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김치
지난 11월 22일은 ‘김치의 날’이었다. 김치는 최소 11가지 재료로 22가지 효능을 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김치의 날을 몰랐더라도 하루가 다르게 공기가 차가워지면 대한민국 국민은 한 해의 김치를 책임질 김장철이 도래했음을 본능으로 감지한다. ‘평균기온 4℃ 이하, 일 최저 기온 0℃ 이하’, 즉 입동 전후가 김장을 하기에 적절한 시기로 알려져 있다. 배추, 무, 고추 등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 중 무엇 하나 자연이 아닌 것이 없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로 김장 시기가 늦어지는 추세라는 뉴스가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올해도 김장철은 오고야 말았다.
<반찬등속, 할머니 말씀대로 김치하는 이야기>(청주부엌, 2022)는 옛 조리서 <반찬등속>의 김치를 지금의 언어로 풀어낸 책이다. 현재 청주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반찬등속>은 1913년 편찬된 충북 지역 유일의 필사본 조리서로 김치와 짠지, 떡, 한과 등 47종 음식의 조리법과 식재료 및 집, 가구, 의복 등의 명칭과 사자성어가 실려 있다. 1910년 전후 그 지역의 음식 문화와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로 충북유형문화재 제381호로 지정되어 있다.
‘할머니 말씀대로 김치하는 이야기’라는 제목답게 책은 100년 전 역사서 밖으로 나와 대대손손 전해진 100년 동안의 김치를 말한다. 이런 방대한 작업을 기꺼이 해낸 저자는 <반찬등속> 저자의 4대 고손녀이자 30년간 <싱글즈>, <쎄씨>, <여성중앙> 등 잡지를 만들어온 강신혜다. 잡지를 만들면서 키워온 특유의 호기심과 탐구 정신, 집요한 편집 능력이 김치를 파고드는 데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갖 역사서와 논문을 뒤져서 옛 조리서를 분석하고 집안 어른들을 쫓아다니며 인터뷰했으며, 손수 김치를 만들고 또 만들어 100년 전 김치를 재현해냈다. 김치를 담글 때 사용한 소금은 천일염이었을까 자염이었을까, 내륙 청주에서 어떻게 해산물을 김치에 적극 활용했을까 등 탐구 과정에서 생긴 의문을 역사 속 근거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음식을 향한 저자의 호기심은 타당한 공감을 불러일으켜 마치 음식 에세이처럼 술술 읽힌다. 오이 속을 파내고 갖은 양념과 열무를 넣어 만든 외이김치, 조기와 문어, 전복 등 해물을 저며 양념해서 소로 넣은 배추짠지 등 옛 조리서를 통해 재현한 김치는 보고 읽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고 머릿속에 단순하게 카테고리화되어 있던 김치의 세계를 확장시킨다.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수년 동안 <반찬등속>에 적힌 단어 하나, 문구 하나에 집착하고 매달렸던 저자가 재현해낸 김치는 특정 지역이나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옛 조리서를 넘어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 그 정성스럽고 치열한 노력은 전통을 이어간다는 거창한 말 없이도 오늘의 기록이자 역사가 된다. 김치를 시작으로 짠지와 한과, 떡, 반찬, 술까지 <반찬등속>에 실린 나머지 음식을 시리즈로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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