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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민의 변호사는 무엇이 다를까?

2022.11.16

by 강병진

    남궁민의 변호사는 무엇이 다를까?

    @sbsdrama.official

    “네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어. 나랑 결혼해줄래?”
    SBS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에서 주인공 천지훈(남궁민)이 이주영(이청아)에게 청혼하며 하는 대사다. 그런데 드라마에 나올 때보다 인스타그램에 돌았던 ‘짤’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배우 남궁민이 자신의 결혼식에서 상영한 실제 프러포즈 영상에서 저 대사를 거의 비슷하게 따라 했기 때문이다. 연기가 아닌 실제 리액션이 찍힌 이 영상은 큰 화제가 되었고, <천원짜리 변호사>도 다시 화제에 올랐다. 한 명의 배우를 통해 드라마와 현실이 서로를 넘나드는 상황. 개인적으로는 여기에서 <천원짜리 변호사>의 시청률이 높은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네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어.” 드라마 속 천지훈(남궁민)의 청혼 장면을 실제로 구현한 그.

    올해는 유독 법조인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많은 해였다. 이게 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때문인 것 같지만, 그 전에도 있었다. SBS는 <어게인 마이 라이프> 다음에 <왜 오수재인가>를 방영했는데, 그때 MBC에는 <닥터로이어>가 있었다. KBS2에서는 <법대로 사랑하라>와 <진검승부>를 월·화·수·목에 걸쳐 방영했다. 같은 시기에 JTBC는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을, 디즈니+는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를 공개했다. 그리고 지금은 <천원짜리 변호사>가 마지막 회 방영을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은 <어게인 마이 라이프>와 <천원짜리 변호사> 정도이고, 그중에서도 <천원짜리 변호사>의 시청률이 조금 더 높다.

    SBS <천원짜리 변호사>

    사실 <천원짜리 변호사>가 보여주는 이야기가 다른 법조인 드라마에 비해 더 신선하거나 놀라운 건 아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를 위한 변호사란 설정은 과거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 익히 본 것이다. 거대 로펌과의 대결이란 설정은 법조인 드라마뿐 아니라, 한국 드라마에 주로 나오는 ‘거대 악=거대 권력이라는 구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천원짜리 변호사>가 짚어내는 법정 드라마가 특별히 충격적이거나 생각해봐야 할 질문거리 등을 던져주는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인, 여성 등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해 논쟁거리를 던졌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노동운동을 탄압하던 시절의 고문 수사,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가져온 비극을 드러낸 이야기로 호평받았다. 그런데 <천원짜리 변호사>의 핵심 사건은 역시 기업과 정치인을 둘러싼 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나도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새로울 건 없어도 매력적인 건 있다. 바로 남궁민에 대한 시청자의 기억이다.

    6화까지는 수임료를 단돈 천원만 받는 기이한 변호사가 능력까지 뛰어나서 억울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통쾌한 이야기가 진행됐다. 선글라스와 파마머리로 꾸민 천지훈과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사무장(박진우) 캐릭터는 이 드라마의 활극적인 재미를 강조했다. 남궁민의 팬이라면 과거 그가 드라마 <김과장>에서 연기한 김성룡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2화에서 “검사님이나 저나 스스로 진실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그저 가까이 다가가려고 할 뿐이지. 이번에는 제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처럼 ‘법과 현실’에 대한 소신을 전하는 장면에서는 <스토브리그>의 백승수가 떠오른다. 검찰 내부의 역학 관계와 맞서며 수사를 멈추지 않았던 검사 시절의 모습은 역시 국정원 내부의 적을 밝혀내려고 애썼던 <검은태양>의 한지혁이 오버랩된다. 앞서 언급한 청혼 장면에서는 오래전 <장밋빛 인생>에서 연기한 지박사의 모습이 비쳤을 것이다. <천원짜리 변호사>는 4화의 한 장면에서 아예 <스토브리그>를 언급하며 남궁민이 남궁민을 이용하는 배우 개그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장면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면서 드라마는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그처럼 <천원짜리 변호사>란 드라마가 곧 여러 흥행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남궁민의 과거와 현재인 셈이다.

    그러니 <천원짜리 변호사>가 거의 난립하듯 나타난 법조인 드라마 틈에서 눈에 띄는 시청률을 기록한 이유는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법조인 드라마로 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남궁민이라는 배우의 매력과 그가 이전 작품에서 만들어낸 공식을 즐기는 작품이라고 할 수밖에. 그래서 천지훈의 활극을 보여주던 드라마가 갑자기 6화부터 그의 진지한 과거를 보여주거나, 후반부로 갈수록 과도한 PPL을 배치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기다리는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연히 천지훈은 아버지와 연인을 죽게 한 거대 악을 척결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천원짜리 변호사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알고 있어도 상관없다. 시청자는 남궁민이 보고 싶어서 마지막 회까지 보려는 것이지 천지훈의 복수에는 큰 관심이 없을 테니 말이다.

    프리랜스 에디터
    강병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포토
    SBS 공식 홈페이지, SBS 드라마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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