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효과’란 무엇인가 #친절한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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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효과’란 무엇인가 #친절한도슨트

2022-12-06T17:09:49+00:00 2022.12.06|

미술 작품의 매력이란 본래 남이 갖는 것을 소유독점할 있다는 허영심을 충족시키고 땅이나 주식과는 달리 유산 과정에서 상속세를 사기 있다는 아닙니까? TV(비디오)라는 것은 대중이 모두 공유할 있고, 보기만 하고 소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니 상품성이 적을 수밖에요. 그런데 80년대 들어 비디오 작품에도 손때를 묻히고 의도적으로 영원성을 불어넣으려 하니까 팔리기 시작했습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의 존재 양식이란 돈도 벌면서 장난도 치자는 것이지요.” (백남준 인터뷰, 조선일보 1992. 1. 28,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 전시 관련)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백남준 효과>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백남준 효과>

2022년은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탄생 9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에 백남준을 기리고 그의 작업 세계를 조망하는 각종 전시 및 행사가 곳곳에서 개최되었죠. 경기문화재단 백남준 아트센터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백남준의 비디오 아카이브를 소장한 기관답게 싱글 채널 비디오, 퍼포먼스 및 전시 기록, 방송 클립 등 영상 700여 점을 담은백남준의 비디오 서재를 공개했는데, 그의 작업을 (TV 보듯) 가까이에서 둘러볼 수 있는 귀한 디지털 플랫폼이죠.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그의 작업에 담긴 현대사적 면모에 초점을 맞춘 <서울 랩소디>전이 열렸고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는 심장이나 다름없는 ‘다다익선’을 3년 만에 재가동해 1003개의 모니터에 불을 밝혔습니다. 이 밖에 크고 작은 전시, 공연, 심포지움까지 톺아보면 그의 목소리가 선연해지는 듯합니다.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 (1977년 백남준이 발표한 음반 제목이자 그의 슬로건 같은 문장이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백남준 효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백남준 효과>

내년 2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백남준 효과>전은 올해를 화려하게 수놓은백남준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전시입니다. 그간의 전시가 엄청난 유명세로 이미지가 더 거대해진 백남준의 작업을 통해 그의 실체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였다면, <백남준 효과>는 그가 한국 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명하고 있습니다. 백남준이 미술사를 새로 쓴 불세출의 미술가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그 업적은 비단 미디어아트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1984 35년 만에 귀국한 백남준은 미술가뿐 아니라 전략가, 기획자, 사상가, 문화 번역가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한국 미술계 및 문화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게다가 1990년대는 예술계, 문화계를 포함한 모두가 세계화 및 정체성, 과학과 기술, 예술과 문명 등에 대한 새로운 키워드와 흐름을 찾고자 애쓴 변화의 시대였죠. 이번 전시 역시 한국 미술계의 변모와 백남준의 활동이 필연적으로 만나는 지점에 주목합니다. 

백남준, ‘칭기즈 칸의 복권’, 1993, CRT TV 모니터 1대, 철제 TV 케이스 10대, 네온관, 자전거, 잠수 헬멧, 주유기, 플라스틱 관, 망토, 밧줄, 1-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LD, 217 × 110 × 211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백남준, ‘김유신’, 1992, 나무, TV, 유채, 149 x 114 x 90cm.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백남준, ‘나의 파우스트-민족주의’, 1989~1991, 혼합 매체, 모니터 25개, LDP 3대, LD 3장, 260×144×85cm. 리움미술관 소장

백남준,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 1984, 종이에 에칭, 29.7 × 37.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일단 백남준의 작업 세계를 구성하는 주요 작품이 전시장 도처에서 길을 안내합니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작이자 한국 세계화의 꿈을 실은 ‘칭기즈 칸의 복권’(1993)을 비롯해 ‘장영실’(1990), ‘김유신’(1992) 등을 선보입니다. 동시대에 떠오르는 사회적 주제를 바라보는 백남준의 세계관을 첨탑 형태로 표현한 ‘나의 파우스트’ 시리즈(1989~1991), 달을 TV로 은유하며 새로운 매체와 가장 오래된 매체를 서로 비춰보는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1965–67′(1996), 그리고 작가로서 개인사의 출발점을 시사하는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1984) 등 백남준 미술 세계의 안팎을 두루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카이브 섹션은 그동안 우리가 백남준을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날 정도로, 대중 매체 자료 및 사료가 그의 시간을 촘촘히 따라가, 그 행보를 현실감 있게 제시합니다. 

전수천,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 1994~1995, TV 모니터, VCR, 유리, 토우, 산업 폐기물 등, 380 x 1800 x 80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석영기, ‘앤디 워홀의 옷’, 1992, 컬러 복사, 60.6 x 106.5cm (18).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지원으로 제작

무엇보다백남준 효과의 명백한 단서이자 주인공은 이번 전시에서 공간을 공유한 25명의 한국 작가일 겁니다. 구본창, 김해민, 문주, 박이소, 석영기, 양주혜, 윤동천, 이동기, 이불, 전수천, 홍성도, 홍승혜 등 이제는 한국 미술계의 중견 혹은 대선배가 된 이들의 1990년대 작업은 당시 청년 작가의 고민과 희망, 의지와 실험으로 가득한, 실로 반가운 존재입니다. 물론 작가들의 오래된 작업이 백남준의 영향력을 직접 기술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문제의식은 절묘하게 만납니다. ‘동시대를 산다라는 문장이 숭고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죠. 그렇다고 이들이 시종일관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움직인 건 아닐 겁니다. 각자 다른 곳을 향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시대가, 예술이 나아갈 바를 치열하게 고민했고, 덕분에 더욱 단단해진 희망의 결과물을 수십 년 후의 우리가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게 된 거죠. 그 혁신적 움직임의 선두에 백남준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술을 다시 보는 시선, 다른 태도로 미술을 다루는 용기를 발휘한 전설적인 예술가가 증명한 가장 강력한백남준 효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