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잠’이 예술이 된다면 #친절한 도슨트

Living

‘나의 잠’이 예술이 된다면 #친절한 도슨트

2022-09-08T17:52:12+00:00 2022.08.27|

2022년의 여름은 여러모로 잠 못 이루는 나날의 연속입니다. 115년 만의 폭우로 집을 잃은 이재민이, 다시 창궐한 코로나를 피할 도리가 없는 현대인이, 폭우 사이사이 엄습한 열대야로 숱한 도시인이 잠 못 들고 있지요. 또 모르긴 해도, 누군가에게는 잠의 시간인 밤이 자초한 자본주의적 불멸의 시간으로 변모해 소비되고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잠이야말로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1인칭의 세계라는 말에 절로 동의하게 됩니다. 실질적으로나 은유적으로나 인간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상적인 시간인 동시에 삶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가장 본질적인 행위인 셈이죠. 

<나의 잠> 전시 인트로(중앙 홀) 전경.

<나의 잠> 전시 귀빈 홀 전경.

오는 9 12일까지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나의 잠>이라는 전시가 흥미롭게 읽히는 이유입니다.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대미술가 19()의 작품은 전시를 통해 잠에 대한 보편적인 사회 통념을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해석으로 재탄생시킵니다. 잠에 대한 과학, 사회, 예술적 해석과 담론을 보여주는 영상, 미디어아트, 회화, 설치 예술, 사운드, 텍스트 등 다양한 시각 예술 작품은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은 잠의 개념을 제시합니다. 특히 하루의 시간대를 기준으로 한낮(나의 잠, 너의 잠), 23:20(반쯤 잠들기), 1:30(작은 죽음), 3:40(잠의 시공간), 새벽에 잠시 깨기, 7:00(잠에서 깨어나는 시간) 등의 전시 구성은 너무 일상적이라 개념화하기 힘든 잠의 의미를 미술적으로 되짚는 장치가 됩니다. 

(03:40) 유비호, ‘예언가의 말(ver. 2022)’, 단채널 영상, 31분 55초, 2022

(한낮) 김홍석, ‘침묵의 공동체’, 조각(설치) 12점, 2017~2019

전시장 초입에서 관객을 반기는 김홍석 작가의 조각 연작 ‘침묵의 공동체’(2017~2019) 앞에서는 짐짓 웃음이 납니다. , 너구리, 돼지, 원숭이, 강아지 등 동물의 탈을 쓴 채 졸고 있는 12점의 이 인물 조각은 대학생, 태권도 사범, 전직 트럭 운전사, 유명 영화배우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직종과 연령대의 사람들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다름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한낮에 졸고 있는 퍼포먼스를 벌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잠은 당연한 줄 알았던 사적인 영역을 벗어나 계층과 직업, 상황과 현실의 차원을 명징하게 알려주는 어떤 지표가 됩니다. 최재은의 ‘새벽 그리고 문명’(2022)은 기억할 수 없는 것과 사라져버린 것을, 무진형제의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1′(2019)은 잠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상기시킵니다. 

(07:00) 최재은, ‘새벽 그리고 문명’, 혼합 매체 설치(소금, 재, 파편, 물방울 소리), 600×300×50cm, 2022

(새벽에 한 번 깨기) 무진형제,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1’, 싱글 채널 비디오, 4K, 16:9, 스테레오 사운드, 30분 34초, 2019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소설 <>에서 잠을 자는 시간, 즉 꿈속의 세계를 일종의 신대륙처럼 설정합니다. 잠자는 시간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고, 수많은 사건과 장면을 연결하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을 하는데, 이를 통해 인류가 현재처럼 진화했음을 상정하죠. 하지만 우리는 일생의 3분의 1은 잠을 자면서, 12분의 1은 꿈을 꾸면서 보내고 있음에도, 그저 이 시간을 다음 날을 위한 휴식 정도로만 치부합니다. 깨는 순간 꿈은 잊히고, 잤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다시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지요. 

(11:20) 김대홍, ‘잠꼬대’, 영상 설치, 가변 공간 설치, 혼합 재료, 프로젝터 및 싱글 채널 비디오, 33×25×40cm 내외, 2022

(01:30) 심우현, ‘시간은 흐르고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리넨에 유화, 207×150cm, 2022

<나의 잠>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니현실이 믿음이라면 꿈은 일체의 믿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베르베르의 말이 떠오르더군요. 솔직히 현대미술로 느닷없이 잠을 다루는 이 전시의 설정을 의심한 것도 사실입니다. 현대미술은 잠과는 대치점에 있는 각성의 순간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나의 잠>전은 미술을 대면하는 시간이, 잠자는 시간이 그렇듯이, 심적·신체적·정신적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음을 다시금 일깨웁니다. , 제가 잠을, 미술을 오해했음을 인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