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아이템

가장 좋아하는 향수가 단종된다면?

2023.02.15

by 송가혜

    가장 좋아하는 향수가 단종된다면?

    가장 좋아하는 향수단종되면
    우리가 잃는 것들.

    Getty Images

    나는 늘 뭔가와 사랑에 빠진다. 사람, 장소, 향기… 어떤 것도 가리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사랑의 대상을 최대한 가까이 두고 싶다. 한 번의 키스에, 한 번 분사한 향수에 영원을 담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대개 삶에는 다른 계획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뷰티 & 향수 전문 작가로서 뷰티 제품과 나의 개인적인 관계를 조사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피부 깊숙이, 그 이상 수준으로 컬러나 향기와 유대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던 향수가 단종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겠나!

    더 새롭고 더 흥미로운 제품에 자리를 내주며 단종되는 뷰티 제품이 매일 나온다.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애정을 담았던 향수인 바이레도 ‘1996’이 매장 진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은 그 어떤 제품의 단종 소식보다 큰 충격이었다. 그 향수는 내게 그저 그런 제품 중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향기는 어떤 카테고리보다 더 개인적인 면을 띤다. 향은 과거와 연결되고, 우리를 다른 시간으로 옮겨놓기 때문이다. 그건 다른 장소와 다른 상황, 다른 사람과 얽혀 향기와 감정 사이의 관계를 불가분의 것으로 만든다. 대체 왜 그럴까? 과학적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여기서 후각 신경구가 중추적 역할을 한다. “향기 분자는 콧속 통로를 떠다니다 후각 수용기에 접촉합니다.” 후각 기술 연구 전문가로, 감각 경험 구축 기업 ‘퓨처 오브 스멜(Future of Smell)’의 설립자 올리비아 제즐러(Olivia Jezler)가 설명했다. “이 수용기가 활성화되면 기억 처리, 연상 학습,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일부분에 전기적 신호를 보냅니다.” 그녀에 따르면 다른 감각과 달리 후각은 뇌의 이런 부분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녀 향기가 빠른 반응을 촉발할 수 있다. 하버드대에서 분자 및 세포 생물학을 가르치는 벤카테시 머시(Venkatesh Murthy) 교수는 뇌가 밀접한 관계를 맺는 방식이 그런 연관성의 발판을 마련한다고 이야기한다. “냄새는 자전적 기억, 특히 전형적으로 인생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경험한 것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 같아요.” 머시 교수는 덧붙였다. “향기 정보를 처리하고 전달하는 뇌의 부분은 기억 및 감정과 관련된 부위와 가까이 연결돼 더 쉽게 서로 소통할 수 있죠.”

    우리와 가장 좋아하는 향기의 연관성은 각인된 듯하다는 말이 타당해 보인다. 향기를 기억하는 능력은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별개의 현실에 살면서 순간적 데자뷔를 경험할 때처럼, 과거뿐 아니라 당시에 느낀 감정으로 당신을 곧장 이끌고 가는, 시간 여행과 순간 이동이 뒤섞인 것처럼 말이다. 2014년 나의 작은 아파트에서 ‘1996’의 향을 처음 맡은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향기를 바라보는 시각과 스스로를 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으니까. 이전까지도 향수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작가로서 경력을 쌓아왔다. 하지만 그 향수는 처음 맡는 향이었다. ‘1996’은 가죽과 바이올렛, 오리스, 앰버, 파촐리, 바닐라 등이 혼합된 따뜻하고 고급스러운 향이었다. 부드러운 버터색 빈티지 스웨이드 재킷처럼 느껴졌다. 달콤함과 향미를 살짝 곁들인 이 향수가 가죽 재킷처럼 피부에 거의 녹아들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매혹적이고, 신비롭고, 최면을 거는 듯했다. 그리고 내 안의 깊은 무언가와 연결되었다. 인력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사랑에 몇 번이고 빠질 때처럼 가슴이 벌렁거렸다. 물론 그 전에도 내가 좋아하던 향은 있었다. 하지만 ‘1996’은 내가 스스로의 미래를 바라보는 방식이 되었다. 당시 내게 이 향수가 적합했는지 확신할 순 없지만, 나는 딱 그 향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나는 그렇게 그런 사람이 된 것 같다.

    매장 진열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향수가 사라지는 것이 세상의 종말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이 끝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나의 세상’은 종말에 이르고 말았다. 바로 내가 나 자신을 위해 구축한 세상이 그런 처지였다! 뷰티와 향수는 그 무엇보다 보이는 방식 그 이상이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보내는 일종의 러브 레터이며, 우리가 세상을 만나는 방식을 다루는 지도다. 또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윤곽선을 스케치한다. 그 라인의 속을 비로소 채울 때까지. ‘1996’의 향을 처음 맡은 순간부터 경건한 마음으로 어김없이 뿌렸다. 결국 얻게 된 꿈의 직장에 입사하기 위한 면접을 봤을 때, 그 일을 시작하기 위해 새로운 도시로 이사했을 때,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와 그 관계가 모래성처럼 무너졌을 때, 그리고 새로운 사랑이 또다시 찾아왔을 때 그 향수를 뿌렸다. 계속 뿌렸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결국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런 제품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글쎄, 네가 좋아하는 또 다른 향수를 찾아봐’와 같은 명확한 해결책은 없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 끝낼 향수가 아니었다. 나는 다양한 향수를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충분했던 적이나 있을까? 어떤 대상을 비슷한 것으로 대체할 수 있고 인생의 공허한 공간을 일부 메울 수 있다. 하지만 절대 갈망이 완전히 채워진 적은 없었다.

    우리에게는 아주 다행스럽게도, 사랑처럼 향기도 인생 전반에 걸쳐 몹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매번 다르다. 두 번 다시 같을 수 없다는 뜻이다. 향기처럼 사랑도 고유하고, 그것이 사라지면 실제로 복제될 수 없다. 흉내 내거나 복사하려고 시도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잃은 것을 돌이켜보는 것 외에 어떤 것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뭔가가 사라지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향기는 과거를 담은 타임캡슐 그 자체다. 특정한 과거의 삶으로 당신을 다시 데려다줄 수 있다. 잿더미 속에 영원히 보존되었던 서로 껴안고 있는 폼페이 커플 또는 호박 속에 굳어진 선사시대 곤충처럼 종종 관계를 소중히 보호하기도 한다. 향기는 당신의 과거에 접근시켜주는 전선관이며, 잠깐이나마 원래의 것만큼 실재적이다. 힘이 미치지 않는, 또 다른 평행 우주처럼 말이다. 당신과 다른 차원 사이에 가늘고 얇은 막이 있고, 향기만큼 가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 그 사이를 유일하게 통과할 수 있다.

    삶의 많은 부분과 연결된 향기가 없어지면, 그 나머지는 어디로 갈까? 그것이 즉시 소환하던 모든 기억, 휘발유에 닿은 불처럼 점화할 수 있던 모든 감정은 어디로 갈까? 모든 것이 그러하듯 향기는 우리에게 영원히 지속되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자신에게 있는 동안 그것을 누려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듯하다. 향기와 기억 간에 형성된 신비한 힘은 특별하다. 매우 진귀하다. 그래서 어쩌면 준비 없이, 그 순간 우리가 즐겨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가치는 놀랍고 인정할 만하다. 또는 그것은 기억이 향기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하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일부 기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그래서 희미해지는 기억도 있겠지만, 당신에게 남아 있는 기억은 붙잡을 만한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 내가 늘 사랑에 빠져 있다면, 새로운 추억을 쌓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1996’의 마법은 시간이 흐르면서 없어져도 나는 다음에 사랑하게 되는 향기를 통해 최고의 마법을 확보하기 위해 또다시 시도할 것이다. (VK)

    에디터
    송가혜
    Tynan S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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