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내가 되는 일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평소 흠모해 마지않던 작가들의 작업 방식과 작업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곁눈질하곤 한다. 작가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혹여나 작업의 비기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순한 호기심으로. 글쓰기의 고됨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거라는 위로와 안도를 얻길 바라면서. 약간의 질투—아니다. 엄청난 질투다—와 그보다 훨씬 큰 존경과 사랑—그렇다. 이 말은 정말이다—을 담아서. 하물며, 아니 에르노와의 인터뷰라니. 다큐멘터리 감독 미셸 포르트가 질문자로 나섰고, 아니 에르노의 초기 두 권을 제외한 모든 책을 집필한 프랑스 세르지에 있는 그녀의 집 작업실에서 진행된 대화, <진정한 장소>다.
올해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녀는 1974년 <빈 옷장>으로 등단한 후 <남자의 자리>, <단순한 열정>, <사진의 용도>, <부끄러움>, <다른 딸>, <세월> 등 참으로 많은 작품을 썼고 지금도 치열하게 쓰고 또 쓰는 현재진행형의 작가다. 자기 내면으로 깊이 하강해 들어가 소설의 실마리를 길어 올린 뒤 문학으로 세상에 너른 길을 내는 창작자이기도 하다. 그녀 작품을 두고 자전적 소설이라 말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그러나 오해는 말자.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과 기억이 자신의 소설과 곧바로 동일시되는 일만은 누구보다 경계하고 거부해왔으니까. 그녀는 자신에게 깊이 영향을 미친 구체적인 상황에서부터 글을 쓸 뿐이니까. 혹여나 자기 세계 안에 갇혀 책이 그녀 개인의 것으로 남는 일만큼은 원치 않으니까. 오히려 그녀는 더 적극적으로 글로써 세상에 개입하고 싶다. 왜? 글이, 소설이, 문학이, 예술이 그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녀의 책을 펼치면 이 믿음의 증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 어떤 의미일까. 서문에서 그녀는 이렇게 밝힌다.
“글쓰기는 ‘진정한 나만의 장소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은 내가 자리한 모든 장소들 중에서 유일하게 비물질적인 장소이며, 어느 곳이라고 지정할 수 없지만, 나는 어쨌든 그곳에 그 모든 장소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녀는 또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글을 쓰는 것은 이름이나 사람으로서 흔적을 남기는 게 아니에요. 시선의 흔적을 남기는 거죠. 세상에 대한 시선이요.” “글쓰기에서 제가 좋아하는 것은 바로 행위죠. 글쓰기는 저에게 고해가 아니에요. 고해와는 전혀 상관없죠. 고해도 아니고, 회개도 아닌, 구상이며 구성이죠.” “만약 누군가가 저를 최후의 참호로 몬다면, 그래도 스스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느끼는 곳은 역시 거기니까. 저만의 진정한 장소죠.” 다시금 강조한 말, 진정한, 나만의, 장소. 이 말을 ‘진정 내가 되는 상태’라고 다시 써봐도 좋겠다.
아니 에르노의 말 앞에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게도 글쓰기는 그런 것이니까. 글쓰기가 시작되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오늘도 길거리를 헤매고 키보드 앞을 서성인다. 기다림 끝에 쓰기의 상태로 몰입해 들어갔다면, 그 시간이 계속되길 바란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무엇도 아닌 글쓰기가 ‘진정한 나’인 것만 같기 때문이다. 계속 쓰며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죠.” 아니 에르노의 저 문장을 오래도록 눈으로 더듬대 본다. 글쓰기의 쓸모이자 내 글의 쓸모이며 결국 나의 쓸모일 그것. 글이 나와 세상 사이의 징검다리가 돼줄 수 있다면, 그러길 바라면서, <진정한 장소>를 읽으며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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