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패션 피플이 ‘안티 패션’에 찬성하는 이유

2023.02.15

by 신은지

    패션 피플이 ‘안티 패션’에 찬성하는 이유

    Helmut Lang 1998 F/W Collection. Vogue Runway

    패션 피플이 ‘안티 패션’에 찬성하는 모순적 이유.

    이제 패션계에서 뽐내던 모든 것들이 쉴 때가 된 듯하다. 레드 카펫을 제외하고, 지나친 화려함과 대담함을 좇는 것은 재택근무와 끝을 모르는 신종 전염병 창궐, 틈틈이 우리를 압박하는 인플레이션과 같은 이 시대의 우울한 행로와 맞지 않아 보이니 말이다. 지난해부터 나는 안티 패션에 가장 많이 끌렸다. 이를테면 누구에게도 국한되지 않는 동시에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옷(M15 재킷, 워크 셔츠와 팬츠 등)을 비롯해 아워레가시,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의 일부 옷, 르메르, 마가렛 호웰이 눈에 들었다.

    나는 아워레가시의 룩북을 훑어보면서 ‘당신은 무엇을 입고 있는가?’보다 ‘당신은 누구인가?’를 물었다. 마지막으로 일어난 때를 기억할 순 없지만, 지금 이 은밀하게 매력적인 안티 패션 트렌드를 추구하는 옷의 등장은 심히 의미심장하다. 코로나로 인한 봉쇄 기간에 패션 산업의 충격적인 변화를 둘러싸고 아주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가상현실이 아닌 진짜 현실의 봄 시즌이 다시 돌아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전형적인 상태로의 회귀는 재설정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기존 시스템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가치 중심의 산업을 육성하려면, 우리는 스타일에 본질이 따라야 하며 개인이 뭉치면 그들이 수집했거나 ‘좋아했던’ 대상보다 더 큰 시너지를 지닌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안티 패션의 정상화를 통해 그 지점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른다.

    안티 패션이란 뭔가? 우선 그것은 모순어법이다. 모든 하위문화에서 그렇듯, 일단 패션으로 인정되면 그건 그냥 분명한 패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돋보이는 것과 관련된다. 안티 패션은 1970년대에 뿌리를 두며 히피의 반소비자주의자(Anti-consumerist) 메시지뿐 아니라 남자 디자이너가 지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브래지어를 태우던 페미니스트의 메시지와도 연관된다. 세퍼레이츠 스타일 의상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도 1970년대와 관련성을 지닌다. 믹스, 매치, 미스 매치의 선택이 당신에게 달려 있다.

    그런지 룩과 비슷한 스타일인 놈코어 룩 또한 안티 패션의 틀에 딱 들어맞는다. 1990년 <옵저버>에 그런지 룩에 관한 글을 기고했던 저널리스트 니콜라 진(Nicola Jean)은 이렇게 말한다. “그 옷이 안티 패션으로 불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되레 반대의 매력을 지닌다. 대중이 각인하도록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한 집단의 일원을 구분하도록 의도한, 하나의 또래를 대상으로 하는 좀 더 미묘한 방식의 소비 형태다.” 즉 안티 패션은 아웃사이더 집단을 위한 것으로, 산업 규범을 거부하고 개인의 창의성을 선호해 다름에서 특별함을 찾는다.

    세련되게 디자인한 찢어진 청바지와 함께 매치한 스웨터로 꾸민 반(反)-매력에는 어느 정도 가식이 딸리기 마련이다. 그런지 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일부 사람들은 패션 허무주의를 느꼈다. 여성스러운 미적 감각을 지닌 일류 디자이너 빌 블래스는 1996년 <인디애나폴리스 스타> 인터뷰에서 “내가 패션계에서 활동하면서 패션이 이 지경에 이를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라고 한탄했다. “우리가 자라면서 싫어하고 부정하도록 길들여진 그런 거죠. 칙칙한 색상의 단조롭고 따분한 옷을 사는 일에 낚일 여성이 있을 리 없어요. 그들이 이 이론을 계속 조장한다면, 디자이너가 다 없어지고 말겠죠.”

    물론 디자이너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늘고 있다. 엔할리우드(N.Hoolywood)의 다이스케 오바나(Daisuke Obana) 같은 일부 디자이너는 비교적 특색 없고 기능적인 옷의 자유를 탐구한다. 최근 나는 이메일을 통해 오바나에게 사람들이 옷의 실용성을 다시 추구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요즘은 사람들이 패션을 통해 보이는 방식으로 성격을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죠”라고 답했다. “예전에는 ‘패션을 즐기는 것’이 삶의 일부였지만, 요즘은 삶을 즐기고 싶다면 돈과 시간을 다른 것에 쓰고 싶을 겁니다. 패션이 더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즉 기능성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피해요. 한편으로는 꾸며 입는 패션이 더 급진적으로 증가할 수도 있겠죠.”

    뽐내는 패션 부류를 부추기는 것은 셀럽 문화와 소셜 미디어다. 나에게 그건 마케팅의 허울이고 속임수에 불과하다. 서브팝(Sub Pop)의 공동 설립자 조나단 포네만(Jonathan Poneman)은 <보그>에 “그런지 룩은 돈이 있는 것처럼 보이길 원치 않던 참회하는 분위기의 1990년대 특유의 스타일로 귀결됩니다”라고 말했다. 불확실한 이 시대에, 과시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려면, 우리는 그 일을 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여야 할지도 모른다. (VK)

    에디터
    신은지
    Laird Borrelli-Per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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