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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여성들이 해리 스타일스에게 열광하는 이유

2022.10.01

by 황혜원

    40대 여성들이 해리 스타일스에게 열광하는 이유

    작은 통에 든 글리터를 검지로 쓸어낸 후 섬세하게 눈꺼풀에 바른다. 내 옆에선 여자 친구 3명이 깃털 장식을 두른 채 아주 까다로운 안목으로 스티커 타투를 고르면서 쉼 없이 떠드는 중이다. 마치 방 안이 에스트로겐과 웻 앤드 와일드(Wet n Wild)의 화장품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막으로 둘러싸인 듯한 느낌이다. 10 대 시절 밤늦게 몰래 집을 빠져나가 롱아일랜드 철도를 타고 클럽에 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내가 막 40대에 들어선 여성이란 사실이다. 금색 스팽글 장식이 달린 바지를 입은 나는 비슷한 차림을 한 3명의 40대 친구들과 함께 코네티컷의 한 카지노 앞에 서 있다. 해리 스타일스의 콘서트에서 소리를 지르고 몸을 흔들며 황홀감에 취해 눈물을 흘릴 준비를 마친 채, 오늘만큼은 남편과 일, 8명의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해리 스타일스

    해리를 사랑하는 이 4인조 멤버 중 한 명인 43세의 리버티(Liberty)에게 해리 스타일스 콘서트는 온전히 자신을 위한 선물이기도 하다. 리버티는 “제가 콘서트에 간 이유는 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또 저와 마음이 맞는 40대 여성 친구들과 함께하기 위해서예요”라며 “저는 아직까지 아이들의 보호자 자격으로 파티나 콘서트에 가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일명 ‘해리스(Harries)’라 불리는 해리 스타일스 열혈 팬의 평균연령대는 29세로 해리와 동년배이며, 해리가 그룹 원 디렉션(One Direction)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그를 좋아해온 팬들이다. 하지만 연령대가 조금 더 높은 팬덤도 있다. 그중 일부는 해리의 오랜 팬이다. 65세인 우리 엄마가 원 디렉션의 팬클럽 ‘디렉셔너’의 초창기 멤버다. 나처럼 해리스가 솔로 활동을 하며 세일러 팬츠를 입던 시절부터 새롭게 빠진 팬들도 있다. 40대 무렵, 혹은 그 이상의 여성들에게 해리 스타일스는 그저 팝스타나 급부상한 스타일 아이콘, 또는 진지하게 친절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무해한 스타일의 남성이 아니다. 해리는 하나의 경험이자 일탈적 취미이며, 나이나 책임감, 육아에 지쳐 깊이 묻어두었던 내 안의 야성적이며 원초적인 욕망을 깨워내 즐길 기회를 준다.

    최근 해리의 팬이 된 44세의 미셸(Michelle)은 “20대는 제 생애 최고의 시기였어요. 해리는 저를 그 시절로 데려가줘요”라고 말한다. 미셸은 ‘Watermelon Sugar’라는 곡을 듣고 해리에게 매료되었다. 처음에는 가수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두 아이를 도시 외곽으로 태워다주는 길에 듣고 차 안이 꽝꽝 울리도록 틀어놓았던 게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리에게 빠진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해리의 라인스톤 카우보이 코스튬에 대해 끊임없이 문자를 보내고, 곧 개봉할 해리 주연의 영화 <돈 워리, 달링(Don’t Worry, Darling)>의 트레일러를 해부하듯 파헤치며, 다가오는 MSG 쇼에 갈 때 어떤 와이드 팬츠를 입을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말이다. 미셸은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고된 일들 때문에 삶의 방향을 잃게 되죠. 내 영혼이 살아 있도록 하는 법을 잊어버려요. 해리는 저의 그런 부분을 일깨워줬어요. 잃어버린 진정한 저 자신을 찾게 해준 거죠”라고 설명한다. 해리 스타일스가 목요일 밤에 자신을 보러 온 2만 명과 댄스파티를 벌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말에 수긍이 간다.

    캘리포니아주의 한 도시, 카멀바이더시(Carmel-by-the-Sea)에서 홈 데코 부티크를 운영하는 38세의 노라 리(Nora Lee)는 지난해 쌍둥이 임신 6개월 차에 해리 스타일스의 콘서트를 혼자 관람하면서 ‘찬란한 장관’을 몸소 체험했다. 노라는 “임신 중 콘서트에 가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라고 말했다.

    뉴욕 콘서트에서 해리 스타일스에 대한 마음을 표출하는 옷을 입은 팬.

    우리에게 해리 스타일스는 식물 잎사귀 모양의 타투를 한 전율을 일으키는 존재이자, 중년의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탈출구다. 리버티는 내게 “해리 스타일스를 실제로 처음 봤을 때 느낀 그 흥분을 계속 좇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 또한 뉴욕에서 열리는 해리 스타일스의 공연에 갈 때처럼 눈에 글리터를 바르고 스팽글 장식의 점프 수트를 입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해리는 우리가 이렇게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준다. 팬데믹으로 지속된 몇 년간의 격리 생활 동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던 것이다. 그저 생각만으로도 아침 운전 길이 즐겁고 생기가 돈다.

    자칭 해리의 슈퍼 팬인 64세의 로키 카타우델라(Rocky Cataudella)는 해리 스타일스의 공연에 대해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 되라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한 공연이죠. 여러분에게 어떤 책임이 지워져 있든, 공연이 진행되는 2시간 동안은 모두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카타우델라가 처음 해리 스타일스를 알게 된 것은 로빈 리(Robinne Lee)의 예리한 감수성이 담긴 소설 <디 아이디어 오브 유(The Idea of You)>를 통해서였다. 해리 스타일스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이 책은 몽환적인 소년 밴드 스타와의 짧은 로맨스를 다룬다. 해리의 공연을 보며 카타우델라는 여성적 기운이 넘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전했다. “마치 고대 디오니소스와 마이나스(디오니소스를 모시는 여사제) 같아요. 거기서 광기만 빠진 거죠. 해리를 보면 행복해져요. 단순하고 자유로워지죠. 꼭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해리 스타일스가 다양한 연령층에게 어필하는 것은 믹 재거의 섹스 어필과 데이비드 보위의 젠더 벤딩이 한데 섞인 것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중년 여성 팬들에게 해리가 어필하는 포인트는 바로 여성, 특히 ‘나이 든 여성에 대한 칭송’이다. 카타우델라는 해리가 그의 엄마인 앤 트위스트(Anne Twist), 누나 젬마(Gemma)와 각별한 사이이며 1980년대 여성 팝스타 스티비 닉스(Stevie Nicks)와 세대를 뛰어넘는 끈끈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는 점, 캐나다의 전설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조니 미첼(Joni Mitchell)의 집에서 크리스마스캐롤 모임에 함께한 일을 예로 들었다(해리의 최신 앨범 타이틀인 ‘Harry’s House’는 미첼이 1975년 발매한 곡 ‘Harry’s House/Centerpiece’에서 영감을 얻었다). 게다가 지난 4월 코첼라 페스티벌의 첫 헤드라이너 무대를 선보인 해리는 컨트리 팝의 여왕으로 불리는 샤니아 트웨인(Shania Twain)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다. 해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재혼 상대 트위스트(Twist)의 차 안에서 샤니아의 음악을 듣곤 했다. 그리고 샤니아의 곡 ‘Man! I Feel Like a Woman!’을 듀엣으로 부르기 위해 샤니아를 코첼라 공연에 초대했다.

    최근 해리 스타일스의 팬이 됐다는 42세의 케이티(Katy)의 경우 “해리의 곡 ‘Watermelon Sugar’가 구강성교에 대한 내용이라는 걸 알고 나서 보인 제 반응은 ‘와우’였죠. 해리는 진심으로 여성을 사랑해요. 마치 엘비스 프레슬리 같아요”라고 말했다.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샤니아 트웨인과 공연 중인 해리 스타일스.

    작가 케이틀린 티파니(Kaitlyn Tiffany)는 “<What Makes You Beautiful> 같은 싱글 앨범에서처럼 원 디렉션은 항상 자신들이 소녀와 여성을 위해 노래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어요”라고 이야기한다. ‘She’, ‘Woman’, ‘Adore You’, ‘Boyfriends’ 등 여성을 숭배하는 노래를 부르고 여성 팬들이 자신의 인기에서 엄청난 원동력임을 이야기하는 해리 스타일스에 대해 케이틀린은 “자신이 속했던 밴드의 작은 특성을 솔로 활동에서 메인 요소로 부각시켰어요”라고 분석한다. 해리 스타일스가 연상의 여성들과 교제해온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현재는 38세의 영화감독이자 두 아이의 엄마 올리비아 와일드와 교제 중이다. 이에 대해 카타우델라는 “28세 남성이 마흔 가까운 연상의 여성을 보고 ‘핫’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시죠”라고 말한다.

    삶의 후반기, 해리를 알게 된 우리는 팬덤이라는 친구도 함께 얻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해리 스타일스를 ‘덕질’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 매일의 기쁨이다. 나와 똑같이 해리 스타일스에게 푹 빠진 친구들과 함께 단체 문자로 잡지 표지, 화보, 영화 트레일러, 해리의 뷰티 브랜드 ‘플리징’ 론칭, 구찌를 커스텀한 콘서트 룩까지 끝날 줄 모르는 해리의 매력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는 것 역시 내 일상의 기쁨이다. 팬덤에게 휴식이란 없다. “해리 덕분에 저희는 평생 갈 관계를 얻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리버티는 말한다. 리버티는 최근 결혼한 40대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동안 친구들 대부분이 자신처럼 해리 스타일스에 푹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닉 케이브(Nick Cave)나 머신 건 켈리(Machine Gun Kelly) 같은 가수들을 통해 이미 덕질에 단련되어 있다고나 할까. 이에 대해 리버티는 “친구 한 명은 자기도 좋아하는 가수를 찾고 싶다고 하더군요. 꼭 중요한 일에 자기만 빠진 것 같다면서요”라면서 “해리 스타일스는 일종의 도피처 같은 거예요. 가장 필요로 할 때 가장 어두운 곳으로부터 나를 꺼내줄 수 있는 도피처죠”라고 덧붙였다.

    카타우델라는 팬들을 위한 페이스북 소모임을 통해 해리스 회원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진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해리의 콘서트에서 만난 적도 있다. 카타우델라는 “우리는 서로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정확하게 알아요. 또 그 감정으로 남을 재단하지 않죠. 그저 넓은 광장에서 같이 즐겁게 낄낄대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Michelle Ruiz
    사진
    Getty Images
    출처
    www.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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