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가들의 조용한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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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가들의 조용한 반란

2022-09-29T18:57:20+00:00 2022.09.30|

1년 전, 코미디언 김숙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독특한 ‘먹방’을 공개했다. MBC 에브리원 <비디오스타> 종영 기념으로 동료들의 대기실 영상을 이어 붙인 콘텐츠였다. ‘최강 소식좌 박소현 & 산다라박과 함께한 비디오스타 먹방 모음(4년 치) 대공개’라는 영상은 412만 번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고, 먹방계의 ‘게임 체인저’가 되었다. 이 영상이 인기를 끌자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등 연예인 관찰 예능 프로그램도 코드 쿤스트, 안소희 등 ‘소식좌’ 캐릭터를 밀기 시작했고, 유튜브에서도 파생 콘텐츠가 생겨났다.

이제는 ‘소식좌 비긴즈’라는 헤드가 붙은 김숙티비의 콘텐츠.

박소현, 산다라박이 출연하는 웹 예능 <밥 맛 없는 언니들>은 론칭 2개월째, 주 1회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그들이 대식가로 유명한 히밥, 신기루와 함께 뷔페에 간 영상은 400만 조회 수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밥 맛 없는 언니들>에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먹거리 PPL이 자주 등장한다. 밥맛 없는 사람들조차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노린 것이다. 셀럽파이브 채널은 ‘안영미의 소식탁’ 시리즈를 전개했다. 이 채널에서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 콘텐츠는 ‘족발 먹고 싶을 때 보는 영상’이란 제목의 쇼츠다. 안영미가 족발 먹는 모습을 담은 것으로, 기존 먹방이 식욕을 자극하거나 대리 만족시키거나 기인급 폭식으로 자극을 주는 게 목적이라면 안영미의 먹방은 식욕을 떨어뜨려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는 평이다. 일반인의 소식 콘텐츠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런 흐름을 보며 ‘가지가지 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언제는 푸드 파이터급 먹방 크리에이터들이 인기를 끌고, 바싹 마른 연예인들도 의무처럼 ‘저 사실은 잘 먹어요’라며 먹방에 동참하고, 한국의 전통 식사 예절에서 크게 벗어나고 역겹기까지 한 ‘면 치기’ 따위가 유행을 하더니, 이제는 자발적으로 기아 직전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들에 열광한다? ‘소식좌’ 콘텐츠에 자주 보이는 ‘저러다 한 방에 골로 간다’, ‘연예인이니까 관리하느라 참고 안 먹는 것을 캐릭터로 포장한다’ 식의 부정은 날씬한 연예인들이 탐식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러고 뒤에 가서 토하거나 이틀은 굶을 것’이라고 비아냥대는 반응과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왜 유행은 극단에서 극단으로만 건너뛰는가 싶다. 하지만 한쪽 극만 존재하는 것보다야 양극이 존재하는 편이 균형을 찾기엔 좋다.

웹 예능 <밥 맛 없는 언니들>

현대인은 너무 많이 먹는다. 이에 관한 통계는 기관마다 차이가 커서 혼란스럽지만 그중 충격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자.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한국인은 1인당 하루 평균 3,420kcal를 먹는다(2018년 기준). 세계 19위 수준이다. 하루 최소 칼로리 필요량(1,800kg)에 비하면 엄청난 과잉이고, 1961년 2,141kcal에 비하면 60% 증가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이 먹는데 우리보다 많이 먹는 나라가 18개국이고, 거기엔 인구 대국이 포진했다. 한국인이 쌀밥 먹어 날씬하고 김치 먹어 건강하다는 헛소리도 집어치울 때가 됐다. 한국 남성 47%, 여성 22.6%가 비만이다(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제8차 한국인 인체 지수 조사, 2022). 먹기도 많이 먹는데 버리는 음식도 많다. 기후 변화와 전쟁으로 식량 위기는 코앞에 닥쳐왔는데, 한국인은 1인당 연간 71kg의 농식품을 폐기한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21년 기준).

<밥 맛 없는 언니들>의 한 장면 – 꾸준한 먹방 덕분에 전보다 많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는 박소현. 그들은 적게 먹되 감사하며 즐겁게 먹으려고 노력한다.

이번에는 골치 아픈 숫자 빼고 우리가 체감하는 현실을 얘기해보자. 당신과 친구들은 만나서 무슨 얘길 하는가?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먹으면서 다음 메뉴 고민하고, 마시면서 다음 술자리 의논하고, 접시 하나 나올 때마다 사진 찍어 SNS에 올리고, 누군가는 “먹는 것 말고 낙이 없다” 푸념하고, 사이사이 다이어트 얘기가 토핑처럼 뿌려지는 게 내가 아는 500명 정도만의 얘기는 아니겠지? 한껏 위를 늘리고 다시 줄이고 늘리고 줄이고… 이 정도면 식도락이 아니라 자해다. 최근 그룹 있지의 채령이 웹 예능에 출연해 과식 경험을 묻는 진행자에게 “프링글스 한 통 다 먹어봤다”고 했다가 화제에 올랐다. 그 정도 안 먹어본 사람이 어딨느냐, 그걸 과식이라고 여기는 게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그 반응이야말로 걱정해야 할 일이다. ‘나 이렇게까지 먹어봤다’는 무용담 하나쯤 안 가진 사람이 없고 폭식이 과시적 농담거리인 시대, 우리의 위장은 병들어가고 있다. 만나면 밥 먹었냐 인사하고, 회식을 강요하는 문화가 있고, 잘 먹으면 복스럽다 칭찬하고, 음식을 가리면 꼴불견이라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만인이 만인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SNS와 큰 위장이 돈벌이가 되는 먹방 트렌드까지 합쳐지면서 우리는 절제라는 미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먹는 것 말고 낙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반백 년 전 한국이 자원의 결핍, 위장의 허기에 시달렸다면 현재 우리는 정서의 결핍, 정신의 허기에 시달리고 있다. 그 추상적 결핍과 허기를 우리는 음식이라는 실물로 치유하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 소식좌들은 최소한 여기에 의문을 던져준다. 당신은 제대로 먹고 있는가? 당신의 위장도 동의했는가?

<나 혼자 산다> 팀이 유튜브에 올린 ‘멍(?)소희의 여유로운 힐링 먹방’이라는 영상에는 “내 속이 다 가뿐해지는 느낌이다”, “‘헐 진짜 오래 먹는다’ 하면서 몇 번 따라 해보다가 오래 씹기 습관 됐어. 고마워요 소희 씨”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게걸스러운 푸드 포르노들 사이에서 달걀 한 개를 몇 분씩 음미하면서 천천히 아침을 시작하는 그의 모습은 평화롭고 아늑하다. <밥 맛 없는 언니들>에는 ‘적게 먹는다’고 혹은 ‘느리게 먹는다’고 평생 구박받던 사람들이 ‘소식좌’들 덕에 이게 잘못이 아니라 개인의 특성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감사 인사가 자주 보인다. 신체 다양성은 인종, 체형, 장애 유무 등 외형뿐 아니라 신진대사마저 아우르는 개념이어야 한다는 걸 한국인은 너무 쉽게 간과한다. <밥 맛 없는 언니들>에서 입 짧고 위 작은 출연자를 대하는 게스트의 자세도 교훈이 된다. 당신은 당신보다 먼저 숟가락 내려놓는 친구들에게 충분히 관대한 사람이었나? 소식좌 먹방에서 우리가 얻을 건 ‘저 정도만 먹고 살아야겠다’는 헛된 목표가 아니라 신진대사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자신과 타인의 위장을, 환경을 고문하지 않는 평화로운 식사 매너다.

달걀흰자 반 개로 2분 30초 동안 씹는 모습으로 패널들에게 충격을 안긴 안소희.

소식좌의 대표 격인 박소현은 최근 영상에서 적게 먹는 비결을 밝혔다. 조금씩 나눠 먹고, 오래 씹고, 먹으면서 딴짓하지 않고, 음식을 음미한다는 것이다. 학교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박소현처럼 전복 한 개를 10분씩 씹으면서 살 수는 없다. 그의 식사법이 건강한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음식을 먹을 땐 음식에만 집중하면서 맛을 느껴보라는 건 새겨들을 조언이다.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는 건 명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우리 영혼의 허기를 달래는 일은 입으로 음식을 밀어 넣는 순간이 아니라 그것에 온전히 집중하는 순간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