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알버트 크리믈러가 말하는 100년의 유산

2023.05.27

by 김다혜

    알버트 크리믈러가 말하는 100년의 유산

    알버트 크리믈러가 말하는 100년에 걸친 위대한 유산.

    “나무틀의 직선 구조가 그래픽적이군요. 마음에 들어요.” 아크리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버트 크리믈러(Albert Kriemler)가 백스테이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자신의 건축적 취향에 대해 한참 설명했다. 정갈하게 다듬은 머리카락과 수염, 목 아래로 단정하게 접힌 터틀넥 상의, 짧고 깨끗한 손톱까지. 얼마나 깔끔한 성격인지 한눈에 보였다. 첫인상은 날카로웠지만 미소를 띠며 하우스에 대한 애정 어린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에 긴장이 탁 풀렸다. “모든 면에서 아크리스의 유산은 자랑스럽습니다. 3대를 거쳤고, 그 3대가 각각 다르게 하우스를 발전시켰죠. 이는 현재 아크리스의 위치를 상징합니다.” 아크리스는 파리 패션 위크에 참가하는 유일한 스위스 브랜드다. 가족 경영을 통해 전통을 이어왔고,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아카이브를 재해석한 두 번의 패션쇼로 이를 기념했다. 크리믈러는 그중 두 번째 쇼인 2023 F/W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서울에 왔다. <보그>는 한국에서의 첫 패션쇼를 몇 시간 앞둔 그와 8년 만에 재회했다.

    2015년 이후 다시 한국을 찾았다. 다시 방문하게 되어 기쁘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나라다.

    아크리스에서 40년 넘게 일했다. 처음 합류한 날을 기억하나?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틀리에를 자유롭게 오갔고, 부모님과 함께 직물 박람회에 다녔다. 덕분에 비교적 일찍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컬렉션을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단이다. 원단 없이 디자인을 시작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소재를 눈여겨본다. 옷은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몸에 닿는 촉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특히 한국인은 좋은 원단에 민감하다. 그 점이 매우 만족스럽다.

    무엇에서 영감을 얻나? 일상, 특히 여행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이번 한국 방문 자체도 또 다른 영감이 된다. 그저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한국 젊은 세대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패션에 선진적이고, 다양한 취향이 모여 있다.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한국에 오래 머물 만한 이유다.

    2023 F/W 컬렉션은 1970년대에서 시작했다. 100주년을 맞아 올해는 잠시 멈추어 3세대가 성취한 것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아카이브를 다시 살펴봤다. 1980년대 이전에는 할머니와 부모님에게 아카이브를 저장해둘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1970년대 패턴이 담긴 상자 세 개를 물려받았다. 드레스 예닐곱 벌과 코트 한 벌, 상자를 보며 깨달았다. 이것을 재가공해서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면 아크리스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굉장히 멋질 거라고.

    원단이 중요하다고 했다. 어떤 소재를 사용했나? 브리티시 체크무늬와 고급스러운 벨벳. 1970년대 벨벳은 뻣뻣했지만 아크리스는 유연한 스트레치 벨벳 셔츠와 네오프렌 벨벳 수트를 만들어냈다. 아버지의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꽃무늬 원단도 있다. 이브 생 로랑의 친구이자 유명 패브릭 디자이너 구스타프 춤슈테크(Gustav Zumsteg)가 만든 것이다. 1976년에 제작된 프린트를 현대적으로 다시 채색해 두툼한 캐시미어에 적용했다.

    그래픽적 로고 프린트가 등장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로고가 아니라 그저 글자를 활용한 거다. 1970년대 잡지에서 발견한 그래픽에서 영감을 얻어 아크리스의 상징인 사다리꼴 안에 AKRIS 다섯 글자를 배치했다. 그 안에 건축적 요소가 있다.

    가장 좋아하는 룩을 꼽자면? 더블 페이스 스트레치 플란넬로 만든 짙은 회색 수트. 가장 이상적인 룩이다. 내 빈티지 재킷을 모티브로 했고, 15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원단을 썼다. 가장 멋지고 모던한 겨울 소재다. 다 맞춤 재단했고 비율까지 완벽하니, 이런 옷은 평생 소장할 가치가 있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책 <Selbstverständlich>도 발간했다. 기념 책자를 꽤 많이 봐왔다. 그저 아름다운 광고 이미지, 런웨이 사진, 짧은 인터뷰로 구성된 책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대신 가족에 대한 짧은 소개를 비롯해 가족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들려주며, 아크리스가 생갈렌(St. Gallen)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100년 동안 어떤 업적을 쌓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컬렉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전체 메시지가 중요하다. 오늘날 여성이 옷을 다시 입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이다. 뚜렷한 목적이 있는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드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들은 삶과 직업, 대중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상은 고객의 개성을 가장 현대적으로 잘 표현하는 멋진 옷이고, 입는 사람도 그렇게 느끼길 바란다.


    패션 외에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건축과 예술을 사랑한다. 건축은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예술 세계는 그 전체가 순수한 영감이다. 나는 눈이나 감각에 닿는 모든 것에 언제나 열려 있고, 그들의 감정을 따르고 깊이 공감한다.


    그래서 예술가와 자주 협업하는 모양이다. 패션은 패션에서 영감을 얻지 않는다. 예술가나 건축가, 장인과의 교류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다행히도 나는 이 사실을 꽤 일찍 알아챘다. 어떤 예술가가 흥미롭게 느껴지면 그의 작품과 작업 방식에 빠져들게 된다. 이는 자동적으로 영감에 대한 다른 접근 방식을 알려준다. 시각적이든, 정신적이든 말이다. 제타 브러테스쿠(Geta Bratescu)가 생전에 자석을 이용해볼 것을 제안한 적이 있다. 서로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것이 인간관계와 같다는 말에서 영감을 얻어 자석으로 잠금장치를 만들었다. 검정 수트에 달린 그 마그네틱 클로저다.


    한국에서의 첫 쇼를 앞두고 있다. ‘처음’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두 번째는 결코 첫 번째와 같을 수 없다. 한국 그리고 아시아에서의 첫 패션쇼라 매우 의미가 깊다.


    쇼가 끝난 뒤엔 무엇을 할 건가? 우선 파티를 즐길 거다(웃음). 서울 일정을 마무리한 뒤에는 도쿄에 갔다 스위스로 돌아간다. 5월 11일 취리히 디자인 박물관(Museum für Gestaltung)에서 전시회를 열기 때문이다. 1년 동안 준비했으니 기대해도 좋다. (VK)

      에디터
      김다혜
      포토
      장기평, JAMES COCHRANE, COURTESY OF AKRIS
      SPONSORED BY
      AK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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