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기술의 싱크로 탄생한 예술, 드리프트 #친절한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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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기술의 싱크로 탄생한 예술, 드리프트 #친절한도슨트

2023-01-13T06:47:54+00:00 2023.01.12|

자연은 인간에게 무한한 영감의 대상이 되어왔고, 그런 점에서 예술가는 자연이 잉태한 부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이라는 감동적이고도 불가사의한 세계를 이해하고자 한 인류의 고투가 예술사를 썼다면, 현대의 예술가는 자연과 인간의 좌표를 그려내고자 한다는 게 달라진 점이겠죠.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4 16일까지 열리는 네덜란드 아티스트 듀오 드리프트(DRIFT)의 전시는 그런 노력의 일환입니다. 로네케 홀다인(Lonneke Gordijn)과 랄프 나우타(Ralph Nauta)로 구성된 드리프트는 자연의 모티브를 공학적 설계로 재해석해 예술로 승화시킵니다. 2007년부터 조각, 설치, 퍼포먼스, 뉴미디어 등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활동을 이어온 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조형 언어는 자연의 구조와 규칙을 향한 탐구 정신일 겁니다. 자연이 어떤 구조로 유지하는지, 인간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하여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빚지는지 등을 고유한 작업으로 보여주는 거죠. 

‘Amplitude’, 2015. Installation View, DRIFT: In Sync with the Earth, Storage by Hyundai Card, 2022

‘Shylight’, 2006-2014. Installation View, DRIFT: In Sync with the Earth, Storage by Hyundai Card, 2022

이번 전시 <DRIFT: In Sync with the Earth>는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드리프트의 작업 세계를 짚어내는 대표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실제 꽃의 수면 운동에서 영감을 받아 꽃봉오리의 개화 과정을 형상화한 ‘Shylight’, 새의 날갯짓을 재해석한 키네틱 설치 작업 ‘Amplitude’, 사물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에 대한 탐구인 ‘Materialism’, 민들레꽃이 군집을 이루는 조명 작품 ‘Fragile Future’ 같은 작업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가시적 경계를 뛰어넘어 진일보한 독특한 풍경을 그려냅니다. 유기적인 자연의 모습이 기술과 노동이 결합된 예술로 형상화되는 과정에서 드리프트의 작업은 독특한 조형미와 리듬감을 획득합니다. 자연을 향한 면밀한 관찰과 연구, 공학적 기술과 수공예에 가까운 노동이 완성한 작업이기 때문일까요. 첨단의 느낌을 대신하는 서정성과 진정성이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The Artist She/Her and The Artist He/Him, Part of the Materialism Series’, 2021. Installation View, DRIFT: In Sync with the Earth, Storage by Hyundai Card, 2022

전시를 여는 ‘Materialism’ 시리즈는 수학적이고 건축적인 아름다움이 인상적입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을 물질의 개념으로, 역으로 치환한 작업이죠. 게임기부터 바비 인형, 휴대폰이나 신라면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은 저마다의 재료로 이뤄져 있다는 점에 착안재료 각각의 종류와 비율을 블록 형태로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작가들은 그 대상을 인간으로까지 확장합니다. 인간을 물질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분해해 전혀 다른 인공의 사물로 재탄생시키는 거죠. 그렇게 놓고 보니 사물이나 인간이나 별다를 게 없더군요. 더구나 가시적 요소가 인공의 물성으로 재탄생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연물로서 인간의 위치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작가의 말은 꽤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사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합니다. 결국 이들은 모두 지구로부터 나온 것들이에요.” 

‘Fragile Future’, 2019. Installation View, DRIFT: In Sync with the Earth, Storage by Hyundai Card, 2022

‘Fragile Future’, 2019. Detail, DRIFT: In Sync with the Earth, Storage by Hyundai Card, 2022

‘Materialism’이 인간 중심적 사고의 관성을 거스르는 시선에서 출발한다면, ‘Fragile Future’는 어떤 인간의 어떤 기술보다 진보한 자연의 자가 증식 시스템을 빌려옵니다. 매년 봄 시즌 암스테르담 전역에서 채취한 1만5,000여 개의 민들레를 건조한 후 씨앗 한 톨 한 톨을 핀셋으로 떼어내고 LED 전구에 붙여 완성한 작업이죠. 하나의 민들레 홀씨는 하나의 조명으로 기능하고, 일종의 모듈처럼 군락을 형성하며, 군락은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자연물인 동시에 인공물인 민들레 조명은 취약하지만 강인하고, 심지어 다정합니다. 드리프트는 인간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자연을 인정함으로써, 동시대적 슬로건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스스로 납득하도록 이끕니다. 그렇게 현대미술 특유의 난해함을 지운 자리에서 피어나는 공감 능력이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날아 내게 살포시 와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