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김정임, 서인혜 #멋진 ‘언니’에게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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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김정임, 서인혜 #멋진 ‘언니’에게_3

2023-01-26T10:44:42+00:00 2023.01.26|

아침을 비추니 불안의 밤이 오는가. 그런 당신에겐 언니가 필요하다.
마음의 끈을 연결하고 싶은 멋진 여성들.

‘Finger Play-057’, 100×80cm, Digital Pigment Print, 2019

김정임

보통 사람 같은 건축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고 학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공교육과 사교육의 한가운데 내던져졌다. 그렇게 무심결에 엿본 교육 현장이 서글펐다. 어른을 위한 사무실이나 체육 시설에는 주목할 만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데 반해 아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나 학원은 가짜 재료로 조악하게 뒤덮여 있었다. 공간의 모서리까지 환하게 비추는 백열등까지. 아이들의 공간은 봉지 과자의 포장 재질인 폴리프로필렌처럼 저렴한 광택으로 빛났다. 우연히 기사로 2017년부터 서울시 교육청이 학교 공간 디자인 혁신 사업으로 진행한 ‘꿈을 담은 교실’ 프로젝트를 알았다. 20개 초등학교의 저학년 교실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이었다. 하나의 학교에 하나의 건축가를 매칭해주는 이 프로젝트의 총괄 건축가가 김정임 서로아키텍츠 대표였다. 그는 동답초등학교와 원효초등학교의 리모델링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러 사례 중 김정임 건축가가 진행한 교실 사진을 보고 마음이 일렁였다. 교실 자투리 공간에 두 개 층의 독서 공간을 만들거나 이동 통로로 사용하던 복도를 아이들의 러닝 존으로 계획해 교실이라는 경계를 지우고 아이들이 유연하게 그 선을 넘나들 수 있도록 했다. 그 공간이 더 놀라웠던 점은 아이들의 행동과 심리에 대한 한 건축가의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였기 때문. 수직으로 오르내리기, 수평으로 뛰기, 구석에 숨어 있기, 바닥 패턴을 따라 공간 이해하기 등을 좋아하는 어린이의 특징을 공간은 그대로 수용한다. 아이를 관리하고 감시하는 대상으로 바라본 게 아니라 공간의 주인으로 인식한 접근.

나는 그를 인터뷰하고 싶었다. 한 디자인 전문지를 발판 삼아 기회를 만들었다. 1969년생. 김수현 작가의 그때 그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남자 주인공 직업이 건축가인 걸 보고, 왠지 멋져 보여 진로를 정했다는 사람. 1987년 연세대 건축공학과에 입학, 그 후 바로 아르키움, 아이아크 등 굵직한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시작한 현실주의자. 그에게 새로운 문이 열린 것은 동년배 다른 한국 남성과 달랐던 유걸 아이아크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여성인 김정임 건축가를 파트너로 결정하면서부터다. 지금과 달리 건축업계에서 여성이 파트너가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던 시절, 크레딧에 그의 이름이 당당히 올라갔다. 그는 아이아크 건축사사무소 공동 대표 시절 서울스퀘어 리노베이션을 총괄했다. 기존 대우빌딩이 가진 일방적이고 거대한, 동시에 남성적이면서 직선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건물을 가볍게 만드는 미디어 파사드라는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추가해 21세기에 맞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건물을 제안했다. 한국 빌딩 거래 역사상 이른바 1조원 프로젝트였다. 매주 클라이언트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30대를 보낸 그는 자신의 언어로 건축을 대면하고 싶다는 생각에 2012년 서로아키텍츠로 독립했다. 45세. 조금 늦은 나이였다. 그는 오피스, 학교, 노인 시설 등 우리의 삶과 밀접하지만, 우리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공간에 관심이 많다.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거리며 더 나은 공간이 되는 방법을 모색한다.

지난 연말 오랜만에 김정임 건축가를 만났다. 일주일에 한 번 PT를 받은 지 10년 차. 데드리프트 중량을 50kg나 치던 게 버거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나보다 잘 쳐서…) 몸의 근육, 이전한 사무실, 입대를 앞둔 아들,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여러 근황을 나눴다. 보통 사람의 삶을 유지하면서 건축가로서 자아를 잃지 않는다는 것. 건축에 매몰되지 않는 이 여유로운 생각과 태도가 건축에 대해 다른 것을 가능하게 한다. 건축이 물질적, 언어적 구호가 아니라 그 안에서 움직이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와 호응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 그를 만나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꿈을 담은 교실 프로젝트를 할 때 만난 학교 선생님들이 ‘인생에서 처음 만난 건축가’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우리가 인생에서 처음 만나면 참 좋은 건축가, 김정임은 진짜 멋진 언니다.(중량도 칠 줄 아는) 임나리 워드앤뷰 대표

서인혜

복원된 여성의 시간 ‘글쓴이가 존경하고 닮고 싶은 여성 작가, 멘토가 될 수 있는 여성 작가를 소개’한다는 기획 의도를 듣고 고민하다 슬며시 ‘작가’라는 단어를 지워보았다. 한 작가에게 끝없이 영감을 주는 ‘여성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그녀들에 관한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방향을 살짝 틀어 자기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여성의 삶을 현재에 이식하는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를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인혜가 주목하는 여성들은 작가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니다. 작업은 음식점을 운영하던 어머니의 노동을 관찰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김치를 버무리고 음식을 만들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머니의 가사 노동과 음식 만들기는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일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다 보니 어머니의 어머니인 할머니에게도 눈길이 갔다.

김치 국물 같은 붉은색이 염색된 한지와 천을 이용해 ‘버무려진’ 연작(2018)을 발표한 뒤, 서인혜는 삶의 시간을 함축하는 소재로 할머니들의 옷(의 문양), 주름진 피부, 나무껍질과 돌을 선택하게 되었다. 작가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대전, 청주, 양구 등에 머물게 되었고, 그곳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할머니들의 옷은 신기할 정도로 밝고 요란했다. 작가는 왜 그런 옷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할머니들을 찾아가 질문했고, 관계를 쌓으며 그녀들의 삶을 들었다. “할머니들은 자신이 겪은 크고 작은 사건, 노동,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듣다 보면 자연히 존경과 애틋함의 감정이 일어난다. 누군가는 21세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길 수 있지만 나(우리)의 삶과 할머니들의 삶은 이어져 있다. 다르지만, 닮은 부분도 많다.” 이후 작가는 주름진 피부를 덮고 있는 옷의 화려한 문양을 천에 그려 병풍 같은 설치물 ‘버무려진 막’(2019)을 만들었다. 다음 해에는 한지에 문양을 그리고 할머니들의 소지품, 작가가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눈 순간을 기록한 영상까지 모아 ‘몸빼 12곡병’(2020)을 완성했다.

서인혜는 자신의 작업에서 물질적 결과물보다 할머니들과 함께한 시간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작가는 할머니들을 단순히 작업의 소재로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 특별한 계획이나 의도를 배제한 채 흘러가는 대로 할머니들과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일손을 보태고 식사도 같이 하면서 할머니들의 시간에 녹아들었다. 한편 주름과 굳은살이 박인 할머니들의 손을 보며 마을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보호수를 떠올린 작가는 수집한 나무껍질과 한지 등을 결합해 나무둥치를 만들었고, 2021년부터는 세월의 주름을 함축하는 돌을 한지로 뭉쳐 만든 ‘옥으로 련ㅅ고즐’(2021~2022), ‘딩아 돌하’(2022) 등을 선보이고 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모두의 삶은 다사다난하고 그 안에는 희로애락이 담긴다.

이후 작업의 주제는 두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하나는 생과 죽음의 반복이라는 자연의 섭리다. 작가가 할머니들에게 자주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이제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삶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나무인 웅상(雄常), 오색 돌을 반죽해 하늘의 구멍을 막은 여와(女媧) 신화, 고려가요인 ‘정석가(鄭石歌)’와 만났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작가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방향은 언어화할 수 없는 무언가를 시각화하기다. 노환으로 정확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할머니를 마주한 작가는 나지막한 흥얼거림이나 노래의 읊조림만으로도 소통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어화되지 못하는 영역에 머무르며 주변으로 밀려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에 등장하는, 정음이 아닌 미분음(주변음)을 포용하고 연결해주는 장식음인 시김새를 들려주는 영상 작업”으로 그들의 삶을 은유했다. 여성에서 시작된 작업이 사회적 통념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는 “객체와 객체, 주변과 주변을 연결”하게 된 것이다.

서인혜의 작품 앞에 설 때마다 작가가 나이 들어 작품 속 할머니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을지, 누구와 소통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기대된다. 그때가 되면 이 젊은 작가도 누군가의 멋진 멘토가 되어 있지 않을까. 이문정 미술 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