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비타민 수액은 새로운 웰니스 트렌드가 될 수 있을까?

2022.09.16

by 송가혜

    비타민 수액은 새로운 웰니스 트렌드가 될 수 있을까?

    주름을 펴고, 지방을 태우며, 면역력은 높인다는 비타민 수액. 새로운 웰니스 트렌드가 될까?

    리얼리티 프로그램 <카다시안 패밀리>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켄달 제너와 헤일리 비버가 나란히 링거를 맞는다. ‘NAD(니코틴아마이드, 아데닌, 다이뉴클레오타이드의 약자)’라 명명하는 이 수액은 세포가 에너지를 생산하도록 돕는 조효소를 주성분으로 함유해, 노화 방지와 에너지 증진에 효능을 지녔다고 알려진다. 둘은 소파에 앉아 팔에 주사를 맞으며 농담조로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저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죠.” “남은 평생 NAD 수액을 맞을 거고, 절대 늙지 않을 거예요.”

    자, 여기 뉴욕에 사는 한 여성이 있다. 퇴근길에 슈퍼푸드 스무디를 마시며 호텔 피트니스 클럽에 익숙하게 들어선다. 운동 후엔 화려한 도시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옥상으로 향해 수영장 선베드에 몸을 누이고, 다가온 직원이자 간호원에게 현재 컨디션에서 비롯된 요구 사항을 상세히 설명한다. 곧이어 서빙된 투명한 노란 빛깔의 액체. “주문하신 세포 손상 회복(Repair Cellular Damage) 수액이에요.” 탄탄함을 자랑하는 여성의 팔뚝 정맥에 링거 바늘이 꽂히고, 그녀는 순간의 따끔함도 잠시 잊고 마사지라도 즐기듯 편안하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한다. ‘미드’의 한 장면 같지만 지난 6월부터 뉴욕의 5성급 호텔 ‘이퀴녹스 허드슨 야드(Equinox Hudson Yard)’에서 비타민 수액을 제공하는 기업 ‘뉴트리드립(NutriDrip)’과 제휴해 실행하는 서비스다. 이름하여 ‘풀사이드 수액 테라피(Poolside IV Therapy)’. 그뿐 아니라 포시즌스, 빌트모어 등의 대형 프랜차이즈 호텔도 스파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이러한 링거 테라피를 도입했다. 이 서비스의 지향점은 다양하다. 기본적인 14가지 비타민 베이스에 비타민 B₁₂, 비타민 C와 같은 16가지 부스터 옵션을 제공하며 디톡스, 피부 재생, 숙취 해소, 면역력 증진, 심지어 다이어트 효과까지 넘본다. 1회 가격은 한화로 약 18만원에서 86만원. 피시술자의 컨디션에 최적화된 레시피로 제공하며 뉴욕과 LA, 텍사스주를 중심으로 고성능, 고가, 고급의 웰니스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의사의 처방 아래 비타민 주사를 가정에서도 맞을 수 있을 만큼 장벽이 낮은 미국은 수액 문화가 독특하게 발달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리한나, 신디 크로포드, 기네스 팰트로, 마돈나, 저스틴 비버, 카라 델레바인 등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할리우드에선 공공연하게 사랑받는 요법. 숙취 해소를 목적으로 수액을 맞는일이 다반사인 것은 물론, 주문에 따라 비타민 성분을 칵테일처럼 블렌딩해 수액을 제공하는 ‘드립 바(Drip Bar)’도 몇 년 전부터 성행했다. 이토록 수액 요법이 ‘치료’가 아닌 ‘웰니스’, 그것도 럭셔리 분야로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간단하며, 부족한 영양소를 광범위하게 채울 수 있는’ 어떤 면책 특권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가의 비용을 지불한다면 특별한 수액으로 숙취로부터 간은 빠른 속도로 해독되고, 꾸준히 관리하지 않아도 빛나는 피부와 모발을 소유할 수 있으며, 운동 후 스트레칭을 덜 하더라도 근육이 이완되는 등 전반적으로 신진대사가 촉진된다. 혈관에 바로 주입하는 비타민 수액이 곧 이상적인 건강함에 누구보다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일종의 ‘치트 키’인 셈이다. 타우린, 비타민 C와 비타민 B 콤플렉스, I-카르니틴을 배합한 수액으로 지방세포를 감소시키고, 효소와 분자, 비타민 혼합물로 세포 노화를 막을 수 있다니. 이 모든 것이 누워서 링거를 맞는 것만으로 실현된다면 그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그것도 호텔 클럽 스파라는 공간에서 프라이빗하게 누린다면 말이다.

    한반도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처럼 느껴지지만 몇 년 전 나는 서울 강남의 신사동 어느 의원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의 어느 마감 기간, 독감의 여파로 잔기침과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기운에 찾은 곳이었다. 처방받은 비타민 C 수액을 1인용 리클라이너에 누워서 받는데, 독립적인 공간을 가득 채운 아로마 향과 정적인 클래식 선율에 묵은 피로가 다 씻기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병원보다 스파를 방문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비영리단체 GWI(Global Wellness Institute)에 따르면 정맥주사 요법과 대체 의학은 세계 웰니스 비즈니스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다. 국내 종합 영양수액 시장 규모 또한 코로나 여파에도 2017년부터 꾸준히 확대되어왔다. 이토록 도약하는 산업이지만 일부 의료계 전문가들은 그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선 막상 반신반의한다. 혈관을 통해 특정 영양분이 들어가면서 컨디션이 극적으로 회복될 수 있으나, 반복적으로 링거를 맞는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그 효능보다 ‘기분’에 더 영향을 미치는 플라세보 효과(위약 효과)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이다. 수액을 맞은 후 일부 사람들은 나 또한 그랬듯이 증세가 호전되었기보다는 기분과 컨디션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주로 이야기한다. 물론 ‘사바사’, 사람에 따라 효과를 경험하는 주사의 횟수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면역력이 강화되는’ ‘지방이 연소되는’ ‘노폐물을 배출하는’이라는 문구를 주장하는 수액의 혜택을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결괏값은 안타깝지만 아직 없다.

    우려되는 요소는 또 있다. “기본적인 체액 성분, 즉 포도당이나 아미노산, 비타민 B와 C 성분은 반드시 몸 상태나 질환 유무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어느 정도 안전하게 시술받을 수 있지만, 최근 세분화된 수액 성분은 반드시 의사의 사전 진료와 검진이 필요합니다. 특정 성분끼리 만나면 침출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유어클리닉 서수진 원장은 이 트렌드의 사각지대를 지적한다. 비타민 C, 비오틴처럼 특정 비타민은 과다 섭취할 경우 소변을 통해 배설되지만, 그렇지 않은 성분도 존재한다. 그 결과는? 체내에서 거르지 못하는 비타민 K를 비롯한 몇몇 성분이 간과 같은 장기에 과도하게 저장돼 독성을 일으킨다. 발진과 호흡 곤란, 심각하게는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부작용도 1% 미만이지만 어디까지나 존재한다는 점이 주요한 맥락이다. 혈액에 직접 주입하는 만큼 확률은 미미하지만, 몸소 내가 모두 감당해야 하는 복불복 내기와도 같은 것이다. 특별한 의학적 이유로 의사가 권하지 않는 한 건강이 양호한 상태라면 무분별한 수액 투여는 위험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 링거를 예찬하기로 유명한 켄달 제너조차 2018년 비타민 수액을 투여한 뒤 부작용으로 병원에 입원한 행적이 있다(그럼에도 그녀의 수액에 대한 높은 관심은 지금까지도 꾸준하다).

    물론 정공법만으로 진정한 웰니스 라이프를 추구하기엔 현대사회는 각박하고 삶의 시계는 너무도 빨리 움직인다. 그런 관점에서 비용을 투자하되 시간은 절약해 건강함을 누릴 수 있는 수액 주사 요법은 젊은 시절을 가장 아름답고 호화롭게 보낼 수 있는 빠른 길이 될 수 있다. 어디까지나 그것을 면역력과 피로 해소를 위한 ‘보충제’의 개념으로 여긴다면 말이다. 건강한 식단과 활동적인 생활 습관 없이 만병통치약으로 수액을 무작정 투여한다면 그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길이 될지 모른다. 무엇보다 켄달이나 헤일리 같은 스타들의 화려한 일상을 선망하는 데서 시작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여러분이 충분히 건강한 사람이라고 느낀다면, 굳이 수액을 맞을 필요는 없다. (VK)

    에디터
    송가혜
    포토그래퍼
    이호현
    프롭
    전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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