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포르투갈 소도시에 문을 연 크리스찬 루부탱의 호텔

2023.05.23

by 류가영

    포르투갈 소도시에 문을 연 크리스찬 루부탱의 호텔

    크리스찬 루부탱이 디자인한 호텔 베르멜류 멜리드스는 포르투갈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동네 멜리드스에 자리한다. 새빨간 대문과 이탈리아 조각가 주세페 두크로트의 세라믹 장식으로 꾸민 고풍스러운 파사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포르투갈의 소도시 멜리드스와 사랑에 빠진 크리스찬 루부탱. 낭만과 역사가 깃든 이곳에 자리 잡은 그의 호텔 베르멜류 멜리드스가 드디어 새빨간 문을 활짝 열었다.

    루부탱이 디자인한 구두 밑창의 시그니처 컬러를 연상시키는 호텔 라운지의 다홍색 타일.
    주로 푸른색을 띠는 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 아줄레주(Azulejo)가 돋보이는 게스트 룸.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은 12년 전, 대서양 연안에 자리한 리스본 남부의 작은 마을 멜리드스(Melides)에 별장을 구입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집이었다. 딱 하나만 빼고. “아름다운 야경을 넋 놓고 바라보며 느긋한 저녁 식사를 즐길 만한 레스토랑이 없었어요. 저녁 식사를 음미하기에 좋은 공간은 분명 아니었죠. 가벼운 점심 한 끼 정도면 몰라도.” 곧이어 마을 끄트머리에 자리한 별다를 것 없는 작은 집을 발견한 루부탱은 그곳에 레스토랑을 열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멜리드스의 시장님이 제 고민을 듣더니 ‘아예 호텔을 하나 여시죠’라고 하더군요. 그 아이디어를 실현해보기로 한 거죠.”

    그렇게 루부탱의 시그니처 구두 밑창 컬러이자 빨간색을 의미하는 포르투갈어 ‘베르멜류’라고 이름 붙인 호텔 베르멜류 멜리드스(Vermelho Melides)가 문을 열었다.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수녀원을 연상시키는 건물은 실은 새롭게 지어진 것이다. 13개 객실과 스파, 위스키 바로 이루어진 호텔은 당연히 여유로운 저녁 식사를 만끽할 수 있는 레스토랑까지 갖췄다. 루부탱은 루시타니아 출신의 건축가 마달레나 카이아두(Madalena Caiado)와 오랜 친구이자 텍스타일 디자이너 캐롤리나 어빙(Carolina Irving)과 함께 호텔을 디자인했다. “고즈넉한 동네 분위기를 잇는 나긋나긋한 호텔을 만들고 싶었어요. 호텔에 들어설 때 쿵쿵거리는 음악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웅성이는 게 정말 싫거든요.” 호텔에 대한 루부탱의 철학이다. “호텔이라면 집에 온 듯한 느낌, 푹 쉴 수 있겠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해요.”

    베르멜류 멜리드스에 놓인 가구는 루부탱이 경매로 낙찰받았거나 여행 다니며 하나하나 모은 보물들이다. 전부 이 호텔을 위해 파리 외곽의 개인 창고에서 선별해 가져왔다. “어려운 결정이었어요. ‘전부 새로 사버릴까?’란 생각도 많이 했죠.” 덕분에 스페인 전통 가구인 바르게뇨(Bargueño) 캐비닛과 인테리어 디자이너 앙리 사무엘(Henri Samuel)의 아름다운 자수가 수놓인 벨벳 소파가 조화를 이루는 독창적인 광경이 탄생할 수 있었다. 2020년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사드루딘 아가 칸(Sadruddin Aga Khan) 왕자와 공주의 소장품도 호텔 맨 위층 스위트룸에서 만날 수 있다. “모든 오브제는 제 연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소중한 것들이에요. 그런 작품을 창고에만 보관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아깝죠.”

    객실 발코니의 간이 욕실.
    각진 접시 형태 천장이 흥미로운 또 다른 게스트 룸. 기하학적 디자인의 타일 벽과 원목 바닥이 독특하게 어우러진다.
    입체적인 형상의 조개껍데기 문양 트롱프뢰유가 호텔 로비에서 객실 복도로 이어지는 공간에 예술적인 생기를 불어넣는다.
    호텔 안뜰에 우뚝 선 부조 기둥은 주세페 두크로트가 디자인했다.

    호텔의 다른 공간을 하나로 묶는 테마는 당연히 ‘빨간색’이다. 복도에 깔린 타일, 창틀, 리넨으로 덮인 의자와 티슈 케이스 등 곳곳에 선명한 빨간빛이 등장한다. 물론 다른 색상도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주니어 스위트룸의 벽에는 그리스 아티스트 콘스탄틴 카카니아스(Konstantin Kakanias)가 매혹적인 바다색으로 그린 벽화가 펼쳐져 있다. 카카니아스는 LA의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Academy Museum of Motion Pictures)의 레스토랑 패니스(Fanny’s) 벽에 그린 예전 할리우드 스타일의 벽화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호텔 로비로 향하는 길에는 우아한 물빛의 초대형 세라믹 아플리케가 시선을 붙잡는다. 벌써 4대째 조각가로 활약하는 이탈리아 조각가 주세페 두크로트(Giuseppe Ducrot)의 솜씨다. 루부탱은 이탈리아 포시타노의 레 시레누세 호텔(Le Sirenuse Hotel)을 방문할 때 점찍어둔 두크로트의 독특한 작품에 매료돼 그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감귤나무, 우거진 수풀, 생경한 향기를 뽐내는 이국적인 식물로 가득한 푸른 정원은 루부탱의 오랜 친구이자 ‘AD100’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루이 베네크(Louis Benech)가 완성했다. 지난 연말, 루부탱은 호텔 개관을 축하하는 칵테일 파티에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직접 호텔 투어를 시켜주기도 했다. “주민들은 호텔이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더군요. 지금까지 들은 칭찬 중 최고였어요.” VL

    마티나(Matinha) 스위트룸의 모던한 벽난로 주변에 그려진 앙증맞은 벽화는 콘스탄틴 카카니아스 작품이다.
      사진
      Ambroise Tézenas
      Dana Thomas
      에디터
      류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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