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로랑의 르 모노그램: 천재 예술가와 우정을 나눈 두 여성의 이야기_#아이코닉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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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로랑의 르 모노그램: 천재 예술가와 우정을 나눈 두 여성의 이야기_#아이코닉백

2022-07-10T17:27:13+00:00 2022.07.08|

‘편견을 갖고 나를 바라보는 세상을 포용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가 강사가 던진 질문에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지난 6월 열린 룰루레몬의 ‘비유비웰 페스티벌’에서였어요.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아 나눠준 펜과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니더군요. 50명 가까이 되는 이들 모두가 버퍼링 상태가 된 모습에 질문을 던진 하보람 강사는 당황한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질문의 요지는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자는 거였어요. ‘소셜 웰빙’이라는 단어를 쓰면서요.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이 서로 공유하고 공감하는 과정 자체가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던졌죠.

타인과 건강한 관계 맺기는 지금 많은 이가 주목하는 키워드예요. 왕년에 자기 계발 분야의 스타 강사로 불리던 이가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만이 새로운 시대에 대비하는 방법이라고 얘기할 정도죠. 아마도 이건 팬데믹이 우리에게 남긴 것 중 하나일 거예요. 우리라는 연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극단적 상황에서 깨닫게 된 겁니다.

돌아보니 패션계에서는 커뮤니티의 힘을 일찍이 활용해왔더군요. 뮤즈, 요즘은 앰배서더라 불리는 이들을 통해서요. 그중에서도 이브 생 로랑은 아이코닉한 뮤즈 두 명과 함께 역사를 쓴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죠. 베티 카트루와 룰루 드 라 팔레즈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의 만남은 첫눈에 반한 러브 스토리와 다름없어요.

1969년 런던의 생 로랑 리브 고슈 매장 오프닝에서 함께한 베티 카트루, 이브 생 로랑, 룰루 드 라 팔레즈. ⓒ Getty Images

“생제르맹의 셰 레진 나이트클럽이었어요. 1960년대 셰 레진은 세르주 갱스부르와 브리짓 바르도, 프랑수아즈 사강 등이 밤을 하얗게 지새우던 곳이었죠. 검정 팬츠 수트 차림으로 신나게 춤추며 놀고 있는데, 웬 남자가 제게 말을 건네더군요. 동행이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고. 그가 가리키는 손끝에, 마르고 창백한 게 저랑 똑 닮은 남자가 수줍게 앉아 있더군요. 이브 생 로랑이었어요. 자리에 가서 앉자, 그는 찬사를 늘어놓으며 제게 모델이 되어달라 제안했습니다. 코코 샤넬에서 모델 일을 할 때 예쁜 여자들에 밀려 한구석에 앉아 있던 기억이 떠올라 코웃음을 쳤지만, 착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전화번호를 건넸어요. 그렇게 시작됐죠.” 2020년 파리의 이브 생 로랑 뮤지엄에서 열린 전시를 앞두고 베티 카트루는 이렇게 증언했어요.

이브 생 로랑의 뮤즈 군단! 이브 생 로랑 쇼장에서 만난 케이트 모스, 룰루 드 라 팔레즈, 베티 카트루. ⓒ Getty Images

디올에서의 성공에 이어 1961년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오뜨 꾸뛰르 하우스를 오픈한 이브 생 로랑. 그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피 코트와 트렌치 코트 등을 여성 컬렉션에 선보이는 등 이미 자신만의 스타일로 명성을 쌓아가던 참이었어요. 그러던 1967년과 1968년에 베티 카트루와 룰루 드 라 팔레즈를 만난 겁니다.

에스닉 터치를 더해 폭발할 듯 화려한 아름다움의 룰루 드 라 팔레즈, 분명 남성복 차림인데도 묘하게 센슈얼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베티 카트루는 단숨에 이브 생 로랑을 사로잡았습니다. 뭐든 한결같으면 금세 지루해지는 법. 상반된 둘의 스타일은 이브 생 로랑이라는 디자이너, 나아가 이 하우스가 가진 양면성의 두 축이 됩니다. 룰루 드 라 팔레즈가 과감한 컬러와 패턴, 주얼리 등으로 여성스러운 면모를 보여주었다면, 베티 카트루는 테일러드 수트를 일컫는 르 스모킹의 탄생에 영감을 주며 남성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 거예요.

그중에서도 모던한 매력의 베티 카트루는 생 로랑 이후의 디자이너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이브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톰 포드는 그의 첫 번째 생 로랑 리브 고슈 컬렉션을 베티 카트루에게 헌정했고, 이후 생 로랑의 남성복을 맡은 에디 슬리먼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현재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안토니 바카렐로가 카트루를 만난 건 2017년의 일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매력을 오가는 72세의 베티 카트루를 생 로랑 캠페인에 캐스팅한 거죠. 바카렐로는 3년 뒤에 이브 생 로랑 뮤지엄에서 열린 전시 <베티 카트루, 페미닌 싱귤러>의 큐레이션을 맡으며 말하죠. “카트루의 매력에 굴복당했다”고요.

“여자가 수트 차림을 했다고 해서 남성성을 갖는 건 아니에요. 엄격하고 깨끗한 라인이 오히려 입고 있는 이의 여성스러움, 매력과 모호함을 강조합니다. 중성적인 베티의 체형, 그것을 드러내길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성을 향한 오래된 관습에 정면으로 맞섭니다. 그는 신비롭고 매력적인 현대 여성상 그 자체예요.”

이브 생 로랑은 생전에 베티 카트루를 두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한구석에 앉아 편견 어린 시선을 받던 여성을 천재 디자이너가 발견한 셈이죠. 이 정도면 꽤 멋진 우정 아닐까요?

생 로랑 하우스가 여전히 룰루와 베티라는 이름으로 가방 또는 선글라스 등의 아이템을 선보이는 건 이런 연유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순간에도 하우스 뮤즈인 그들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죠. 지난 2018년 처음 선보인 ‘르 모노그램’ 라인이 특히 그래요. 이브와 베티, 룰루가 함께 화양연화를 누리던 1970년대 무드가 돋보이는 가방으로 구성했죠. ‘르 쾨르’ 백은 사파리 여행을 떠나기 위해 트렌치 코트를 차려입은 룰루 드 라 팔레즈가 들었을 법한 사랑스러운 하트 모양이고, 롱 버킷 백은 미니 드레스에 싸이하이 부츠를 걸친 베티 카트루에게 제격입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카산드라의 이름을 따 ‘카산드라’라고 불리는, 이브 생 로랑의 이니셜을 딴 시그니처 모노그램은 이 라인에 빈티지한 매력을 더하는 요소고요.

생 로랑의 가방 라인을 들여다보면 룰루와 베티 외에 다른 이름도 등장해요. ‘케이트(Kate)’는 케이트 모스를, ‘루(Lou)’는 루 드와이옹을 일컫습니다. 하우스가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와 이룬 관계, 말하자면 생 로랑 커뮤니티의 현재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죠. 이쯤 되니 또 다른 기대감도 생깁니다. 안토니 바카렐로의 뮤즈이자 절친 블랙핑크 로제의 이름을 딴 가방을 언젠가 보게 될지 모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