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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 그리고 손흥민의 세리머니

2022.12.09

by 강병진

    ‘알쓸인잡’ 그리고 손흥민의 세리머니

    12월 2일 tvN에서 첫 방영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알쓸인잡(알쓸인잡)>을 시청했다. 그리고 3일 오전 0시에 시작한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한국 대 포르투갈의 경기를 봤다. 손흥민이 단독 드리블을 하다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패스한 공을 황희찬이 득점으로 연결했다. 경기 종료 휘슬을 불자, 손흥민은 마스크를 벗고 오열했다. 손흥민의 눈물을 보며 몇 시간 전에 본 <알쓸인잡>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알쓸인잡>의 출연진 중 한 명인 한국천문연구원의 심채경 박사가 소개한 ‘미미 아웅’이란 인물 때문이었다.

    ‘알쓸O잡’ 시리즈의 세 번째 주제가 ‘인간’이라는 소식에 사실 시큰둥했다. ‘알쓸신잡’부터 ‘알쓸범잡’에 이르기까지 이 프로그램의 주제가 ‘인간’이 아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쓸신잡 2>에서 해남과 강진을 여행한 유시민 작가는 그곳에서 ‘정약용’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알쓸범잡>에서 제주를 찾은 김상욱 교수는 4.3 사건 당시 총에 맞아 턱을 잃은 일명 무명천 할머니(본명 진아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이야기거나,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 아예 대놓고 ‘인간’을 주제로 한다고 해서 ‘알쓸인잡’이 ‘알쓸신잡’이나 ‘알쓸범잡’에 비해 그리 새롭게 기대가 되는 건 아니었다.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각각 다른 전공 분야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관심 인물을 소개하는 장이 열리자, 예상할 수 없는 인물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드러났다. 심채경 박사가 소개한 미미 아웅은 미국 항공우주국 NASA의 우주탐사 연구원이다. 미얀마계 미국인인 그는 화성을 탐사하는 작은 헬리콥터를 개발했다. 이 정도만 듣고도 우리는 이야기를 예상할 수 있다. 이민자, 그것도 여성이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루기 위해 버텼을 시간에 대한 드라마를 기대하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심채경 박사가 미미 아웅에게 발견한 이야깃거리는 강렬한 드라마가 아니라 그녀가 보여준 세리머니였다. 화성 헬기 비행에 성공했을 때 미미 아웅은 기쁨의 연설을 한 후, 만약 비행에 실패할 경우 읽으려 한 연설문을 찢어서 날렸다고 한다. 심채경 박사는 “지금 과학자들이 언젠가 멋지게 세리머니를 할 수 있는 그날을 상상하면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자기 자랑을 잘 못하는 과학자들에게도 세리머니가 꼭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걸 보시는 국민, 전 세계의 지구인이 관심을 가져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몇 시간 후 손흥민의 세리머니를 본 것이다. 미미 아웅이 종이를 던지며 세리머니를 한 것처럼, 손흥민은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 필드에 엎드려 울었다. 그의 모습에서 많은 걸 공감할 수 있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아픔, 전 국민의 기대를 짊어진 국가 대표 팀의 주장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부담감, 하필 월드컵 전에 당한 얼굴 부상으로 인한 초조함. 몇십 초 남짓한 짧은 순간 그 모든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손흥민의 완벽한 세리머니 덕분이었다. (물론 그에 앞서 유니폼을 벗어버린 황희찬의 세리머니도 완벽했다. 비록 옐로카드를 받기는 했지만.)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 공식 홈페이지

    <알쓸인잡>이 보여준 미미 아웅의 세리머니, 그리고 중계로 본 손흥민의 세리머니는 ‘공감’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같다. 물론 화성에 헬기를 띄우는 것은 월드컵 16강 진출과는 다르다. 월드컵 16강 진출은 지금 내가 신나는 일이지만, 화성에 헬기를 띄우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당장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명의 과학자가 보여준 신나는 세리머니 덕분에 우리는 그 성과가 상당히 대단한 것이라는 점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현재 방송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 중 하나가 누군가의 세리머니를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스포츠의 것이든, 당장의 실효성을 알 수 없는 과학에 대한 것이든 말이다.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누군가의 기쁨에 공감하는 순간은 방송국이 지금의 OTT 서비스보다 훨씬 더 넓게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대표 축구 선수들 그리고 미래의 세리머니를 준비 중일 과학자들을 응원한다.

    프리랜스 에디터
    강병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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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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