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주는 카타르시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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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주는 카타르시스에 대하여

2022-09-09T16:31:03+00:00 2022.09.09|

 

잘 흘린 눈물은 감정을 씻어낸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물.
그것은 바로 눈물의 카타르시스.

틴더 채팅에서 취미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면 “뭐, 넷플릭스 봐요. 골프도 많이들 친다지만 솔직히 TV 볼 때 제일 편하게 쉬지 않나”라고 솔직한 척 심드렁하게 답하겠지만, 실상 내 취미는 넷플릭스 보며 펑펑 울기다. 최근에 운 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였다. 아내 직원의 퇴직을 종용하는 회차에서 반대편 증인으로 섰던 직원의 남편이 대장암 투병 중인 걸 알고 회사 측에 소송을 제기한 여직원들이 손을 잡아줄 때였다. “힘들었죠?” 대사 한마디에 코끝에서부터 찌잉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제목 그대로 양쯔강 돌고래처럼 끼익끼익 울었다.

여전히 여운이 남아 있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는 평소 내 모습과 똑같은 장면이 나온다. 실언을 후회하며 기분이 처진 염기정(이엘)은 언제나처럼 버스 창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이어폰에서는 러브홀릭의 ‘그대만 있다면’이 흐른다. 조금씩 차오르던 눈물은 곧 줄줄 흐르고 순식간에 ‘꾸우꾸우’ 구애하는 비둘기 같은 소리로 이어진다. 울음은 “이대로 내 곁에 있어야 해요~”까지 비성으로 따라 부르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린 염기정은 뺨에 남은 눈물을 깔끔하게 닦고는 “아유, 간만에 잘 울었다”며 개운한 표정을 짓는다.

취미가 ‘울기’라니. 드라마 스토리가 슬프고 음악이 과거의 상처를 건드려서 그 결과로 우는 데서 나아가 울기 위해 어떤 행위까지 하냐고 묻는다면 종종 그렇다. 사실 대중교통은 울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다. 이어폰 바깥세상에서는 러브홀릭이 노래를 부르지 않기 때문에 우는 행위는 타인의 불필요한 시선을 끌기 마련이고 이는 몰입해서 눈물을 흘리는 데 방해가 된다. 내가 내밀한 ‘울음방’으로 주로 이용하는 곳은 출퇴근길 운전하는 차 안이다. 필요한 건 음악 정도다. 프랜 리보위츠는 “음악가들이야말로 우리가 감정과 기억을 표현할 능력을 준다”며 음악가처럼 사랑받는 예술가는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음악만큼 눈물을 쏟게 하는 기억으로 순식간에 우리를 옮겨놓는 매체도 없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나의 아저씨> OST나, 유튜버들이 편집해놓은 ‘이승환 히트곡 명곡 모음’ 같은 트랙이 제격이다. 나는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서서히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을 준다. 재생 시간 3분 동안 눈물의 클라이맥스는 주식 그래프처럼 오르락내리락하고 때론 그렁그렁하게 때론 통곡까지 도달해 눈물을 쏟는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주차장 입구. 아침부터 그렇게 울고 나면 감성은 차분해지고 이성이 강해지며 일하기 좋은 상태가 된다. 전날 몸속에 쌓인 나쁜 것을 빼주는 의식이 되어 두 번째 샤워를 한 듯 시원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뻑뻑하던 안구가 촉촉해져 시야마저 환해진다. 아, 쓰다 보니 또 시원하게 눈물을 한바탕 쏟고 싶어진다.

눈물의 효과에 대해서는 방영한 지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인용되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눈물 치료에 대해 취재하던 SBS 다큐 제작 팀에서는 울음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자들에게 슬픈 영화를 틀어주고 눈물을 방울방울 모았다. 그리고 이후에는 양파 뭉텅이를 건네며 눈물을 채집했다. 그리고 그 성분을 분석했는데 슬픈 영화를 보고 흘린 눈물이 양파 때문에 흘린 눈물보다 카테콜아민이 세 배 정도 높게 나왔다. 이는 말하자면 스트레스 호르몬인데 혈관을 수축시켜 심혈관에 부담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몸 안에서 눈물을 뽑아내는 건 스트레스 호르몬의 균형을 잡아주는 행위인 것이다. 당시 제작 팀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일본 아리타 히데오 교수 팀도 찾아가 눈물의 효능을 찾아냈다. 슬픈 영화를 보며 울 것 같을 때 버저를 누르는 실험이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실험자들의 뇌파 그래프는 심하게 움직였지만 2시간 내내 운 후 뇌파와 심장박동은 안정되었다. 자율신경이 흥분한 듯 보였지만 사실 편안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이를 억제할 경우 그래프에는 스트레스가 쌓였다. 나의 취미 생활과 염기정의 개운한 얼굴에는 이렇듯 과학적 근거가 있다.

다큐에는 강원도 산골 명상원에 모여 춤을 추다가 우는 사람들, 미국 시애틀의 눈물 모임 사람들이 등장했는데 통곡을 하고 나선 하나같이 사우나에서 나온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말했다. “이 모임에 오면 세탁기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의식의 빨래를 해버리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감정과 섞여 나오는 눈물의 맛을 본 적 있나. 조미료로 써도 될 정도로 짭짤한데 그저 윤활제 역할을 하는 기본 눈물이나 반사 작용으로 나오는 눈물보다 소금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그 소금 성분이 마음을 소독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발리에 놀러 갔을 때 다이빙 센터 강사 티셔츠에도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The cure for anything is salt water. sweat, tears, or the sea.” 그 다이빙 센터는 힐링 스폿으로 이름 높았다.

사실 눈물은 늘 참아야 하는 것이었다. 눈물이 감지됨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코를 들이 삼켜왔던 건 어릴 때부터 “울면 안 돼”라는 경고를 수없이 체득한 결과 아닌가. 다행히 사내가 아니라서 “남자 놈이 어디서 울고 있어”라는 말은 한 번도 듣지 않았지만, 딸이라고 나약하게 자라길 바라는 K-부모가 어디 있었겠나. ‘뭐, 그런 걸로 울고 그래’ ‘울 시간에 공부나 해’ 같은, 우는 행위는 생산적이지 못하니 뚝 그치라는 그런 말들. 게다가 눈물은 감정의 끝에서 터지는 것으로 여겨 감정 관리의 실패로 여긴다. ‘울면 지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배틀의 기본 법칙이다. 그러므로 사회생활에서 눈물은 특히 허락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울었다가는 ‘그 일을 해내기엔 미성숙한 사람’이 된다. (문득 잘못을 지적하는 선배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가 낯빛과 눈물도 관리해야 하는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모두 자기 계발서에 미쳐 있던 시기였다.) 특히 눈물은 여자라는 성별과 합쳐지면 더 감정적인 것이 되곤 했다. ‘남자를 조종하는 데 눈물만 한 것이 없다’는 명제는 정설처럼 작동했는데(물론 성차별적이다) 이는 사회에서 눈물을 압박받아온 남자들에게 눈물은 그야말로 낯선 액체라 대처법을 몰라 굳어진 설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에서 눈물은 일단 멈춰야 하는 것이다. 배고파 우는 아이일지라도.

우리가 남몰래 우는 쾌감을 즐기게 된 데는 바로 이 사회 분위기가 작동했다고 생각한다. 눈물을 흘리지 못하게 하는 가정의 문화나 사회적 요구는 감정의 억압을 낳고 사람들을 더 무신경하고 신경질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 지인도 기분이 처질 때면 <토고(Togo)> 같은 동물 영화를 골라서 본다고 했다. “영화를 보고 우는 건 오히려 현실에서 멀어지게 해서 뒤끝이 없다. 가족애로 울리는 영화는 마음에 질척거림이 남지만 동물 영화는 순수한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것이 그의 눈물 취향이었다.

눈물의 정화 작용에 대해 얘기했지만 사실 어쩔 수 없이 흘러넘치는 눈물도 있다. 얼마 전 찾은 심리 상담 센터에서 상담사는 마스크 위 내 눈을 보고 울고 싶은 눈이라고 말했다. 눈물이 자주 난다면, 몸 안에 물그릇이 여유 없이 가득 차 있어서 자그마한 자극만 받아도 물이 넘치는 현상일 수 있다고 했다. 신체 반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얼굴이 시뻘게지고 ‘뒷목’을 잡으면서 화가 나지 않았다고 할 순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니까 눈물이 많이 난다면 사실 많이 슬픈 상태일 수도 있다고 마음을 잘 살피라고 했다. “눈물도 감정 표현이 되는 거예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신체적으로 담긴 감정을 표현하니까 감정이 정화되고 시원한 구석이 생겨요. 하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 건 내가 힘든 걸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그걸 나누고 함께 공감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런 부분에서 혼자서만 감당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눈물은 말이 없지만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강력한 의사 표현이 될 수 있다. 시인 헤더 크리스털이 눈물에 대해 쓴 논픽션 북 <더 크라잉 북>에는 눈물을 예술 작품 소재로 활용한 한 학생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네덜란드 한 대학에 다니던 첸이페이는 자신을 다그치는 교수 때문에 눈물을 흘린 뒤, 말 그대로 눈물을 모으고 얼려서 얼음 총알을 장전한 놋쇠 총을 설계했다. 그리고 졸업 전시장에서 교수에게 그 총을 겨눴다. 속이 다 비치는 얼음 총알은 고무줄 총보다도 무해했을 테지만 담긴 의미는 말보다 강력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취미를 중단할 생각이 없다. 가족들이 언제든 불쑥 문을 열 위험이 있는 방이 아니라 누구도 침범하지 않는 나만의 차가 생겼을 때 비로소 나는 스스로를 책임지는 어른이 된 듯한 만족감을 느꼈다. 소리를 지르든 눈물 섞인 행복한 눈물을 흘리든 내 감정을 발산할 수 있는 곳. 그곳에 솔직한 내가 있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우는 건 사는 데 정말이지 도움이 된다. 지금도 베스트셀러 자리에 있는 서현 작가의 그림책 <눈물바다>는 세대를 초월해 눈물은 도움이 된다는 걸 보여준다. 시험을 망치고 억울하게 선생님한테 혼이 난 날, 집에 가려니 비가 온다. 우산이 없어 비를 쫄딱 맞고 집에 왔는데 엄마, 아빠는 이빨을 드러내며 싸운다. 자려고 하지만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은 바다가 된다. 모두 눈물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결국 상황을 수습한 밤톨 같은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하는 대사는 이것이다. “시원하다, 후아!”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