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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연기의 신’을 만날 수 있는 영화 #1

2022.07.14

by 권민지

    올여름 ‘연기의 신’을 만날 수 있는 영화 #1

    올여름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성과 사랑, 모성을 얘기하는 영화 두 편이 개봉한다. 엇비슷하게 구질구질할 것 같지만 천만에. 전혀 다른 장르, 전혀 다른 분위기, 전혀 다른 즐거움이 있다. 모든 여성이 두 편의 영화가 보내는 시선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가능하지도 않다. 여성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 배우들의 연기에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것이다. <로스트 도터>의 올리비아 콜맨과 제시 버클리,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의 엠마 톰슨을 극장에서 지켜보는 건 우리 눈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로스트 도터> 도망친 엄마에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로스트 도터> 스틸, 올리비아 콜맨.

    <로스트 도터>는 무시무시한 여성 부대에 의해 탄생한 수작이다. 원작 소설은 엘레나 페란테의 <잃어버린 사랑>이다. 엘레나 페란테는 <나폴리 4부작>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출판계에서는 ‘페란테 신드롬’, ‘페란테 피버’, ‘가장 중요한 이탈리아 작가’라고까지 불리지만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소설가다. 2016년 한 탐사 언론인이 출판사 회계 자료를 뒤져서 나폴리 출신 번역가 아니타 라자가 엘레나 페란테라고 보도한 바 있지만 당사자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로스트 도터>는 자녀들이 어릴 때 가정을 버린 여교수가 휴가지에서 젊은 모녀를 마주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양육의 고통, 모성 신화의 공허함, 도피욕, 어머니가 여느 무책임한 아버지들과 같은 선택을 했을 때 겪게 되는 심리적 여파가 잔인하게 묘사된다. 배우이자 제작자 매기 질렌할이 판권을 사려고 연락했을 때 엘레나 페란테는 여자가 연출하는 경우에만 영화화를 허가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공은 매기 질렌할에게로 넘어갔다. 

    제작자 매기 질렌할과 배우 올리비아 콜맨, 제시 버클리, 다코타 존슨. Getty Images

    매기 질렌할은 이 영화로 장편 감독에 데뷔했다. 시나리오를 직접 써서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출연은 하지 않았다. 감독으로서 질렌할은 여성들이 불안을 느끼거나 신경이 예민해지는 상황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아름다운 나폴리 풍경과 휴가 분위기가 주는 고양감 속에 갈등과 긴장을 적절히 배치해 시종 눈을 떼기 힘든 영화를 만들었다. 피곤에 찌든 젊은 레다가 자위를 하다가 어린 딸들에게 방해를 받고 팬티를 치켜올리며 업무 전화를 받으러 가는 장면 같은 건 여성 감독이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질렌할은 남편 피터 사스가드를 주인공의 불륜 상대로 기용해 제시 버클리와 베드신을 찍게 했다. 할리우드식 프로 정신은 실로 굉장하다. 

    <로스트 도터>의 제시 버클리.

    중년 ‘레다’를 연기한 올리비아 콜맨은 올해 아카데미 주연상, 그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제시 버클리는 아카데미 조연상에 각각 노미네이트되었다. 올리비아 콜맨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에서 압도적인 연기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이번에도 그 명성에 걸맞은 무게감을 선보인다. 제시 버클리가 연기한 젊고 치기 어린 레다, 여전히 충동적인 데가 있지만 나이 먹고 회한에 잠긴 콜맨의 레다 사이 연속과 대비가 인간성에 대한 무한한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제시 버클리는 <비스트>(2017)와 <이제 그만 끝낼까 해>(2020)에서 개성 강한 연기로 찬사를 받은 후 완전히 주가가 뛰어서 이번 여름 한국에서만 공포영화 <멘>(7월 13일 개봉)과 <로스트 도터> 두 편이 개봉한다. 

    전직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인 다코타 존슨.

    올리비아 콜맨과 제시 버클리의 합이 예상하던 성과를 이룩했다면 다코타 존슨은 여기 예상 밖의 즐거움을 더한다. 모성과 자아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그리하여 레다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 ‘섹시한 썅년’ 니나를 보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의 촌스럽고 맹한 아나스타샤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다코타 존슨은 <로스트 도터>에 출연하기 위해 또 다른 배우 겸 감독 올리비아 와일드의 연출작 <걱정 말아요 그대>를 포기했는데 그 작품의 성패와 무관하게 <로스트 도터> 출연을 후회할 일은 없을 듯하다. 

    집요하고 배짱 좋게 민감한 주제를 끝까지 파헤친 여성 소설가, 감독, 배우들의 활약으로 우리는 인간 내면에 대한 또 한 편의 멋진 풍경화를 갖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도망치고 싶은 엄마들, 버림받은 딸들, 자아를 가진 여성들에게 권한다. <로스트 도터>는 7월 14일 개봉이다. 

    올여름 ‘연기의 신’을 만날 수 있는 영화 #2

    이숙명(칼럼니스트)
    사진
    Getty Images, 영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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