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때때로 방랑자여야 하는 이유

2023.01.31

by 김나랑

    때때로 방랑자여야 하는 이유

    때때로 방랑자여야 지금을 살아갈 수 있다.

    베스트, 블라우스, 초커, 롱부츠는 디올(Dior).

    방랑벽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에 티티카카 호수가 있다. 남미에서 가장 큰 호수여서, 바다가 없는 볼리비아는 해군기지를 여기에 둔다. 호수 안에 있는 ‘태양의 섬’에 가려고 보트를 빌려 탔다. 보트에는 레게 머리의 젬베 연주가, 의자 대신 뱃머리에 앉아 일광욕을 하는 남성 등 대여섯 명이 승선했다. 나는 젬베 연주에 박수라도 쳐야 하나, 아니면 뱃머리의 남자처럼 망중한을 즐겨도 되나 헷갈리는 어색한 배낭여행자였다. 30분 정도 배를 타고 섬에 다다르자 주민들이 나와 있었다. 환영식은 아니고 여행자들의 숙박을 알선하러 나온 것이었다. 적극적인 몇몇 주민이 여행자들을 데리고 떠나는 사이, 구석에 한 인디오 여성이 수줍게 서 있었다. 여행자들이 사라지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올라(Hola)” 인사를 건네자, 방이 있다고 손짓으로 설명했다. 나는 무조건 깎고 보자여서 “디스카운트”를 반복해 말하니 그녀는 흥정도 없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언덕을 넘어간 그녀의 집은 벽돌이 여기저기 깨졌고 창문엔 신문지를 붙여놨다. 나는 먼저 방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그녀는 알았다면서 한쪽 문을 열었는데, 철제 침대 세 개와 얌전히 갠 모포가 있었다. 방을 둘러보는 동안 그녀는 기둥 뒤에 숨어서 내 눈치를 봤다. 저런 모포를 덮고 자면 베드버그에 물릴 것 같았지만 ‘안 쓰면 되지’ 생각하고 그녀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가끔 기둥 뒤에 서 있던 그녀가 기억난다. 오래전 남미 여행이라 대부분 가물거리지만 그 여인의 수줍음과 아련한 느낌은 또렷하다. 여행은 예상치 못한 기억을 준다. 멋진 산과 호수, 유적지를 보려고 떠난 여행에서 기억나는 것은 유독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멕시코로 긴 여행을 떠났을 때, 글로 남긴 것은 사막 위를 달리던 트럭 뒤에 누워 있던 사람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꿈쩍 않던 그 사람을 묘사한 장면은 불길하고도 기묘하다. 나 또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그 순간의 느낌이 오래 남아 있다. 그날 밤 무시하던 모포를 꼭 껴안고 잤다.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이빨이 계속 부딪쳐 옆 사람 모포까지 뺏고 싶었다. 예상대로 베드버그에 물려 그날 이후로 늘 어딘가를 긁으며 여행을 다녀야 했지만, 그날 밤 인디오 여성이 ‘추울 줄 알고 마련해준 모포’는 거만한 여행자에게 생명 포였다. 지금도 가끔 그 여성에게 상처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거두절미하고 디스카운트를 외치고 방 검사를 하던 내가 호수처럼 잔잔한 그녀의 일상에 파장을 줬을까 두렵다. 그것이 내가 배운 것이라면 배운 것이다. 내 상처를 치료하자고 간 여행에서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말아야지. 그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매일 밤 울었다. 흐느끼지도 않고 누우면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번아웃이었던 거 같다. 아무 의욕이 없던 차에 병이 나서 수술을 했다. 오히려 그것이 나를 일으켰다. 입원 병실에서 세상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상처 준 것들로부터 떨어지자. 사회학자 김승섭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이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새겨진 상처에 몸은 축나고, 내 안에 있던 아이는 사라졌다. 여기에서 가장 먼 곳을 생각하니 남미였다.

    여행의 이유는 무엇일까? 편집장에게 올 연말 해외로 (또) 여행 간다는 얘기를 하자 “네 방랑벽을 써봐라” 했고 며칠 내내 답을 찾았다. 나는 왜 떠나는가. 첫 번째는 상처 입은 것들로부터의 거리 두기였다. 여행 후엔 내 자리에서 살아낼 기력을 얻는다. 그 기력은 인디오 여성의 수줍음처럼 예상치 못하지만 아름다운 순간 덕분이다. 남미 여행 뒤 나는 틈나면 어딘가로 떠났다. 긴 휴가를 낼 수 없는 주말에는 한국관광공사 사이트에 나온 ‘국내 걷기 좋은 길’로 갔다. 차 대신에 배낭을 메고 고속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 공항으로. 그곳엔 어딘가로 떠나거나 도착한 사람들, 마중 나온 사람들이 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오프닝 장면을 좋아하는데, 공항에서 ‘상봉’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여주며 “세상 돌아가는 꼴이 우울할 땐 난 히드로 공항을 떠올린다”는 내레이션이 흐른다. 약간의 설렘과 지침(여행은 피로를 동반한다)이 뒤섞인 그곳에서 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막상 도착하니 여름의 찌꺼기처럼 음습한 곳일지라도 상관없다. 일단 걷는다. 사랑하는 여행서 브루스 채트윈의 <파타고니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제가 믿는 신은 보행자들의 신이죠. 우리가 열심히 걷기만 한다면 다른 어떤 신도 필요 없을 겁니다.” 나는 왜 이런 방식의 여행을 고집하는가. 짐을 메고 걸으면 내가 살아 있는 것 같다. 사무실에 앉아서 타자를 두드릴 때보다 소파에 누워 책을 볼 때보다 더. 다리를 움직여서 한 걸음 나가면 풍경이 조금씩 바뀐다.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기분을 준다. 평소에는 거의 느끼기 힘들다. 때론 일의 성취도 있지만 대부분 수동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지하철에 실려 출근을 하고 메일함이 경고하기 전에 비우고 오늘 해야 할 일을 한다. 여행에선 내가 주체다. 그것이 내가 여행을 떠나는 두 번째 이유다.

    여행은 대부분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이어져간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실패의 기록이다. 무탈히 즐긴 여행은 블로그로 충분하지 굳이 책으로 사보고 싶지 않다. 예상치 못한 경험, 만남, 풍경에서 죽은 감각이 깨난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다. 경량 패딩을 입고 피츠로이산에서 자다가 얼어 죽을 뻔했을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털이 춥다고 외치듯 곤두섰다. 라오스 계곡에 들어갔을 때 머리에 쏟아지는 물을 맞는 기분을 처음 알았다. 아르헨티나 게스트 하우스에서 거리 공연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친절하게 도마를 빌려주었을 때 부끄러웠다. 그들을 내 식대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볼리비아 게스트 하우스에서 조식을 먹으며 기타로 작곡하던 청년을 보면서 글이 쓰고 싶어졌다. 글 쓰는 게 지겨워서 도망 나왔는데 다시 쓰고 싶어졌다.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맞다, 내게도 여행은 그런 것이다. 여행이란 공중 부양을 하고 나면 1cm라도 다른 자리로 착륙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자 친구를 만난 것도 여행 덕분이다. 그는 한 달 휴가를 얻어 남미 여행을 계획 중이었고, 내 남미 여행기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를 보고 지인을 통해 연락해왔다. 을지로 순댓국집에서 여행 팁을 주고받았고 점차 데이트를 했다. 코로나가 터졌고 그는 남미에 가지 못했고 3년째 마스크를 쓰고 데이트 중이다. 대신 국내 여행을 다녔다. 무량사 배흘림기둥에 기대서고, 영덕 항구에서 소주를 마시고, 제주도 올레길을 하나씩 걸었다. ‘언젠가 같이 남미에 갈 수 있지 않겠어?’라는 마음이 조금씩 약해졌다. 코로나가 끝날 기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여름, 그는 남미는 아닐지라도 유럽으로 한 달간 여행을 떠났다. 나는 열흘의 휴가를 얻어 남프랑스 니스에서 그를 기다렸다. 우린 니스의 자갈 해변에 앉아 첫 번째 해외여행을 함께 했다. 금방일 줄 알았는데 3년이 걸렸다. 앞서 말했듯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듯 코로나가 남긴 잔해는 우리에게 깊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아마도 평생. 그래서인지 해변에서 다들 한 뼘이라도 더 니스의 태양을 즐기려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보복 여행(Revenge Travel)’이란 말이 나왔다. 코로나 초기에는 금방 일상으로 돌아갈 줄 알아 기꺼이 여행을 미뤘는데,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은 격리에 지치고, 그동안 잃어버린 여행을 보상받기 위해 여행 수요가 폭발한다는 것이다. 보복이란 단어를 써서 좀 무섭지만 공감 간다. 나 역시 그 사이 더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해외 입국자 자가 격리가 풀린 직후 준비 없이 떠나서 막판에 공항에서 가족에게 짜증을 냈다. (가족 여행이란 원래 그런 걸까.) 부모님은 그렇게 급하게라도 가서 다행이라고 하신다. 야간 버스를 타고 자면서 7시간을 가야 했는데, 그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그 뒤 아버지와 어머니는 병으로 각자 수술을 하셨다. 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코로나로 빼앗겼기에 더욱 소중해진 시간, 사람들과 함께,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그곳으로. 덜컹거리는 야간 버스가 평생 추억이 될 수도 있는 세계로 말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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