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그레타 툰베리, 이희호 #멋진 ‘언니’에게_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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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그레타 툰베리, 이희호 #멋진 ‘언니’에게_4

2023-01-26T10:51:54+00:00 2023.01.26|
아침을 비추니 불안의 밤이 오는가. 그런 당신에겐 언니가 필요하다.
마음의 끈을 연결하고 싶은 멋진 여성들.

‘Finger Play-032’, 42×30cm, Embroidery on Digital Pigment Print, 2019

 

그레타 툰베리

우리는 가장 나쁜 부모 2022년 12월 23일 수도가 얼어붙었다. 수도가 얼자 보일러 작동이 중지되었다. 덕분에 내 크리스마스 연휴는 닐 셔스터먼의 소설 <드라이>의 현실 체험판이 되었다. 크리스 조던 감독의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를 본 후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생수는 내게 금지된 품목이었는데, 이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실 한구석에 생수를 쌓아두고 마시고 씻는 일을 수돗물이 아닌 생수로 해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변기 물을 한 번 내리는데 2리터짜리 생수가 세 병이나 든다는 거였다. 44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변기 버튼을 누르면서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며칠 뒤 날씨가 영상으로 돌아오면서 수도꼭지에서 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나는 전처럼 변기 물을 내릴 수 없었다. 겨우 한 컵 분량의 분비물을 버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그냥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화장실 한쪽에 커다란 물통을 준비해두고 한 번 사용한 물을 모은 생활 오수로 변기 물을 내렸다. 그렇게 변기 상수 시설은 일회용 플라스틱과 마찬가지로 내게 금지 품목이 되었다.

제로 웨이스트 실천기인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를 출간한 뒤에 이런저런 칭찬도 들었지만 그 정도로 하는 것은 어렵다는 푸념이나 불만도 들었다. 내가 제시한 환경보호법이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새로운 고민으로 나를 이끌었다. 책이라는 게 다른 누군가를 위한 글이라면 좀 더 완화된 내용의 글을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즈음 다큐멘터리로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모두 들어보았을 거다. 인상을 찌푸린 그녀의 표정도, 화가 난 목소리도, 금요일마다 학교에 가는 대신 시위를 한다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 대신 요트를 타고 북대서양을 횡단했다는 뉴스도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쓸 수 없어 목소리로 녹음해야 했던 일기를 들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경제성장을 멈추고 당장 환경을 돌아보라”며 엄중한 얼굴로 우리를 꾸짖던 소녀는 15일간 바닷바람과 파도와 싸우며 “일상적이고 규칙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울먹이고, “자신의 책임이 너무 무겁다”고 토로했다. 아스퍼거 장애와 선택적 무언증을 앓고 있는 툰베리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세계 각국의 기후 회의와 시위에 참석해 열성적으로 외치고 호소하는 이유는, 그녀에게 지구의 경고가 들리기 때문이다. 지구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게 자신이기 때문에, 기후 위기에 무감각한 어른들을 일깨워야 하는 의무가 자신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지구의 경고를 들은 게 그녀뿐인가? 어른들은 정말 몰라서 그녀처럼 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누리는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음 세대로부터 기꺼이 삶을 빼앗기로 했다. (매해 2,500~5,000종의 생명을 이미 빼앗아왔다!) 거부하고 싶지만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5일 동안 수도를 사용하지 못하면서 -생수는 사용했는데도- 나는 주변으로부터 많은 위로와 도움을 받았다. 친구들에게 몹시 고마웠지만, 우리들이 주고받은 위로가 실은 틀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따뜻한 마음은 고작 며칠간의 불편함을 겪은 내가 아니라, 우리의 수도 시설을 설치하느라 삶의 터전을 잃었을, 그래서 지금은 이 세상에서 존재를 감춘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수도를 사용하지 못했을 때 내가 어땠냐 하면, 머리카락에 기름이 지고 손톱에 때가 꼈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더럽고 냄새나는 몸이 아니라 ‘그동안 머리카락이 찰랑찰랑했던 것, 손이 깨끗했던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의 수도 시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다시 주변으로부터 불평을 듣게 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기후 위기를 경고하는 그레타 툰베리는 어떤 멋진 걸크러시 언니들보다 멋있다. 하지만 이제 그 멋을 우리가 되가져와야 하지 않을까? 그녀가 멋있어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멋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풍요롭고 사치스럽고 화려한 삶이 얼마나 멋없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도 수도 없이 들어왔다. 우리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포기해야 한다. 쇼핑을 멈춰야 한다. 비행기를 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우리는 더 이상 변기 버튼을 눌러서는 안 된다. 그러면 우리가 빼앗아온 그것들은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아갈 것이다. 다음 세대는 삶을 되찾을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는 더 이상 멋지지 않은, 평범하고 행복한 청소년의 일상을 살 것이다.

우리는 지금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른 존재의 삶을 빼앗는 지구상에서 가장 잔인한 종족이다. 우리는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자식들의 미래를 빼앗은 가장 나쁜 부모다. 최정화 소설가

 

이희호

1세대 여성 운동가의 태도 먹고사느라 종종거리며 지낸다. 문화 예술계에서 프리랜서로 자신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은 쉴 새 없이 달리면서도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일이다. 닥친 일을 처리하느라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다가 짬짬이 뉴스를 확인하면 뒷골이 뻐근해진다. 2022년 신당역에서 여성이 스토킹 범죄로 살해당했고,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자연유산 유도약 도입은 요원하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는 정부 조직 개편안이 국회에 현재 표류 중이고, 차별금지법 제정은 감감무소식이다. 내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차별과 혐오에 분노하는 이들뿐인데 사회 일반의 여론은 다른가 보다. 나와 내 주변의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사회 전체로 보면 한 줌에 불과한가?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여성 운동이라 자위하며 뉴스를 외면하고 일에 몰두하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면 막막하다. 불안하고 겁이 난다. 한국 사회의 백래시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 점점 암울해지는 세상의 흐름에 속수무책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패배감이 밀려든다. 씁쓸한 감정 속에서 한숨을 쉬다 보면 이전 세대 여성들은 어떻게 싸워왔는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이전 세대 여성 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이희호 선생이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내로 널리 알려졌지만 나에게는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운동가로서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그는 여성 해방이라는 말조차 낯설었던 1950년대부터 동료들과 함께 여성 인권과 법적 권리를 도모하는 ‘여성문제연구원’을 발족해서 활동했다. 이는 가족법 개정 운동을 선도한 ‘가정법률상담소’의 모태가 되었다. 이후 YMCA 총무로 일하며 ‘혼인신고를 합시다’ ‘축첩자를 국회에 보내지 맙시다’ 등의 캠페인을 펼쳤다. 남자들이 공개적으로 첩을 두던 시대에 ‘첩 둔 남편 나라 망친다’ ‘아내 밟는 자 나라 밟는다’ 등을 붓글씨로 써서 피켓을 만들고 거침없이 거리를 행진했다. 청년 정치인 김대중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여성 지도자로 대성할 재목을 잃는 것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 ‘공작을 펼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이미 당대에 주목받는 사회 운동가였다.

결혼 이후 삶은 험난했다. 김대중의 아내로 도청과 미행에 상시 노출되어 있었고, 남편이 납치되고 사형선고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비굴하거나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용감한 성품은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을 때의 일화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는 심문을 받으면서도 태연한 태도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민주 회복을 위해 많은 사람, 특히 젊은이들이 이곳을 거쳐 가는데 나도 동참할 수 있게 되어 대단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후 여성가족부의 전신인 여성부가 설립되는 데 이희호 선생의 역할이 컸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 취임 기간 중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등이 시행되고 여성 정책이 적극적으로 펼쳐진 것도 이희호 선생의 영향이었다. 그는 말년까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칭하기를 잊지 않으며, “여성 인권을 존중하고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삶을 떠올리면 가슴을 딱 펴고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어쩌면 내 고질병 같은 불안증은 일신의 안위에 지나치게 골몰했기 때문이 아닐까? 돈이든 명성이든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 가치로 불리는 것들을 하나라도 더 붙잡고 싶어서 쉴 새 없이 두 팔을 허우적거리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 대한 관심과 내 밖의 세계를 향한 관심을 균형 있게 유지하며 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을까? 나아가서 자신을 세상에 내줌으로써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믿으며, 아등바등하는 대신 의젓한 태도로 살 수는 없을까? 이희호 선생의 어떤 성취와 업적보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부럽다. 새해에는 여자 친구들과 함께 배포가 두둑하게, 여자답게 살아가는 법을 고민해보고 싶다. 배윤민정 작가, 글 쓰는 여성들의 공유 공간 ‘신여성’ 대표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