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생 로랑과 만난 이배, 숯 그리고 카오스

2022.09.22

by 김나랑

    생 로랑과 만난 이배, 숯 그리고 카오스

    숯의 화가, 이배. 숯을 통해 카오스 상태의 자연을 예술로 표현하는 인물이다. <프리즈 서울>에서 생 로랑과 협업해 작품을 선보이기 며칠 전, 그의 고향 청도에서 숯가마가 열렸다.

    ‘Brushstroke’ 시리즈의 신작을 작업 중인 이배 작가. 붓질 한 획마다 시간과 신중함을 요한다.

    이배 작가를 만나기 위해 경북 청도군의 청도역에 내렸다. 작가의 고향인 이곳엔 작업 공간 세 군데가 자리한다. 작가가 본격적으로 작품을 그리는 옛 초등학교, 동네 할아버지가 살던 수십 년 된 한옥, 이배 작가의 상징인 숯을 만들어내는 가마터.

    그날은 보름에 한 번 가마에 불을 지피는 날이었다. 숯이 되기 위해 쌓인 소나무와 작품이 되길 기다리는 숯이 비를 타고 진한 향을 풍겼다. 가마터 너머로 비구름에 둘러싸인 안중산, 비룡산, 용당산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사람 키를 훨씬 넘는 가마의 위용과 산세에 넋 놓다 바지가 숯 칠갑이 되었다. 이배 작가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제 별명이 숯쟁이입니다. 손 밑이 새까맣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다니니까 그림을 그리는 거냐, 탄광에 가는 거냐는 농을 들어요(웃음).”

    이배는 한옥에서 우릴 기다렸다. 그는 한옥의 옛 주인을 알았다. 어릴 때 동네 할아버지가 나무를 베다 집 짓던 모습을 기억한다. 이배 작가는 청도에서 흙을 밟으며 자랐다. 여덟 살 때 전기가 처음 들어왔고, 열다섯 살 때 피아노란 물건을 처음 보았다. 농부인 아버지를 따라 소몰이를 하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농부가 되길 바랐다. 재미있게도 농사에 관한 부친의 가르침은 작업의 근간이 되었다. “부친께서 ‘농부는 땅을 다스리려 하지 말고 땅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봄이 왔다고 아무 때나 씨를 뿌리면 싹이 나지 않아요. 땅의 얘기를 잘 듣고 친해져야 합니다. 그런 얘기를 귀 따갑게 들었지요. 제가 농부가 되길 바라셨거든요. 이젠 아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제일 많이 떠올리는 말이 되었어요.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림의 얘기를 어떻게 잘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배는 한옥 너머에 선산이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뿌리를 자주, 깊이 생각한다. 작품 활동의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뭘 하고 어떤 꿈을 꾸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뉘 집 아들이고 무얼 먹고 자랐는지, 내가 누구인지 되새겨야죠.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내 근원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대화 중에도 계속 비가 내렸다. “손님들이 오시니 비가 마중을 나오네요.” 이배 작가가 말했다. 우리의 방문은 이배 작가의 일상을 흐트렸을 것이다. 그는 규칙적인 작업으로도 유명하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시간을 정해놓고 철저하게 작업에 임한다. 폐교로 쓰는 작업실을 거닐다 우연히 발견한 이배의 노트에는 ‘오늘 할 일’이 적혀 있었다. 폐교는 1학년부터 6학년 반까지 작품 재료와 스케치, 미완성 작품으로 빼곡했다. 성실한 작업 방식은 교사로 일하던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일까. 이배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을 하기 위해 교직에 잠시 몸담았고, 1989년 한국을 떠나 1990년부터 30여 년간 파리에서 작가 활동을 했다. 규칙적인 작업 습관의 이유를 묻자 그는 파리에서 받은 현대미술의 충격을 꺼냈다. “현대미술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고민했어요. 지금 제게 현대미술이란 산업사회의 어떤 정신으로 만들어진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쉽게 얘기해서, 근대미술은 영감이 찾아올 때나 기분이 좋을 때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면, 현대미술은 영감이 떠오르든 떠오르지 않든 회사에 출근하듯이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반복하며, 예술이라는 하나의 형식을 통해 자기 삶을 살아가는 거죠. 과음하거나 아프면 회사에 출근할 수 없잖아요. 자신을 올곧게 지켜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죠. 미술도 같습니다.” 이배는 예술의 요건으로 에스프리(영감과 정신), 애티튜드(태도와 자세), 프로세스(과정과 방법)를 얘기한 적 있다. 그의 규칙적인 작업 방식은 애티튜드에 해당한다. “애티튜드를 우리말로 하면 자세, 마음가짐 정도가 되겠군요. 프로세스는 결국 애티튜드에서 비롯됩니다. 일정하게 지속적으로 동일한 관심을 갖고 그것을 파고들고 확장시키고 시험하고 자신을 그 안에 넣는 거예요. 작가가 질서 정연하지 않으면 예술의 질이 동일할 수 없죠. 어느 공장의 물건이 동일한 수준으로 생산되지 않고, 어느 땐 좋고 어느 때 나쁘다면 전체 이미지가 안 좋잖아요. 예술도 마찬가지예요.”

    이배가 파리로 간 3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인이 현대미술을 한다는 것에 현지 반응은 의문이었다. 작가는 서양 사람이 수묵화를 그린다고 했을 때의 표정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림을 그리러 갔는데 그릴 게 없었죠. 내가 할 작업이 없어 큰 충격을 받았어요. 서양화를 그려서 내가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서양의 재료와 방법으로 무엇을 담아낼 수 있을까. 이것이 제게 주어진 시험이고 도전이었죠. 숯이란 재료가 제게 깊숙이 다가온 이유기도 해요. 숯은 파리에도 있고 전 세계에 다 있지만 한국 사람에겐 특히 남다르죠. 우리에게 숯은 나무를 태운 물성 그 이상을 담고 있어요.” 우리 선조는 어릴 적 아기가 태어나면 숯을 내걸고, 귀한 장이 담긴 장독엔 숯을 넣었다. 이배의 한옥 구들장 밑에도 숯이 있다. 그것이 수십 년 전에 지어진 한옥이 쓰러지지 않고 버틴 이유다. 지금 우리의 냉장고와 다용도실에도 숯이 하나쯤 있지 않은가. 예술도 마찬가지다. 우리 고유의 산수화, 풍경화는 먹으로 그렸고, 그 재료가 숯이다.

    청도의 한 폐교가 이배 작가의 작업실이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구상한다. 영감이 떠오르든 떠오르지 않든 일정하게 반복적으로 작업하는 것이 현대미술이라 여긴다.

    <프리즈 서울>의 공식 협력사 생 로랑과 협업해 작품을 준비한 이배. “붓털 한 올 한 올이 천의 텍스처처럼 보일 순 없을까 고민했다”고 그는 말한다.

    “숯이라는 재료를 통해 떠나온 고향, 고국, 문화를 떠올렸습니다. 어떻게 숯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수천 년 수목의 세계가 내게 버팀목이 되어주리라 여겼어요. 이 숯으로 카오스 상태의 자연을 예술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카오스는 무질서와 혼돈의 상태이며 우리의 개념이 통하지 않는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세계죠. 저는 자연이 카오스의 세계라고 봅니다. 자연에 순응해야 해요. 하지만 너무 깊이 발을 들여놓으려다 여러 재앙이 생기는 게 아닐까요. 저는 자연에서 온 재료, 숯으로 카오스 상태의 자연을 담고 싶었습니다.” 자연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니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숯을 사용한 초창기 이배 작가는 고향 청도의 감나무를 그렸다. 그 후 ‘Landscape’ ‘Issu du Feu’ 등 엄청난 시리즈를 선보인다. 숯을 만나면서 무엇을 그려야 할지 길을 본 것이다. 지금은 ‘숯의 화가’로 불린다. 그리고 무명의 가난한 화가에게 하나에 2만원에서 3만원 정도 하던 유화물감이 아닌, 한 포대에 몇천 원 하던 숯은 그런 점에서도 고마운 존재였다. “숯을 쓰면서 때때로 위로를 받아요. 일단 비싸지 않고 연약한 물성이잖아요. 거기에서 풍성하고 화려하고 고귀한 것을 끄집어낼 수 있는 ‘역동성’을 지녔죠. 예술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요? 빈약하고 하찮은 물건처럼 보이는데 그것이 예술이 될 때 저도 모르게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도 예술의 그런 역동성에 매료되지 않나 싶어요.” 그는 종종 “숯 외에 다른 재료를 생각해본 적 없냐”는 질문을 받는다. 작가 역시 “작업에 하나의 재료가 중심에 들어와 있다”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숯가루를 이용해 서예를 하듯 붓질하는 ‘Brushstroke’ 시리즈처럼, 작업 방식을 확장시켰다. 숯은 그와 여전히,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다. “서예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는 예부터 필력이 좋다는 말을 많이 하지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작품을 보면서 필력이 힘차다, 독특하다, 뛰어나다고 칭송합니다. 그를 예술가로 바라보죠. 또 선조들은 필력으로 난초도 그리고 대나무도 그렸습니다. 그래서 좋은 필력은 예술성이나 정신성으로 귀결합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필력을 예술로 이야기하지 않아요.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예술이란 말은 애초에 우리에게 없었어요. 1800년대 말까지도 예술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지요. 지금 제가 필력에서 언급하는 예술이란, 아주 높은 인격을 수련하기 위한 과정이에요. 선조들은 어떤 초월성을 위해 연마하는 정신성, 영감을 떠올리기 위한 수련의 과정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지요. 그 과정이 지금 말하는 예술입니다. 이런 정신의 서예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새롭게 보여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는 직접 ‘Brushstroke’ 시리즈를 작업하는 모습을 <보그> 취재 팀에 공개했다. 숯을 머금은 붓으로 그은 한 획 한 획이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흔들림이 없다. 보는 이들도 획마다 숨을 멈추고 바라봤다. 붓질 한 번에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처럼 정성스럽다. <프리즈>에 전시할 작품이었다.

    지난 9월 2~5일 아트 페어 <프리즈>가 서울에서 열렸다. 공식 파트너 생 로랑과 이배가 협업해 새 작품을 공개했다(생 로랑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도 동시에 공개했다). 작가에게 브랜드와 함께 페어 전시를 하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오늘날 예술가의 작품이 사회에 소통되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특정 작가가 명성을 얻고 작품이 잘 팔리고 좋은 전시회에 초대된다고 치죠. 그것은 단순히 작품의 퀄리티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평론가, 미술 애호가, 여러 문화적 이벤트 등이 합쳐져 예술가와 예술품을 외부로 보내고 확산시키는 거죠. 근대에는 한국인의 작품이 세계에 알려지려면 수십 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하루 이틀도 가능합니다. 그만큼 세상의 흐름과 시스템이 예술가를 창조까진 아니라도 빠르고 넓게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이러한 시스템 아래에서 작업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과연 예술가가 될까요? 그럴 것 같지 않아요.”

    이배 작가는 생 로랑 협업을 위해 이브 생 로랑의 세계를 탐구했다. 그의 전시를 방문해 컬렉션을 관람하고, 관련 자료를 찾았다. 특히 이브 생 로랑이 컬렉터로서 가진 높은 안목, 1960년대 예술에서 영감을 얻은 몬드리안 룩의 전위성, 예술가들과 협업해 탄생시킨 최고급 패션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브 생 로랑은 검정의 다양성, 물성, 재질을 정말 잘 다뤘습니다. 그 또한 이번 작업에서 집중한 부분입니다. 제가 쓰는 숯가루의 검정도 굉장히 다양합니다. 숯의 기원이 되는 나무부터 다양하지요. 포도나무, 소나무, 참나무 등 해당 나무가 가진 검정의 온기와 밀도, 깊이가 다 달라요. 저는 한국 소나무가 내는 투명한 검정을 선호합니다. 여름과 겨울의 큰 기온 차를 견뎌내고 마사토처럼 물이 잘 빠지는 곳에서 자란 한국 소나무, 그중에도 척박한 가야산 소나무로 만든 숯에서 나오는 검정이 있죠.” 질감은 천과 붓의 공통점에 착안했다. “제가 쓰는 붓도 천의 실오라기와 비슷합니다. 붓털 한 올 한 올이 천의 텍스처처럼 보일 순 없을까 고민했어요. 구겨진 천, 빳빳하게 펴진 천, 흩날리는 천, 밝은 천, 길게 이어지거나 잘린 천 등의 텍스처를 붓질하며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서울 청담동 생 로랑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숯 조각을 설치할 겁니다. 숯 조각은 산업사회와는 이질적인 물성이죠. 하지만 산업사회의 가장 세련된 제품과 내가 하는 작업의 관계성을 배치하고 싶었어요.” 양극단의 만남을 의도했는지 물었다. “예술가의 장점은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 아닐까요(웃음)?”

    작가는 인터뷰 끝에 직접 사인한 도록을 스태프들에게 나눠 주었다. 자신의 사진을 찍은 젊은 사진가에게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마티스의 관계에 대해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에게 젊은 예술가를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현대미술의 여러 면을 정리하고 단 하나를 얘기하라면 ‘새로운 것’입니다. 새로움에 대한 열망을 계속 충전해야 합니다. 누군가 처음 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이상하다 여길 수 있지만 일단 새로워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작가는 브루스 나우먼입니다. 그는 기존의 미술 냄새가 나는 물성은 쓰지 않습니다. 쓰레기통에나 있을 법한 무의미한 물건, 잊어버린 말과 소리, 공장에서 버려진 폐물을 예술의 언어로, 자기식으로 섬세하게 강하고 자유롭게 만들어냅니다. 우린 곤충처럼 계속 허물을 벗으며 새로워지려고 해야 합니다.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세상의 인정, 현실의 명성을 얻는 그런 허물을 다 버려야 가능합니다. 우리는 속된 존재라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되뇌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것이 저를 비롯한 젊은 예술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VK)

    ‘Brushstroke sd-7’, 260×170cm, 2022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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