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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의 불편한 매혹

2023.02.23

by 이숙명

    ‘타르’의 불편한 매혹

    케이트 블란쳇이 또 한 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쥘까? 가능성이 높다. 영화 <타르>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리디아 타르’는 <토르: 라그나로크>의 헬라보다 훨씬 잔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진정한 마녀다. 극 초반 대담과 강연 장면에서 그는 자신만만하고 명석한 언어로 좌중을 휘어잡는다. 수트를 입고 삐딱하게 앉거나 선 자세, 금가루가 날리는 듯한 미소와 무대 뒤의 불안과 몰입의 희열을 수시로 오가는 표정, 오만한 목소리까지, 케이트 블란쳇의 초월적 매력이 긴 러닝타임을 한시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감독 토드 필드는 케이트 블란쳇을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으며 블란쳇이 거절하면 프로젝트를 포기하려 했다고 한다. 과연 이 역을 케이트 블란쳇보다 잘할 배우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리디아 타르와 사랑에 빠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여성이 들기에 가장 무거운 것이 지휘봉’이라는 농담이 있을 만큼 차별이 만연한 클래식 지휘 분야에서 성공한 여성 이야기라니, 진취적이고 임파워링되고 화려한 감동 휴먼 음악 드라마 같지만 <타르>는 전혀 그런 영화가 아니다. 리디아 타르는 실패한 인간이다. 그는 권력으로 타인을 지배하는 소시오패스고, 어린 여성들을 연쇄적으로 그루밍하다 버리는 권력형 성범죄자고, 피해자들을 모함하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파렴치한이다. 당황스러운 설정이다. 극 중에서 리디아 타르가 이름을 언급하기도 했고 대형 오케스트라의 여성 지휘자, 레즈비언, 레너드 번스타인를 추앙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타르의 모델이라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던 마린 알솝은 이 영화에 불만을 표했다. 마린 알솝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임윤찬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해 한국의 초보 클래식 팬들에게도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선데이 타임스> 인터뷰에서 “여성을 그 역할로 연기할 기회를 얻었는데 가해자로 만들다니”, “가슴이 아프고”, “반여성적이고”, “개인적으로 공격을 받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만약 리디아 타르가 실존 인물이면 ‘어쨌든 실화고, 드라마틱한 소재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타르>는 픽션이다. 리디아 타르는 특정한 가치관 아래 의도를 가지고 창조한 인물이다. 정치인, 예술가, 엘리트의 권력형 성범죄가 대거 폭로되고 사회 윤리가 바뀌기 시작한 지 10년도 안 지났다. #미투운동이 지목한 가해자 대부분은 남성,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성을 #미투운동으로 몰락하는 성범죄 가해자의 위치에 놓는다. 굳이 가상의 캐릭터까지 만들어서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실제 여성 지휘자가 이 영화를 한 줌 여성 지휘자에 대한 공격으로 느낀 것도 이해가 간다. 정치인, 경영인, 작가라면 성공한 여자가 꽤 있으니 충격이 덜했으리라. 하지만 리디아 타르가 절대적 리더십을 가진 오케스트라 지휘자라서, 그리고 여성이라서 주제가 더 선명해지는 효과가 분명 있다.

    마린 알솝의 <선데이 타임스> 인터뷰에 대해 케이트 블란쳇은 마린 알솝을 존경한다는 말과 함께 “권력에는 성별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남성이 피해자였던 마이클 잭슨, 케빈 스페이시, 영화 <스포트라이트> 소재가 된 보스턴 대교구 사건 등이 증명하는 건 이런 범죄가 결국 성별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라는 것이다. 권력의 추가 기울어진 세계라서 성범죄 가해자의 절대다수가 남성, 피해자 절대다수가 여성인 것이지, 여성 권력자는 덜 타락할 거라는 믿음을 가질 근거는 희박하다. 실제로 성공한 여성 중에는 가족의 지위든 자기 재능이든 매력 자산이든 개인의 자원을 이용해 시스템을 넘어선 경험에 도취되어 페미니즘을 포함한 일체의 반체제적 사상에 냉담하거나, 사회의 포식자상에 스스로를 동화시켜 유사 남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도 많다.

    리디아 타르도 그렇다. 리디아의 주변인들은 그를 ‘마에스트라(여성형)’가 아니라 ‘마에스트로(남성형)’라고 부른다. 입양한 딸의 학교에 찾아가선 “나 누구 아빤데”라고 자칭한다. 그의 캐릭터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은 극 초반 강의실 신이다. 한 남학생이 자기는 “바이포크(비백인) 팬젠더(남녀 이분법을 벗어난 성 정체성)로서 시스 백인 남성 바흐에 흥미가 없다”고 하자 리디아가 냉소와 달변으로 그를 몰아붙인다. “네가 좋아하는 여성 뮤지션은 아이슬란드 출신 백인 핫 걸인데 그건 너랑 뭐가 비슷하냐?”는 식이다. 남학생은 울면서 강의실을 뛰쳐나간다. 이 장면에서 리디아는 인터넷 세대를 지배하는 정체성 정치, 예술가의 도덕성을 빌미로 그의 업적 전체를 지워버리는 ‘캔슬 컬처’에 강한 반감을 드러낸다. 그러다 결국 자신이 ‘캔슬’ 당한다. 짜깁기된 동영상 하나로 리디아가 실제 저지른 짓보다 더 가혹하게 조롱받게 되는 상황도 세태를 잘 반영한다.

    ‘캔슬 컬처’라는 소주제는 타르를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의 경력과도 관련이 있어서 흥미롭다. 케이트 블란쳇은 호주에서 예술학교를 졸업한 10대 후반부터 연극, 드라마, 영화에서 번번이 호평을 받으며 빠르게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다. 19세에 영화 <엘리자베스>(1998)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다. <반지의 제왕>(2001~2003), <에비에이터>(2004), <아임 낫 데어>(2007) 등 화제작도 많이 남겼다. 그러나 그의 경력은 흩어져 있었고, 케이트 블란쳇은 2013년까지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한 채 호주에서 생활했다. 40대 이후 경력이 꺾이는 다른 여배우들과 달리 케이트 블란쳇이 근래에 대배우로 인정받으며 끝없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데는 <블루 재스민>(2013)의 아이코닉한 연기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이 결정적이었다. <블루 재스민>의 감독은 우디 앨런이고, 만일 우리가 캔슬 컬처에 따라 성범죄자의 영화를 역사에서 몽땅 지워버리면 케이트 블란쳇의 그 눈부신 연기도 사라진다. 그레타 거윅은 과거 우디 앨런 영화에 출연했던 걸 후회하고 사과한 적 있는데 그야 케이트 블란쳇만큼 대단한 역할이 아니었으니 그럴 수도 있다. 한편으로 케이트 블란쳇은 <블루 재스민>으로 큰 주목을 받아 발언권이 강해졌을 때 여배우의 처우 문제와 성별 기회 불균등에 목소리를 높였다. <캐롤>(2015)의 유부녀 레즈비언 역으로 퀴어 커뮤니티에서 가장 사랑받는 배우가 되기도 했다. “J.K. 롤링이 트랜스포비아니까 <해리 포터>를 불태우자”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어째서 ‘성범죄자의 영화에 출연했으니까 케이트 블란쳇도 취소’라고는 말하지 않을까? 그 차이를 합리화하려면 어떤 단서가 더 필요할까? 배우는 작가, 감독의 대리인일 뿐이니까 오케이? 다른 좋은 일 많이 하면 작은 잘못은 괜찮나? 잘못의 크고 작음은 어떻게 구분할까? 아니, 애초에 잘못이랄 게 있긴 있었나?

    <타르>는 우리가 얄팍한 정의감으로 대충 덮어두었던 민감한 문제, 인정하기 싫은 우리 안의 모순을 건드린다. “음악은 질문이다”라는 <타르>의 대사처럼 이 영화도 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진다. 여성이 가해자일 때 피해자의 동지로서 권력형 성범죄 반대를 외치던 사람들은 어디까지 그를 내칠 수 있을까? 우리는 여성의 편인가, 약자의 편인가, 아니면 여성과 약자의 교집합, 다수 혹은 소수라는 다른 기준이 또 필요한가.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식으로 강간 문화를 옹호하는 남성들은 여성이 가해자일 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이 자신을 투영하고 이입했던 권위적인 범죄자의 모습을 그들이 경멸하는 다른 성별에게서 목격할 때도 여전히 이 문제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까? 한편으로 이 영화는 영화적 우아함과 아름다움, 강렬함을 갖추고 있다. 리디아 타르는 불쾌한 캐릭터지만 케이트 블란쳇은 그런 불쾌한 캐릭터들이 어떻게 주변을 매혹하고 지배하며 끝내 주변과 자신 모두를 폐허로 만드는지 완벽하게 납득시킨다. 이런 복잡하고 논쟁적이며 시대성 있는 인물을 연기할 기회가 남자 배우들에게만 주어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아쉽다. 결국 이것은 영화고, 케이트 블란쳇의 일이다. 영화가 던진 질문의 답을 찾는 건 관객의 일이다. 리디아 타르는 나쁜 인간이지만 음악의 답을 찾는 데는 충실했다. 우리도 그런 충실함으로 이 영화를 대해야 할 것이다.

    이숙명(칼럼니스트)
    사진
    네이버 영화 '타르' 공식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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