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실로 만든 복잡미묘한 우주, 그곳에 들어서면 #친절한 도슨트 #시오타 치하루 

2022.08.08

by 권민지

    실로 만든 복잡미묘한 우주, 그곳에 들어서면 #친절한 도슨트 #시오타 치하루 

    무수한 흰색 실이 만들어낸 시오타 치하루의 환상적인 설치 작품 ‘In Memory'(2022)는 보는 조각이 아니라 머무는 조각입니다. 감상하는 조각이 아니라 경험하는 조각이죠. 이 흰색 공간의 중심에는 배가 한 척 자리하고 그 안에는 흰옷 세 벌이 걸려 있는데요, 이 압도적인 풍경이 어느 오래된 미래를 연상시킵니다. (SF 영화 감독들은 왜 이 작가를 섭외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어요.) 작품이자 공간인 ‘In Memory’를 둘러보며 그 시작과 끝을 예측하다 보니, 엉뚱하게도 이 많은 실을 물리적으로 어떻게 연결했는지 새삼 궁금하더군요. 실을 당겨 벽에 고정하고, 다시 정확히 그 지점에서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행위를 숱하게 반복하는 설치 과정이 그려졌습니다. 실을 아무리 길게 뻗는다 해도 자기 팔 길이만큼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이’의 세계가 탄생했겠죠. 생각해보면, 본래 어떤 세계든 누군가의 품 안에서, 딱 그만큼의 크기로 직조되지만, 그 안에서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우주로 거듭나는 게 아닐까 합니다.  

    Shiota Chiharu, ‘In Memory’, 2022, Dresss, Wood Boat, Paper and Thread, Overall Dimensions Variable

    시오타 치하루 개인전 ‘In Memory’. 동명의 설치 작품 1점과 조각 15점, 평면 38점이 전시 중이다.

    실은 엉키고, 얽히고, 끊어지고, 풀린다. 이 실들은 흡사 인간관계를 형상화한 것으로, 끊임없이 나의 내면의 일부를 반영하기도 한다.”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일본의 현대미술가 시오타 치하루에게 내면 세계는 가장 중요한 소재였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무덤에서 느낀 죽음의 공포, 이웃에서 내다 버린 불에 탄 피아노의 형상, 독일로 이주한 후 잦은 이사로 겪은 꿈과 공간에 대한 강박적 혼란, 암 진단과 항암 치료 과정에서 경험한 몸의 감각 등 지극히 사적인 순간들. “기억과 트라우마를 창작의 기원으로 삼아 특유의 수행적인 설치미술로 존재와 죽음에 관한 물음에 마주해온 작가답게, 이를 주효한 조형 언어이자 심리적 단서인 한 올 한 올의 실로 되살립니다. 죽음과 부재에 대한 성찰은 삶과 존재를 각성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요. 그렇게 힘을 얻은 작가는 오늘도 나와 외부를 경계 짓는 동시에 자아와 타자를 연결하는 옷을 마련해 배에 태우고는, 자기 기억의 바다로 띄웁니다. 이 배는 생의 희로애락과 인연의 거미줄로 얽혀 있지만 결코 얽매이지 않은 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Shiota Chiharu, ‘State of Being(Boxes)’, 2022, Metal Frame, Boxes and Thread, 120×80×45cm, 47.2×31.5×17.7in

    Shiota Chiharu, ‘State of Being(Playing Cards)’, 2022, Metal Frame, Card Game and Thread, 70×35×35cm, 27.6×13.8×13.8in

    Shiota Chiharu, ‘Endless Line’, 2022, Thread on Canvas, 180×120cm, 70.9×47.2in

    한강의 소설 <>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시오타 치하루가 그려낸 이 백색 우주는 지난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에서 목격한 인상적인 풍경과 겹쳐집니다. 그녀는 당시 붉은색 실로 가득한 방에 배를 띄웠습니다. 흰색 실이 탄생과 죽음을 은유한다면, 붉은색 실은 인연을 의미하지요. 붉은색 실은 매우 밀도 있게 짜여 있었고, 그래서 강인한 인연의 힘이 전시장 가운데 놓인 배를 견인하는 듯했습니다. 붉은색 특유의 생명력이 내 눈에 잔상이 되어 남았고, 내 마음에 스며들었으며, 그렇게 온몸으로 퍼져 나갔죠. 당시 치하루는 실 끝에 무려 5만여 개의 열쇠를 매달아두고, 보이지 않는 무수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 그리고 그런 우리들이 만들어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은유했습니다. 

    Shiota Chiharu, ‘In Memory’, 2022, Dresss, Wood Boat, Paper and Thread, Overall Dimensions Variable

    Shiota Chiharu, ‘In Memory’, 2022, Dresss, Wood Boat, Paper and Thread, Overall Dimensions Variable

    이번 작품 ‘In Memory’에는 열쇠 대신 백지가 매달려 있습니다. 우리 손에 확실한 열쇠를 손수 쥐여주는 대신 불확실한 가능성으로 가득한 백지를 내밉니다. 가끔 시오타 치하루의 작업은 지나치게 직관적이며 직접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실 사이에 걸린 백지를 보고 있자니 삶을 산다는 건 모든 것이 난마처럼 얽힌 세상에서 저마다의 기억과 추억으로, 그리고 우리의 사연과 이야기로 이 백지를 태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전시는 가나아트센터에서 8 21일까지 계속되니, 시오타 치하루가 통찰하는존재의 이유를 사유하기에 시간은 아직 넉넉합니다. 

      정윤원(미술 애호가)
      사진
      가나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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