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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힙합의 A 리스트, 에이위치

2023.02.13

by 김나랑

    일본 힙합의 A 리스트, 에이위치

    지금 일본 힙합의 A 리스트가 누군지 묻는다면, 에이위치다. 그는 힙합에 받은 구원, 누리는 영향력을 아이들에게 돌려주려 한다.

    푸퍼 재킷, 레깅스는 넨시 도자카(Nensi Dojaka at Nubian Shibuya Womens).

    최근 일본 힙합에 다시 관심이 생겼다. 지난 몇 년간 일본 힙합의 흐름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제이피 더 웨이비(JP THE WAVY), 오즈월드(OZworld), 렉스(LEX), 옐로우벅스(¥ellow Bucks) 등 새로운 젊은 래퍼들이 이끄는 움직임이 꽤 멋져 보였다. 그리고 이 물결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에이위치(Awich)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요즘 일본 힙합 넘버원이 누구야?” 나의 대답은 늘 이랬다. “어, 에이위치야. 근데 여성 래퍼 중에서가 아니고 남성, 여성 통틀어서 그냥 넘버원.” 그는 일본에서 각종 패션지의 커버를 장식하고, 여러 브랜드의 초청 리스트 1순위다. 그야말로 뜨겁다. 에이위치를 시부야에서 만났다.

    음악에 대해 글을 쓰고 인터뷰하는 일을 해오며 수많은 아티스트를 직접 만나거나 관찰해왔다. 그러다 보면 어떤 아티스트가 인생의 절정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다. 최근의 에이위치가 바로 그런 존재다. 시부야를 직접 걸으며 각종 빌딩에 붙어 있는 에이위치의 얼굴을 목격한 순간 추측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렇다면 에이위치 자신도 지금을 프라임타임으로 여기고 있을까. “아, 그래미 어워드도 받고 싶어요.(웃음) 지금이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겨우 제 팀이 생겼고, 이제 막 모든 사람이 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새롭게 여러 가지를 하려고 노력하는 시점이라고 할까요.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돌이켜보면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제가 해온 것 중에선 지금이 베스트가 맞아요. 하지만 이 베스트를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에이위치의 음악을 논할 때 프로듀서 차키 줄루(Chaki Zulu)를 빼놓을 수 없다. 일본 매체에 실린 두 사람의 대화를 읽어본 적이 있다. 음악에 대한 고민을 섬세하게 주고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까지, 이런 부분까지 고민하고 챙기는구나 하며 놀라기도 했다. 이 과정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즐기는 건지, 아니면 힘들고 부담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음… 괴로운 부분도 있어요. 그래도 제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제대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곤 해요. 보다 많은 사람이 제 음악을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목표가 있기에 모두의 의견을 듣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피드백을 듣고 다시 만들어야 하는 괴로움은 있지만요. 때로는 팀원들도 힘들 거예요. 제게 냉철한 피드백을 주면서 고통을 느끼기도 하겠죠. 하지만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혼자는 불가능한 일을 많이 이뤄낼 수 있었어요.”

    에이위치는 오키나와 태생이다. 그의 음악을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면 오키나와를 향한 사랑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일본 힙합 신에는 오키나와 출신 래퍼들이 꽤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도쿄를 중심으로 한 일본 힙합의 흐름과 조금 다른 움직임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오키나와에는 미군 기지가 있어요. 미국이 가깝고, 바로 눈앞에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생활 속에 미국이 스며들어 있었죠. 음악도 그렇고 스포츠도 그렇고요. 실제로 저를 포함해 오키나와 출신 래퍼들이 굉장히 많아요. 우리는 일본의 다른 지역과 감각이 다른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에이위치의 말을 듣고 문득 영어 발음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다. 일본에는 영어를 발음하는 일본만의 방식이 있다. 하지만 에이위치의 발음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도 오키나와와 관련이 있는지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 미군 기지에서 영어 회화 수업을 받았어요. 미국인 선생님으로부터 영어 가사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죠.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에 일찍부터 발음이 아주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발음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뭘 말해도 촌스러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에이위치는 일본어뿐 아니라 영어에도 능숙하다. 랩도 일본어로 할 때가 있고 영어로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언어는 태도를 지배하기 마련이다. 당장 나만 해도 도쿄에서 일본어를 구사할 때면 갑자기 공손해지는 자신을 느낀다. 그렇다면 어떤 언어로 랩을 하느냐에 따라 에이위치의 태도나 마음가짐도 달라질까.

    “일본어로 랩을 할 때는 주어를 너무 사용하면 타이르는 말투처럼 돼버려요. 일본어는 ‘나’나 ‘너’를 잘 말할 수 없는 문법이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부분을 의식하면서 가사를 자연스럽게 전달할지 신경 쓰고 있어요. 반면 영어를 쓸 때 대체로 일본인은 영어에 강하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알기 쉬운 영어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영어는 태도나 강함을 표현할 때 심플하고 확 와닿는 효과를 낼 수 있기에 일부러 그런 점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한국어도 배우고 싶군요.(웃음)”

    일본어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당연히 일본 사회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졌다. 대체로 일본은 여성 인권이 낮은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일본에는 ‘모두 똑같이 합시다’라는 풍조가 있어요. ‘여자는 이렇습니다’ ‘남자는 이렇습니다’ 같은 교육이 강했고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강요 같은 게 존재해왔어요.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이 타인과 뭔가 다르다고 느낀 사람들이 고통받아왔죠. 하지만 그런 구분이 결국 없어지고 다름을 깨닫는 게 중요해요. ‘그런 구분이 필요해?’ ‘왜 그렇게 해야 해?’라는 말 한마디만 들어도 구원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저의 음악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에이위치는 래퍼로서, 특히 여성 래퍼로서 고민해왔다. “일단 저는 가까운 미래에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구분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여성의 목소리가 부족했죠. 그렇기에 지금까지 없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내 역할이에요. 그러면서도 ‘날 여성으로만 보지 마’ 싶을 때도 있어요. 사람들이 저를 두고 여성 래퍼 가운데 최고라고 말하는데 그런 구분 없이도 충분히 승부할 자신 있어요. 아무튼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고, 여성 래퍼 가운데 최고라는 수식어는 앞으로 사라질 거예요.”

    에이위치의 ‘Link Up’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Thanks to Hip-hop’이라는 후렴구 가사는 언제 들어도 왠지 모르게 뭉클하다. “힙합 덕분에 각 지역에 얽힌 이야기가 알려지죠. 여러 지역의 래퍼들과 만나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내용을 이해하면서 그 지역을 알게 되는 거죠. 그런 점이 힙합의 독보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힙합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에 감사해요.”

    래퍼들은 힙합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말하곤 한다. 에이위치도 힙합에 구원받았다고 여길까. “그렇다고 생각해요. 힙합은 미국 흑인들이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에 탄생시킨 음악이잖아요. 그 탄생 과정에 어떤 힘이 담겨 있어요. 그러니까 소리 없는 자들의 소리, 그것이 바로 힙합이에요. 안식처가 없는 사람들, 억압된 사람들이 소리를 내기 위한 음악이 힙합이잖아요. 모두가 그것에 구원받았을 것이고 고마워했을 거예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에이위치는 자신의 영향력과 힘을 고향인 오키나와에 바칠 거라고 덧붙였다. “오키나와의 어린아이들은 일본에서 가장 빈곤하게 살아요. 스스로 선택한 삶이 아님에도 고통받고 있죠. 이유를 생각해봤어요. 오키나와에는 ‘되고 싶은 내가 될 수 있는’ 구조랄까, 그런 세계관이 아직 없어요. 원하면 뭐든 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없죠.그 부분에 제 힘을 바치고 싶어요. 오키나와의 어린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나 제도를 만들어서 그들에게 꿈을 가질 수 있는 세계관을 심어주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거예요.” (VK)

    피처 디렉터
    김나랑
    김봉현(힙합 저널리스트)
    사진
    Arisak
    스타일리스트
    Masataka Hattori
    헤어
    Hori(Be Natural)
    메이크업
    Chihiro Yam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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