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윈투어의 레터: ’보그’가 칼 라거펠트를 기억하는 방식
좋은 친구이자 완벽한 예술가, 역설로 가득했던 인물. 정말이지 칼 라거펠트는 다양한 면모의 소유자였습니다. 전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디자이너이며 극도로 사적인 사람이었고, 대중문화의 화려한 조명을 좋아하면서도 조용히 독서를 즐기는 지식인이었죠. 책상에는 책과 서류가 가득했지만 최신 기술을 가까이했고 패션은 박물관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바꿔 말하면 과거가 아닌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코스튬 인스티튜트에서 열리는 그의 회고전은 그 자체로 무척 역설적이죠.
이번 전시는 그의 마지막 역설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칼이라면 역설적인 방법으로 기억된다는 것, 전시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했을 겁니다. 물론 칼은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죠. 저 역시 이 멋진 전시에 작은 역할로 함께하게 된 것이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더불어 코스튬 인스티튜트의 멋진 큐레이터 앤드류 볼튼(Andrew Bolton)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앤드류 볼튼은 이번 전시의 제목을 ‘칼 라거펠트: 라인 오브 뷰티(Karl Lagerfeld: A Line of Beauty)’라고 지었죠. 직선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곡선이 더 많은 에너지와 생명력을 품고 있다고 믿었던 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칼 라거펠트가 패션계에 미친 혁명적인 영향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근사한 비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력적인 우여곡절과 변화로 가득한 영광스러운 삶을 살았던 칼 라거펠트. 찬사받아 마땅한 그의 삶을 기리기 위해 <보그> 역시 여러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먼저 샤넬과 끌로에, 펜디와 그의 레이블 ‘칼 라거펠트’를 통해 그의 지난날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라파엘 파바로티(Rafael Pavarotti)가 그의 디자인을 근사하게 사진에 담아주었고, 칼 라거펠트의 친구이자 뮤즈, 동업자인 아만다 할레치(Amanda Harlech)가 패션 에디터로서 함께했습니다. 칼을 추억하는 아만다 할레치의 글 덕분에 정말 고맙게도 그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습니다.
칼 라거펠트는 한순간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과거와 미래로 동시에 향하는 것을 추구했죠. 그래서 우리는 칼 라거펠트의 유산을 미래로 이어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정말 까다롭고 복잡하며 야심 찬 프로젝트였지만, 칼 라거펠트라면 아주 기꺼이 허락하고 추진했을 겁니다. 디자이너 10인에게 칼 라거펠트에게서 영감을 얻은 룩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고, 그렇게 탄생한 아름다운 작품을 칼 라거펠트가 가장 사랑했던 뮤즈들과 함께 파리 그랑 팔레에서 선보였죠. 칼 라거펠트가 여러 번 샤넬 쇼를 열었던 이 상징적인 장소는 현재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공사용 설비로 둘러싸여 안전모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웅장한 건축물에 애니 레보비츠와 패션 에디터 알렉스 해링턴(Alex Harrington), 모델 샬롬 할로우, 나오미 캠벨, 켄달 제너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모였죠.
그렇게 가장 칼 라거펠트다운 화보가 탄생했습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패션, 극적 분위기, 과거와 미래가 충돌하는 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미지가 그것이죠. 영화적 스케일과 친밀감이 동시에 깃든 애니 레보비츠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해지기까지 합니다. 칼 라거펠트와 끈끈했던 모델과 디자이너, 유명한 고양이 한 마리까지, 애니 레보비츠의 사진 속 주인공들은 칼 라거펠트가 건넸던 조언, 특유의 재기 발랄한 호기심, 주변 세계를 향한 끊임없는 관심, 그러니까 그런 그와의 우정 덕분에 행복했던 사람들입니다. 그의 인생에 보내는 헌사이자 가장 순수한 형태의 찬사로, 이렇게 칼 라거펠트를 향한 우리의 마음을 보냅니다. 우리 모두 그가 정말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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