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영화 그리고 크루즈!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샤넬의 두 번째 크루즈 쇼가 로스앤젤레스 샌타모니카 공항에서 펼쳐졌다. 큼직한 CC 로고를 장식한 샤넬 전용기가 격납고에 도착하자 쇼가 시작됐다. 전용기의 문이 열리고 모델들이 하나둘 내리며 격납고 주위를 따라 이어진 기다란 런웨이를 걸었다. 당시 이 퍼포먼스는 상당한 파격이었다. 샤넬이 파리 그랑 팔레에서 레디 투 웨어와 오뜨 꾸뛰르 컬렉션을 말도 안 되는 규모로 선보이기 한참 전이었으니까! 그 유명한 빙하 패션쇼도 이 크루즈 쇼 2년 후에나 벌어진 일이었다.

칼 라거펠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의 위대한 2008 리조트 컬렉션도 로스앤젤레스 파라마운트 픽처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3/24 크루즈 컬렉션에 비하면 한 수 아래였다. 관객석 맨 앞줄에는 마고 로비와 크리스틴 스튜어트, 라일리 코프, 잇사 레이, 마리옹 코티아르 같은 셀러브리티가 빼곡하게 앉았고, 피날레 무대는 로스앤젤레스가 낳은 뮤지션 스눕 독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스튜디오 바깥에는 셀러브리티를 보러 온 사람들과 “파라마운트사에 정당한 원고료 책정을 요구하자”며 시위 중인 미국작가조합 소속 작가 몇 명이 섞여 있었다.

샤넬이 2023/24 크루즈 쇼의 목적지를 로스앤젤레스로 결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유력한 이유는 미국 최대 규모의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가 로데오 드라이브에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에 도가 튼 샤넬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샤넬은 이번 크루즈 컬렉션을 통해 샤넬과 할리우드의 끈끈한 연계성을 강조했다. 코코 샤넬이 캘리포니아에 처음 온 것은 1931년쯤으로 거의 100년 전의 일이다. 그녀는 조지 큐커(George Cukor)나 장 르누아르(Jean Renoir) 같은 영화계 거장들의 영화 의상을 제작했다. 라거펠트는 샤넬에 36년을 근무하는 동안 영화계와 신뢰를 공고히 다져왔으며, 그 과정에서 페넬로페 크루즈와 틸다 스윈튼과 친분을 맺기도 했다.

LA 거리 곳곳에 세워진 영화 광고판은 ‘다시 찾아오지 않을 단 하루의 이벤트’라는 문구로 버지니 비아르의 쇼를 예고했다. 이는 LA 주류 문화에 샤넬이 얼마나 깊이 스며들었는지 잘 보여주는 예다. (심지어 샤넬은 크루즈 쇼를 준비하는 동안 뉴욕에서 진행된 칼 라거펠트의 수십 년 커리어를 기리는 멧 갈라에 활발히 참여하기도 했다.) 샤넬은 쇼에 참석한 손님 수백 명에게 각자 자신의 이름이 주인공으로 등재된 작은 광고판을 제공했다. 하이힐을 신은 모두가 스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버지니 비아르는 영화나 레드 카펫이 아니라, LA의 일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베니스 비치의 데크 길, 거리를 쏘다니는 롤러스케이터, 다부진 몸의 근육질 남자들과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이 서로를 힐끗 쳐다보는 바닷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일몰. “우리의 우상이었던 제인 폰다나 신디 크로포드를 테마로 컬렉션을 진행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쇼 하루 전날 ‘마무리 작업’에 들어간 그녀가 말했다. “청바지도 좋고, 에어로빅도 좋죠. 쇼는 언제나 우리에게 이전에 해보지 못한 것을 실행할 기회를 제공하거든요.”

비아르는 아티스틱 디렉터로 발탁된 2019년부터 샤넬에 더 젊고 여성스러운 변화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발 토시, 하이힐 운동화, 트레이닝 쇼츠, 기능성 탱크 톱에 스케이트보드까지 추가된 스포티한 컬렉션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였다. ‘일상적인’ 샤넬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것이 분명했다. 공교롭게도 마고 로비 주연의 영화 <Barbie>가 곧 개봉하는 건 우연의 일치일까? 샤넬과 할리우드의 또 다른 시너지는 이미 시작됐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