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이은새 “새로운 것, 불만을 계속 떠올릴 수 있는 힘. 그 힘을 갖고 나아가는 것” #오로라 어워즈

2022.10.18

by 조소현

    이은새 “새로운 것, 불만을 계속 떠올릴 수 있는 힘. 그 힘을 갖고 나아가는 것” #오로라 어워즈

    <보그 코리아>와 불가리가 ‘오로라 어워즈’를 통해 새로운 세대의 여성 인재에게 지지와 응원을 담아 여명처럼 빛나는 트로피를 건넨다.

    2016년 일본을 시작으로 중국으로 이어지며 지난 2월 이탈리아에서도 열린 ‘오로라 어워즈’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한 여성의 업적을 기리고 삶의 방식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문화, 예술, 스포츠, 비즈니스, 사회 공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발된 여성은 꿈을 좇은 스토리만으로도 다른 여성에게 빛나는 영감을 불어넣는다. 어워즈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다음 세대로 이어간다.

    한국에서 처음 개최하는 ‘오로라 어워즈’는 7개 분야에서 빛을 발하는 새로운 세대의 여성 인재에게 황금빛 트로피를 수여한다. 배우 이유미, 뮤지션 비비(BIBI), 미술가 이은새, 공예가 김옥, 스키 선수 최사라, 뷰티 브랜드 ‘멜릭서(Melixir)’ 대표 이하나,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지구샵’ 대표 김아리다. 오로라 어워즈 수상자 7인에게서는 더 나은 내일, 더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나갈 힘이 느껴진다.

    이은새는 틀에 박힌 사고를 변형하거나 굴절하는 평화적 방법으로서 압축과 은유, 왜곡된 이미지가 넘실거리는 작품으로 20~30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예술가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상황과 풍경 혹은 책 속의 문장, 영화, 뉴스 같은 미디어를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연결 고리로 엮어 작품으로 드러낸다. 그 독창적인 시각은 전에 없던 영감을 전한다.

    클래식한 무드의 ‘불가리 불가리 워치’, 로고 디테일의 ‘비제로원’ 링과 네크리스는 불가리(Bulgari), 드레스와 터틀넥 톱은 민주킴(Minjukim).

    불가리의 고향 로마에는 주피터의 신전이 있고, 어머니의 배에서 아버지의 허벅지로 옮겨져 두 번 태어난 바쿠스가 있다. 술의 신, 밤의 신, 광기의 신, 이성과 질서를 무너뜨리고 우리를 황홀의 세계로 안내하는 자유의 아버지.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바쿠스는 삶과 죽음, 문명과 비문명, 남성과 여성, 인간과 짐승, 이성과 광기,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경계 너머의 존재를 상징한다. 예술가는 늘 그 경계를 오갔다. 현대사회에서 더 정교하고 은밀해진 익명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며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전복을 꿈꾸는 작가들. 2010년대 이후 한국 회화에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은새는 지금 이 시대의 얼굴과 풍경을 그림으로 기록한다. 뉴스 화면, 영화의 한 장면, 인터넷 짤방 등 일상에서 맞닥뜨린 부조리한 상황과 불안을 내포한 이미지. 작가에 의해 주관적으로 해석된 그 상황이란 정지된 화면이 아닌 “물가에 돌을 던질 때처럼 잠깐 번쩍하며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순간들”이다.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한 그는 줄곧 회화에 집중해왔다. “다른 매체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시각적인 경험이 저에겐 매우 중요한데 ‘그리기’라는 행위가 즐겁고 유화가 좋았어요. 한 화면 안에서 제 신체를 이용해 명확하지 않은 생각이나 형태를 전달하는 거죠.” 캔버스라는 틀은 벗어날 수 없는 제약인 동시에 양가적인 감정과 상반되는 입장, 쉽게 정리되지 않는 모호한 생각을 하나로 압축시켜 드러내는 인식의 창이다. 기성의 프레임 대신 벽화를 시도하거나 전시장이라는 공간 자체를 거대한 화면으로 상정해 조각 드로잉을 선보인 적도 있으나 이는 ‘그린다’는 행위의 신체적 경험을 더욱 분명하게 했다. 단단한 철을 자르고 연마하는 일은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모래주머니를 차고 선을 긋는 느낌’을 주는 육체노동이었다. “평면 위에 물감을 올릴 때와 달리 철을 녹이면서 선을 긋는 흔적이 기록으로 남는 게 흥미로웠어요. 그림을 그리는 데 신체가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은 좋은 경험이었죠.” 대범하게 휙휙 지나는 선과 맹렬한 붓 자국은 인간의 몸으로만 표현 가능한 영역인 동시에 그 표현 능력의 한계를 넘고자 애쓰는 작가의 의지다. 증폭되는 감정은 붓질과 색으로 폭발한다. 과감하고 독특한 색의 향연 속에 퀭한 눈과 잔뜩 화가 난 듯한 사람들, 왠지 모를 불안감을 자아내는 모호한 풍경이 존재한다.

    개인전 <밤의 괴물들>(대안공간 루프, 2018)은 이은새의 작업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는 주요한 전시다. 술 취한 젊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어느 밤의 기억을 더듬는 ‘밤의 괴물들’ 연작은 만취해 필름이 끊긴 다음 날 남의 일처럼 떠오르는 파편적인 장면들 같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의 번화가, 골목, 지하철, 공원, 장소를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여성들은 크게 깔깔 웃고, 장난을 치고, 만행을 부리고, 기괴한 표정을 짓는다. 성범죄의 표적이 되는 약자, 잠재적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통제 불가의 활기와 분노, 광기를 뿜어내는 에너자이저들이다. 폭주하는 괴물들은 평범한 낮의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신나게 밤거리를 활보한다. 이 낯 뜨겁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여자와 술이 있는 밤’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며 묘한 쾌감을 자아낸다. “그 전시 이전에도 매체에서 다루는 여성의 이미지를 고민해왔지만 술 취한 여성이라는 하나의 지점에 포커스를 맞춘 시리즈는 처음이었어요. 제 의도대로 상황을 재현해보는 적극적인 시도를 했고,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 타인에게 공감을 얻는 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죠.” 색의 활용에도 변화가 있었다. “스스로 애매하다 생각하는 부분은 색을 이용해 돌파했다”고 말할 만큼 색을 통해 감정과 느낌을 표현해왔다면 ‘밤의 괴물들’ 연작 이후로 그는 상황과 형태를 묘사하는 데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색감도 부드러운 파스텔 톤이 두드러진다. “색이라는 조건을 배제한 상태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어떻게 표현할지 실험하던 시기였어요. 지금도 색의 배합과 배치, 톤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보충하거나 은폐하기도 해요. 여전히 색은 많이 씁니다.”

    ‘밤의 괴물들’은 한국의 첫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의 삽화를 모티브로 한 ‘밤의 괴물들-부글부글 가정생활’ ‘밤의 괴물들-이것이 무엇인고’로 이어진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매개로 여성 원로 작가 윤석남을 비롯해 임민욱, 이슬기, 이미래 등과 함께한 단체전 <내 나니 여자라, Born’ A Woman,>(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2020)에서 작가는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나혜석을 통해 당시 신여성의 삶을 들여다본다. “과거의 회화를 제가 현재 생각하는 회화로 재현하는 작업이었어요. 나혜석 작가의 삽화는 타인의 시선이나 여성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작가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100년 전의 그림임에도 여전한 이야기처럼 기시감이 느껴져 놀랍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죠.” ‘밤의 괴물들’ 연작은 작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는 불편한 숙제다. 지난 몇 년간 여성의 모습을 그려온 그는 전복적인 태도로 만든 이미지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죄책감 없이 소비되는 상황을 보며 회의와 실망을 하기도 했다.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거나 편향된 시선에서 무비판적으로 소비되는 이미지 틈에서 무력감을 느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할 수밖에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당장은 아니지만 나혜석의 작업에 관심을 가진 것처럼, 술 취한 여성들로 한정 짓기보다는 주위의 보편적인 경험으로 이야기를 확장해나갈 수 있을 듯해요.”

    요즘 그의 고민은 지치지 않고 작업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매년 국내 예술계에서 주목할 만한 작업을 해온 3인의 작가를 조명하는 일민미술관 ‘IMA Picks 프로젝트’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지난해 말 개인전 <디어 마이 헤잍-엔젤-갓>을 연 그는 연이어 스페인과 홍콩에서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준비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일민 전시 이후 나름의 개운함이 있었어요. 애초에 명쾌하게 결론지을 수 없는 고민이었기 때문에 해결된 건 없지만, 그 무렵의 피로한 상황과 복잡하던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었어요. ‘이은새가 흑화했다’거나 ‘사춘기가 온 것 같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죠.(웃음)” 미술가 홍승혜와의 만남도 큰 소득이었다. 오랜 시간 한국 미술계에서 활동하며 확고한 입지를 구축한 선배 여성 작가는 그 존재만으로도 위로와 힘이 된다. 이은새는 사진작가 김주원과 함께 ‘팽창콜로니’라는 팀으로도 활동한다. 2016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블랙 마켓’에 참여한 게 계기가 되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예술가들의 지지와 연대를 위한 판매 행사로 김주원이 집회에 참여하며 촬영한 사진에 이은새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협업했다. 수익금 전액은 블랙리스트 반대 활동과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기부했다. “처음부터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활동은 아니지만 덕분에 혼자만의 생각을 함께 발전시켜갈 수 있었어요. 좀 더 즉흥적으로 꺼내볼 수 있는 가벼운 드로잉을 시도하거나 새로운 매체에 도전해볼 수도 있고요. 둘 다 매체와 이미지에 대한 공통된 고민을 갖고 있어요.”

    지난봄 경기도 하남으로 작업실을 옮기고 정해진 퇴근 시간도 없이 매일 작업에 매여 살고 있다.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하면서도 저 스스로 연구할 시간이 필요한데 어떻게 병행해나갈 것인지 생각 중이에요.” 그는 미래를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고 했다. 관성대로 현재의 삶을 유지하며 안정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것, 불만을 계속 떠올릴 수 있는 힘. 그 힘을 갖고 나아가는 게 당장의 목표이자 꿈입니다.” 100년 전의 여류 화가는 “나는 말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라는 유명한 문장을 남겼다. 시대는 다르지만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은새는 혐오와 편견으로 가득한 사회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길 꺼리지 않는다. 분노와 농담은 작업의 주요 키워드다. 엄청나게 크고 소란스러운 발칙한 힘의 덩어리. 수집가이자 기록자로서 이은새는 그린다. 여전히 우리에게 금지된 것을. (VK)

    에디터
    조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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