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메뉴’ 기꺼이 권하는 악랄한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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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메뉴’ 기꺼이 권하는 악랄한 농담

2022-12-13T22:43:09+00:00 2022.12.13|

풍요로운 파인다이닝의 특별한 메뉴에 관한 영화 <더 메뉴>는 단순히 오감만 자극하는 미식 영화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여러분께 선사합니다. 더 메뉴(Invite you to experience. The Menu).’ 관객에게 보낸 초대장처럼 시작되는 영화 <더 메뉴>는 각본가 윌 트레이시가 실제 경험에서 착안한 영화다. <오징어 게임>의 주요 부문 수상으로 화제가 된 올해 에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미니시리즈 <석세션>의 각본에 참여한 윌 트레이시는 신혼여행을 위해 찾은 노르웨이 베르겐섬에 자리한 레스토랑 코넬리우스에 방문하기 위해 보트를 탔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도중 문득 깨달았다.

이 식사가 끝날 때까진 이 섬에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서 동료 작가 세스 라이스에게 아이디어를 공유한 뒤 함께 이야기를 발전시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2019년 알렉산더 페인이 감독으로, 엠마 스톤이 주연으로 내정됐지만 제작 지연으로 하차했고, 2021년 <석세션>과 <왕좌의 게임>의 일부 에피소드를 연출한 바 있는 마크 미로드 감독과 안야 테일러 조이가 새롭게 가세하면서 비로소 제작이 가시화됐다.

섬에 있는 레스토랑을 밀실처럼 여긴 윌 트레이시의 아이디어처럼 <더 메뉴>는 고급스러운 풍미를 즐길 수 있는 파인다이닝이라는 공간을 경악의 무대로 전복시키는 영화다. 개인 소유의 섬 호손에서 운영하는 최고급 파인다이닝에 초대된 열두 명의 손님을 기다리는 뜻밖의 계획에 관한 영화다. 1인당 1,250달러라는 거액의 비용을 지불해야 함에도 헤드 셰프의 대단한 명성으로 인해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파인다이닝에 초대된 다섯 무리의 손님들은 섬을 연결하는 보트에 탑승하고, 저마다 자신이 맛볼 특권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뜬 대화를 나누거나 미식과 관련한 지식을 뽐내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단 한 사람만 그들의 호들갑과 과시욕을 실소와 냉소로 바라본다. 파인다이닝과 셰프의 명성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이는 마고(안야 테일러 조이)는 사실 그날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었다. 이런 사실은 당일 메뉴를 구상한 셰프 줄리안 슬로윅(랄프 파인즈)의 계획에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작용한다.

파인다이닝에 초대된 12인의 손님은 슬로윅의 선택받은 자들이다. 면면을 살펴보자면, 슬로윅의 명성을 처음 만들어줬다고 자부하는 미식 평론가 릴리언 블룸(자넷 맥티어)과 미식 매거진의 편집장 테드(폴 어델스타인), 쉽게 올 수 없는 레스토랑에 지난 5년간 열한 번이나 방문했다는 단골 중년 부부 리처드(리드 버니)와 앤(주디스 라이트), 레스토랑에 투자한 자본가와 함께 일하는 젊은 중역 세 사람, 유명하지만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고 미식 투어 프로그램 출연을 계획 중인 영화배우(존 레귀자모)와 배우의 긴 시절을 관리해온 직속 매니저 펠리시티(아미 카레로), 음식이 나올 때마다 탄성을 지르며 미식가로서 지식을 뽐내기 급급한 타일러(니콜라스 홀트)와 그의 파트너 마고, 셰프의 어머니(레베카 쿤)까지, 이 모든 손님은 슬로윅에 의해 선별된, 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메뉴의 일부’가 될 사람들이다.

손님이 메뉴의 일부라니 인육으로 요리라도 한다는 것인지 소름 끼치는 오해를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슬로윅이 구상한 메뉴는 그 이상의 경지를 지향한다. 오픈 키친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는 주방의 위압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슬로윅은 그 안에서 권능을 가진 신적 존재에 가깝다. 그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주방의 긴장감은 점점 홀 안의 손님들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점점 예사롭지 않은 메뉴가 테이블로 배달된다.

아뮤즈 부쉬와 첫 번째 메뉴까지만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메뉴부터 조짐이 이상하다. 1만2000년 전부터 존재했다는 빵의 역사를 읊던 슬로윅 셰프는 평범한 사람들의 주식이었던 빵을 특별한 손님들에게 내놓을 수 없다며 ‘빵 없는 빵 접시’라는 메뉴를 소개한다. 곁들임이 없는 곁들임을 즐기라며 빵은 없고 빵을 찍어 먹을 에멀전 소스만 있는 플레이트를 내놓는다. 특별한 빵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정작 빵을 주지 않자 레스토랑에 투자한 자본가의 최측근 세 사람은 그 권위를 앞세워 빵을 달라고 요구하지만 홀 매니저 엘사(홍 차우)로부터 돌아오는 응답은 이렇다. “욕망한 것보다는 적게 먹고, 당신 주제보다는 많이 먹을 거야.” 분위기가 싸하다.

“이 메뉴와 손님 리스트는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는 슬로윅의 말은 단순히 예의를 차린 말이 아니다. 음식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세계적 명성의 파인다이닝을 이끄는 슬로윅의 야심은 더 원대하다. 그는 오늘 초대한 손님과 자신이 이끄는 주방의 셰프들과 레스토랑 직원들과 함께 장렬한 예술혼을 불태우려 한다. 그가 초대한 손님들은 접대해야 할 고객이며 그날의 메뉴를 완성하기 위한 핵심 재료나 다름없는데, 이런 야심은 슬로윅의 메뉴 설명을 통해 점점 구체화된다.

예우를 갖춘 말투 안에서 손님들을 향한 무지와 허영에 대한 지적이 나열되고, 경멸과 혐오의 태도가 드러난다. 자신이 부리는 말의 힘에 도취된 비평가와 이를 방조하며 업계를 어지럽힌 전문 매거진 편집장, 단골이라고 하지만 최근에 어떤 메뉴를 먹었는지 기억도 못하는 중년 부부, 레스토랑과 셰프의 명성과 요리의 진가를 곧잘 폄하하면서도 유명 레스토랑에 다녀왔다는 자랑은 하고 싶어 하는 투자회사의 젊은 중역들, 메뉴가 나오면 사진부터 찍고, 입에 넣는 즉시 감탄하며 지식과 취향을 뽐내는 데만 골몰하는 젊은 미식가 등 자신이 준비한 최후의 만찬에 걸맞은 작자라는 사실이 슬로윅의 메뉴 설명과 함께 나열되고 드러난다.

어떤 관객은 의아할 것이다. 슬로윅 입장에서는 하나같이 혐오스러운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로윅의 계획은 정당한 걸까?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비유이자 직설이다. 자신이 슬로윅이 구상한 메뉴의 일부가 됐다는 사실이 의아한 영화배우는 묻는다. 자신이 슬로윅의 화를 산 이유가 궁금하다. 그러자 슬로윅은 자신이 정말 오랜만에 쉴 수 있는 날이 돼서 영화를 한 편 봤는데 그 영화가 너무 형편없었고, 그 영화의 주연배우가 당신이었다고 말한다. 답변을 들은 배우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은 배우일 뿐, 감독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자 슬로윅은 그런 영화를 선택한 배우의 책임에 대해 말하며 정곡을 찌른다. “예술가가 목적을 상실하면 어떻게 되지?” <더 메뉴>는 미식을 소재로 다룬 영화일 뿐 본질을 잊고 껍데기 같은 명예나 허영에 사로잡힌 이들을 겨냥한 독설의 향연을 이어가기 위해 마련된 부조리극의 무대 같다. 특별히 교훈을 남기거나 반성을 요구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장르적 쾌감을 바탕에 둔 현실적 리얼리티를 지향하는 영화도 아니다. 영화라는 예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악랄한 농담을 생생하게 구현하는 결과에 가깝다.

“남을 위해 요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때의 마음이 너무 그리워.” 슬로윅의 고백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자신의 능력으로 보게 된 것이 자신의 음식이 부자의 배 속에서 순식간에 똥으로 변하는 것이라는 회의감을 표하는 분노로 가닿는다. 사랑하는 마음을 잊은 성취와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가혹해지기만 하는 완벽주의를 부추기고 평가하는 이들의 냉소와 그 완벽함에 대한 일말의 이해도 없는 성찬과 그저 값비싼 자랑을 위해 부유함을 과시하는 이들의 무지는 파인다이닝이라는 공간을 밀실 삼아 거침없이 폭로되고 비난받는다.

혐오와 염세가 마음껏 분출되고 잘 차려입은 품위와 그럴듯한 언변으로 감춘 위선과 천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 안에 자리한 모두에게 슬로윅의 예술적 경지를 위한 메뉴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쉽게 말하자면 죽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납득시킨다. 그럼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파인다이닝의 메뉴를 구성해온 셰프의 예술성을 납득시킨다.

그런 순수한 집념을 알아보는 유일한 사람이 그의 음식에 일말의 기대도 없었고, 전혀 만족하지 않았던, 애초에 초대받지 않았던 손님인 마고라는 사실은 <더 메뉴>의 풍자에 일말의 풍미를 더하는 역설 같다. 누군가의 경이로운 성취를 자기 삶을 치장하는 액세서리쯤으로 여기던 이들의 갖은 행태 사이에서 마고만 유일하게 셰프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게 되는 건 그런 성취에 관심이 없었고, 관심을 가질 만한 형편의 삶을 사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서비스업 종사자라는 마고의 고백에 슬로윅은 마고가 자신과 같은 ‘밑바닥 인생’이라고 동질감을 표한다. 그리고 슬로윅이 계획한 메뉴 안에서 유일한 변수가 되는 마고는 슬로윅의 밑바닥에 자리한 진심을 들여다본 끝에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할 방법을 찾아낸다. 거창한 격식과 위장된 품위로 치장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먹을 음식이 없어서 먹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했던 마고는 비로소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특별한 메뉴를 주문할 권한을 찾아낸다. 덕분에 그 모든 최고급 메뉴가 자아내는 허기와 허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함께 포만의 쾌감으로 회복된다.

<더 메뉴>는 10개의 코스 메뉴와 12명의 초대 손님 하나하나가 일종의 챕터처럼 다가오는 영화다. 미니시리즈로 각색해도 좋을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만큼 캐릭터 하나하나가 일종의 서브플롯 주머니처럼 보일 정도로 흥미로운 캐릭터 스터디 영화이자 10개의 코스 메뉴는 제각각 개별적인 사건으로 구획할 수 있는 이야기 구성의 요건을 충족한다. 그만큼 확장성이 좋은 이야기처럼 보이는 동시에 파인다이닝이라는 특별한 공간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처럼 다가오는 체험의 영화라는 점에서도 감상을 권할 만한 작품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미슐랭 3스타 파인다이닝 아틀리에 크렌을 운영하는 여성 셰프 도미니크 크렌의 자문을 통해 구현한 영화 속 공간과 <셰프의 테이블> 연출 경력을 가진 다큐멘터리 감독 데이비드 겔브의 자문을 통해 연출한 음식 촬영은 작품 내용을 떠나 그 자체로 간접경험의 묘미를 선사한다.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문구처럼 최고급 파인다이닝에 초대된 것 같다고 체감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시카고의 유명한 파인다이닝 알리니아의 시그니처 디저트인 테이블 디저트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이는 최후반부의 바닥 플레이팅 신은 그 자체로 생생하고 역동적이다.

결국 <더 메뉴>는 관객을 위해 마련된 촌철살인의 난장판이다. 복수와 살인과 범죄를 넘어 특별한 메뉴를 구성하는 셰프와 그 메뉴의 구성원이 되는 손님들의 관계란 결코 정상적일 수는 없지만 영화란 언제나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만 그리는 매체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더 메뉴>는 영화라는 예술이 뱉을 수 있는 농담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동시에 현실에서 불가능한 악의를 마음껏 선사하고 체험하는 선언적인 작품처럼 보인다.

“요리의 신비가 사라진 건 너 같은 인간 때문이야”라는 악담은 종종 스크린을 찢고 나와 객석의 누군가를 흠칫하게 만들 것 같지만 누군가를 해치는 것은 아니므로, 이 악랄한 농담을 즐기길 기꺼이 권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슬로윅의 혐오와 염세에서 자유로울 것 같진 않지만 다행히도 객석은 그의 증오로부터 안전할 것이므로, 이 영화가 선사하는 초대장을 받고, 음미하고, 즐겨보시라. 그렇다면 아마 치즈버거를 먹게 될 것이다. 보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