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할머니의 김치

2022.12.14

by 조소현

    할머니의 김치

    지난 11월 22일은 ‘김치의 날’이었다. 김치는 최소 11가지 재료로 22가지 효능을 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김치의 날을 몰랐더라도 하루가 다르게 공기가 차가워지면 대한민국 국민은 한 해의 김치를 책임질 김장철이 도래했음을 본능으로 감지한다. ‘평균기온 4℃ 이하, 일 최저 기온 0℃ 이하’, 즉 입동 전후가 김장을 하기에 적절한 시기로 알려져 있다. 배추, 무, 고추 등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 중 무엇 하나 자연이 아닌 것이 없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로 김장 시기가 늦어지는 추세라는 뉴스가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올해도 김장철은 오고야 말았다.

    <반찬등속, 할머니 말씀대로 김치하는 이야기>(청주부엌, 2022)는 옛 조리서 <반찬등속>의 김치를 지금의 언어로 풀어낸 책이다. 현재 청주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반찬등속>은 1913년 편찬된 충북 지역 유일의 필사본 조리서로 김치와 짠지, 떡, 한과 등 47종 음식의 조리법과 식재료 및 집, 가구, 의복 등의 명칭과 사자성어가 실려 있다. 1910년 전후 그 지역의 음식 문화와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로 충북유형문화재 제381호로 지정되어 있다.

    ‘할머니 말씀대로 김치하는 이야기’라는 제목답게 책은 100년 전 역사서 밖으로 나와 대대손손 전해진 100년 동안의 김치를 말한다. 이런 방대한 작업을 기꺼이 해낸 저자는 <반찬등속> 저자의 4대 고손녀이자 30년간 <싱글즈>, <쎄씨>, <여성중앙> 등 잡지를 만들어온 강신혜다. 잡지를 만들면서 키워온 특유의 호기심과 탐구 정신, 집요한 편집 능력이 김치를 파고드는 데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갖 역사서와 논문을 뒤져서 옛 조리서를 분석하고 집안 어른들을 쫓아다니며 인터뷰했으며, 손수 김치를 만들고 또 만들어 100년 전 김치를 재현해냈다. 김치를 담글 때 사용한 소금은 천일염이었을까 자염이었을까, 내륙 청주에서 어떻게 해산물을 김치에 적극 활용했을까 등 탐구 과정에서 생긴 의문을 역사 속 근거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음식을 향한 저자의 호기심은 타당한 공감을 불러일으켜 마치 음식 에세이처럼 술술 읽힌다. 오이 속을 파내고 갖은 양념과 열무를 넣어 만든 외이김치, 조기와 문어, 전복 등 해물을 저며 양념해서 소로 넣은 배추짠지 등 옛 조리서를 통해 재현한 김치는 보고 읽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고 머릿속에 단순하게 카테고리화되어 있던 김치의 세계를 확장시킨다.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수년 동안 <반찬등속>에 적힌 단어 하나, 문구 하나에 집착하고 매달렸던 저자가 재현해낸 김치는 특정 지역이나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옛 조리서를 넘어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 그 정성스럽고 치열한 노력은 전통을 이어간다는 거창한 말 없이도 오늘의 기록이자 역사가 된다. 김치를 시작으로 짠지와 한과, 떡, 반찬, 술까지 <반찬등속>에 실린 나머지 음식을 시리즈로 이어갈 예정이다.

    조소현 (프리랜스 에디터)
    사진
    청주부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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