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와인 대신 물을 택한 사람들

2023.05.26

by 류가영

    와인 대신 물을 택한 사람들

    와인 대신 물을 택한 사람들. 워터 소믈리에에게 물을 음미하고, 분석하고, 수집하는 즐거움에 대해 물었다.

    Robert Therrien, No Title(Large Wall Drop), 2017, Stainless Steel, 50.8×24×25.4cm ©Gana Art

    남자 친구는 물에 까다롭다. 항상 그랬던 건 아니다. 페리에(Perrier)든 사라토가(Saratoga)든 아무 상관이 없었던 그는 베를린에서 3개월을 보낸 후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그는 온갖 종류의 미네랄워터와 탄산수로 진열장을 가득 채운 베를린의 어느 ‘물 상점’에 대해 눈을 반짝이며 소개했고, 물에 대한 취향까지 털어놓았다. 목구멍 뒤쪽을 기분 좋게 간질이는 섬세한 기포를 품은 게롤슈타이너(Gerolsteiner) 셀처 탄산수가 가장 자기 취향에 가깝고, 그게 없으면 아쉬운 대로 기포가 크고 거칠지만 녹색 병의 산펠레그리노(S.Pellegrino)를 고른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건 마실 물을 신중하게 고르는 사람이 남자 친구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난 몇 년간 세계 곳곳에서 워터 소믈리에 신드롬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워터 소믈리에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이들은 병에 담긴 물을 고급 와인처럼 진지하게 맛보고, 물의 테루아르(Terroir, 기후와 지형, 포도밭의 토양 등 와인의 맛에 영향을 주는 여러 특성)와 오염도(Virginality)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를 즐긴다. 그뿐 아니다. 레스토랑에서 각각의 메뉴에 어울리는 물 리스트를 구상할 때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물 콘테스트의 심사위원으로서 물맛, 텍스처, 입안에서의 느낌에 대해 전문 평가를 내린다. 가격이 한 병에 300달러, 40만원에 이르는 무(無)맛의 빙하수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 빙하수의 가치에 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따져보도록 하겠다.) 배우 잭 에프론(Zac Efron)과 안나 켄드릭(Anna Kendrick) 등 여러 유명 인사 역시 워터 소믈리에 강의를 수강했다.

    내게 이 모든 이야기는 호들갑스럽게 들리기도 했지만 ‘파인 워터(Fine Water)’는 분명 유망한 시장이다. 탄산수, 셀처(탄산수에 알코올을 넣은 것) 미네랄워터의 판매량은 2019년과 2020년에 미국에서만 35억 달러, 4조6,511억원 규모를 기록했다. 이탈리아의 미네랄워터 테이스터 협회(Associazione Degustatori Acque Minerali), 독일의 되멘스 아카데미(Doemens Academy), 일본의 워터 소믈리에 협회(Aqua Sommelier Association)를 포함한 전 세계 물 전문가 협회를 통해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워터 소믈리에가 매년 꾸준히 배출된다. 2018년 설립된 미국의 파인 워터 아카데미(Fine Water Academy) 회원은 매해 10~12% 정도 꾸준히 증가했으며, 특히 2020년에 회원이 급증했다. 이곳에서 제공하는 2개월 코스의 자기 주도 교육과정에는 매번 50명 정도가 참여하는데 여러 시간의 물 테이스팅과 엄격한 시험을 포함한 전체 커리큘럼이 궁금하다면 웹사이트를 방문해보길 권한다. 개인적으로 어떤 물을 제대로 맛보려면 일시적으로 물 섭취를 중단하는 ‘수분 휴식(Hydration Breaks)’ 기간을 여러 번 가지라는 되멘스 아카데미의 조언은 무척 흥미롭게 들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내게 물은 그저 물이었고, ‘축축하다’는 내가 물의 질감에 대해 쓸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이었다. 팔레스타인과 필라델피아처럼 사람들이 오염된 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곳이 있는데 어떻게 물 한 병에 수백 달러를 쓰는 걸 옹호한단 말인가? 대체 물의 어떤 매력이 독일 교외 지역으로까지 건너가서 몇 주 내내 물맛만 보게 만드는가? 생명 활동에 필수적이며 어떤 곳에서는 점점 더 구하기 어려워지는 물을 그 정도 수준의 고급품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질문이 끝없이 떠올랐다.

    섣불리 판단하기 전에 나는 일단 워터 소믈리에와 직접 대화해보기로 했다. 파인 워터 아카데미의 공동 설립자이자 셀러브리티 마르틴 리제(Martin Riese)가 곧바로 떠올랐지만 그보다는 훨씬 직설적인 질문을 건넬 수 있는 친근한 워터 소믈리에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에서 워터 소믈리에로 전향한 아니스타샤 버락 바버(Anistacia Barrak-Barber)와 만났다. 그리고 그녀와 인터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물에 정말 진심이라는 것을 느꼈다. 버락 바버는 물의 순도와 미네랄워터가 지닌 치유 효과를 열정적으로 이야기했고, 물에 관심을 가진 계기도 말했다. “미네랄워터 마시는 걸 언제나 좋아했어요.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물을 종류별로 다 마셔봤죠. 그렇게 물의 매력에 빠지게 됐어요.”

    파인 워터 회사 설레이셔스 드링크스(Salacious Drinks)의 공동 대표 애슐리 에퍼슨(Ashley Epperson)도 다양한 물을 맛보며 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12년 전에 만난 남편과 함께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정말 다채로운 물을 맛봤죠.” 에퍼슨 부부는 이탈리아의 아쿠아 필레테(Acqua Filette), 뉴질랜드의 1907 스파클링 워터 등 구하기 힘든 물의 아름다운 형태와 디자인에 특히 매료되었다. 그리고 48종의 물을 판매하는 온라인 숍 설레이셔스 드링크스를 열었다. 에퍼슨이 회상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일을 전혀 납득하지 못했어요. ‘뭘 한다고?’ 다들 이런 반응이었죠(웃음).” 하지만 파인 워터 신드롬이 확산됨에 따라 설레이셔스 드링크스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2016년 부업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에퍼슨은 도매 거래 위주로 브랜드를 운영했다. 첫해 수입은 고작 9,000달러, 1,200만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판매액이 무려 31만 달러, 4억800만원까지 급증했다(심지어 구매자의 90%는 개인 소비자였다). 물론 이는 2021년 한 해에만 40억 달러, 5조 이상의 판매액을 기록한 네슬레 워터스(Nestlé Waters)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에퍼슨이 파인 워터 사업을 전업으로 삼게 한 데는 부족하지 않은 액수였다.

    물론 워터 소믈리에가 되는 길은 결코 녹록지 않다. 에퍼슨과 버락 바버 모두 각각 파인 워터 아카데미와 되멘스 아카데미에서 그들이 수료한 프로그램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에퍼슨은 16주간의 자기 주도 훈련 코스를 수료하는 데 2,200달러, 290만원을 지불했으며, 버락 바버가 되멘스에서 수료한 2주간의 심화 과정은 숙박비와 이동 경비를 제외하고 수강료만 2,500달러, 332만원이 들었다. 심지어 이들은 프로그램을 수료하기 위해 매일 10시간이 넘도록 공부에 전념해야 했다. 버락 바버가 말했다. “정말 엄격한 훈련 과정이었어요. 최종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기까지 수없이 많은 날을 눈물로 보냈죠.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은 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민하도록 훈련받는다. 혀끝에 약간의 기름기가 느껴지는가? 혹은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맛인가? 물에 들어 있는 혼합 미네랄 혹은 전용해 물질(TDS)이 어떤 잔여감을 남기는가? 더불어 수강생들은 다양한 종류의 물과 음식을 페어링하는 법을 배우고(미네랄을 많이 함유한 물은 스테이크의 짭짤함을 부각시키지만 생선 요리의 맛은 반감시킨다), 그에 대한 시험도 치른다. 물병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법(병의 라벨은 항상 바깥을 향해야 한다), 잔에 제대로 따르는 법(무슨 일이 있어도 물을 조각 얼음에 곁들여 내면 절대 안 된다. 얼음의 불순물이 물맛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에 대해서도. “와인과 똑같죠?” 버락 바버가 말했다.

    내가 인터뷰한 모든 사람이 한 번쯤 언급한 마이클 마스카(Michael Mascha)는 파인 워터 시장의 대부이자 그에 관한 해박한 책까지 펴낸 사람으로서 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에는 그 자체의 테루아르가 있어요. ‘테루아르’는 ‘땅으로부터’라는 뜻이고, 물은 그야말로 땅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그의 말이 허세 가득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해도 나는 여러분을 탓하지 않겠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수천 년에 걸쳐 특정 대수층(지하수를 함유한 지층)에 존재하는 미네랄의 특정 혼합물만 흡수해 독특한 맛과 탄산 함유량을 갖게 된 물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각각의 성분은 다른 곳에서 나오는 물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고유한 물맛을 만들어낸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 다른 물맛을 직접 음미해보고 싶은 갈증이 커져갔다.

    몇 주간에 걸친 워터 소믈리에 프로그램을 수강하기 위해 대륙을 횡단하는 것 외에 그 세계에 발을 담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125달러, 16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공인 자격증을 보유한 워터 소믈리에와 테이스팅 세션을 갖는 것이었다. 날씨가 흐린 어느 날 오후, 나는 아비탈 운가르(Avital Ungar)가 2011년 설립한 온라인 테이스팅 프로그램인 아비탈: 푸드 앤 드링크 익스피리언스(Avital: Food+Drink Experiences)를 통해 5종의 미네랄워터를 음미할 기회를 가졌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 중인 워터 소믈리에이자 개성 있는 푸드 트립과 이벤트를 능숙하게 설계해온 운가르는 화상 채팅을 통해 나에게 테이스팅 과정을 찬찬히 소개해주었다.

    맨 처음 맛본 물은 이탈리아 알프스에서 만들며 TDS 함유량이 낮은(비교적 적은 양의 미네랄을 함유한) 루리시아(Lurisia)였다. 가격은 한 병에 5달러, 6,600원 정도다. 물의 텍스처와 맛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을 마셨다. 그냥 물맛이었다. 그 외에는 딱히 맛을 묘사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운가르는 내게 물맛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집요하게 물었고, 나는 얼떨결에 “부드럽고 풍부한 맛이 난다”고 말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물이 내 혀를 부드럽게 감싸는 느낌이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딱히 거짓말을 한다기보다는 일종의 자유 연상을 하는 것이었다. 분명 루리시아는 ‘푹신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그리고 혀를 부드럽게 코팅하는 듯한 느낌도 스쳤다.

    다음으로 맛본 물은 콘데 나스트 소속의 푸드 매거진 <본 아페티> 직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물이자 자연적인 탄산을 머금은 비쉬 카탈란(Vichy Catalan)이었다.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탄산수라고 광고하는 이 물의 대수층은 1만 년 전에 내린 빗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곳의 물은 수 세기 동안 건강에 좋은 걸로 유명했다. 비쉬 카탈란에 대한 첫인상을 요약하자면 짠맛과 흙 맛, 약간 기름진 맛이 입안에서 한꺼번에 터지는 느낌이었다. 레어로 구운 립아이 스테이크에 곁들이면 좋을 것 같았다. 이 물은 그날 맛본 5종의 물 가운데 가장 TDS 함유량이 높았으며, 마실 때마다 물이 배 속에 묵직하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나는 3종의 물을 더 맛봤다. 내가 힐돈(Hildon)에 석회질이 함유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운가르는 무척 기뻐했다. (힐돈은 석회암 언덕 아래 자리한 대수층에서 추출한 물로, 살짝 드라이하고 흙 맛이 강하게 느껴져 기분 좋은 맛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톡 쏘는 맛이 아주 적절했던 생제롱(Saint-Géron)의 조밀한 기포감을 음미하면서는 운가르와 깊이 있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물을 테이스팅하는 과정에서 감상은 점차 풍부해졌다. 밝다, 넓다, 둥글다, 이산화규소 함유량이 높다, 시다, 마그네슘 함유량이 높다… 그런 묘사 중 일부는 말이 되는 것들이었지만 설명하고 나서도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소리지?’ 싶은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끝내 깔끔한 뒷맛을 지닌 물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워터 소믈리에 체험판은 물과 음식의 페어링을 배우는 것으로 끝났다. 먼저 멕시코산 다크초콜릿을 약간 베어 먹은 후, 비쉬 카탈란을 한 모금 마셔봤다. 큼지막한 알갱이가 씹히는 초콜릿에 비쉬 카탈란의 흙 맛이 더해지자 날카롭고, 석회암 같은 맛이 감돌며, 놀랍게도 물만 맛봤을 때 느낀 날카로운 짠맛의 느낌이 부드럽게 중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4종의 초콜릿을 서로 다른 물과 함께 맛보며 나는 궁합 사이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 운가르와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너무 진지하게 워터 소믈리에 행세를 했다는 부끄러움이 살짝 밀려오기는 했지만.

    계속 물을 맛보며 이 물이 내 입안으로 오기까지의 여정을 머릿속으로 그리기도 했다.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물을 홀짝이고 ‘찹찹’거리며 어떤 물에 칼슘이 더 많이 들어 있는지 가늠하려 애쓰는 동안, 이 물은 수원지에서 퍼 올려져 병에 담기고, 라벨이 붙여지고, 운송되어 또다시 분류되고, 보관되어 있다가 마침내 배송되어 내게 온 것이었다. 동시에 물의 이동이 미친 환경적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물은 점점 더 귀해진다. 지구 온난화와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되는 물 부족 현상 속에서 물에 함유된 미네랄을 음미해보겠다고 지구 반대편에서부터 물을 배송해 먹는 일은 너무 무책임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맨 처음 언급한 빙하수의 가격은 충격적이었다. 한 병에 300달러나 하는 이 물은 충분히 윤리적으로 추출한 것이지만(업체는 이 물을 만드는 데 빙하에서 이미 떨어져 나와 어차피 바닷물로 녹아들 예정인 작은 얼음 조각만 사용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순수한 빙하수를 맛보는 것은 우리가 굳이 넘지 않아도 될 마지노선을 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마스카는 물 부족 현상의 주된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음을 강조했다. “농업이나 땅 위를 흐르는 빗물을 활용하는 방식에 관해 논하는 것이 훨씬 시급하겠죠.” 그는 빈 생수병이 초래하는 환경문제는 다른 것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상대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생수 업계가 탄소 배출 측면에서는 광산업이나 농업에 비해 미미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버락 바버는 파인 워터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환경보호는 워터 소믈리에로서 매우 진지하게 신경 쓰는 지점이에요.” 그녀는 일회용 플라스틱 물병에 담긴 물은 사지 않으며, 이런 고급 물은 와인처럼 특별한 날이나 기분 전환이 필요한 각별한 경우에만 마신다고 선을 그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각종 탄산음료나 콤부차, 와인을 전 세계에서 수입해 즐기면서도 그것이 미치는 환경적 영향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왜 유독 물에 대해서만 그런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느냐는 것이다.

    드넓고, 생소하고, 축축한 파인 워터의 세계를 탐구하는 일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나는 항상 ‘물은 물’이라는 입장이었으나 진한 짠맛이 감도는 비쉬 워터를 맛보는 순간, 처음 가진 회의적인 생각은 스멀스멀 사라졌다. 이제 나는 미네랄워터가 지닌 독특한 맛과 텍스처에 대해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물이 정말 이 모든 복잡한 절차를 거치면서까지 음미할 가치가 있는 대상인가?’

    여전히 많은 사람이 물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곳의 물은 주의 깊게 보호되고, 물이 와인이나 캐비아, 커피 같은 방식으로 공급되고 소비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파인 워터의 세계는 어떤 식품이 가치를 얻는 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사례가 될 수 있다. 생수의 가치는 그것이 담기는 형태와 스토리에 좌우되는데 값비싸 보이는 병이나 라벨에 얽힌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결국 가격을 높인다. 게다가 물은 여전히 흔하고, 저렴하고,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재화이기 때문에 이것을 사치품처럼 요모조모 따져가며 취급하는 건 슈퍼 엘리트나 부유층에 해당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물을 맛보기 위해 충분한 돈과 시간을 들이는 건 당연히 먹고 사는 데 충분한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처럼 보이니까. 마스카는 “1990년대에 기술 관련 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워터 소믈리에 일을 하는 데 재정적으로 큰 문제가 없었다”고 했고 버락 바버는 자기가 아는 모든 워터 소믈리에는 모두 또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는 증언으로 내 예상을 뒷받침했다.

    “물과 함께하는 시간을 족히 즐기고 있나요?” 물 테이스팅을 하던 중, 운가르는 들뜬 목소리로 내게 이렇게 물었다. 버락 바버는 인터뷰 도중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다 물어보세요. 저랑 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기쁘거든요!” 물에 대한 이들의 열정은 전파력이 있어서 인터뷰를 거듭하며 나는 물을 추앙하는 새로운 세상에 점점 더 매혹되었다.

    파인 워터는 다른 모든 것이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특별해졌다. 그것에 매료된 소수 집단이 형성되었고, 그들이 열광하기 시작하자 좀 더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 수 있었다. 어떤 와인 애호가가 당신에게 스페인 북부 지방의 유명 와인 산지인 리오하(Rioja)의 연간 강수량에 대해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워터 소믈리에는 물속 마그네슘의 잔여감에 대해 몇 시간이고 떠들어댈 수 있는 사람들이다. 파인 워터의 세계에 풍덩 몸을 던져 몇 달을 보내며 나는 세상 모든 것은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될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 신경을 집중해 물을 마시고, 그 맛을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골몰하는 삶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고, 남자 친구는 여전히 게롤슈타이너 병을 새로 딸 때마다 그 섬세한 기포가 지닌 상쾌한 활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평범하다. 동시에 모든 것은 특별하다. 물도 마찬가지다. VL

      Sam Stone
      에디터
      류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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