 아다리오는 더 신중해지고, 자신의 결정을 더 치밀하게 계획한다.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그런 엄마는 절대 되지 않을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우크라이나를 취재하는 것보다 엄마가 되는 게 더 힘들어요. 가정을 꾸리겠다고 결정하기 전에, 저는 그런 이야기를 취재하는 데 인생을 걸었으니까요. 일할 때 매우 편안하고 행복해요.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을 다시 알아가야 합니다.” 세 살짜리 아들과 6주 떨어져 지낸 것은 특히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보모에게 ‘그 아이가 지금은 무엇을 좋아해요? 뭘 하고 있어요?’라고 물어봐야 해요.” 아다리오는 자신의 열 살 난 아이가 엄마의 일에 대해 거의 묻지 않는 것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그 아이는 자기방어 차원에서 자세히 알고 싶지 않을지 모른다.
“가끔 집에 올 때면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하는 것 같다고 묘사합니다. 다른 행성의 대기권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죠.” 타베르니스가 말했다. “모두가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돌아다니는 미국의 도시로 돌아가면 이런 멍한 기분이 드는 경향이 있죠.” 시신이 쌓인 우크라이나 시체 안치실 복도와 같은 참상을 목격한 후 편안한 삶으로 복귀하는 것이야말로 ‘이 일의 가장 이상한 부분’이라는 점에 이소벨 영도 동감했다. 그녀의 약혼자이자 언론인이며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인 벤자민 잔드(Benjamin Zand)는 취재 후 돌아오면 그녀에게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영은 런던 집에서 ‘죄의식에 사로잡히는 기분을’ 느꼈다. 전쟁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특권, 자신의 가족을 걱정시키는 것, 그 이야기를 외면할 수 없고 취재한 뉴스를 떠올리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양쪽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힘들어요. 제 치료사는 지금 제가 속한 세상에 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죠.” 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워드는 전쟁을 취재하면서 생긴 정신 건강 문제와 치료사로부터 받는 치료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히려고 애쓴다. “여전히 그런 일은 업계에서 금기시해요. 허세와 마초 문화 때문이죠.”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더 젊은 종군기자들에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이렇든 저렇든 창피한 일이 아니에요. 그럴 뿐 아니라, 실제로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전한다.
영의 트라우마는 분명하다. 그녀는 시끄러운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환경미화원이 길거리 쓰레기통을 쾅쾅 치기만 해도 놀랐다. “그렇지만 밤새도록 시체가 나오는 꿈만 꾸는 것은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신경을 덜 쓰게 되죠. 그래서 화가 나고 그것은 관계에 영향을 주기도 해요.” 영의 대학 동기 중 상당수가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 영의 잦은 출장은 인생의 이런 중요한 시점에 대한 생각을 복잡하게 만든다.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남자 친구와 그 점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 역시 기자예요. 그렇지만 우리 관계를 위해 제가 곁에 있어줘야 합니다. 그런 점 때문에 그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우크라이나에서 보내는 6주 동안, 아다리오는 평생 알게 된 모든 친구로부터 “너 괜찮니?”라는 똑같은 안부 문자를 받았고, 그녀는 괜찮다고 여러 번 강하게 이야기했다. 아다리오가 폴란드로 건너가 안전하다는 소식을 드 벤던에게 문자로 보내는 순간 “저는 울음을 터뜨렸죠.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라며 그때를 떠올렸다. 그것은 6주 동안 서서히 차오른 스트레스와 공포를 분출하는 것이었다. “제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저도 몰랐어요.” 그녀는 키이우 다리에서 살해당한 가족의 사진을 차마 볼 수 없었다. 남편이 보던 스웨덴 TV 시리즈의 폭력성에 발끈하기도 했다. “실제로 폭력을 겪지 않으면 그것에 귀를 기울일 수 없는 법이죠.”
그녀의 일은 두 가지 현실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솔직히 도덕적 의무감도 있는 것 같아요.” 파델이 말했다. 그녀의 생각에 많은 사람이 직접 목격할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야말로 굉장히 긴요한 일이다. 외부인이 병적인 흥미로 그들을 바라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아다리오를 이 길로 들어서게 만든 예상 밖의 일 같은 것이 과거에 벌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의 한적한 교외에 사는 평범한 미용사 부부의 딸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 일을 말도 안되는 용감한 직업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일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사진과 훌륭한 저널리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크라이나 현장에서 뛰는 여성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뉴스 사이클에도 시청자의 관심을 계속 끌어들이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은 항상 생활환경과 연결 짓게 되죠.” 파델이 말했다. “위생용품은 어떻게 해요? 식료품은 어떻게 구하나요? 사람들이 한 개인이나 가족과 유대감을 느끼도록 도울 수 있다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마련이죠.” 나는 타베르니스에게 우크라이나에 또 갈 것인지 물었고, 그녀는 주저 없이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은 아직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비밀이지만, 우리가 줌으로 이야기를 나눈 다음 날, 마리우폴(Mariupol)의 참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피란민이 향하는 남동부 도시 자포리자(Zaporizhzhia)로 다시 떠났다. 그녀는 고향을 잃은 아이들, 뿌리째 뽑힌 그들의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 했다. “어쩌면 거창한 이상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영이 그 위험과 공포를 감내하는 일의 가치에 대해 말했다. “이 전쟁에 깊은 이해와 인간애를 부여하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이니까요.” (VK)
- 글
- Michelle Ruiz
- 사진
- Daniel Vergara, Dennis Lapin(Courtesy of CNN), Arezou Rezvani(NPR), Mikhail Palinc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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