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소설가의 산문집 3

2023.02.22

by 이정미

    소설가의 산문집 3

    소설가의 사적인 문장을 탐독할 수 있는 신간 세 권을 소개합니다.

    <가만한 지옥에서 산다는 것>

    차분하고도 강렬한 제목이 시선을 끄는 <가만한 지옥에서 산다는 것>은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해 지난 2020년 첫 소설집 <아이젠>을 펴낸 1993년생 젊은 소설가 김남숙의 첫 번째 산문집입니다. 2020년 민음사 블로그에 ‘진탕 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글에서 출발한 이 책은 첫 소설집을 묶은 뒤 찾아온 생활의 변화와 그와는 무관하게 오래 이어져온 감정의 파고, 소설을 쓰는 일과 읽는 일, 그 반대편에서 꾸려지는 생활의 일 등이 담겨 있습니다. 혼자임을 견딜 수 없지만 동시에 혼자 있음에 안도하며, 우울과 비관으로 성실한 생활을 이어가고, 온 힘을 다해 웃는 동시에 비어져 나오는 울음을 참아내는. 담담한 얼굴로 가만한 지옥에서 사는 작가의 일상은 그의 소설과 무척 닮아 있는데요. “내 생각과 이야기를 드러내고 싶고, 그것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썼지만, 어떤 날은 내가 그런 글을 썼다는 사실이 무서워진다”는 책 속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소설 쓰기에 대한 회피를 자각하며 써 내려간 이 산문집에서는 소설에 대한 작가의 진심과 애정이 역설적으로 엿보입니다.

    “나는 늘 소설이 나에게 가장 단순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면 오히려 나에게 가장 복잡한 숙제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늘 싫다와 좋다를 번복하며 말해왔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소설을 전보다 조금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이다지도 별로인 내가 그래도 나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소설이었다는 것을, 나는 잠깐 잊고 있었던 것 같다. (…) 어설프지만 나는 여전히 남몰래 사랑에 애쓰고 있다. 언제 다시 돌아갈지는 모르지만, 지금 내가 있는 지옥은 동전이 든 주머니처럼 조금은 가볍다.” – 작가의 말

    <작별들 순간들>

    1993년 <소설과 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독학자>, <뱀과 물> 등의 작품으로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배수아 작가가 신작 <작별들 순간들>을 출간했습니다. 소설가의 산문을 엮어 책으로 내는 방식에는 여러 매체에 실은 시의적 산문을 정리하는 것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컨셉 아래 써 내려가는 것,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요. 이 책은 후자에 속합니다. 작가가 살고 있는 베를린 인근 시골 마을의 오두막 정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긴 호흡의 산문으로, 한국문학에서 가장 낯선 존재로 여겨지는 배수아 작가 특유의 매혹과 비밀스러움이 가득한 문체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나는 아름답거나 감동적이거나 스며들거나 지적이거나 훌륭하거나 압도적인 글을 쓰기를 원하지 않는다고좋은 글이나 기억에 남는 글을 쓰기를 원하지 않으며 심지어 매혹적이거나 독특하거나 소름 끼치거나 아찔한 글도 아니라고문장 단위로 이루어지는 글을 쓰고 싶지 않으며개념과 철학으로 쓰기를 원하지도 않고그렇다고 전체와 통일과 조화의 글도 원하지 않는다고나는 연속성과 이야기의 문법을 피해 가기를 원하며구조와 플롯의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나는 그 무엇도심지어 내용이나 아름다움조차도 완성하거나 구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모든 것은 파편이었다단지 속삭임몸에서 울려 나오는 숨과 같은 속삭임물처럼 들어 올리는 속삭임글이 호흡하는 속삭임글을 해체하는 속삭임몸 없이 환하고 불완전한 사물과 같은하지만 속삭이는 사물인혹은 모순되고 파편적인 몸을 가진 소리…” – 134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건설 회사 직원에서 신문기자로, 다시 전업 작가로 업(業)을 세 번이나 바꾼 소설가 장강명이 글 쓰는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풀어낸 책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이 책에는 출퇴근을 하고 지루한 일상을 견디는 평범한 직장인과는 왠지 다를 것만 같은 소설가의 루틴, 그리고 창작과 돈벌이를 둘러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장강명은 이 산문집을 통해 처음에는 글만 쓰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생활이 막막했지만 작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을 바쳐 작품을 쓰는 소설가라는 직업이 헌신할수록 더 좋아진다고 고백합니다. 

    “소설을 쓸 때도 그런 자세다. 나처럼 강퍅한 독자가 책장을 넘기다 말도 안 된다며 콧방귀를 뀔까 봐, 읽던 책을 내려놓을까 봐 신경이 쓰인다. 첫 문장을 쓰기도 전에 이미 글의 성격이 ①~③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를 정하고, 마지막 문장까지 그 규정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쓴다. 원래도 소설을 쓰려고 거짓말을 지어낼 때 그게 그럴싸한지를 오래 따지는 편이었다. (…) 이 버릇이 더 심해져 요즘은 거의 강박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원고를 쓰다가 혼자 이건 아니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울산에 내려간 주인공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는 대목을 쓰면서 울산 고속버스터미널에 분식점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아보는 스스로를 자각했던 것이다. 그 정도는 그냥 지어내라고!” – 79~80쪽

    프리랜스 에디터
    이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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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 문학동네, 유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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