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의 패션 긍정주의
가장 동시대적 맥시멀리스트가 전하는 패션 긍정주의!
프란체스코 리소를 <보그>가 만났다.
1월의 마지막 날 오전 10시, 일본 도쿄의 국립 요요기 경기장. 복도로 향한 문이 열리자 트레이드마크인 장발을 싹둑 자르고 흰색 롱 코트 안에 새하얀 종이로 만든 옷(쇼가 끝나고 이 의상의 비밀을 알았다. 사람들의 사인을 모아 피날레 의상으로 착용한 것!)을 입은 프란체스코 리소(Francesco Risso)가 인사를 건넸다. 패션쇼를 하루 앞둔 얼굴은 가득 찬 기대감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2018년 이후 오랜만에 <보그>와 만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팬데믹 기간에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어떤 성찰이었나.
삶과 우리가 만드는 것들에 대한 것이다. 한 걸음 물러나 디자인에 대해, 그리고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각했다. 나는 굉장한 행운아다.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마르는 법이 없다. 그래서 헛된 것을 만들고 싶지 않다. 로고 스웨트셔츠 같은 무의미한 것들 말이다. 우리가 하는 작업은 수많은 세월의 경험과 노고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무엇을 만들든 늘 관심과 사랑, 열정을 동반한다. 이때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열정과 사랑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순간이라고 여긴다. 아! 생각 정리를 위해 음악 공부도 많이 했다.
첼로를 연주한다고 들었다.
첼로를 나름 오래 배웠는데, 정말 지독한 악기다. 공부와 연습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옷을 만드는 것도 비슷하다. 그 과정에 열정, 디테일, 관심을 전부 쏟아야 한다. 옷을 입는 사람을 위한 열정이고, 아름다운 순간을 보내는 사람을 위한 선물이다.
지난 며칠간 마르니 인스타그램을 통해 편의점에 가는 모델들의 모습 같은 일상을 담은 짧은 영상을 공개했다.
마르니의 여정과 관련이 있다. 지난 시즌은 뉴욕이었고 이번엔 일본이다. 사람들의 삶에 대단히 관심이 많다.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한 보기 좋은 것이 아니라, 실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하기 때문이다. 도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그들의 세상에 들어가서 대화를 시작한다는 개념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그 시작은 2021 S/S 시즌 ‘마르니 페스토’다. 팬데믹 시기에 세계 18개 도시에 사는 40명의 사람들과 함께 거리에서 런웨이 쇼를 진행했다. 그때 다양한 이들의 관점으로 브랜드를 해석하는 것의 미학을 알게 된 거다. 어렵지만 그를 통해 느끼는 성취감이 어마어마하다.
왜 도쿄인가.
현실적인 이유다. 브랜드 커뮤니티의 중심지로 온 셈이다. 동료와 친구도 많지만, 무엇보다 마르니가 크게 사랑받는 곳이다. 우리를 좋아해주는 이들에게 보답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특별한 시간을 갖기 위해 왔다. 이 순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한국에도 들를 계획인가.
당연하다. 사실 서울도 마르니의 여행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 아쉽게도 지금 당장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아직 기반을 다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서울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도쿄에 온 것도 여러 해에 걸친 소통과 수많은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패션쇼 장소로 국립 요요기 경기장을 선택했다.
지난해 10월 도쿄에 왔을 때 우연히 방문했는데, 마음에 쏙 들었다. 먼저 건축적인 면에서 그렇다. 외관은 장엄한 데 비해 내부는 아늑하다. 넓은 공간이 안아주는 기분이다. 쇼장에 들어와보면 느낄 수 있을 거다. 1962년 단게 겐조(Kenzo Tange)가 올림픽을 위해 설계했다는 점도 좋았다. 올림픽을 위해 관심, 사랑, 훈련이 필요하듯 우리 작업도 비슷한 방식으로 재편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이 경기장에 있다는 것이 꽤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정말 완벽한 장소다.
맞다. 정말 근사하지 않나. 디테일을 보면 그저 놀랍다. 조명도 그렇고, 목재 색상도 그렇고. 바닥이 최고급 마루로 되어 있어서 모델이 워킹할 수 없는 영역이 있지만, 그런 곳은 보호해야 한다. 정말 흥미로운 쇼가 될 거다. 무척 설렌다.
현재 지속 가능성은 세계적인 이슈다. 마르니가 제안하는 방식도 궁금하다.
한 시즌 만에 퇴색되지 않고 시대를 초월한 옷을 만들어야 한다. 소재도 중요하다. 현재 마르니 제품의 80~90%는 지속 가능한 원단을 사용해 만든다. 상당한 양이다. 날염, 프린트 방식도 신경 쓴다. 기존 컬렉션 업사이클링도 진행하고 있다. 페인팅이나 패치 작업을 새로 해서 세상에 하나뿐인 오브제를 만들고, 전 세계 마르니 매장에서 선보이는 등 다각도로 노력한다.
마르니는 색과 패턴, 특히 스트라이프가 빠질 수 없다.
스트라이프는 일종의 ‘유니폼’이다. 한번은 팀원들에게 우리의 상징적인 유니폼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모두가 단번에 스트라이프를 꼽았다. 마르니는 스트라이프를 과거에서 가져온 고전주의로 받아들여 선으로 이뤄진 경쾌한 유니폼을 만들었다. 스트라이프에 꽃이나 스튜디오에서 만든 페인팅을 맞부딪치게 하는데, 그런 충돌이 마르니의 정체성이라고 여긴다.
지난 시즌에는 이탈리아 선셋을 선보였다. 이번엔 어떤 팔레트를 보여줄 건가.
색을 결정하는 것에 규칙은 없다. 마르니 스튜디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에 달려 있다. 보여주고 싶은 아이디어가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번 시즌에는 ‘리듬’을 떠올렸다. 아주 선명한 색채가 있다.
페인팅을 활용한다는 것이 독특하다. 어떤 식으로 패션에 적용하는지 궁금하다.
우선 모든 것에서 손으로 직접 만든 느낌이 나야 한다. 빈티지 프린트를 찾기보다는 스튜디오에서 페인팅이나 드로잉을 하는 편이 더 실감 난다. 이렇게 탄생한 결과물을 생산 공정으로 옮기는 것을 시작으로, 원하는 실루엣에 맞게 조정하며 마무리한다.
아카이브에 푹 빠져 있다고 들었다.
광적으로 좋아하는 컬렉션이 있다. 특히 1990년대 초 컬렉션을 선호하는데, 대부분 아주 섬세한 소재를 사용하고 독특한 트리밍을 달았다. 아주 본능적으로 디자인한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이번 컬렉션에도 참고했다.
유니클로, 칼하트 등 많은 브랜드와 꾸준히 협업을 선보였다. 공동 작업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
‘서로에게 배우는 것’이다. 브랜드마다 각자의 방식을 가져오고, 그것을 합치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는 것을 보면 굉장히 흥미롭다. 많은 비밀이 공개된다는 점도 재미있다.
4월에 새로운 협업을 발표할 예정이다.
노 베이컨시 인(No Vacancy Inn)의 트레메인 에모리(Tremaine Emory), 에이드 오둔라미(Ade Odunlami), 브록 코르산(Brock Korsan)과 작업 중이다. 사실 넷이 모여서 즐기는 느낌에 가깝다. 참고로 6월에는 싱어송라이터 에리카 바두(Erykah Badu)와의 협업도 있다.
2023년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싶은가.
마음껏 즐기고 싶다. 삶은 모두에게 힘겹다. 나는 굉장히 운이 좋지만, 스트레스를 느낄 때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풀어내고, 끈기를 갖고 성찰하면서 즐겨야 한다.
<보그> 독자에게 이번 시즌 스타일링 팁을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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