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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아틀리에’에서 알게 된 것

2023.05.10

by 이정미

    ‘장인의 아틀리에’에서 알게 된 것

    20여 년 전 프랑스 각지의 아틀리에를 찾아다니며 일하는 장인들의 모습을 구석에서 유심히 관찰하던 유학생이 어느덧 중년의 작가가 되어 당시의 기록을 다시 세상에 꺼냈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미술사학자이자 장식미술 감정사로 활동하는 이지은 작가가 최근 재출간한 <장인의 아틀리에>가 그것이다.

    1999년 이화여대 졸업 후 파리로 유학을 떠나 프랑스 크리스티 경매 학교, 감정사 양성 전문학교 IESA를 거쳐 파리 1대학에서는 박물관학 석사 학위, 파리 4대학에서는 미술사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수료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파리로 미술 유학을 떠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 졸업 후 혼자 떠난 6개월간의 유럽 배낭여행에서 파리는 마지막 기착지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샤를 드골 공항의 크루아상은 그다지 맛있지 않은데, 재미있는 건 떠나기 전 공항에서 크루아상을 먹으면서 불현듯 파리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학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한 달 살기’ 정도의 가벼운 계획이었죠. 한국으로 돌아가 간단한 프랑스어를 배우고 수속을 밟아 두 달 후 다시 프랑스 땅을 밟았습니다. 그게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어요. 요즘은 한 달 살기처럼 현지인의 삶을 체험해보는 여행을 많이 하잖아요? 제 경험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어요.

    장인의 아틀리에를 직접 방문해 기록을 남기는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유학 시절 크리스티 경매 회사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파리 지부에서 공부하며 장인들의 아틀리에를 처음 접했습니다. 은공예나 목공, 유리 같은 장식미술의 세부 항목은 기술과 작업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가치와 예술성을 감정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이나 작업 과정은 말이나 글로는 전달이 어렵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주 3회 이상 아틀리에 수업을 진행했어요. 은공예 수업을 은공예 장인의 아틀리에에서 진행하고, 가구 감정 수업을 가구 제작 장인이나 실제 필드에서 일하는 감정사의 사무실에서 진행하는 방식 덕분에 생생하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프랑스어에 익숙지 못해 매일 방과 후 나머지 공부를 하는 신세였지만요(웃음).

    올봄 <장인의 아틀리에>가 16년 만에 재출간되었는데요. 이전에 출간한 책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16년의 세월은 이 책에 실린 장인들에게도 저에게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16년 전 저는 서른 살이었어요. 그때 장인들은 저에게 에베레스트의 산봉우리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그분들의 명성에 걸맞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를테면 클라브생을 만드는 레나르 본 나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참 지겹지, 지겨운 일이야”라고 했을 때 혹여 그 말이 누가 될까 봐 쓰지 않았죠. 16년이 지난 지금은 에베레스트 봉우리 아래 그림자가 보이고, 그 그림자 덕분에 봉우리가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책에는 그의 지겹다는 한탄을 넣었습니다. 매일 민들레씨 같은 나날을 쉼 없이 통과하며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서 지겹지 않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 하루하루가 모여 결국 태산 같은 경지에 이르는 장인의 길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리고 기술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는 살아 있는 장인들을 통해 후대로 전달되기도 하고 사라지거나 변화하기도 쉬운데요. 어찌 보면 미약하고 순간적인 아틀리에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 사진은 예전 것을 그대로 사용했어요. 책에 실린 곳 중 가구를 만드는 에베니스트인 미셸 제르몽의 아틀리에나 3대를 내려오던 마리셸 아틀리에는 사라졌지만, 아틀리에를 방문했던 그때 그곳에서 흐르던 공기와 냄새, 시간이 사진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책에서 <백과전서>가 이 책을 만드는 여정의 안내서와 다름없었다고 밝혔는데요. 취재하고 책을 구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나요? <백과전서>가 없었다면 이 책은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장인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의 가이드북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우선 이 책에 등장하는 장인 12명은 모두 <백과전서>에 나온 기술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들의 아틀리에에는 18세기 <백과전서>의 도판에 그려진 그대로의 모습이 살아 있어요. 타임 워프를 한 것처럼요. 장인의 몸에 올라타 세기를 거슬러 내려오는 기술에 대한 경이와 감탄이 이 책의 큰 축입니다. 또한 장인들과의 만남에도 <백과전서>의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장인들과의 대화는 쉽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진 기술과 좁고도 깊은 작업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공구와 도구를 부르는 특수한 이름, 세세한 작업 과정의 명칭을 알지 못하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장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동시에 늘 시간에 쫓기는 전문 직업인입니다. 그러니 그들 역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들에게는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요. <장인의 아틀리에>의 각 챕터 마지막에 <백과전서> 도판을 보여주고 설명을 적어놓은 페이지를 넣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장인들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가진 기술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이해 역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기술을 이어받아 후대에 전해줄 사람, 즉 기술의 운반자인 장인이 없으면 기술은 언제 존재했느냐는 듯 홀연히 사라진다”는 문장을 보고 뛰어난 기술을 가진 장인이 많지만, 그것을 잇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타피시에를 다룬 챕터를 보면 프랑스 역시 비슷한 문제가 있는 것 같고요. 빠름과 변화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 장인의 기술을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 어떤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어느 날 리본을 만드는 장인이 18세기 리본을 보여주면서 얘기하더군요. 그 리본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 이유는 이제 아무도 그 리본을 알아봐주지 않아서라고요. 프랑스와 우리나라 모두 장인을 후원하고 후계자를 양성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전시회를 열어 장인 문화를 알리는 등 여러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열쇠는 간단하다고 생각해요. 그 가치를 알아보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됩니다. SNS나 블로그의 포스팅 하나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그것들이 모이면 결국 부자와 기업이 장인들의 작품을 사고 후원하겠죠. 그 과정에서 주문이 늘고 아틀리에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후계자를 지원하는 이들도 생길 테고요. <장인의 아틀리에>도 그런 문화적 인식 제고에 기여했으면 해요.

    하나의 기술에 평생을 바친 장인들을 연구하며 발견한 그들의 공통적인 삶의 태도가 있을까요? ‘콩페탕스(Compétence)’에 대한 일념. 콩페탕스란 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역량을 뜻합니다. 기술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몸으로 익히는 건 지난한 일이죠.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라톤을 완주할 때마다 기진맥진해서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지?’라고 후회하지만 완주 후 욕조에 들어앉아 물집을 터트리는 시간이 오면 자기도 모르게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거야’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며 헤어 나올 수 없는 마라톤의 매력을 설명했습니다. 콩페탕스란 바로 이런 마음이에요. 다음에는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여든이 넘어 기술을 완벽하게 익힌 장인이 아틀리에를 떠나지 못하는 것 역시 콩페탕스에 대한 일념에서 비롯되죠. 영원히 미완성일 콩페탕스를 위해 그저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되뇌며 뚜벅뚜벅 걷는 것. 그것이 장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삶의 태도였습니다.

    장인에 대한 작가님만의 정의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장인’은 궁리나 가르침을 뜻하는 장인 ‘장(匠)’ 자에 사람 ‘인(人)’ 자를 붙인 단어입니다. ‘궁리하며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장인의 이미지란 고루하고 단절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를 증언하는 화석처럼 전통에 갇혀버린 이미지죠. 하지만 제가 만난 장인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장인들의 손에서 태어나는 것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기술과 사물이 아니라 막 태어난 신생아처럼 생생하게 소리치고 숨 쉬는 살아 있는 문화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인을 ‘과거와 오늘을 잇는 메신저’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가진 기술은 전통에서 비롯되었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오늘의 작품입니다.

    장인은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지만, 그들이 기술을 발휘하는 과정과 그를 통해 탄생한 제품은 예술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기술과 예술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기술과 예술은 본질적 측면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기술은 같은 작업을 반복해 몸에 익혀야 비로소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술과 비교하자면 매뉴얼이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은공예를 예로 들면 은을 녹이고 때리고 조각하는 방법은 18세기부터 지금까지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은공예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이 기술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기술을 모두 익혀 경지에 이른 은공예 장인이 작품을 만들 때 기술을 바탕으로 그만의 창의성이나 독창성을 더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공예품은 예술의 일부가 되죠. 아르데코 시대,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은공예품을 만들었던 장 퓌포르카의 작품은 오늘날 예술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 퓌포르카는 그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기 전 전통 은공예 기술을 모두 익히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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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타그램(@kkommmiii)을 통해 공유하는 파리 일상과 미술에 대한 노트를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최근 파리에서 주목할 만한 미술 공간이나 전시를 한국 독자에게 추천해주세요? 혹은 책에 나온 장인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을 추천해도 좋습니다. 파리의 전시는 크게 봄여름과 가을, 겨울로 나뉘어요. 올 봄 여름 전시 중에는 쁘띠 팔레에서 열리는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전과 오르세 미술관의 <파스텔(Pastels)> 전시를 기대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폴 스미스가 디렉팅한 피카소 박물관의 <Picasso Celebration : The Collection In A New Light> 전시도 매우 즐겁게 보았습니다.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의 중요성을 절감한 전시였어요. 한편 책에 나온 장인들의 아틀리에는 작업 공간이라 대부분 방문이 어렵지만 부채 장인 안 오게의 부채 박물관(annehoguet.fr)은 대중에게 열려 있습니다. 19세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에서 부채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브제 문화사 시리즈’, ‘사물들의 미술사 시리즈’ 등 집필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데요. 앞으로의 출간 계획이 궁금합니다. ‘오브제 문화사 시리즈’는 미식부터 뷰티, 패션까지 방대한 분야를 포괄하는 책으로 일종의 입문 개론 성격을 띠고 있어요. 1권 <귀족의 시대 탐미의 발견>은 중세부터 19세기까지, 2권 <부르주아의 시대 근대의 발명>은 19세기 오브제를 통해 당시의 생활상과 문화사를 이야기합니다. 언젠가는 3권에서 1920~1930년대를 다뤄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액자>와 <기억의 의자>, <오늘의 의자>가 출간된 ‘사물들의 미술사 시리즈’는 하나의 사물을 통해 서로 다른 시대상과 문화상을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올 연말에 <침대>를, 내후년에 <화장실>을 출간합니다. 이 외에 현재 파리의 제 아파트에서 프랑스 가정식을 만들어보며 프랑스의 식문화를 공부하는 ‘지은집밥’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요. 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사계절 재료와 가정식, 프랑스인의 삶을 소개하는 요리 에세이 북도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진
      이동섭,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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