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 포인트

우리가 입는 옷이 불편한 이유

2023.02.12

우리가 입는 옷이 불편한 이유

우리가 입는 옷이 불편한 데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옷에 몸을 맞추지 않고, 몸에 맞는 옷을 찾으려 한다.

당근마켓에서 인기 셀러 되는 법이 공표된 바 없지만, 지켜야 할 암묵적 룰은 있다. 지금 팔겠다고 내놓은 물건이 왜 필요가 없어졌는가에 관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야 한다. ‘멋져 보이지 않아서’ ‘헤어진 남친 선물이라서’ ‘입을 때마다 불길한 일이 생겨서’ ‘뚱뚱해져서’라고 쓸 순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댄다. “옷 입는 스타일이 바뀌어서 내놔요.” 이혼 사유를 ‘성격 차이’로 발표하는 셀럽의 입장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수긍하게 되는 답변이다.

‘Vogue Runway’의 에디터 라이아 가르시아 푸르타도(Laia Garcia-Furtado)는 얼마 전 보그닷컴에 옷 입는 스타일의 변화에 관한 칼럼을 썼다. 그녀의 스타일을 바꿔놓은 것은 코로나라는 사회적 변화와 임신과 출산이라는 개인 생의 주기 변화였다. 모유가 잔뜩 묻어도 상관없는 일상 옷과 레드 랑방 드레스 같은 평생 간직할 옷만 남겨뒀지만, 다시 <보그> 사무실에 출근하며 하루 두 번 수유실에서 모유를 추출하는 데 불편함이 없으면서도 ‘보그다운’ 엉뚱한 상상력을 가미한 옷으로 새롭게 옷장을 채웠다고 적었다. 라이아가 몸무게와 체형 변화를 계기로 꼽았듯, 어떤 몸도 한 시절에 머물지 않는다. 내가 옷이 불편하다고 고민하게 된 시점도 어떤 옷을 입어도 헐렁하던 작고 마른 몸의 시기가 끝난 후였다. 당근마켓에 “스타일 변화로 눈물을 머금고 보냅니다”로 시작하는 호소문을 왕창 올리며 나는 한 시절이 끝났음을 인정해야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팔뚝이 두꺼워지고 목이 짧아졌다. 타이어를 낀 듯 허리가 불룩해졌고 과식한 날은 윗배까지 차올라 인간 서양배가 되곤 했다. 그동안 바지는 길이만 잘라냈는데, 체형이 이렇게 되자 바지는 늘 내게 ‘입고 있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했다. 로우 라이즈 스키니 진이 트렌드이던 시절에는 차라리 괜찮았다. 타이어 허릿살 아래로 바지를 걸치면 됐으니까. 하이 웨이스트가 기본값이 된 요즘 나는 바지에 숨이 막혀 야근을 포기한다. 와이드 팬츠도 트렌드의 한 축이지만 허리를 졸라매는 탓에 다리만 시원하다. 여자들은 평생 바지 유목민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끼린 몸에 맞춘 듯 착 감기는 바지를 만날 때면 기꺼이 거금을 지불해도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문제는 이런 불편함이 열패감이 되어 일상의 에너지를 교묘하게 깎아먹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하와이 출장을 맞아 스타일과 패턴이 확연히 다른 수영복을 인터넷에서 잔뜩 주문했는데 육안으로도 손바닥만 한 수영복이 도착했다. 실제로 다리 한 짝도 제대로 안 들어간 수영복을 모조리 반품하며 수영복 회사의 메인 타깃에 포함되지 않은 내 몸에 분개했다. 그들이 표준으로 삼았을 달라진 Z세대의 체형에 화가 났고, 조금 더 서둘러 다이어트를 하지 않은 나에게도 화가 났다. “수영복에 엉덩이 옷감을 왜 이렇게 아낀 거야?” 투덜거리다가 깨달았다. 그동안 한 번도 옷을 원망한 적이 없었다는 걸. 옷에 몸을 맞추는 게 당연하니까. 우리 몸은 S, M, L 세 가지로 그룹화되니까. 이 사회에서 우리가 옷을 입는 방식이었다.

옷이 몸에 맞지 않으면 자책해온 우리에게 그러지 말라고, 여성복에는 숨은 차별이 있다고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우연히 남동생의 옷을 입어보고 입지 않은 듯한 편안함에 깜짝 놀라 여성복과 남성복의 차이를 분석하다가 여성복의 문제점을 보완한 브랜드 ‘ACBF’까지 론칭한 김수정이다. 그가 SPA 브랜드 남성복과 여성복을 닥치는 대로 모아 해체해서 찾아낸 불평등은 정말이지 놀랍다. 같은 가격이라도 여성복은 저렴한 원단을 쓰고, 오버로크 같은 허술한 봉제로 마감하고, 주머니와 안감을 당연히 생략했다. 그에 비해 남성복은 물빨래를 해도 될 정도로 가공한 원단을 쓰고, 튼튼한 쌈솔로 마무리하고, 주머니는 깊고 많았다. 제작 과정에서도 여자 옷이라는 이유로 공장은 공임을 더 높게 요구했다. 김수정 대표는 이 과정을 책 <여성복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에 담았는데, 원인을 “남성복은 활동성을, 여성복은 보이는 라인에 초점을 두고 제작하기 때문”이라고 짚어냈다. 이 배경을 알고 나면 우리가 한평생 느낀 불편함이 이해가 간다. 허리, 엉덩이 라인을 강조하기 위해 몸에 밀착시키고 실루엣을 위해 지퍼를 숨기고 주머니는 없앴으며 허리 여유분도 두지 않은 여자들의 바지. 날씬한 몸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회는 점점 더 마르길 강요하고 그에 맞춰 옷은 점점 작아졌다. 김수정은 ACBF를 통해 바지 핀턱 주름을 살리고, 벨트로 몸에 옷을 맞추길 권하며, 재킷에 속주머니까지 부착하는 등 남성복의 특징을 여성복에 적용하는 실험을 하고 있는데 조만간 나도 구입해서 입어볼 생각이다.

물론 여자 옷이 이렇게 된 데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의류 MD로 18년째 일하는 지인은 “일부러 여자 옷을 후지게 만들었다거나 핑크세를 부과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남자 옷과 여자 옷은 출발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고급 기술의 집약체인 수트에서 차차 변해온 남성복에 비해 여성복은 디자인 확장이 우선시되었다는 것이다. 남성복, 여성복은 철저하게 공장이 분리되어 있어 기술을 공유하는 경우가 없고, 공장은 대단한 원칙을 따른다기보다 기존에 하던 대로 옷을 만들고 있다는 거다. “남녀 세트 상품의 경우, 여자 옷이 원단에서 여유가 생기지만 막상 하다 보면 단추를 바꾸거나 배색을 달리하는 등의 디자인 요소 때문에 비용이 올라가는 상황은 얼마든지 생긴다. 일반화하기에는 경우가 너무 다양하다”고 짚었다. 왜 아직도 여자 등산복에 허리 라인을 넣느냐는 항의 섞인 질문에, 여전히 아웃도어 브랜드의 주요 타깃은 중년이고 이들은 등산복이라도 날씬해 보이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옷 한 벌에는 역사, 산업, 이해관계, 세대까지 정말 다양한 요소가 촘촘하게 얽혀 있다.

무조건 남자 옷이 편한 것도 아니다. 사이즈가 넉넉해서 순간 편하게 느낄 수는 있지만 엉덩이가 납작하고 어깨도 넓은 남성의 몸에 맞춘 옷은 여자에게 자연스럽게 맞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물론 나는 남성복을 사들이던 무수한 지인들 덕분에 잘 알고 있다. 여성복이 자신들의 몸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 엉덩이가 맞는 남자 바지를 사서 허리를 줄이곤 했는데 편하긴 하지만 핏이 예쁘지 않다고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재킷의 경우 남성복은 어깨가 너무 묵직하게 떨어져 (또!) 핏이 예쁘지 않다고 여성복 오버사이즈를 뒤지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들려줬다. 어느 후배는 남자 바지 허리를 겹쳐 디자인한 레이의 보이프렌드 진을 찾아내고야 말았는데 허리의 편안함을 선사한 그 바지를 입고 온 날이면 하루 종일 감탄하고 있다. 의류 MD인 지인은 정말 잘 만든 여성복을 입어보면 남성복이 편하다는 얘기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일하는 아웃도어 업계도 다양한 체형으로 피팅을 하고 있고, 패턴은 인류가 쌓아온 기술이라는 거다. 그럼에도 그가 문제로 생각하는 건 역시 다양한 사이즈의 부재다. 여전히 너무 많은 브랜드가 수익상 이유로 한두 사이즈 안에 우리 몸을 밀어 넣고 있다. 그도 단 한 가지는 확실히 증언했다. 제작 단가를 낮추는 데 주머니 없애기만큼 손쉬운 게 없다고 말이다. 여성복 시장은 주머니를 없앤 돈으로 남성복보다 최소 세 배는 다양한 디자인을 재빠르게 뽑아낸다.

사실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보면 우리에게 옷은 자유롭고자 한 끊임없는 도전이었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만 강조한 드레스가 사실 여자의 출산 능력을 중시한 남성의 시선이 반영된 결과물인 건 공공연한 역사다. 움직임과 자유를 제약하도록 설계된 코르셋도 있었고 코르셋에서 탈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치마바지도 있었다(입으면 길거리에서 야유를 당했다). 여자가 남성복을 입으면 경찰에 체포되던 시절도 있었다. 어떤 여성은 남성복을 입음으로써 사회가 강요하는 시선을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들은 남성복이라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옷’을 선택했다.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데 책 <남성복을 입은 여성들>에서 닥터 메리 워커,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 로메인 브룩스를 비롯, 근사하게 남성복을 입은 여자 7인의 흑백사진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의 주기를 지나 야근을 방해하지 않는 바지를 애타게 찾는 나의 노력은 정당하다. 당장 서양배 체형을 위한 바지가 출시되진 않겠지만 획일적인 사이즈에 불만을 드러내고 소재, 패턴 등을 소비의 기준으로 삼는 여자들이 늘어나면, 이 변화도 언젠가 반영될 것이다. 게다가 가치를 넘어 유행이 된 젠더리스 룩에도 인생 바지 찾기의 희망이 있다. 2023 S/S 남성복 패션 위크에서 미니스커트와 비키니, 로우 라이즈 팬츠, 크롭트 톱 룩을 선보이며 톰 브라운이 붙인 표제는 ‘Why Not?’이었다. 잘록한 허리 실루엣 따위 상관없으니까 내 몸에 편한 옷 좀 만들어주면 ‘왜 안 돼?’. 조만간 당근마켓에 다시 한번 써 내려갈 판매 이유인 ‘스타일 변화’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길. (VK)

에디터
조소현
일러스트레이터
Olimpia Zagnoli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