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사랑하는 두 남자의 뻔하지 않은 파리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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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을 사랑하는 두 남자의 뻔하지 않은 파리 하우스

2022-12-16T16:45:20+00:00 2022.12.12|

바스티앙 다구잔과 니콜라스 가브리야르게스 커플이 과거의 디자이너에게 경의를 표하는 집을 만들었다. 패션을 사랑하는 두 남자의 파리 하우스는 뻔하지 않아 재미있다.

자크무스의 최고경영자(CEO) 바스티앙 다구잔(Bastien Daguzan)과 루이 비통의 여성 액세서리 컬렉션 디렉터 니콜라스 가브리야르게스(Nicolas Gabrillargues) 커플에겐 남다른 취미가 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공간을 매입해 기본 골조만 남긴 채, 긴 시간 신축 프로젝트를 거쳐 거주지로 개조하는 것이다. 결국 그 집을 팔거나 세놓으며 몇 년의 시간을 빠듯하게 보낸 두 사람은 올해 역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가족과 여행을 많이 다녀서인지 궁금한 것이 많은 편이죠. 장소나 분위기를 수시로 바꾸는 걸 좋아합니다.” 바스티앙이 니콜라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누군가는 변덕스럽다고 말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프로젝트는 늘 영감을 줍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고 할까요?”

바스티앙은 만 30세가 되던 해에 르메르의 매니징 디렉터로 발탁됐다. 그리고 유니클로와의 전략적인 패스트 리테일링 파트너십을 주도하며 중심에 섰다. “여전히 르메르와 유니클로가 만든 U 라인 티셔츠는 제가 가장 즐겨 입는 아이템이에요. 자랑스러운 결과물이라 질리지 않죠.” 그 후 바스티앙은 파코 라반의 최고경영자직을 맡아 디렉터 줄리앙 도세나(Julien Dossena)와 함께 2년 만에 세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올해 5월, 지난 7년 동안 자크무스의 개인적인 멘토이자 컨설턴트로 활동하던 이력을 이어 최고경영자로 부임했다.

반면에 에르메스에서 남성복 컬렉션 디렉터로 커리어를 시작한 니콜라스가 루이 비통으로 옮겼을 즈음, 두 사람은 또다시 ‘안식처 프로젝트’를 위한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외형을 자랑하는 10구의 아파트에 살며 전형적인 프렌치 스타일이 싫증 나기 시작했다고 바스티앙이 말을 잇는다. “분명 역사적인 건물에 사는 건 행운이었어요. 그러다 굳이 과거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사춘기 소년 같은 반항적인 감정이 들기 시작했죠.”

부동산 사이트에서 마레 지구에 있는 167㎡(약 50평)의 2층짜리 맨션을 발견했을 때 단번에 운명임을 알아챘다. 천장까지 커다랗게 난 창으로는 파리 거리의 활기찬 소음이 들리고, 파리의 심장을 따라 흐르는 센강의 세찬 물소리가 모여 우아한 고요함이 흐르는 곳. 도심에 자리하지만 도시의 불쾌한 기운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이곳에서 마침내 두 사람은 정착하고 싶었다. “위치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파리 한가운데 작은 구멍이 뚫린 듯 도심과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경계가 특별하게 다가왔죠.”

‘호텔 니콜라이(Hôtel Nicolai)’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작은 맨션의 내부는 17세기에 지어 대부분 파손된 상태였다. 루이 왕가 시대의 몰딩, 정교한 부아즈리(Boiserie, 조각을 입힌 장식 판자), V자의 셰브론 바닥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고, 콘크리트 바닥과 회반죽으로 마무리한 벽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벌거벗은 점이 부부에게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상상을 자유롭게 끄집어낼 수 있는 백지 공간이 있다는 것은 무섭기도 하지만 흥분되기도 했어요.” 두 사람이 함께 발을 들여놓던 순간을 떠올렸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결정된 매입과 동시에 그들은 절친한 친구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파브리치오 카시라기(Fabrizio Casiraghi)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우리는 장 미셸 프랑크(Jean-Michel Frank)와 피에르 폴랑(Pierre Paulin)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빈티지 카트가 필요해’ 하면 다음 날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찾아다 주는 그런 관계거든요.(웃음)” 두 사람이 생바르텔미부터 로스앤젤레스, 그리스 등 전 세계를 여행하며 모은 영감의 조각에 파브리치오가 무한한 창의력을 한 스푼 가미해 흰 캔버스가 서서히 채워지기 시작했다.

직사각 모양의 긴 형태와 4.5m에 달하는 높은 천고의 거실 공간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복층 구조를 만들었다. 생바르텔미의 갤러리에서 구입한 호안 미로의 태피스트리 작품이 생기를 부여한다. 우산 같은 천장 조명은 요제프 호프만, 서랍장 위에 놓인 두 쌍의 하얀 테이블 램프는 카미유 브레이스(Camille Breesch) 제품.

6개월의 리노베이션 기간 동안 세 사람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바닥을 완전히 뜯어내고, 카펫을 깔고, 새로운 벽을 만들어냈다. 예기치 못한 난관도 마주했다. 부엌과 거실 공간에 놓일 메자닌 구조물(1층과 천장 사이에 만든 구조물로 흔히 말하는 ‘복층’ 효과를 낼 수 있다)을 프랑스 건축심의위원회가 승인을 거부하는 바람에 원격으로 모든 걸 제어해야 했기 때문이다. 공사 기간이 연장되자 갑자기 찾아온 겨울에는 간이 히터 하나로 추위를 달래기도 했다. “팬데믹 시기가 겹쳐 프랑스 전역의 모든 활동이 중단된 상황이었어요. 그래도 하나씩 처리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웠죠.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꼭 어울리는 집을 만들기 위한 필수 요소를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바스티앙이 덧붙였다.

그렇게 완성한 2층짜리 맨션에 <보그 코리아>를 초대했다. 외부에서 프라이빗하게 이어지는 현관 입구를 열고 들어가면 바둑판 배열의 흑백 타일이 깔린 조그마한 로비가 보인다. 이 집에서 몇 안 되는 전형적인 프렌치 장식이다. 오른쪽으로는 현대적이고 부드러운 소재의 카펫을 깔아 아늑한 침실 공간을 꾸몄다. 위층이 아닌 아래층에 침실을 배치한 건 파브리치오의 탁월한 결정. 안쪽에는 40cm 높이의 플랫폼을 올려 침대 위치에 변화를 주었는데, 벽이 없어도 철저히 공간이 분리된 듯한 착시 효과를 준다. 침대 맞은편엔 요제프 프랑크(Josef Frank)의 조명과 피에르 폴랑의 부클레 체어를 놓아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고도 간단한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니콜라스가 직접 시범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때로는 이렇게 침대에서 모든 걸 해결할 때도 있어요. 일하거나 책을 읽고, 대형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기도 하죠.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요. 혼자만의 시간은 주로 여기서 보내는 편입니다.”

침실 옆문을 열면 검은색의 반사광 타일로 꾸민 욕실이 이어진다. 새하얀 흰 바닥과 세면대, 욕조와 대조적인 모습이 묘한 심리적 안정감을 자아낸다. 절제된 듯하면서도 거리낌 없는 모습이 1950년대의 초상화를 닮았다.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 감독의 영화 <아이 엠 러브>에서 배경으로 사용된 밀라노의 빌라 네키 캄필리오(Villa Necchi Campiglio)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1930년대에 피에로 포르탈루피(Piero Portaluppi)가 설계한 저택은 말 그대로 우리의 로망이었거든요.”

침실을 뒤로하고 나와 다시 현관 입구에서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면 4.5m가 넘는 천장고가 돋보이는 드라마틱하고 널찍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진다. 창을 열면 정원과 테라스가 내다보이고, 닫으면 그 사이로 은은한 빛이 집 안 가득 스며든다. 사실 바스티앙은 집을 꾸릴 때 이 공간에 무척 마음을 썼다. “빛에 둘러싸여 사는 느낌은 정말 소중해요. 이곳에 앉아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는 나무와 센강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말랑해지죠.”

부엌 위 작은 서재 공간에 깔끔하게 놓인 책과 오브제의 배열이 두 사람의 캐릭터를 대변한다.
바닥에 둔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과 오른쪽 벽에 걸어둔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포스터가 눈에 띈다. 녹색 소파는 주문 제작한 것.

집의 중심부에 드문드문 놓인 가구는 설치 미술품처럼 분위기를 더한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모듈 서랍장을 칸막이로 거실과 다이닝 룸 공간을 부드럽게 분리한 건 현명한 아이디어. 덕분에 주말이면 친구들과 파티를 열기에 아주 훌륭한 장소가 된다. 양쪽 벽에는 호안 미로(Joan Miró)가 1950년대에 디자인한 다채로운 색조의 가로 2m, 세로 3m의 대형 태피스트리를 비롯한 여러 작품과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커다란 나무 조각과 그림이 조화롭게 걸려 있고, 천장에는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이 빈 공방(Wiener Werkstäte)에서 디자인한 가르간투안(Gargantuan) 조명 두 개를 달았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누구냐고 물으시면 답을 정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듯합니다.(웃음) 취향이 확실하지 않아요. 정의할 수 없는 스타일과 요소를 좋아하거든요. 한 가지 명확한 건 새로운 것에 둘 다 몹시 개방적이라는 거죠. 최근에는 마요르카에 놀러 갔을 때 미로 재단 예술가의 그림을 구입했어요.” 바스티앙이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패션계에서 영향력을 뽐내는 듀오답게 난도 높은 미학이 집 안 곳곳에서 계속 확인된다. 차분한 색조와 오리엔탈리즘이 뒤섞인 분위기는 무슈 이브 생 로랑의 생전 자택 인테리어를 떠올린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벽을 따라 이어지는 얕은 금속 기둥이 눈에 띄는데, 바스티앙이 파코 라반에서 일할 때 가장 좋아하는 재료 중 하나였던 강철을 사용했다. 또한 그들의 오랜 뮤즈인 모델 베티 카트루(Betty Catroux)에게 받은 영감도 빼놓을 수 없다. “언젠가 보았던 베티 카트루와 남편 프랑수아 카르투(François Catroux)가 꾸민 파리 아파트 사진이 뇌리에 깊이 박혔어요. 벽난로 주변을 금속 소재로 덮었는데, 1970년대였지만 무척 미래적이고 세련된 모습이었죠.” 다소 차가운 느낌을 절제하기 위해 그림과 조각품을 불규칙적으로 매달았다.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의 1960년대 조각은 프랑스계 아르헨티나인 니콜라스의 뿌리와 문화를 상기시켜 감성적이고 더 뜻깊게 다가온다. “패션계에서 일하면 취향과 개성이 확고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늘 다른 취향과 문화를 흡수하려고 노력합니다. 결국 창작이라는 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과도 같고, 그 점이 패션 산업을 흥미롭게 만들기 때문이죠.” 니콜라스가 덧붙였다.

두 사람은 최근 프랑스 남부 도시 세뇨스(Seignosse) 바닷가에 집을 샀다. “이곳이 친구들과 자주 모여 저녁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장소라면 세뇨스의 집은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주말 도피처 같은 곳이에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쉬자’는 그들의 모토처럼 안락하면서도 자유로운 삶을 위해 만든 파리 하우스는 일상의 행복을 약속하는 공간이 되었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달려왔기에 이제 ‘안식처 프로젝트’는 잠시 보기 어렵겠다는 질문에 두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머릿속은 이미 세뇨스 프로젝트 아이디어로 가득한걸요. 그러니 기대하세요. 완성되면 <보그 코리아>에 맨 먼저 초대장을 보낼게요.”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